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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클리어 1 ㅣ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시간여행도 여행일 것이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그 어딘가로 떠났다가도 반드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돌아올 수 없다면,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다. 가출이거나 탈출이거나. 아무튼 사고다. 결코 원하지 않을. 상상 속 시간여행이지만 출발했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될까? 이 또한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찔한 만큼 매력적이어서 영화로 소설로 다시 탄생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2060년대 옥스포드에서 과거로 떠나는 역사학자들. 앞서 읽은 책들의 줄거리를 대충 떠올리면서, 잊은 건 잊은 대로 기억나는 건 기억하면서 읽었다. 그다지 무리없이 잘 읽혔다. 작가의 꼼꼼하면서도 느리디느린 전개가 내 부족한 기억력을 되살려 주었다. 그래, 그랬지, 이 사람이 앞 책에서 그 일을 했었지. 다 떠올리지 못해도 괜찮았다. 보이는 만큼만으로도 충분히 생생했으니까.
단순하게 흥미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는 데 뜻이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이라고 하니, 지난 역사를 살펴보겠다는 명분을 살릴 수 있을 테고. 그래도, 아무리 2060년대라고 해도,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되었다고 해도, 그래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자신의 운명과 생명을 건 여행이라니 역사학자로서는 무거운 임무이자 공부였을 것 같다. 이걸 가능한 모습으로 보여 주는 작가의 솜씨.
아직 한 권이 남아 있다. 이 책에서는 온통 혼란이다. 과거에 갇혀 버린 듯 보이는 주인공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강하 지점을 찾아야만 하는 온갖 노력들이 딱하게 보일 뿐이다.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런던에서, 시도때도 없는 독일 공습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처절한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돌아갈 것인가. 돌아가지 못한다면 역사 탐구라는 명분도 소용이 없어지고 마는 것일 텐데.
내내 조마조마했다. 어긋나고 또 어긋나기만 하는 길들에서, 주인공들의 고단한 방황이 소설 속에 있음에도 내가 더 고단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나는 시간여행 따위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 이건 너무 힘든 여행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는 건, 딱 하나,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누군가의 나쁜 인성이나 질투, 시기나 모함이나 음모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게 없어도 갈등 구조도를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 또한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바꾸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인물들이 그 안에서 뜻밖에 만난 두 사람과의 일화는 유쾌하다. 앨런 튜링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만났다는 설정, 이건 좀 끌린다. 시간여행의 묘미이겠지. 남은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지려나. (y에서 옮김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