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ㅣ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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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드라마가 외국의 시즌 드라마처럼 될 수 없는 이유를 텔레비전의 어떤 채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들이 서로 연애를 하기 때문이란다. 어렵게 연애를 하다가 성공을 해 버리니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다고.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소설도 그런 것 같다. 남녀의 연애라는 줄기를 붙잡지 않고는 좀처럼 전개하기 힘들어 보이는 소설들, 사랑이 좋기야 하지만 늘 사랑이 있는 것은 아니니 가끔은 사랑 이야기가 없어도 좋으니 우리 삶과 같은 이야기는 없을까 싶었는데. 이 작가의 소설이 딱 이에 맞다. 청소년기의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고등학생 시절에 풋풋한 연애 감정을 겪어 보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겠지만, 내가 얻어 본 적이 없으니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또 고등학생 때 연애를 하는 쪽이 그렇지 못한 쪽보다 적지 않을까, 이건 내 생각일까. 고등학생 소설이라고 해도 남녀간의 관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거북한 동경이라고나 할까, 나는 왜 그런 일이 없었을까 섭섭하기도 하고. 


젊을 때는 젊은 대로 시간이 흐른다. 사람을 보는 눈도 키워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고 끝내는 것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워야 하고, 그러는 중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꼬이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면서. 그러나 어떤 식으로 흘렀든 결국에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자신이 자신으로 살아 있는 한. 


이 나이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벼운 긴장감을 느끼는 내가, 이럴 때마다 나는 다행스러워진다. 젊은이들이 자라는 이야기, 아직은 지겹지 않고 신선하다.  (y에서 옮김20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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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병원 갈 일 없는 스트레칭 - 일생 중 가장 긴 노년, 반짝하는 ‘예쁜’ 몸이 능사가 아니다, 오래 쓰는 몸을 만들어라, 최신 개정판
제시카 매튜스 지음, 박서령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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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그대로 믿는 건 아니고, 책 내용도 고스란히 믿지는 않고, 그렇지만 일부의 내용이라도 참고를 하고 도움을 얻자는 생각으로 보는 책들이 더러 있는데. 이 책은 각 스트레칭의 효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는 의도로 구입을 한 것이다. 동대구역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요가를 하고 있고 스트레칭도 따로 하고 있으며 근력 운동을 아주 조금 하고 있지만 내 몸의 이곳저곳에서는 끊임없이 문제가 생긴다. 노화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의 이유를 알겠다. 오래 썼으니 고장이 나고 있다는 말이겠지. 고치고 바꾸고 달래면서 살아가야 하고 스트레칭도 그 중의 한 방법이라고 하니 새겨 들어야겠는데 궁금할 때가 생긴다. 여기 이 자리는 왜 아프고 왜 아프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지는 것일까? 


낯선 내용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여러 경로로 본 듯하다. 못 외우고 있으니 답답한 것일 뿐. 책을 가까이 두고 들춰 보느냐, 핸드폰으로 즉각 찾아보느냐, 이 두 가지로 해결을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몇 가지는 긴 기억으로 남아 주기도 하겠지만 대체로는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봤다. 낯선 동작이 없다. 다 해 보았거나 하고 있거나 할 줄 아는 동작들이라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한데 이게 혼자서 해보려고 하면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점이다. 그럴 때마다 책이나 핸드폰을 열 수도 없고 열려는 시도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자마자 스트레칭을 할 의욕이 사라져버리는 이 멋진 낭패감이라니. 운동을 해야지, 스트레칭을 해야지, 책을 사 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아무 효과도 거둘 수 없지 않는가.


그래도 이렇게 보는 즐거움이라도 누려야지, 변명하면서 넘긴다. 책장이 아니라 두 팔을 뒤로 넘기는 게 내 신체에는 더 효과적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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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 만세! 한 그릇 더 - 부부 한 끼 & 아이와 한 끼
다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 / 살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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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많이 먹는 사람을 딱히 부러워해 본 적은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읽는 재미만 느끼고 말았는데 이 만화 작가만큼은 남다르다. 이 정도면 먹는 일도 재능이 된다. 오로지 자신이 먹은 음식으로 만화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것도 전혀 지겹지 않고 신기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면서. 하기야 요즘은 유투브로도 잘 먹는 모습을 보여 주는 세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기는 하다. 나만 뒤늦게 감탄하고 있는 모양이다.


혼자서도 꿋꿋이 여행하며 먹으며 마라톤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귀여운 만화로 보여 주던 작가가 몇 년 전 40이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이 만화는 가족이 된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앞 부분은 남편과 먹는 이야기, 뒷 부분은 아이와 같이 먹는 이야기. 내 경험으로는 아주 오래 전 사정이라 풋풋하고 즐거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래, 내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지, 괜찮았지, 애썼지, 그렇게 지나왔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라 보기 좋구나......


상상의 세계 이야기도 현실의 이야기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이 재미가 있고 없음의 경계가 항상 걸리기는 하지만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은 어쨌든 있다. 그래서 고맙다. 작가가 고맙고 작가가 작품을 낼 수 있도록 해 주는 배경이 고맙고 재미있는 작품을 한껏 누릴 수 있는 내 처지가 고맙고.


작가에게는 비교할 바가 못되지만 어제 오늘 좀 챙겨 먹어 보았다. 먹는 즐거움, 나도 제대로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안 와도 어쩔 수 없지만. (y에서 옮김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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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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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집중하면서 읽은 소설이다. 일단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 하면서도 '이 정도라면 봐 주고 읽어 보겠어' 하는 정도의 타협을 하면서 읽었다고나 할까.(나는 해리포터 1권을 읽어 내지 못했던 독자다.) 이 작가의 이 유형의 글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책을 찾아 둔 상태다.

 

영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서 본 장면들이 자주 떠올랐다. 소설의 배경으로 나오는 북해의 솔론 제도라는 곳이 실제로 있나 없나 찾아 보기도 했다. 일본 작가이면서 상상의 근원지를 먼 곳으로 설정했다는 것이 새로웠다. 영국의 중세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가만의 판타지를 꾸며 낸 것이니 인물, 사건, 배경이 더욱 신선했다고 해야겠다. 

 

이 작품을 통해 판타지가 허무맹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게 나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된다. 개연성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마술이라고 해도, 허구라고 해도, 그럴 듯 해야 한다는 조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논리성이다.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나는 앞으로도 소설이라는 것을 쓸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작가의 입장에 서 있는 자신을 만났다. 이렇게 쓰다니, 이렇게 만들어 내다니, 이렇게 연결시키고 있다니, 소설의 결말부터 시작해서 도입으로 거꾸로 읽어 나가는 느낌, 그렇게 해서 찾게 되는 논리적 일관성과 재미. 작가의 의도에 맞추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추리하고 있는 나의 안간힘이 신통하다고 해야 할까.(늘 실패하지만)

 

다 잊어버린 중세 유럽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마워해야겠다.(기사단, 데인인 등)   (y에서 옮김2016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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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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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자는 유행가 노랫말도 있는데, 소설에서는 지나간 것을 굳이 찾아 내는 형식의 글이 많은 것 같다.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구성 방식이기는 하겠다. 궁금하니까, 지난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설 속 인물들이 지금 왜 과거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이라는 주제. 현실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결말이라 문학에 더욱 기대는 것일까, 적어도 문학만큼은 진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명감 같은 것으로.

 

이 소설, 재미있었다. 은근히 무서웠지만 표면적으로는 유유자적한 느낌이었다.(이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이중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듯, 무심한 듯, 무능한 듯, 초연한 듯 보이는데 시작만 하면 대단한 집중력으로 파고 들어 문제를 해결해 낸다는 것. 글을 읽어 나갈수록 주인공들이 괜찮아 보였던 게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는 몰두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빠져들다니, 대단한데? 사람마다 빠지는 내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에게 남들한테 말하지 못할 과거의 일이 있다고 하자.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만다. 죽기 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끝내 밝히지 않고 묻어 두기, 사실대로 밝히기(이 경우 다른 사람의 명예가 떨어지게 된다), 이 소설에서처럼 예술 작품으로 남기기.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구성이 소설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배경과 내용만 바꾸어 나간다면 얼마든지 많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듯-소설을 안 써 본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상사)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말못할 진실 같은 것을 간직하기는 쉽지 않겠다. 그냥 말하면 될 테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쉬워 보이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늘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적이 많으니까.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말할 것인가. 돌려 말한 것을 제대로 읽어 낼 능력을 갖추고 있기는 한가. 말하는이는 듣는이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를 하고 있었을까. 불현듯 세상의 모든 예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니는 무게에 대해 의문이 든다. 가벼운 것은 없었으리라.  (y에서 옮김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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