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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평점 :
살아있는 일이 대책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히 마음 상할 일도 절망스러운 일도 없는데, 그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아득한 우울. 그렇다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인데 혼자서만 스스로를 대책없이 견디고 있다. 왜 이러나. 그리하여 나는 허수경의 시집을 꺼내었다. 이미 10년이 지난 시집이다. 이 시집을 낼 때 시인은 서른이 갓 지났을 것이다. 나도 서른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는 시인과의 공통분모를 찾아 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곧 단념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고민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잠시 가지긴 했겠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요즘처럼 살아있는 게 새삼스럽게 아득할 때는 처음 이 시집을 펼쳤을 때의 그 대책없이 스산했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난 이제서야 시인이 건넜던 그 서른 살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11p)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나 역시도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적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뿐인가'(57p) 하여 가슴 먹먹할 때가 많다. 그래, 왜 지나간 당신, 당신들은 예쁘기만 하고 당신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괴로운 것일까. 왜 이토록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힘든 것인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는 남다른 기대나 남보다 깊은 상처를 품게 되리라. 내것이 아니었던 것이 내것이 되거나 내것이었던 것이 내것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게 사랑인가 그게 없어져 버림인가'(82p) 싶어도 나만은 다른 사람과 또다른 그 무엇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오늘은 시집을 덮어도 끝내 위로를 얻지 못한다. (y에서 옮김200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