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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9편의 소설, 참 재미있다.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벼워지는 것 같은데 적절한 말을 못 찾겠다. 안 읽었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읽고 보니 참 좋은 시간을 누렸구나, 얻음으로써 얻지 못했던 순간이 내 생에서 줄었다는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9편의 소설에, 9명의 주인공에, 주인공과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이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내 세상이 넓어졌다. 나는 책을 읽었을 뿐인데, 배경은 미국의 가상 도시라는데, 몇 날 며칠을 그곳에서 그들과 같이 살았던 것만 같다. 살고 만나고 헤어지고 시달리다가 떠나왔던 것만 같다. 고단하다.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도 마음 안에서 벅차오르는 것들이 나를 떨게 한다. 살아 있으니 참 좋구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으니 더욱 좋구나.
내가 사는 좁디좁은 세상 바깥의 저 먼 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다. 기름을 팔겠다고 무기를 팔겠다고 돈을 벌어 보겠다고 누군가는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일 텐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듯이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살아야 하는 목숨도 있는 것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살아 있어서 도리어 치욕과 수치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누군가의 인생.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작가의 서술이 참 마음에 든다. 서술한 문장에 담긴 작가의 태도가 또 마음에 든다. 자꾸자꾸 나를 만나게 한다. 문장을 따라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내 앞에 세워 준다. 이야기를 나누라고, 소설 속 인물들과의 대화처럼 나 자신과도 이야기하라고. 어느 날의 부끄러움, 어느 날의 슬픔, 어느 날의 수치심, 어느 날의 억울함 들에 대해서. 그리고는 살자고 마음먹으라고 부추긴다. 9편 속의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제각각 다른 표현으로 같은 마음을 전해 준다. 우리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인간답게 고민하지 않겠느냐고.
여러 모로 나를 살아 있도록 자극해 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