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중력가속도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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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에 무엇이 있을까? 환상? 과학? 학생들의 과학 글쓰기 작품을 읽다 보면, SF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떤 상상력이 좋은 것인지, 어떤 상상력이 허무맹랑한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있게 된다. 말도 안 된다 싶어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럴 듯한 이야기, 바로 그러한 상상. 그래서 좀 행복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뜬금없이 위로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기도 하는 그러한 상상, 바람직한 상상.

 

작가 배명훈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아니다. 처음 읽은 글부터 마음에 들어 했던 것도 아니다. 읽을수록 괜찮아지고 있다. 사 놓은 책이 또 있는데, 기대가 된다. 외국 작가보다 우리 작가의 글이 좋다는 느낌을 만나게 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이럴 때만큼은 나는 국수주의자가 된다. 쉽게 만나지 못해 자주 섭섭하기도 하고.

 

환상이라는 장르 쪽에 마음이 많이 열렸다. 최근 이쪽 소설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많이 얻었던 덕분이다. 무엇보다 딸과 아들의 영향이 컸다. 얘들이 즐겨 읽는 작품을 소개받으면서 곽재식이나 배명훈, 듀나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내 취향을 넓히게 된 셈이니까(아직 거북한 작가들도 있고). 스티븐 킹이나 더글러스 애덤스에게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읽으면서 더 좋아지면 독자인 나도 작가인 그들에게도 더 좋아지는 일이 되는 것이겠지. 더 재미있고 즐겁게 쓰라고 더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어 볼 테다. 읽는 즐거움, 더 무엇을 바라랴. (y에서 옮김2017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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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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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일이 대책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별히 마음 상할 일도 절망스러운 일도 없는데, 그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은 아득한 우울. 그렇다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정도는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인데 혼자서만 스스로를 대책없이 견디고 있다. 왜 이러나. 그리하여 나는 허수경의 시집을 꺼내었다. 이미 10년이 지난 시집이다. 이 시집을 낼 때 시인은 서른이 갓 지났을 것이다. 나도 서른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처음 시집을 펼쳤을 때는 시인과의 공통분모를 찾아 보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곧 단념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고민없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아심을 잠시 가지긴 했겠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요즘처럼 살아있는 게 새삼스럽게 아득할 때는 처음 이 시집을 펼쳤을 때의 그 대책없이 스산했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난 이제서야 시인이 건넜던 그 서른 살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앓는 꿈이 다시 세월을 얻을 때'(11p)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나 역시도 이미 그 시절을 지나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 시간과 몸을 다해 기어가네 왜 지나간 일은 지나갈 일을 고행케 하는가 왜 암암적벽 시커먼 바위 그늘 예쁜 건 당신인가 당신뿐인가'(57p) 하여 가슴 먹먹할 때가 많다. 그래, 왜 지나간 당신, 당신들은 예쁘기만 하고 당신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괴로운 것일까. 왜 이토록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힘든 것인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바라볼 때는 남다른 기대나 남보다 깊은 상처를 품게 되리라. 내것이 아니었던 것이 내것이 되거나 내것이었던 것이 내것이 아니게 되더라도, '그게 사랑인가 그게 없어져 버림인가'(82p) 싶어도 나만은 다른 사람과 또다른 그 무엇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오늘은 시집을 덮어도 끝내 위로를 얻지 못한다. (y에서 옮김200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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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의 시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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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상상이지만, 작가는 소설 안에서 또 상상의 조건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글로 꾸며 낸다. 곧 흥미진진해진다. 이 서재에 있는 시체는 누구이며, 누가 죽였는가.


사람의 본성이라는 면을 작품 속에서 늘 주의 깊게 바라보게 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사람들이 보여 주는 생각이나 행동에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누가 죽였을까를 탐구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사람들의 생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니 범인인가 아닌가와 관계 없이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평가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또는 이 사람이라면 그럴 리가 없어, 하는 방식으로. 이건 현실에서도 참 중요한 평가 기준이기도 한데.


마플 여사가 등장한다. 노처녀라며, 참견하기 좋아한다며, 말이 많다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마플 여사의 눈썰미와 추리력을 비하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그래야 마플 여사의 활약이 더 대단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경찰보다 더 철두철미하게 관찰하고 짐작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게 괜찮지 않을까 싶어진다. 노인의 지혜라는 게 이런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기도 할 테고. 흠, 소설이니까 이러할 테지?  


어쨌든 살인 사건에는 돈이 빠지지 않는 갈등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더 많은 돈이라......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남의 돈이 내 돈인 것처럼 확 느껴지는 그 순간은 왜 오는 걸까. (y에서 옮김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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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 - SF 소설가가 그리는 미래과학 세상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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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 독자로서 내가 어느 단계쯤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SF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사실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도 SF 소설을 즐기는 태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으니까 딱 그만큼의 자부심으로 말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은 SF 소설의 배경을 알아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소설 구성의 3요소라는 게 있다. 인물, 사건, 배경. 4지 선다형 시험 문제용으로 자주 쓰인 것인데, 한창 외울 때는 몰랐으나 이제야 이게 소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듯하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쓸 때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떤 식으로 버무리고 합치고 나누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는데 적어도 조각퍼즐처럼 낱낱이 늘어놓았다가 이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끼워 맞추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아닌가, 어떤 소설가는 그렇게 하기도 하는가, 그러면 상당히 복잡할 텐데, 뭐 이런 내 생각은 쓸데없는 것이지만. 


작가가 이번에 내 놓은 책은, 솔직히 읽는 재미는 덜했다. 상상이라서, 아직은 현실에서 좀 많이 떨어진 먼 미래에 있는 듯 보이는 내용이라서, 이걸 대체로 건조한 문체로 설명하고 있어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꾸민 재미있는 이야기에 익숙한 나로서는 덜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작가도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사항을 미리 말해 놓고는 있지만, 책 제목만으로 기대했던 바와 차이가 있었으니.  


그렇지만 책에서 다루는 소재의 활용 내용이나 각각의 상상력의 범위가 섭섭했던 건 결코 아니다. 다들 조금씩은 예상하고 있었을 미래의 어떤 것들을 작가가 하나씩 꼭꼭 집어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 놓았는데 정말 이렇게 될 것 같은, 이런 상점이 생기고, 이런 물건을 돈을 주고 사게 될 것 같은, 누군가는 이런 물건을 팔게 되기도 할 것 같은,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지금 내 나이에서 얼마를 더 살아 있어야 이런 물건들을 착착 만나 볼 수 있게 될지 그건 모르겠지만, 의외로 빠른 시일 안에 만나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말이다. 


소설에서 배경은 인물이나 사건에 비해 한 차원 뒤로 물러나 있는 듯이 보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배경의 어느 한 지점이 소설의 흐름에서 어떤 이유로든 어긋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물이나 사건의 강력한 영향력과 관계없이 소설을 읽던 마음의 맥이 풀리고 만다. 이건 실수일까, 실력일까. 의심이 든 순간부터 소설 전체에 대한 호감도는 무너져 내리고. 결국에는 작가의 힘도 의심하게 되고. 이 사람은 배경에 대한 공부를 좀더 해야겠구나, 책도 간접경험도 더 해야겠구나, 지식도 더 쌓아야 하고 이를 전달하는 방법도 더 탐구해야겠구나 등등으로.


반면 배경이 잘 제시된 소설에서는 오히려 배경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 사이에 잘 녹아 들어 있어 뭔가가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SF 소설에서 이런 차이를 종종 발견하곤 했다. 배경을 굳이 설명하는 소설과 설명이 없는데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소설, 배경에서의 맥락을 잇지 못한 상태로 함부로 넘겨 버리는 소설과 끊어진 느낌 없이 이어지는 소설. 글에서 SF의 배경을 말하겠노라고 나서는 순간 인물과 사건은 공중으로 떠 버리고 말았던 작품들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이를테면 그런 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잠깐 궁리한 바가 있다. 이제는 내가 해 볼 도리가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이용하여 SF 소설을 쓰는 수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책 속에서 한 가지 이상의 요소를 골라 소설을 써 보고 이를 발표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 동아리 수업에서 해도 좋겠고, 요즘처럼 원격 수업을 하는 시기라면 각자 집에서 글을 쓰고 온라인으로 서로의 작품을 미리 나눈 뒤 화면 수업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러면서 배경의 중요성을 익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남고 말겠지만. 그래도 SF 소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꼭 권해 주고 싶다.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든가, 아니면 취재해서 갖고 있든가, 그런 연후에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작가의 나눔 정신도 돋보였다. 국가 기관 사업에 참여하면서 얻은 성과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자신의 상상 아이디어를 내놓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감도 있다는 뜻일 테다. '배경은 다 나누어 줄 수 있다, 내게는 인물과 사건을 창조하는 능력이 충분하므로'와 같은. 이 책에서 상상한 바를 담은 작가의 신선한 글을 곧 읽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210130)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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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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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소설, 참 재미있다.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벼워지는 것 같은데 적절한 말을 못 찾겠다. 안 읽었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읽고 보니 참 좋은 시간을 누렸구나, 얻음으로써 얻지 못했던 순간이 내 생에서 줄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9편의 소설에, 9명의 주인공에, 주인공과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내 세상이 넓어졌다. 나는 책을 읽었을 뿐인데, 배경은 미국의 가상 도시라는데, 몇 날 며칠을 그곳에서 그들과 같이 살았던 것만 같다. 살고 만나고 헤어지고 시달리다가 떠나왔던 것만 같다. 고단하다.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 안에서 벅차오르는 것들이 나를 떨게 한다. 살아 있으니 참 좋구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으니 더욱 좋구나. 


내가 사는 좁디좁은 세상 바깥의 저 먼 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기름을 팔겠다고 무기를 팔겠다고 돈을 벌어 보겠다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일 텐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듯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살아야 하는 목숨도 있는 것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살아 있어서 도리어 치욕과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누군가의 인생.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작가의 서술이 참 마음에 든다. 서술한 문장에 담긴 작가의 태도가 또 마음에 든다. 자꾸자꾸 나를 만나게 한다. 문장을 따라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내 앞에 세워 준다. 이야기를 나누라고, 소설 속 인물들과의 대화처럼 나 자신과도 이야기하라고. 어느 날의 부끄러움, 어느 날의 슬픔, 어느 날의 수치심, 어느 날의 억울함 들에 대해서. 그리고는 살자고 마음먹으라고 부추긴다. 9편 속의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제각각 다른 표현으로 같은 마음을 전해 준다. 우리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인간답게 고민하지 않겠느냐고. 


여러 모로 나를 살아 있도록 자극해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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