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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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하고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삶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보란 듯 크고 대단한 야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삶, 일상에 만족하고 일상에 충실한 삶, 먼 누군가를 애써 찾거나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소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평범한 행복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글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실제로 쓰지는 않고 이렇게 리뷰로 그치고 말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또한 괜찮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어서.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작가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싱글인 탓에 혼자 남을 자식을 걱정하면서 점점 더 나이들어가는 부모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보는 내 마음도 저절로 애틋해진다. 내 가 더 나이 들었을 때의 내 아이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되기도 하고. 뭔가를 대신 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뭔가를 더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챙겨 드려야 할 내 어머니를 떠올려 보는 마음이 글을 읽는 내내 맴돌고 있었다. 이러라고 글을 읽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글 중의 어떤 점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잠깐 생각해 봤는데, 생각났다. 굳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표현.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 보니 좋더라, 그러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표현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 좀 질렸던 모양이다. 이른바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친절해 보이는, 친절이 지나쳐 보이는 삶들이. 그냥 나, 이렇게 살아요,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사는 게 어떨 때는 참 어렵다. (y에서 옮김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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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또는 M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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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참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 한심하고 답답하다. 전쟁이라는 건 안 해야 하고 안 일어나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나같은 한낱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는 바이고, 정치를 한다거나 권력을 잡겠다는 사람에게는 전쟁을 기회로 삼기도 하는 세상이니. 그나마 소설가는 이미 지나간 전쟁을 이용하여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 공간적 배경은 독일의 폭격이 계속되는 영국이다. 주인공은 앞서 읽었던 부부탐정의 토미와 터렌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한 생에서 다 겪는다는 건 어떤 상황일까. 짐작만으로도 아뜩하다. 그저 내게 오지 않은 상황임을 고마워할 따름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배경을 열어 놓고 작가는 오히려 유쾌하게 사건을 펼쳐 나간다. 영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독일 정보원인 N과 M을 찾으라며. 등장시켜 놓은 인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는 재미는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다. 등장인물 모두가 찾고 있는 정보원으로 보이다가 아무도 아닌 듯하다가를 되풀이하는 과정 속에서 순간 M으로 의심되는 여자가 나왔는데 마지막에 맞혔다는 것을 안 순간의 상쾌함이라니. 모처럼 얻은 쾌거라고 여길 정도다.

다만 추리소설을 읽는 유쾌한 재미를 얻었다고는 해도 끝내 전쟁이라는 화두가 남는다. 참 싫고 그저 두렵다. (y에서 옮김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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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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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궁극은 위로이자 용서일까. 글은 읽기 쉽지 않았고 소재와 주제는 무거웠다. 멀리 먼 상상의 세계마저 이토록 고단하다면, 나처럼 가볍기 그지없는 이로서는 미안해서라도 상상을 못하겠다. 막연하게 마냥 그릴 수 있는 천국은 없는 셈이다. 적어도 먹고 자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면.


네 편의 글이 실려 있고 작가는 용서로 가는 길을 보여 주려고 한다.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용서라,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용서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낯설었다. 아마도 나는 쉽게 용서를 하지 않고 살아온 듯하다, 대상이 그 누구였든. 낯선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세상에서, 그들이 엮어 내는 낯선 관계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다가는 지금보다 더 어렵게 살게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단순하고 담백하게 사는 게 내 삶의 방향인데, 이 작가는 자꾸만 나를 드높이곤 한다. 


남자와 여자의 존재 방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한다. 앞서 읽은 책에서도 같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남자와 여자라는 구별된 성 역할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우니, 해결 방안을 상상으로나마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작가의 역할 중 하나일 테지. 작가가 상상한 내용은 아주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아득하기만 하고, 아무리 해결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여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도 나도 불완전하기만 하니 안 될 것 같다. 안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SF소설이 담는 세계관에 대한 정보를 이 작가의 글로 많이 얻는다. 나의 SF 영역이 조금씩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흐뭇하게 확인한다. 나 혼자 노는 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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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발 4시 50분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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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간다. 가다 보니 옆 라인에서 다른 기차가 지나간다. 무심코 그 기차를 보는데 객실 안에서 누군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을 본 것이다. 그리고 기차는 지나갔다. 만약 내가 그 장면을 봤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주변에 알린다. 승무원에게도 알리고 역장에게도 알리고. 그런데 그 기차 어디에도 시체가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착각이라고만 한다. 답답하기는 하겠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할머니, 마플 양이 나온다. 마플 양은 목격자의 말을 믿고 처리를 해 나간다. 이 과정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사건이 일어날 만한 근거지로서 소재와 배경을 선택하는 작가의 능력에 매번 감탄하며 읽는다. 범죄도 수사도 다들 이 소설의 영역 안에 있을 것만 같다. 현실에서 마플 양이나 푸아로 경감과 같은 수사관이 얼마나 활약하는지 그게 문제이겠지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꼭 잡혀서 죄의 댓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순진한 바람이기는 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 범인은 꼭 벌을 받는다는 소설을 더 읽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플 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찰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기 마련이라는 통계에 따른 추리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정말 그럴까, 사람 잘 안 변한다고도 하는데, 일이 끝난 뒤에는 그런가 보다 하게 되지만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짐작할 수 있는 능력, 어떻게 보면 그것도 성가시겠다. 나는 그냥 이렇게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다른 사람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관찰하고 파악하는 일에는 이제 더 관심이 없다. (y에서 옮김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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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걷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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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작은 편이다. 얇은 편이기도 하다. 실린 사진은 흑백이고 작아서 알아보기 쉽지 않다. 책값은 책에 비해 비싼 편이다. 작가의 만화와 글은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 아쉬움을 달래 줄 정도로.(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책의 얇은 두께와 편집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무성의는 우리나라 출판사의 성급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창 잘나가는 작가니 어서 출판하고 싶었던 것 같은.) 


내가 왜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에 계속 빠져 들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을 함께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느슨함'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았다. 이 작가, 성실하기는 하지만 치열하다거나 정열적이라거나 온몸과 정신을 바친다거나 하는 쪽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동안 내가 치열한 인생들에 좀 시달렸던 모양이다. 분명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대단한 인생이었음에도, 초기에는 그런 분들의 삶에 감동도 받고 자극도 확실히 받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해지는 자신을 느끼곤 했다.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니, 저렇게 바쁘게, 저렇게 애타게, 저렇게 간절하게, 저렇게 지독하게,...... 저렇게 저렇게....... 


그래, 그렇게 살면, 성공의 이름을 얻기도 할 테고, 사람들의 선망을 얻기도 할 테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보람도 있을 테고, 세계적으로 이름도 알릴 수 있을 테고, ......그렇겠지, 바쁜 만큼 신나고 바쁜 만큼 벅차고, 바쁜 만큼 우쭐해지고......그럴 수 있을 테지. 그런데, 그런데, 그게 숨가쁘게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으로 치열한 만큼 다른 한쪽으로는 허전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없을까, 꼭 저렇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살아야만 하나, 좀 덜 하고 좀 덜 얻고 좀 덜 바쁘면 안 되는 걸까. 학생에게만 스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 요즘, 스펙이라는 현상에 그만 질려 버리고 만 나. 할 수만 있다면 한 발 뒤로 물러 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 작가, 이 대목에서 내 마음과 만났다. 남 다 갖는 것 갖지 못해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처지, 혼자서 먹고 혼자서 놀러 다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리 서글퍼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않는 경지, 적당한 선에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구할 것은 구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마음 속 감동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누릴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심은 바로 행복이 될 수도 있었다. 


작가가 슬쩍 흘리는 것처럼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 그런 가치관들에 동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기쁨이다.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것이 이렇게 내 안의 기쁨과 만나는 것이었음을. (y에서 옮김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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