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나이트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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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것이 이어지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 작가가 내게 주는 비슷한 인상은 아직까지는 괜찮다. 익숙한 느낌이 지겹지 않다는 건 독자인 내게 좋은 일이다. 


고급 호텔을 사건 배경으로 제시한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형사들이 풀어나가는 활약상보다 호텔의 내부 사정을 그린 장면들이 더 재미있었다. 호텔리어가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정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더러 대단하게 보이기도 했고.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점일 것이다.


작가는 살인 사건 속에 현재 일본 사회가 가진 문제를 포함해서 펼쳐 보인다. 추리 소설을 계속 읽다 보니 알게 된 점인데, 범죄자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게 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가 하는 것도 작가의 개성 중 하나의 요건이 될 것 같다. 어쩌다 나쁜 마음을 품게 되었는가, 누가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했는가, 누구 때문에 나쁜 일에 빠져 들게 되었는가, 개인의 문제인가, 가족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속 범죄자에게는 딱하다 싶은 사연이 있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다른 추리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 작가의 글이 내게 주는 좋은 점, 읽고 나면 바로 잊어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에는 내도록 흥미진진한데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부터는 그때까지의 감흥이 급격히 사라진다는 말이다. 책의 마지막 쪽을 덮을 때 쯤이면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없어 홀가분해지는 것이다. 마치 뒤끝 없는 영화를 본 것처럼. 여운이 남지 않아 그 점이 도로 마음에 드는 그런 소설. 


이 소설의 후속편이 또 나올 듯하다. 다음 배경은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이 되지 않을까. (y에서 옮김20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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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600
시의 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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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를 쓰고 시인이 쓴 시는 자기의 말을 전한다. 시를 자꾸 읽다 보니 시인이 전하는 말과 시가 전하는 말이 구분되어 들리는 듯하다. 증명은 못하겠는데 나는 느낀다. 시인의 말인지 시의 말인지.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고 착각이라고 해도 괜찮다. 심지어 시인이 주장한다고 해도 나는 끄덕여 줄 테다. 속으로 아니라고 하면 되니까. 시인을 벗어난 시의 말, 근사한 것도 있고 실망스러운 것도 있다. 

이 책의 일러두기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 이 책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501부터 599까지 총 99편의 시집 뒤표지 글을 묶었다.

시라고 해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이것이야말로 읽는 이의 선택이겠다. 시인이 써 놓은 말인데 시집 속을 벗어난 시로 읽든 시집을 낸 시인의 감흥으로 읽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덧소리로 읽든. 나는 시인들이 쓴 시가 하는 말로 읽었고. 둘의 차이점을 말하라고 한다면? 거리감? 책임감 회피? 잔소리? 변명? 같은 것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내게 좋은 점은? 시인도 시를 쓰면서 쓸쓸해 하는구나, 표현의 수준은 우리 서로 다를지라도 감정의 결은 다를 바가 없구나, 어쩌면 나도 내내 내 안의 시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왔겠구나, 깨닫는 시간이 있더라는 것. 

기획을 한 이들의 의도가 참신해 보였다. 이미 나온 글을 다시 모아 책으로 낼 때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텐데. 이 출판사라서 가능했을지도. 이곳에서는 앞으로도 시집들이 계속 나오리라는 것을 믿으니까. 세상이 아무리 메마르고 부서져 나간다 해도. 

분명하지 않은 말들 안에서 분명한 망설임을 읽게 되는 시절이다. 어느 한때도 낙원으로 불리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살 만한 시대라고 여기면서 지내고 싶다. 불안해서 참 힘들다. (y에서 옮김20250201)

다시 올 수 없고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나날의 삶을 더욱더 절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 P15

사막을 횡단하는 고래, 태평양을 건너는 낙타. 젊은 시절에 나를 숨 쉬게 해준 이미지들이 아직도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 짠맛 없는 바다가 없듯이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삶은 없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세상은 없다. 좀더 나은 사람을 향하여 갈 뿐이다. 세상은 딱 그만큼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 P23

건강한 슬픔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고 아름답게 한다. 나는 당신에게 그런 슬픔을 안겨주고 싶다. - P50

새들의 농담에도 웃지 않는 신호등

뒷걸음질 치다 밟은 햇빛의 발

페인트칠이 덜 마른 기침

눈 마주칠 때마다 멈춰 서는 시계 - P53

나와 당신이 읽고 쓰는 동안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발견했다면, 이 세계를 흐르는 시간이 한 뼘은 더 넓어졌을 것. - P98

사라지는 일에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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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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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에 내가 왜 이렇게 빠져드는가, 책을 읽을 때마다 해 보는 생각이지만, 그리고 이때마다 나를 위한 변명을 마련해 보게 되는데, 이게 내 마음에는 썩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참 성실하다는 것, 자신의 직업에 참 충실하고, 그 충실함에서 근거한 추리력으로 나를 이끌어들인다는 것, 내가 그 충실함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한 막연한 나의 비호감과는 별도로 이런 소설에서 지극히 성실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일본인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호감과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인간에 대한 선의가 저절로 솟는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이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뜻이다. 호텔리어 나오미도 예뻐 보였고, 형사 닛타도 멋있어 보였고, 나의 몇 시간을 들인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위로가 되었노라고.


시기적으로 매우 바쁜 때다. 개학을 했고, 일정에 따라 하루 한 시간도 밀려드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싶은 참에 이 책이 출간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책을 받고는 그냥 읽었다. 모든 일을 잠시 외면하고. 그럴 수 있도록 집중하게 하는 재미를 주는 글이니까. 위로? 충분하다. 나는 이 글을 올린 후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 테니까. (y에서 옮김201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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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ㅣ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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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할지, 읽고만 있는데도 취하고 취하는데도 정신은 더 말짱해지고 더 읽고 싶어지고 더 상상하고 싶어지고. 내게 부드러운 것은 밤도 술도 아니고 글인 것만 같으니.  


소설가의 글인데 소설보다 산문에 먼저 반한다. 종종 있는 일이다. 산문의 소재이자 주제가 술이라서 더 끌렸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닌 것 같고, 잘 마신다고도 할 수 없고, 술에 대해 아는 바도 영 없고, 술에 취하는 분위기는 아주 싫어하고, 술친구도 없고, 자주 가는 술집은 커녕 좋아하는 술안주도 하나 없는데, 왜 나는 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술에 대해 아주 맛있게 써 놓은 글을 만나면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아니,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이 책의 후속편도 나와 있다는 것을 좀 전에 알았다. 방금 구해 놓았다. 


책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편집의 경우 내가 처한 시기에 맞춰 읽는다. 가을부터, 가을이 오고 있으니까. 글의 시작부터 내 의식을 붙잡는다. 이 흐름은 뭐지? 카프리에서 멈춘다. 나는 카프리를 마시고 싶어진다. 무슨 맛이지? 나는 술맛도 맥주맛도 모르면서 작가가 풀어놓은 서술에 빠져든다. 안 마시면 사는 데에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만 같다. 다음, 연엽주가 나온다. 구입할 수 없는 술이라는데 인터넷 쇼핑몰에서 찾아본다. 팔고 있다. 한 병에 70000원이다. 흠, 못 사 먹겠군. 간단하게 포기한다. 다음, 아와모리 야구단 일화가 나온다. LG 구단 이야기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므로 넘긴다. 그리고 커피 맥주. 커피 따로 맥주 따로 마시기만 했는데 섞어서 마실 수 있다니. 올 가을이 끝나기 전에 꼭 만들어 마실 테다.


여름으로 되돌아왔다. 작가는 술 이야기를 늘어 놓았는데 나는 읽고 싶은 책 둘을 얻는다. 약주를 알려주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6월 16일에 기네스를 마시게 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내년 여름이 오기 전까지 아니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나는 이 둘을 읽을 수 있기를. 둘 다 분량이 많아서 부담도 되고 기대도 되고. 취하지 않았음에도 취한 기분으로 설렌다.


겨울로 건넜다. 하나 건진다. 무알콜맥주. 나는 무알콜맥주를 무시했는데, 마셔 볼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작가의 글로 마셔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름 성공이다. 내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독서가 된 것이니. 


봄은, 봄의 글은, 봄의 술 이야기는 싱거웠다. 제일 뒤에 읽어서 다행이다. 먼저 읽고 실망부터 했다면 가을과 여름과 겨울의 이 기막힌 술맛을 눈으로 맛볼 수 없었을 테니. 


당분간 이 작가의 글과 함께 할 예정이다. 




각자의 필드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과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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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1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04 2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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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9 1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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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사람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512
이영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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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낯선 이름의 시인이다. 읽어서 좋을 시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더 많이 있을지. 생각하면 아득해도 또 그래서 좋다. 이 기대만으로도 한참은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따끔따끔한 구절들이 자꾸 보인다. 따끔하다는 걸 느끼는 스스로가 다행스러웠다가 죄스러웠다가 외면하고 싶다가를 되풀이하다가 끝내 더 깊이 짚어 보게 된다. 어떤 이는 쓰면서 받아들이고 나처럼 어떤 이는 읽으면서 받아들이겠지. 세상은 크고 넓고 환한 듯 보여도 곳곳이 어두침침한 그늘 투성이라는 것,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을 향하는 눈길이 더 급해서 그쪽을 보다가 그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 마음을 다치고 몸을 다치기도 한다는 것을. 시인이 먼저 가서 겪고 노래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끔거린다고 물리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일을 보고도 누구는 스쳐 보내고 누구는 붙잡아서 다시 살펴보도록 한다. 사람마다 이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다 다를 것이라 여기면서 내가 못 가진 남의 능력에 감탄하는 일이 자주 생기는데 시를 읽다가 명랑한 감탄보다 우울한 탄식을 떠트리게 하는 적이 많아서 나는 이게 또 슬프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것일까. 마치 우리가 살아서는 만나지 못할 시간을 넘어서는 자리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때에 이를 때까지 어떤 시인은 계속 아픈 세상과 아픈 사람을 찾아서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바꿔 부르고 독자로서 우리는 읽고 들으면서 마음을 열어 두어야 하겠지. 시인의 노래 한 소절처럼 정말 외계인이 지구에 쳐들어왔으면 싶을 정도다. 그 정도 상황이 되어야만 지구인이 싸움을 중단하고 함께 손과 뜻을 모을 수 있다면. 아, 아니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일 크게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가장 약한 이들이 될 텐데. 


나보다 약하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을 생명체를 생각하도록 해 준 시간이었다. (y에서 옮김20210914)

허기는 아무래도 쓸쓸한 힘,

뭘 바라지 못하는 순간이 좋다 - P11

비 오는 날 찻집에 혼자 앉아 있어봐도

별로 쓸쓸하지도 않다는 것

쓸쓸한 척을 들킬 진짜 쓸쓸이 없다는 것 - P106

당신에게 도달하는 그리움은 없다

그리움은 내게로 온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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