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자는 유행가 노랫말도 있는데, 소설에서는 지나간 것을 굳이 찾아 내는 형식의 글이 많은 것 같다.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구성 방식이기는 하겠다. 궁금하니까, 지난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설 속 인물들이 지금 왜 과거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이라는 주제. 현실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결말이라 문학에 더욱 기대는 것일까, 적어도 문학만큼은 진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사명감 같은 것으로.

 

이 소설, 재미있었다. 은근히 무서웠지만 표면적으로는 유유자적한 느낌이었다.(이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이중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듯, 무심한 듯, 무능한 듯, 초연한 듯 보이는데 시작만 하면 대단한 집중력으로 파고 들어 문제를 해결해 낸다는 것. 글을 읽어 나갈수록 주인공들이 괜찮아 보였던 게 그래서 그랬나 보다, 나는 몰두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런 일에 이렇게까지 빠져들다니, 대단한데? 사람마다 빠지는 내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에게 남들한테 말하지 못할 과거의 일이 있다고 하자.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만다. 죽기 전에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끝내 밝히지 않고 묻어 두기, 사실대로 밝히기(이 경우 다른 사람의 명예가 떨어지게 된다), 이 소설에서처럼 예술 작품으로 남기기.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구성이 소설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배경과 내용만 바꾸어 나간다면 얼마든지 많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듯-소설을 안 써 본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상사)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말못할 진실 같은 것을 간직하기는 쉽지 않겠다. 그냥 말하면 될 테니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쉬워 보이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늘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적이 많으니까.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말할 것인가. 돌려 말한 것을 제대로 읽어 낼 능력을 갖추고 있기는 한가. 말하는이는 듣는이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를 하고 있었을까. 불현듯 세상의 모든 예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지니는 무게에 대해 의문이 든다. 가벼운 것은 없었으리라.  (y에서 옮김201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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