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옷을 입은 사나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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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푸아로 경감도 마플 여사도 안 나오는 작품이다. 대신 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 아름다운 아가씨 앤 베딩펠드가 나와서 용의자를 쫓는다. 그것도 영국을 출발하는 배를 타고 남아프리카까지.

사건이나 범인을 찾는 과정보다 나는 이 남아프리카 여행 일정에 재미를 더 느꼈다. 그 시대에 이런 형태의 배를 타고 이렇게 이렇게 탐험을 했더란 말이지. 다이아몬드를 찾겠다는 목적으로. 돈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찜 하면 그저 내 것이 되던 시절, 빼앗기는 쪽은 뺏기는 줄도 모른 채, 제국주의는 그렇게 실현되었더란 말이지. 지금도 어딘가에는 이렇게 탐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해서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면 오래 되었다고 해야 하나,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개인으로는 대체로 생이 마감되었을 시간이겠지만 가족 단위로 보면 후손이 살아 있을 정도인데, 선조가 그런 방식으로 얻은 부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부자로 살고 있을 텐데, 영국만이 아니라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심지어 우리 역사에도 있을 텐데, 다이아몬드가 다른 대상으로 바뀌기만 했을 뿐, 빼앗아서 내 것으로 삼았던 어느 한 시절의 유산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회 갈등의 한 축이 되고 있는 것일 텐데...

앤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작가의 분신이라고도 한다.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를 찾아가는 앤의 열정으로 작가의 열정까지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을 이런 방식으로 화려하게 겪어 볼 수 있는 것도 작가들의 능력일 테지. 나는 그저 편한 상태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보아 작가의 소질은 없는 게 확실하고.

이제 정말 몇 권 안 남았다 싶다. (y에서 옮김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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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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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글을 계속 읽다 보면 지겹다거나 질린다거나 하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는 것이 나은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아니었다. 계속 읽어도 좋았고 얼른 읽어도 좋았으며 남아 있는 책장의 수가 적어지는 게 마냥 안타깝기만 했다. 이대로 더 봐도 좋은데 말이지.(그럼에도 새로 나온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이 계산 속이란.)


윌리엄은 화자인 루시 바턴의 첫 남편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여러 권 읽으면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지루하지 않고 도리어 신기해진다. 세상이 온통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작가의 서술을 빌린다면 내가 안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투명하게 느껴졌던 자신의 일부가 인정을 받고 있는 기분이 되어서. 데이비드와 재혼을 한 뒤에도, 데이비드가 죽고 난 뒤에도 첫 남편인 윌리엄과 친구로 지내는 루시. 두 사람 사이에 두 딸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관계는 퍽 낯설다. 우리의 정서로 가능할 것인가 싶고.


첫 남편이든 두 번째 남편이든 루시의 독백은 지극히 매력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내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게 이토록 설렐 말이었던가. 어쩌면 나는 앞으로 새로 만나는 나에게 커다란 설렘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 말만으로도 설레려고 한다.


나는 나를 다 모른다. 나는 나를 조금은 안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 나는 당신을 조금은 안다. 모르면서, 조금 알면서 다 알고 있다고 얼마나 착각을 하였던가. 고상한 심리학 책보다 더 많이 생각하도록 해 준 소설이다, 작가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다. 조금씩만 덜 우겨도, 조금씩만 더 양보해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평온한 마음을 느끼게 될 텐데.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될 텐데. 루시가 얼마나 자주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던지 놀랍기만 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존경하는 것도 다 우리가 겪는 일이다. 한번 그랬다고 내내 그러하지도 않고 자꾸 바뀐다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속 자신의 실체를 어떻게 다룰 수 있겠는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따라가는 것이라고 윌리엄이 루시에게 했던 말도 생생히 떠오른다.


나의 평범한 일상 안에서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낼 소설 속 장면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때마다 나도 사랑을 느낄 것이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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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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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무엇이 있을까? 환상? 과학? 학생들의 과학 글쓰기 작품을 읽다 보면, SF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상상력이 좋은 것인지, 어떤 상상력이 허무맹랑한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있게 된다. 말도 안 된다 싶어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럴 듯한 이야기, 바로 그러한 상상. 그래서 좀 행복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뜬금없이 위로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하는 그러한 상상, 바람직한 상상.

 

작가 배명훈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처음 읽은 글부터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아니다. 읽을수록 괜찮아지고 있다. 사 놓은 책이 또 있는데, 기대가 된다. 외국 작가보다 우리 작가의 글이 좋다는 느낌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이럴 때만큼은 나는 국수주의자가 된다. 쉽게 만나지 못해 자주 섭섭하기도 하고.

 

환상이라는 장르 쪽에 마음이 많이 열렸다. 최근 이쪽 소설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많이 얻었던 덕분이다. 무엇보다 딸과 아들의 영향이 컸다. 얘들이 즐겨 읽는 작품을 소개받으면서 곽재식이나 배명훈, 듀나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내 취향을 넓히게 된 셈이니까(아직 거북한 작가들도 있고). 스티븐 킹이나 더글러스 애덤스에게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읽으면서 더 좋아지면 독자인 나도 작가인 그들에게도 더 좋아지는 일이 되는 것이겠지. 더 재미있고 즐겁게 쓰라고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어 볼 테다. 읽는 즐거움, 더 무엇을 바라랴. (y에서 옮김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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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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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일이 대책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히 마음 상할 일도 절망스러운 일도 없는데, 그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아득한 우울. 그렇다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인데 혼자서만 스스로를 대책없이 견디고 있다. 왜 이러나. 그리하여 나는 허수경의 시집을 꺼내었다. 이미 10년이 지난 시집이다. 이 시집을 낼 때 시인은 서른이 갓 지났을 것이다. 나도 서른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는 시인과의 공통분모를 찾아 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곧 단념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고민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잠시 가지긴 했겠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요즘처럼 살아있는 게 새삼스럽게 아득할 때는 처음 이 시집을 펼쳤을 때의 그 대책없이 스산했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난 이제서야 시인이 건넜던 그 서른 살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11p)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나 역시도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적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뿐인가'(57p) 하여 가슴 먹먹할 때가 많다. 그래, 왜 지나간 당신, 당신들은 예쁘기만 하고 당신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괴로운 것일까. 왜 이토록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힘든 것인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는 남다른 기대나 남보다 깊은 상처를 품게 되리라. 내것이 아니었던 것이 내것이 되거나 내것이었던 것이 내것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게 사랑인가 그게 없어져 버림인가'(82p) 싶어도 나만은 다른 사람과 또다른 그 무엇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오늘은 시집을 덮어도 끝내 위로를 얻지 못한다. (y에서 옮김200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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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시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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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상상이지만, 작가는 소설 안에서 또 상상의 조건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글로 꾸며 낸다. 곧 흥미진진해진다. 이 서재에 있는 시체는 누구이며, 누가 죽였는가.


사람의 본성이라는 면을 작품 속에서 늘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사람들이 보여 주는 생각이나 행동에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누가 죽였을까를 탐구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사람들의 생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니 범인인가 아닌가와 관계 없이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평가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또는 이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하는 방식으로. 이건 현실에서도 참 중요한 평가 기준이기도 한데.


마플 여사가 등장한다. 노처녀라며, 참견하기 좋아한다며, 말이 많다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마플 여사의 눈썰미와 추리력을 비하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그래야 마플 여사의 활약이 더 대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경찰보다 더 철두철미하게 관찰하고 짐작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게 괜찮지 않을까 싶어진다. 노인의 지혜라는 게 이런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기도 할 테고. 흠, 소설이니까 이러할 테지?  


어쨌든 살인 사건에는 돈이 빠지지 않는 갈등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더 많은 돈이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남의 돈이 내 돈인 것처럼 확 느껴지는 그 순간은 왜 오는 걸까. (y에서 옮김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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