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기 전에 쓰는 글들 - 허수경 유고집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고집을 읽는 마음은 참 스산하다. 세상에는 이미 없는 작가, 그런데 글은 남아 있고, 독자로서 작가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고, 작가의 죽음이 꼭 남의 죽음인 것만은 아닌 것 같고, 마치 내가 죽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고...... 무엇보다 이제 다시는 이 작가의  새로운 글을 더 읽지는 못하겠구나 싶은 절망까지. 

 

마음이 이러하니 글이 제대로 읽힐 리가 있나. 한 문장 읽고 한숨 한번 쉬고, 한 단락 읽고 고개 한번 흔들고, 한 쪽 읽고 물 한번 마시고. 얼마나 끊겼는지 모르겠다. 읽어도 읽어도 낯설기만 한 마음에 속상했다. 힘들었겠구나, 외로웠겠구나, 그래도 시를 놓지 않고 있었구나. 사는 게 뭐라고, 시가 뭐라고, 이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었다. 이 책이 나를 이렇게 가르쳤다. 

 

어떤 이의 죽음은, 어떤 이의 생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된다. 살아서 서로 알고 모르고를 떠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인 관심을 보였다고 해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제 삶이 흔들릴 만큼의 충격이 전해지기도 한다. 남은 책 하나, 일기처럼 메모처럼 생각들이 흩어져 있고, 귀한 시도 몇 편 실려 있다. 종종 그랬던 것처럼 이 책도 종종 꺼내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y에서 옮김20191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뮤스가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편의 소설,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이 나와 있는 작가의 책으로는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모두 세워 놓고 보니 흐뭇하다. 기억력이 아주 없는 나로서는 아무 책이나 뽑아서 다시 읽어도 다시 새로울 것이다. 저금해 놓은 책이라고 해야겠다.


4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푸아로 경감. 사건은 일어나고 푸아로는 느긋하게 해결해 나가고. 나는 이제 범인에 대해, 범인을 맞혀 보겠다고 하는 이런저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냥 읽는다. 맹하게, 활짝 열린 마음으로. 범인이 누구인들 어떠랴. 푸아로는 잡아낼 것이고, 범인이 희생자를 죽인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며, 범인의 본성은 나쁜 것이었을 테고, 나는 시원하게 밝혀지는 대로 따라가면 되니까. 게으른 독서의 참맛이라고나 할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거의 신기한 기분마저 들기는 하는데. 살인이라는 사건은 뭐라고 해야 할까. 일어날 법한? 일어나도 개의치 않는? 사회면 뉴스에서는 흔하든 흔하지 않든 우리 땅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매일 보도하고 있고. 그렇다면 멀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일 텐데. 


사람은 어떤 상태가 되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될까? 소설은 소설로만 그치는 법이 없고, 비슷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늘 우리의 현실의 삶을 지치게 만들고 있는데. 이 또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섭리 중 하나일까?


이제 이 작가의 책을 다시 읽게 되면 나는 리뷰를 이어서 쓰게 될까? 그러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결하는 소설 - 미디어로 만나는 우리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김애란 외 지음, 배우리.김보경.윤제영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술은 삶에 도움을 주려고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쓰기에 따라 삶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죽하면 최고의 기술이 최고의 무기를 만들다가 나오는 것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살리기 위한 기술이 누군가를 죽이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된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버젓이 보이고 있고.

미디어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잘 연결하기 위해 발전시키는 영역으로 봤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해치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소설은 갈등을 다루는 데 익숙한 장르이고 기술의 발전으로 좋아진 쪽보다 나빠진 쪽을 이야기하기에 더 적절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소설들이 도무지 유쾌할 수 없는 배경이다.
 
현실에서 체험하는 것만큼이나 소설 속 가상 세계도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알고도 저지르는 실수나 모른 채 당하는 사기나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연결되지 않고 아날로그 형태로만 살겠다고 작정하고 살면 좀 나아질까? 아니, 그럴 수 있기는 할까? 개인 인증조차 핸드폰으로 받아야 하는 때에. 도무지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을. 그 어떤 일도. 

김보영의 <고요한 시대>에 유독 사로잡혔다. 그러려니 하는 한탄을 넘어 소설 속 상황처럼 이 지경까지 이른다면 정녕 어떻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아득해지기만 한다. 기술의 발전, 미디어의 방향, 사람의 이기심과 욕심이 어디까지 어떻게 나아가게 될지. 

연결이 싫어지려고 한다. 고립이 그리울 정도로. (y에서 옮김20241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면을 끓이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작가밖에 없으리. 라면도 그냥 라면이 아니고, 밥도 그냥 밥이 아닌 사람의 글과 삶. 이 시대에 함께 살아 이 사람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고맙기만 하다. 이분의 글을 읽는 동안에는 내가 늙어 가는 모습까지 불평 없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나이 드는 게 전혀 아쉽거나 억울하지 않다는 느낌을 글로서 전해 받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글은 아니다. 잘 드는 칼을 읽는 느낌이다. 선득선득 잘라내는 거리감, 홀로 깊어졌다 사라지는 소실감. 군더더기 없는 명쾌하고 단호한 문체에 쉬이 빠져 든다. 내게 이런 강인함이 숨겨져 있었던가 착각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쉬운 삶, 쉬운 밥은 없다는 거다. 어딘가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멀리 있는 것을 자주 그리워하였더니 가차없이 잘라주시는 훈계. 힘들다고 징징대지만, 세상에 나만 힘들게 살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게 위로가 되는 게 한편으로는 민망하지만 인정하게 된다. 나는 그리 잘난 것도 그리 못난 것도 아닌 삶을 갖고 있는 것이었더니. 


나이가 들면 나이가 들었다고 더 엄격하게 견주는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어떨 때는 너그러울 줄도 알았다가 어떤 때는 냉철히 처단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 자칫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는 사방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나이를 어디로 먹었느냐고, 그런 것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느냐고, 아직도 그러고 사는 거냐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삶의 값, 나는 그 값을 배우고 싶다. 


출간 즈음에 스캔들에 휘말렸을 텐데, 그런 시달림도 가볍게 무시된다. 그냥 글이 좋으면 다른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y에서 옮김201510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567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는다는 것,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 누구든 일생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으니 경험담이라는 게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더 멀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게는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그럼에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았을 때는 더없이 절망하면서. 


실려 있는 시들, 읽기 괜찮지 않다. 자꾸만 걸려 마음이 넘어진다. ‘엄마’라는 말 자체에도 멈칫 하게 되는데 엄마가 죽음을, 아니 죽음이 엄마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이건 좀 괴로운 의무감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두꺼운 편이다. 시인이 들려 주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어쩌면 자신이 자신에게 들려 주려는 위로는 아니었을지. 엄마가 아프고 엄마가 죽을 것 같고 엄마는 죽고. 엄마의 자리에 세상 모든 아까운 이름들이 다 들어서도 달라질 게 없어 보이기만 하니 죽음이 이래서 공평하다고 한 것일까.  


나는 이번에도 거리감 딱딱 유지하며 읽었다. 죽음 따위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건방진 내 태도가 불쾌하다며 언제 어떻게 혼내러 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 시에서라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 (y에서 옮김20220730)


그곳에도 눈물 속에 조가비가 자라나요?
바람과 불이 이리저리 뭉쳐 다니나요?
그러면 그것들이 꽃이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되기도 하나요? - P11

모든 낮은 떠나갔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발톱처럼 머리카락처럼
이미 죽었으나 자라는 것들이여
예감의 슬픔이여
끝의 성자여 - P239

왜 우리는 바다와 눈 맞추기를 좋아하나
왜 우리는 산과 등지고 앉기를 좋아하나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