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의 행복한 수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다는 좋다. 나이와 상관없이 뜻이 맞고 형편에 어울리는 이들과의 나른하고 즐겁고 유쾌한 수다. 이번 책의 주제는 수다라고 해도 좋겠다. 40세의 미혼여성인 히토미가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 69세로 히토미의 엄마인 노리에가 이웃들과 나누는 수다, 그리고 히토미의 아버지인 70세 히로가 아내와 딸과 함께 나누는 가족 간의 수다. 그리하여 어느 하나 빠뜨리는 영역 없이 골고루 나누게 되는 수다. 


좋은 일에는 좋아서 기쁘다고, 좋지 않은 일에는 서로 달래며 괜찮다고, 아무리 오래 함께 지내온 듯해도 모르는 점은 또 생겨나서 새롭고 익숙한 일에는 안심이 되어 정답고. 수다가 이런 것이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듯 여겨졌다가도 헤어질 때쯤에는 그동안 나눈 수다로 생기를 얻게 되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그래서 또 만나기를 기대하고 다음의 수다를 미리 그리워하게 되는 것. 


한가로운 기분으로 간결한 그림에 마음을 빼앗기며 읽는다. 이 또한 수다다. 작가와 내가 나누는 한계 없는 수다. 히토미와 노리에의 중간 쯤에 자리잡은 내 나이, 친구들과의 수다도 가족과의 수다도 모두 소중한 것임을 알겠다. 이만큼을 바라는 것도 넘치는 소원일까, 이런 바람도 조심스러운 시절이다. (y에서 옮김202204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9
피천득 지음 / 민음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책은 갖고 있으면서 또 구하고 싶어진다. 이 책처럼. 읽겠다도 아니고 그저 갖겠다는 욕심으로. 앞서 나온 '인연'이라는 제목보다 이번 책 제목이 훨씬 마음에 든다. 오래 전부터 글 '인연'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글들은 낯익고 또 낯설다. 다시 읽어도 은근히 멋진 글들이 많다. 처음 읽는 것처럼 여겨지는 글들도 있다. 한 번 읽었다고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니 처음처럼 본들 또 어떨까 싶다. 한편 몇몇 작품은 아주 많이 읽어서 외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글을 한창 읽고 있었을 그때, 나는 몇 살이었던가, 어디에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보는 일 자체가 추억이 된다. 


시작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였을 것이다. '인연'을 가르치셨던 나의 국어 선생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또한 내게는 인연이었던 것인데. 


이번 책에는 아들 수영이에게 보내는 몇 편의 편지도 담겨 있다. 작가의 딸인 서영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가 두 아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점도 신선했다. 수필의 역사, 개인의 역사, 한 가정의 역사,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더없이 소중한 삶을 만난 기분이 된다. 위대하고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위대한 것만 같은.


'플루트 플레이어'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양식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5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본디 제목은 'Giant's bread'이다. 번역을 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다 읽고 되돌아와서 프롤로그를 몇 번 더 읽고 나니 원래 제목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거인이라,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거인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인생, 참 어지럽다. 단순하고 쉬워 보이기도 하는 순간들을 맞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을 시작부터 통틀어 헤아려 본다면 다 다르고 다 소중하고 다 어마어마하다. 쉬워 보인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하물며 내 생도 아닌 남의 생 앞에서는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될 일이고.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버넌'이라는 인물에서 시작하여 사촌인 '조'와 친구인 '시배스천'을 거쳐 '넬'과 '제인'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이야기. 작가는 어쩌면 이다지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과 개성을 잘 구현해 놓고 있는지. 내가 글을 읽는 것인지 소설 속 인물들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더러 나를 들여다 보라고 해도 이만큼 정밀하지는 못하리라. 

 

글쎄, 사람을 안다는 건 뭘까? 알 수 있기는 할까? 자신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 나도 나를 모른다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것, 다 알 수 없다는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죽을 때까지 알아 가는 게 결국은 인생이라는 것,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도 나를 다 알아냈다고 할 수 없는 것. 그런데도 우리는 산다. 살고 또 살다가 죽을 것이다. 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를 남겨 두고 죽기도 하고.

 

재능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욕망이라든가 하는 요소들이 한껏 가볍게 여겨지다가도 더없이 무거워지는 것들임을 알겠다. 이것들이 결국은 거인이 삼키는 빵의 하나하나였을까. 삼키고 키우고 자라고 죽이는 과정의 반복. 따져 보면 하나하나 헛될 것은 없는데, 글을 다 읽고 난 내 마음은 어찌 이리 허무한지 모르겠다. 마치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건 아니었다고!'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행복 혹은 불행이라는 간단한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는 뜻인 걸까?   

 

읽는 시간이 내내 좋았다. (y에서 옮김201909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초의 한입
마스다 미리 지음, 이연희 옮김 / 라미엔느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먹은 것들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스다 미리가 처음 먹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와 겹치는 음식을 떠올리면서 덩달아 떠오르는 내 추억들로 잠시 행복했다. 그렇구나, 먹을 것과 함께 하는 추억은 어떤 것이라도 즐거운 것이구나. 이 책의 소재가 기획으로는 적절했구나 싶었다.

 

그 동안 먹을 것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먹는 것에 그다지 집착이 없다는 것을 알기는 했다. 소울 푸드라는 게 딱히 없었고, 무얼 먹자고 시간이든 노력이든 특별히 기울이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처음 먹은 음식이라고 해도 기억에 담아 둔 것은 별로 없었을 텐데, 몇 가지는 흐뭇한 웃음과 더불어 생각이 난다.

 

마스다 미리는 어렸을 때 어른처럼 해 보는 것에 큰 의미를 가졌던 모양이다. 나는 어땠던가. 어른처럼 해 보는 태도나 취향? 글쎄, 애써 해 보려고 한 것 같지도 않고 친구들과 해 보더라도 감격까지 하고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마스다 미리를 비롯한 작가들이 '맛있다, 맛있어' 하는 표현에는 꽤 공감하게 된다. 이렇게 맛있나? 하면서.

 

내 기억에서 찾아 보는 나의 첫 한입에 무엇이 있나 더듬어 보니 두 가지가 생각난다. 스크류드라이버와 비엔나커피. 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마셔 보았다. 내게 스크류드라이버를 누가 알게 해 주었는지를 모르겠다. 예쁜 기억이 아니었던 것일까, 후후. 둘다 지금은 찾지 않는 것으로 보아 되새기고 싶은 맛은 아닌가 보다.

 

추억의 과자는, 음, 아무것도 쓸 게 없다. 이건 좀 쓸쓸하다. 더러 즐겨 먹은 것들이 있기는 한데, 지금도 판매되고 있으나 또 먹고 싶다 하는 게 없다는 것,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정말 먹을 것에 별 애착이 없나 보다. 먹는 것도 사는 즐거움의 하나라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먹는 이야기에 더 쉽게 빠지는 것일까. 이것대로 괜찮기도 하다. 적어도 살찌는 문제나 과식으로 인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y에서 옮김201502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례 주택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도록 해 주는 사람들도 많이 등장한다. 둘은 같아 보이는데 똑같지는 않다.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므로.

소설, 참 따뜻하고 유쾌하면서 살짝살짝은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이 소설에서 얻는 만큼의 웃음과 여유와 풍요로움을 쉽게 얻을 수 없다 보니 아쉬움이 더 컸다. 바라는 바의 바람직한 사회, 소설이 추구하는 사회의 한 모습, 이 소설이 어느 정도 구현하는 데에 성공하지 않았나 혼자 헤아려 본다. 이 모습에 내 마음이 열린 것일 테고.

오수림, 매력적인 청소년 화자. 순례 씨, 매력적인 건물주이자 바람직한 어른상. 수림의 1군 가족들이 더없이 형편없어 보이지만 그들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누가, 어떤 상황이 이런 사람들, 수림의 가족과 같은 이들을 만들고 있는가 하는 것. 환경 탓만은 못한다. 유전자 탓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수림이 더 멋지게 돋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어른의 자격을 가진 아이, 엄마보다 아빠보다 언니보다 지혜로운 아이. 이것만이 희망이다.

나는 돈이 많이 없으므로, 건물주도 아니므로, 앞으로도 돈을 많이 벌 생각이 없으므로, 순례 씨처럼 될 수는 없다. 그저 순례 씨와 같은 건물주가 많아지기를 바랄 뿐. 그래도 순례 씨가 가진 생각만큼은 나도 갖고 싶다. 일부 겹치기도 하는데 조금 더 짙어지도록 챙기면 될 듯도 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 부당한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 쓰레기 문제에 민감해서 제대로 처리하려는 사람, 진정한 어른. 75세에 이런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수림이와 같은 청소년에게도 권할 책이지만 수림이의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더 읽었으면 좋겠다. 안 될까? 안 될지도... (y에서 옮김202405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