정본 백석 시집 - 개정판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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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에서 엮은이가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시는 작가가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한 시들을 담았다고. 아뿔싸, 나는 참 오래도 오해하고 있었다. 이 오해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는 이제부터 더 짙은 실망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해방 이후 북쪽에 남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의 성향을 가진 시인이었으리라고, 작품도 그런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 자꾸만 색안경을 쓰고 시를 봤더라는 것, 그러니 이 시인의 시를 더 읽어 보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겠지.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 요소인지 아프게 깨닫는다.


책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앞쪽에서는 작가의 시가 다시 3부로-이 책을 구하도록 동기가 되어 준 ‘사슴’, ‘함주시초’, ‘흰 바람벽이 있어’-펼쳐져 있고 이 뒤에 이 시들의 원본이 실려 있다. 내가 사투리와 옛말 때문에 읽기 힘들다고 느꼈던 점을 없애 놓은 편집이다.(앞쪽의 시들에는 낱말 풀이도 자세하고 친절하게 나와 있다.) 풀이해 놓은 낱말들이 가끔 공부를 해야 할 듯한 부담과 착각을 불러내기는 했지만 이 조급증만 다스린다면 금방 확인하고 비교해 볼 수 있어 아주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작가와 관련된 전문 자료가 실려 있어 작가나 작가의 시를 좀더 많이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시인의 시를 새로 본다. 내 하찮은 편견과 선입견은 버리고 1935년부터 1948년 사이의 우리 옛 땅과 옛 사람과 옛 삶을 읽는다. 심지어 2부의 ‘함주시초’에는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남쪽 지방을 작가가 여행하며 쓴 시들이 실려 있다. 낯익은 땅의 이름이 새삼 반갑다. 통영, 창원, 고성, 삼천포. 작가가 살았던 터전인 북쪽 땅의 이름에서 얻었던 낯선 느낌과는 또 다르다. 그래, 그랬지, 그때는 남북으로 한 나라였지, 갈 수만 있다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모두 오갈 수 있었겠지. 살아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어도 다 우리의 땅, 우리의 사람들이었겠지. 


시인이 시로 내보이는 장면들이 몇몇으로 구분되어 눈에 들어온다. 땅의 풍경, 집의 풍경,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애틋한 삶의 역사, 사람 가까이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 이곳저곳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길의 풍경, 길 위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삶의 풍경, 작가가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을 향한 고백과 사랑까지. 소설이 아닌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한 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본다. 우리보다 조금 앞선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를 읽는다. 조금도 모자라지 않게 조금도 섭섭하지 않게.


시가 덜 읽히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오해이고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20602)    


93쪽


  바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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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김재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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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조금씩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기도 할 것이다. 가난이라든가 폭력이라든가 차별이라든가 이 모든 것을 다 합해 놓은 처절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 반갑지 않다. 그럼에도 알아야 한다는 게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라는 게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읽으면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떠올렸다. 책을 떠올린 건지, 그 책을 읽을 때의 나를 떠올린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겹쳤다. 한때, 아주 젊었을 때(어렸을 때가 아니다), 이런 주제를 담고 있는 글을 제법 읽었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읽는 내가 마음에 들었고, 읽으면서 분노하고 다짐하던 내가 다행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내놓고 말못하겠지만 적어도 알게 된 나는 좀 덜 비겁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무섭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어도 아예 고개돌리지는 않을 정도로.


이 책, 오래된 책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의 <더읽기> 자료에서 소개받았다. 단원 주제가 '공동체와 문학'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구한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일, 우리나라의 형편에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단일민족이라면서 보이는 배타적 태도가, 그것도 우리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상당히 심각한 문제들을 낳고 있으니까. 이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다. 하나하나 무겁고 가슴맺히는 응어리를 남긴다. 나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문제인가 싶어도 곧 연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외국노동자, 그들의 가족, 아픈 현실.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차원을 넘어선 공동체의 의식 수준. 인간 관계의 기본적인 갈등 관계. 나는 잘 살고 싶고, 나보다 못한 너를 짓밟고 싶고, 남의 고통은 모른 척 하고 싶고, 내게만 좋은 일이 있으면 만족하고,...... 우리는, 나는, 앞으로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이토록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승화시켜 내는 것일까. 정말 이것이 작가에게는 벌이고 또 상인 걸까. 이런 생각도 잠깐 해 본다. (y에서 옮김2018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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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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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겪는 온갖 경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으로 남는다. 떠올릴 때마다 흐뭇해지는 좋은 기억도 있고 떠올리기 싫지만 그럴수록 더 떠오르는 좋지 않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좋은 기억은 어쨌거나 좋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겠지만,-어떤 이는 좋은 기억이 많을수록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좋지 않은 기억은 때로 삶을 황폐하게 만들거나 심할 경우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좋지 않은 기억들을 다스리는 저마다의 방법만큼은 갖고 살아야 할 일인데. 


그런데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기억도 좋은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 이렇게 둘로만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둘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어중간한 기억들이 사실은 더 많지 않을까? 마냥 좋기만 한 기억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기분 나빠지는 기억도 아니고, 떠올리면 뭔가 쓸쓸해지거나 아쉬워지거나 후회가 되기도 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그런 기억들. 내놓기에는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것 같고  숨기기에는 좀 섭섭해지는 약간은 그립기까지 한 기억들로. 하루키의 이번 책은 이런 무수한 기억들을 우수수 떠올리게 해 주었다. 날도 얼어붙어 춥기만 하고, 집 밖 세상은 온통 위험하여 나서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내 시간을 어루만져 주면서.    

 

실려 있는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소설이라고 하는데 산문으로 봐도 어긋날 게 없어 보일 정도로 작가의 실제 사정과 일치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하루키의 산문을 오랫동안 읽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작가는 소설이냐 산문이냐 하는 것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이지만. 기억에 대해, 떠오르는 기억에 대해, 기억은 나는데 그 기억으로 지금의 삶이 흔들리는 일까지는 생기지 않는 기억에 대해, 그렇지만 남에게 보여 주고 싶기는 한 어느 시절의 기억에 대해 쓰는 글. 그 기억들을 되살려 봄으로써 지금의 나를, 내 처지를, 내 행운과 내 삶의 가치를 확인해 보는 계기로 삼기 위해 쓰는 글. 작가는 소설가이니까, 작가니까, 글을 씀으로써 이 일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이고, 이때 쓰는 글은 종류가 무엇이든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내 생각.   


그렇다면 독자는, 나와 같이 읽기만 할 줄 아는 독자는 제멋대로 흔들리는 사소하지만 뜨끔뜨끔한 제 기억의 긴 통로 앞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작가처럼 글로 쓸 수도 있겠고, 글이 아니라면 또다른 방법으로 저마다의 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며, 굳이 생산이 아니어도 각자의 기억을 승화시키는 나름대로의 활동을 해 볼 수 있겠지. 특히나 억눌렀던 기억이라면, 잊은 척했던 기억이라면, 그까짓거 무시했는데 꿈 속에서 그만 휘둘렸던 기억이라면, 그냥 기억 저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드러내고 마주하고 어루만져서 달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심리 상담의 도움이 아니어도 이제 알만한 사람은 알게 된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 왔던가. 나는, 쓸 줄 모르는 나는,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바로 작가들이 쓴 글을 통해 내 숱한 기억들을 만나고 달래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랬던 것처럼.    


기억은, 특히나 내 기억은 오롯이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기억은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실제로 있었던 일 그대로든, 실제 일에 가상의 일이 덧붙여졌든, 기억은 내가 바라는 바를 품게 된다. 특히 어떤 사람과 이어져 있는 기억의 경우,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인상보다 그렇지 않은 쪽으로 더 큰 인상을 남긴 경우라면, 약간의 원망이나 후회나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 따위들로 인해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기억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실제로 어떠했던가 하는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래서 그랬던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불러낸 내 기억들에서는 유독 쓴 맛만 났다. 책 속 주인공이든 주인공의 기억 속 사람이든, 어느 쪽이든 아픈 마음이 더 컸던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는 기억 속 아픈 나를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마치 나는 살면서 한번도 누군가에게 상처 입혀 본 적 없는 것마냥. 


‘돌베개’의 화자는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자신의 목을 올려놓아야 한다(24-25쪽)고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돌아보니 내 마음을 베고 간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 기억이 화자의 처지와는 달리 아직 먼지가 되지 못했다는 것도. 


‘크림’의 화자는 열여덟 살 때 겪은 기묘한 일을 들려 준다. 이번에는 화자가 아니라 화자를 당혹하게 만든, 화자에게는 하찮고 시시한 사람의 입장이 된다. 그리고는 생각 속에서만 도모해 보았던 하찮고 시시한 복수가, 그 방법들이, 그 생각을 하던 내가 떠올랐다. 그게 뭐라고, 그 사람이 뭐라고, 중심도 없는 원을 그리겠노라고 애를 쓰던 시절이라니. 다행히도 나는 이제 그때만큼 젊지 않다.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의 화자는 꿈 같은 이야기와 꿈 이야기를 들려 준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마음이 지극하면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게 되는 걸까, 꿈에서 못 만나서 꿈을 꿨다는 소설을 쓰는 걸까. 소설의 의도와 상관없이 음악과 관련된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 몇 개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어떤 음악은, 어떤 노래는, 어떤 사람과의 기억 때문에 들을 때마다 불쾌해지기만 하니. 


‘위드 더 비틀스’의 화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어렸을 때 보았던 아름다운 소녀를 잊지 못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게 또 이래저래 나쁜 일이라고도 할 수 없겠고. 아름다운 소녀가 되어 본 적도 없고, 아름다운 소년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나는, 비틀즈의 노래에 빠져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낯설었다. 낯설면서도 쓸쓸했다. 아름다운 이를 기억할 수 없다는 건, 살면서 꽤 쓸쓸한 일이 되는구나 싶었으니까.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야구를 소재로 삼고 있다. 글은 글대로 재미있었고, 나는 나대로 잠깐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야구와 함께 한 시절을 떠올리면서. 천안북일고, 선린상고, 경북고, 광주일고, 군산상고,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그리고 프로야구가 시작되던 시절의 기억까지. 요즘 야구는 왜 그때만큼 재미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사육제’의 화자는 살짝 얄밉다. 남자는 나이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싶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인정하는 마음 따로 얄미운 마음 따로다. 그래, 예쁜 여자는 예뻐서 기억하고, 못생긴 여자는 못생겼다고 기억해라. 나는 기억하지 않는 것으로 그대를 지우겠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 원숭이는 사랑을 한다. 사랑 따위 현실에서는 관심이 없노라 말을 하면서 글 속 사랑 이야기에는 여전히 설레는 내가 신기하다. 사랑만큼 내 기억에서 먼 주제도 없을 것 같다. 


‘일인칭 단수’의 화자는 친숙하면서 좀 난처하다. 나처럼 보이고, 8편 중에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듯하다. 내가 언젠가, 어느 곳에서, 누군가에게 지독한 짓을, 고약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알면서 모른 척하고 버티는 건 아닌지, 거울에 비친 나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기억들을 지우고 사는 건 아닌지...


한 편 한 편의 글을 따라 짚으면서 내 기억들을 이어 붙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 작가의 글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읽으면서 나를 읽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감춰 놓고 있던 나를 끄집어 내어 만나게 해 준다는 것. 나도 모르게 작품 속 누군가의 눈으로 마음으로 나를 보고 나를 건드리고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것. 이 책으로 내가 기억 속 나를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흐뭇했던지. 설사 그때의 내가 좀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속좁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질지라도. 그때의 내가 있어 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일 테니 이마저 고마운 노릇이다. 


행여 나로 인해 불쾌한 기억을 갖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나를 원망하느라 시달린 기억이 있으시다면 이 책을 읽고 지울 수 있게 되기를. 작가가 쓰면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내가 읽으면서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당신도 할 수 있게 되기를. (y에서 옮김20201217)   

  

매우 신기하게도(어쩌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 늙어버린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ㅡ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ㅡ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아니, 기억조차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 P23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 P48

"물론 죽음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 버드가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완만한 것이기도 해. 자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프레이즈와 마찬가지야. 순식간에 지나가는 동시에, 한없이 잡아 늘일 수도 있지. 동쪽 해안에서 서쪽 해안만큼 길게ㅡ혹은 영원에 다다를 만큼 길게. 시간이란 관념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없어.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하루하루 살면서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도 실제로 맞는 진짜 죽음은 철저하게 무거워. 그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갑자기 통째로 사라져버리지. 완전히 무無가 되어버려. 그리고 내 경우, 그 존재는 나 자신이었어." - P68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내가 소년 시절 품었던 꿈 같은 것이 이제 효력을 잃었음을 새삼 인정해야 해서일 것이다. 꿈이 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실제 생명이 소멸하는 것보다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때로 매우 공정하지 못한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P76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131쪽),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ㅡ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47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 P169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P181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ㅡ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ㅡ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 P202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ㅡ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ㅡ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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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96
신철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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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긴 장마는 내 기억에 없다. 지금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지난 기억을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고긴 장마 안에서 이 시집을 읽는다. 장마가 시 속에도 그득하게 담겨 있다. 자연이 가져온 장마와 사람이 만들어낸 장마와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장마와 눅눅해서 불쾌하기 그지없는 장마와 사람을 살린 장마와 사람을 살리지 못한 장마가 몽땅 들어 있다. 이렇게 묘할 수가, 이 시기에 이 시집을 읽고 있다니. 맑은 날 펼쳤더라면 금방 말라 버릴 습기로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으리라 싶다. 그렇다고 이 장마가 고마운 건 결코 아니다.

 

시들은 온통 젖어 있고 물에 잠겨 있고 물에 잠겨서 슬픔을 흔들고 있다.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말없는 아픔과 하소연이 이렇게나 많았더란 말인가. 물은 슬픔의 뒷면이었던가. 거듭되는 슬픔은 슬픔의 결을 흐리게 하고 만다. 시를 읽을수록 나는 점점 둔해졌다. 뒤로 가면서 만나는 거친 시어들마저 둔해진 내 얼을 깨우지 못하고 만다. 이런 무기력, 이런 죄책감, 이런 원망은, 딱 싫은데. 나의 이 불평마저 시인은 냉엄하게 나무란다. 그런다고 네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전체를 고르는 대신에 한두 행씩만 골라 옮겨 보았다. 전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골라낸 구절들은 좋았기 때문이다. 부분의 이끌림, 내가 품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뜻하는 것이겠지. 시인이 뿌려 놓고 있는, 아픈 세상을 염려하는 말들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이것밖에 못 품어서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이만큼이라도 건져 올렸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장마의 습도가 너무 짙어서 요즘은 슬퍼하는 방법을 못 찾겠다. (y에서 옮김20200808)  

내가 고개를 숙일 때 당신은

사막이었다가 사막의 선인장이었다가 사막의 밤을 횡단하는 기구였다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눈사람이었다가 - P16

글자가 지나가지 않으면 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 P18

당신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모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갔군요 - P21

자신이 고독하다는 생각이 그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있다 - P22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 - P31

그러나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는다 - P33

멀리 있는 것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 P44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 P49

비밀이 많은 자는 늙지 않는다 - P70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지는 낙엽들 - P74

하나의 슬픔이 다른 모든 슬픔을 아우를 때

하나의 거짓이 다른 모든 아픔을 짓누를 때 - P108

잘 웃는 사람은 잘 울기도 한다 - P116

삶의 절반 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그 기억을 허무는 데 바쳐진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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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라면 봉지 에디션 한정판) ㅣ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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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라면을 주인공으로 삼은 책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라면이 겉으로만 주인공으로 나서 있고 실속은 다른 이야기, 다른 음식들이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라면이 있을지, 게다가 얼마나 많은 라면 요리가 있을지. 언젠가부터 라면을 봉지에 실어 놓은 레시피대로 만들어 먹는 게 아닌 형태가 유행이 되었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온갖 라면을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세상이라니. 이 책을 통해 특별히 맛있을 라면의 레시피 하나 얻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라면은 제 입맛에 맞게 끓인 것이 가장 맛있다는 작가의 말, 틀린 말은 아닌데 서운해졌다.


나는 내가 라면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내 쪽이 문제다. 식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읽고 배부른 기분이 드는 것으로 그만이라는. 간단하게 먹겠다고 라면을 끓이는 것인데 라면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고 또 스프를 일부 빼고... 등등, 이런 일은 내 취향이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끓인 라면보다 남이 끓여주는 라면을 더 맛있게 먹는 사람이고. 


나도 진짜 맛있는 라면을 못 먹어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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