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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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지 꽤 시간이 흐른 시집이다. 이따금 보았을 테고 잊었던 건 아니었을 텐데도 리뷰를 쓰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작정하고 다시 넘겨 본다. 읽었다는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고 당연히 기억에도 없는 페이지들이다. 작가에 대한 내 관심으로 비추어볼 때 이건 좀 난감한 상황이다. 이럴 수도 있지, 매번 모든 작품에 내가 다 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한 줄이라도 건지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읽으니 선뜻 다가오는 구절들이 있다. 이만큼이라도 만족이다. 


3부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2부에 실린 시들의 제목 혹은 소재가 돋보인다. 음식 이름이나 음식 재료들이다. 그래, 이런 소재로도 시가 되는 것이었어. 산문이나 소설로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었잖아. 그러나 좀 어색하다. 아직 확 끌리지 않는다. 줄글에서와 달리 읽는 맛도 모르겠다. 음식이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낯선 음식이 아니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음식을 이용해 부르는 시인의 노래에 내가 흥을 느끼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나 혼자만의 거리감일지도.  


그리고 시집 전체에서 어머니를 향한 간절함 그리고 철없는 그리움은 확실하게 보인다. 어머니 앞에서는 나이가 아무런 장비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어머니, 어머니의 애틋한 삶,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어린 목숨일 뿐이니. 또 이렇게 시집 한 권을 건넌다.  (y에서 옮김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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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름다움 - 스물아홉 번의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
앤 카슨 지음, 민승남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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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잘 안 읽히는데도 꾸역꾸역 읽고 있다 보면 묘한 재미가 생긴다. 쉽게 잡히지 않는 의미 사이로 문득문득 와 닿는 문장도 만나고,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면 이렇게 긴 사념에 빠져 있을 수 있는 건지 작가에 대한 존경심도 생기고, 이걸 또 뿌리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다는 등의 그렇고그런...... 리뷰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쓸 만큼 얻은 게 없었다. 그런데 이 기분을 글로 남겨 놓지 않는다면 나는 이 작가의 책을 또 잡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막막하나마 풀어 보고 있는 중이다.  

 

책은 얇은 편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일단 존 키츠라는 시인의 시로 시작하는 머리글이 생뚱맞기만 했다. 이어질 본문과 어떻게 이어질지 도무지 예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 키츠의 시를 읽고 그 시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가진 상태에서 이 책을 읽으면 글에 대한 인상이 좀 달라질까? 글쎄, 그렇게 되도록 존 키츠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 머리글에서부터 막히고 만 셈이다. 게다가 산문의 형태가 아니라 시의 형태인(탱고라고 하는데) 것이 글을 더 어렵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전통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대단한 역량을 가진 것이 틀림없다. 남들이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먼저 시도한다는 설렘도 클 것이고. 물론 그 때문에 채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섭섭함도 따를 수 있겠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남편의 아름다움을 소재로, 이어 주제로까지 나타낸 것만큼은 내게 커다란 놀라움이었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큼의 세계를 품고 있어야 하느니라 할 정도여서.

 

참 이상했던 건, 붙잡히지 않는 심상을 떠도는 중에 시를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다. 무엇이었을까? 그 의욕의 실체는? (y에서 옮김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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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보다 가벼운 둘이 되었습니다 - 비울수록 애틋한 미니멀 부부 라이프
에린남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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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좋아져서 같이 살기로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따로, 같이 하는 생활이 따로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어느 정도 알았으리라고 여겼던 상대에게서는 계속 새로운 모습이 보이고, 이 새로움은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어디까지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서 계속 같이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쉽지 않은 문제이자 생활이다. 

그림이 귀엽고 단순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찾다가 만난 책이다. 기대했던 그림보다 글이 더 많았고 그래서 무게감도 더 있었고 그래서 도로 흥미가 줄어들고 말았다. 나는 이제 낯선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어쩌고저쩌고에 정녕 관심이 없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소설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산문은 아니다. 일단 남의 결혼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못 살면 헤어지는 대로, 저희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 어지간히 지겹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 모로(비슷한 소재를 다루는 방송의 탓도 크다).

미니멀 라이프가 이 책의 주요 소재다. 작가인 아내 쪽에서 먼저 시작하고 남편도 서서히 닮아가는 형태로 삶의 틀을 잡아나간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여 읽는 내 마음이 놓이면서 두 사람의 취향이 크게 어긋나게 되지 않기를, 잘 조율하면서 살아가기를 빌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무엇보다 작가 스스로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지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취향을 맞춰 나가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 이 일이 잘 안 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내 쪽에서 먼저 헤아리고 양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볍게 확인할 수 있다. (y에서 옮김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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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도우 지음 / 수박설탕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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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장르의 하나다, 연애소설이.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연애소설을 읽고 싶어진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 내키는데 남의 연애는 궁금한 것이다. 꽁냥꽁냥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이 따라 시절 따라 연애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고 흐르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던 연애와 무엇이 비슷하고 어떤 게 다른지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대체로 실패했던 것 같은데, 연애소설이라 해서 봤는데, 너무 환상적이거나 너무 현실적이어서 내가 바라던 느낌을 만나지 못하곤 했는데, 이 책, 내 마음에 흡족했다. 그럼,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기까지 이렇고 이런 감정과 단계가 있어야 하지, 아무렴. 사랑한다면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상처를 준다고 해도 그게 배신이나 회복될 수 없는 망나니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나 성품 탓으로, 미워도 끝내 미워만 할 수는 없는 그런 잘못 아닌 잘못들로 갈등을 겪는 연인의 모습. 소설이니까, 소설 속 사랑이니까 나는 더 너그러워졌다.    


아닌 듯 해도 내 안 어딘가에는 연애의 속성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부분은 존재감 없이 바닥에 누워 있다가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가 적당하거나 누가 오고 누가 가거나 하면 스르르 일어나면서 내 감정을 건드려 보는 것처럼. 나이와는 상관없이 갱년기와도 상관없이 그저 사람으로 살아서 사람으로 눈 떠 있는 동안에는 놓치지 말고 챙기라는 듯.   


진솔을 향한 건 피디의 투정도 귀여웠고 건 피디를 대하는 진솔의 사랑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내 모든 것을 거는 사랑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도 아무리 소설이라도. 내가 먼저 건강하게 존재해야 사랑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나를 버려야 하는 사랑 따위? 비웃고 싶다. 그런 건 상대를 속이기 위한 말이라고.


마음에 드는 연애소설을 읽고는 괜히 애매하게 사랑에 화풀이를 하는 기분, 내가 이렇다는 것이겠지. (y에서 옮김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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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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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과 <기형도 전집>이 있으나 이 책을 또 샀다. 미발표 시까지 함께 묶은 시집이라고 해서 이참에 다시 읽어 보아도 좋겠다 싶었다. 한번을 다 읽었다. 자꾸만 구절들에 마음이 잡히면서 시간이 걸렸다. 모든 시를 천천히 따라 적어 보고 싶다는 열망 아닌 열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선택했다. 한 편의 시에서 딱 한 줄만 골라 적어 보자고.

 

신기했다. 각각의 시에서 단 한 줄씩 옮겨 적는데, 적으면서 보니 이대로도 감정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거다. 도대체 단 한 편의 시도 그냥 넘길 수 없게 만드는 이 힘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지(딱 한 편의 시에서 고르지 못했다). 시인은 나를 이렇게 1981년으로, 내 젊은 날로, 온통 스산하고 춥고 쓸쓸한 그 겨울로 사정없이 불러들였다.

 

시인이 소리내어 말하는 시어들이 여럿 있다. 그 중에 내가 뽑는 대표는 다음의 넷이다. 겨울, 눈, 늙음, 어림. 이들 말고도 더 많이 있지만 다 더듬어 보기에는 내 역량이 모자란다. 나는 이 넷만으로도 벅차다. 더욱이 이 네 단어 사이사이로 공기처럼 물처럼 스며들어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사회 문제까지 짚다 보면 시를 읽는 것인지 소설을 읽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그만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것인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는다.

 

한번 어렸을 시절이었을 텐데, 그 가난하고 슬픈 시절은 어찌 이리도 오래 시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을까. 한번 늙어 본 적도 없으면서, 주변의 늙은이를 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처절한 늙음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시인의 시에서 은빛으로 빛나기만 하는 태양은 따뜻하게 비춰주는 날이 없는 것 같고, 바람도 구름도 안개까지도 겨울 눈 사이에서만 제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시인이 살아서 겪은 계절은 겨울만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시를 읽고 있는 나는 또 어쩌자고 이런 겨울이 좋아서 못내 그립기만 하단 말인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란에서 당선작을 본 게 이리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이후로 안개 낀 날을 맞을 때마다 시인의 당선작을 떠올리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 '빈 집', '질투는 나의 힘', '엄마 걱정'은 국어 수업으로 만나기까지 했는데. 암울하면서도 괴기스럽지 않고, 가난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절망을 노래하는데도 아름답기만 한 시들.     

 

어쩌면 이런 글들을 쓸 수 있을까. 어쩌다 그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칠 수 있을까. 스스로 질투를 노래하였으나 시인이 더 많은 질투를 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누구도 말해 주지 않는 시인의 짧은 생, 나는 빼앗긴 것마냥 안타깝다.

 

이번이 끝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어느 춥고 쓸쓸한 어느 날, 나는 또 다른 시구를 찾아 이 시집을 뒤적일 것이다. 그때 발견하는 구절들은 내 생의 또 다른 면을 밝혀 줄 것을 믿는다. (y에서 옮김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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