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양식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5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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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본디 제목은 'Giant's bread'이다. 번역을 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다 읽고 되돌아와서 프롤로그를 몇 번 더 읽고 나니 원래 제목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거인이라,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거인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인생, 참 어지럽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을 맞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을 시작부터 통틀어 헤아려 본다면 다 다르고 다 소중하고 다 어마어마하다. 쉬워 보인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물며 내 생도 아닌 남의 생 앞에서는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될 일이고.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버넌'이라는 인물에서 시작하여 사촌인 '조'와 친구인 '시배스천'을 거쳐 '넬'과 '제인'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이야기. 작가는 어쩌면 이다지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과 개성을 잘 구현해 놓고 있는지. 내가 글을 읽는 것인지 소설 속 인물들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더러 나를 들여다 보라고 해도 이만큼 정밀하지는 못하리라. 

 

글쎄, 사람을 안다는 건 뭘까? 알 수 있기는 할까?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나도 나를 모른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것, 다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죽을 때까지 알아 가는 게 결국은 인생이라는 것,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도 나를 다 알아냈다고 할 수 없는 것. 그런데도 우리는 산다. 살고 또 살다가 죽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를 남겨 두고 죽기도 하고.

 

재능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욕망이라든가 하는 요소들이 한껏 가볍게 여겨지다가도 더없이 무거워지는 것들임을 알겠다. 이것들이 결국은 거인이 삼키는 빵의 하나하나였을까. 삼키고 키우고 자라고 죽이는 과정의 반복. 따져 보면 하나하나 헛될 것은 없는데, 글을 다 읽고 난 내 마음은 어찌 이리 허무한지 모르겠다. 마치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건 아니었다고!'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행복 혹은 불행이라는 간단한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는 뜻인 걸까?   

 

읽는 시간이 내내 좋았다. (y에서 옮김2019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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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입
마스다 미리 지음, 이연희 옮김 / 라미엔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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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먹은 것들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스다 미리가 처음 먹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겹치는 음식을 떠올리면서 덩달아 떠오르는 내 추억들로 잠시 행복했다. 그렇구나, 먹을 것과 함께 하는 추억은 어떤 것이라도 즐거운 것이구나. 이 책의 소재가 기획으로는 적절했구나 싶었다.

 

그 동안 먹을 것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는 것에 그다지 집착이 없다는 것을 알기는 했다. 소울 푸드라는 게 딱히 없었고, 무얼 먹자고 시간이든 노력이든 특별히 기울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처음 먹은 음식이라고 해도 기억에 담아 둔 것은 별로 없었을 텐데, 몇 가지는 흐뭇한 웃음과 더불어 생각이 난다.

 

마스다 미리는 어렸을 때 어른처럼 해 보는 것에 큰 의미를 가졌던 모양이다. 나는 어땠던가. 어른처럼 해 보는 태도나 취향? 글쎄, 애써 해 보려고 한 것 같지도 않고 친구들과 해 보더라도 감격까지 하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마스다 미리를 비롯한 작가들이 '맛있다, 맛있어' 하는 표현에는 꽤 공감하게 된다. 이렇게 맛있나? 하면서.

 

내 기억에서 찾아 보는 나의 첫 한입에 무엇이 있나 더듬어 보니 두 가지가 생각난다. 스크류드라이버와 비엔나커피. 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마셔 보았다. 내게 스크류드라이버를 누가 알게 해 주었는지를 모르겠다. 예쁜 기억이 아니었던 것일까, 후후. 둘다 지금은 찾지 않는 것으로 보아 되새기고 싶은 맛은 아닌가 보다.

 

추억의 과자는, 음, 아무것도 쓸 게 없다. 이건 좀 쓸쓸하다. 더러 즐겨 먹은 것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으나 또 먹고 싶다 하는 게 없다는 것,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정말 먹을 것에 별 애착이 없나 보다. 먹는 것도 사는 즐거움의 하나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먹는 이야기에 더 쉽게 빠지는 것일까. 이것대로 괜찮기도 하다. 적어도 살찌는 문제나 과식으로 인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y에서 옮김20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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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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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도록 해 주는 사람들도 많이 등장한다. 둘은 같아 보이는데 똑같지는 않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소설, 참 따뜻하고 유쾌하면서 살짝살짝은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이 소설에서 얻는 만큼의 웃음과 여유와 풍요로움을 쉽게 얻을 수 없다 보니 아쉬움이 더 컸다. 바라는 바의 바람직한 사회, 소설이 추구하는 사회의 한 모습, 이 소설이 어느 정도 구현하는 데에 성공하지 않았나 혼자 헤아려 본다. 이 모습에 내 마음이 열린 것일 테고.

오수림, 매력적인 청소년 화자. 순례 씨, 매력적인 건물주이자 바람직한 어른상. 수림의 1군 가족들이 더없이 형편없어 보이지만 그들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누가, 어떤 상황이 이런 사람들, 수림의 가족과 같은 이들을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 환경 탓만은 못한다. 유전자 탓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수림이 더 멋지게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어른의 자격을 가진 아이, 엄마보다 아빠보다 언니보다 지혜로운 아이. 이것만이 희망이다.

나는 돈이 많이 없으므로, 건물주도 아니므로, 앞으로도 돈을 많이 벌 생각이 없으므로, 순례 씨처럼 될 수는 없다. 그저 순례 씨와 같은 건물주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 그래도 순례 씨가 가진 생각만큼은 나도 갖고 싶다. 일부 겹치기도 하는데 조금 더 짙어지도록 챙기면 될 듯도 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부당한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 쓰레기 문제에 민감해서 제대로 처리하려는 사람, 진정한 어른. 75세에 이런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수림이와 같은 청소년에게도 권할 책이지만 수림이의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더 읽었으면 좋겠다. 안 될까? 안 될지도... (y에서 옮김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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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할머니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9
샬롯 졸로토 지음, 제임스 스티븐슨 그림, 김명숙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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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차 할머니가 될 것이다. 내 아이의 아이의 할머니가 아니라 그냥 보통명사로 부르는 할머니. 내가 아무리 안 되고 싶다고 우기고 마음먹고 준비를 한다고 해도 끝내 거스를 수 없는 그런 이름의 할머니. 그래서 나는 기꺼이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이 동화 속 할머니처럼만 될 수 있기를.

생각해 보면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보다 절대로 되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하다. 말 많은 할머니, 퉁명스러운 할머니, 뻔뻔한 할머니, 불친절한 할머니, 더러운 할머니, 고집 부리는 할머니 등등. 반대로 되고 싶은 할머니라면, 꽃을 잘 가꾸는 할머니, 아이와 동물에게 상냥한 할머니, 책을 가까이 하는 할머니, 친절하게 응대하는 할머니, 선물할 줄 아는 할머니 등등. 이 동화 속 할머니처럼 요리를 잘 하는 할머니는 못 될 것 같아 이건 좀 아쉽다. 지금도 못하는데 나이 든다고 잘하게 될 수는 없을 테니.

아이들은 이 동화책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려나? 이 다음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예상하려나. 아니면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려나. 자신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상상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가까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우리네 요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을지. 염려가 좀 많이 된다.

이 책은 정녕 할머니들에게 보여 드려야 할 책이다. (y에서 옮김20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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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상처받았나요? - 상처 입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술 빼고 다 있는 스낵바가 문을 연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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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라는 게, 참 고약한 속성을 갖고 있다. 일부러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들겠다고 괴롭히는 때를 빼고도 일상에서 본의 아니게 주고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나는 내 할 말을 당당하게 하겠노라고 여기고 한 말에 듣는 쪽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대가 내 처지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전하는 말이나 행동으로부터 짙은 아픔을 느끼기고 하고. 그게 아니었는데 싶어도 이미 받을 건 받고 난 뒤고 아픈 것도 아프고 난 뒤고. 이러니 다른 이와 맺는 관계가 어렵고 힘들다고 느낄 수밖에.

작가의 이번 책은 이런 만남들을 그림으로 풀어놓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라는 형식을 통해 인물들의 사연을 연결시켜 놓았다. 설정이 아프다는 것에서 비롯되다 보니 내용은 아무래도 무겁고 읽는 마음은 가라앉는다. 그래, 나도 이런 적 있었던 것 같아, 상처를 받는 쪽이든 주는 쪽이든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어느 쪽도 비난할 게 없다. 그럼에도 아픔은 도드라진다. '우리 서로 이렇게 살지 않을 수 있잖아요?' 싶어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잖아요.' 하면 부정할 수 없는 일상의 상황들. 그렇다고 하나하나 내 감정 네 감정을 자세히 풀어가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스낵바가 필요한 건가? 스낵바든 치킨집이든 맥주집이든 카페든, 남들로 인해 조금씩 조금씩 생채기가 나 있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질 공간을 마련해 두는 일. 혼자 해내기 힘든 이들을 위해 나서 주는 만화 속 스낵바 주인 같은 이가 있어 준다면 더할 나위없이 고마운 일일 테고.

책을 보다보면 다들 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이런 주인이 운영하는 스낵바가 우리집 근처에 있었으면 하고. 쉽지 않지만 한 발 더 나서는 생각의 연습을 해 본다. 스낵바 운영은 못하더라도 말로나마 마음으로나마 스낵바 주인처럼 건네 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고. 결심만으로도 내 마음이 따스해져 오는 걸 보면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 게 맞는 모양이다. (y에서 옮김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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