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물들 -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
허수경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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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49명의 여성 시인이 쓴 사물 이야기라고 했다. 제일 앞선 이름이 '허수경'이어서 덥석 구해 읽었고, 그녀의 '손삽' 이야기는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후로는 흠, 그저 그랬다. 심심했다기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나 해야 할지.

발상은 괜찮아 보였다. 자신이 가진 것 혹은 보고 있는 사물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글로 나타내는 일. 하나의 사물에 2000자 이상의 글을 쓰려면 그래도 애정이나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고, 추억이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대상이면 더욱 좋을 것이고, 그 내용이 독자의 공감까지 불러 일으킬 수 있을 만하면 더할 나위 없기는 한데. 이런 생각은 나 혼자 해 보는 것이었고 실려 있는 글에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시인들이라 표현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같은 사물을 두고 반복과 변주로 꾸준히 묘사해 나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 정도의 긴 호흡으로 그려낼 수 있어야만 작가가 되는 것인가 보다. 독자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가는 작가와 독자와의 인연에 달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두고.

이 책을 읽고 나니 주위를 둘러보는 것에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사물들, 이 사물들 하나하나에 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듯도 하다. 혹은 이야기를 건네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얼중얼.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마음이 솟으면서 흐뭇해진다. 이게 이 책을 읽은 보람이 되는 건가? (y에서 옮김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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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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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여러 모로. 얼마 전에 이 작가의 새 시집이 마음에 들어 이전 시집을 찾아보다가 내가 이 책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읽은 흔적도 여러 군데 있다. 그런데 내가 쓴 리뷰가 없다. 이미 리뷰를 올린 책을, 읽은 줄 모르고 다시 읽거나 리뷰를 올리겠다고 검색했다가 내가 쓴 리뷰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나는 좀 진득하니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리고 리뷰를 쓰지 않았다고 결론을 얻었다.

아마 처음 읽었던 그때의 마음이나 이번에 읽은 이 마음이나 큰 차이가 없지 싶다. 어떤 책은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거듭 읽을 때마다 더더욱 좋아지기도 한다는데, 이 책도 내가 그런 기대를 품고 다음을 기약하며 리뷰 쓰기를 미뤄 두었던 것일 수도 있는데, 시집 속 몇몇 흔적을 보면서도 같은 기대를 해 보았는데......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보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말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무엇이 거북한지, 어느 대목에서 막히는지, 어떤 말들이 거슬리는지, 나는 왜 이 표현에 이 구절에 이 시어에 공감이 안 되고 있는지, 마침내는 이 고민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

해설은 허수경 시인이 썼다. 이마저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게는 찬란한 구석이 요만큼도 없나 보다. (y에서 옮김20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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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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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엄마의 딸이고 내 딸의 엄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흔하디 흔하게 있는 관계일 텐데 이게 소설이 된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하며 마음에 오래 남을 듯한 이야기로.


엄마와 딸은 어떤 정도로 가까워야 살기에 적절할까? 너무 가까워도 갈등, 너무 멀어도 갈등. 자신과 닮았다고 비난, 자신과 닮지 않았다고 비난. 딸이 엄마처럼 살게 될까 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아니면 딱 엄마처럼 살게 되도록 하려고 전전긍긍. 같아서 닮아서 엄마는 딸을 자신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식하며 일체가 되어 살려고 하고 딸은 엄마와는 전혀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치고. 


언제나 그러하듯 소설은 물음만 던지고 답을 주지 않는다. 답이 없으니까. 답은 각각의 엄마와 각각의 딸에게 있을 것이니까. 내가 나만의 답을 확인하듯이. 


딸 에이미와 엄마 이저벨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다니면서 참으로 긴 여행을 한 것 같다. 미국의 작은 마을, 좋지 않은 냄새가 마을 전체를 떠돌고, 게다가 여름이었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만으로 견디는 사람들이라니. 가난의 여러 모습은 사람들을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하였다. 마치 지난 시절의 헐벗은 나를 다시 마주하는 것처럼.  


이저벨도 에이미를 낳고 엄마로서는 처음이었을 것이고 에이미도 딸로서는 처음이었다. 둘은 같이 자라야 했다. 그러지 못해서 서로가 서로를 외면했을지도. 우리 모두는 단 한 번밖에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이에게든 멀리 있는 이에게든. 두 번째에는 잘할 것 같지만 그마저 그 상황은 다시 처음이 되고 말 일이니.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글은 끈질기게 읽혔다. 내 의식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당장 글로 풀어 쓸 수는 없고, 그럴 능력도 못되고, 그저 내 일상을 이어 가면서 이저벨을 불렀다가 에이미를 불렀다가 해 보게 될 것 같다. 


이 작가의 책을 세 권 더 쌓아 놓고 있다. 흐뭇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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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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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천천히, 한 줄 한 줄 뜯어먹듯이 읽다가, 한 편 한 편 휘리릭 넘기다가 그랬다. 어떤 시는 전편을 옮겨 적어 보았고, 어떤 시는 무심히 넘겨 보았다. 낯선 시어도 좋았고, 잡히지 않는 문장이라도 괜찮았다. 마치 모르는 남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그가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만족한다는 기분으로.

 

쉽지 않은 독서였다. 편하지 않다는 화자의 처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었고, 그 이유가 슬픔일 수도 허망함일 수도 안타까움이나 서러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아스라한 분위기만 느껴질 뿐, 시를 쓰는 마음이 힘들었겠구나 느껴질 뿐, 그러자니 내가 좀 아픈 듯도 싶어졌다.   

 

언제부터 시가 슬픔이나 괴로움을 달래는 쪽으로 기울어졌나 아득해진다. 기쁜 시, 즐거운 시, 신나는 시들도 있을 텐데, 그런 마음이 들 때보다는 서럽거나 지쳤거나 외로울 때 더 잘 읽히는 것만 같으니. 이 시인도 그런 걸까. 여전히, 이만큼이나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생은 무겁고 길은 어둡고 바람은 아픈 것일까. 달라지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달라지는 날을 맞이할 수 있기는 하는 걸까.

 

그녀의 인생이 흐르는 길에 나도 계속 같이 있고 싶다. (y에서 옮김2017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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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 10대를 위한 SF 단편집 창비청소년문학 5
송경아 외 지음, 박상준 엮음 / 창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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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확한 개념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이쪽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들을 더러 읽던 중에 딸이 권한 책이다. 자기가 고등학생 때 읽은 소설들인데 읽어 볼 만할 것이라면서. 읽고 보니 아직은 내게 좀 멀리 있는 영역이다 싶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고 작가들이니 그 즈음이 작가들의 초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은 이름을 알고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고. 내용은, 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도 있으면서 대체로 젊고 어린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고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중이면서도 썩 와 닿지는 않는다. 작가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펼쳐 놓은 소설 속 세상이, 좀 많이 낯설고 괴기스럽기도 하다.

 

엉뚱발랄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납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납득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상상하게 되었는지 그렇게 꾸며 놓으려고 했는지 한 발 들어가서 받아들이고 싶은데, 거부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 정도를 이해할 수 없으면 그냥 들어오지 마셨으면 하는 듯해서. 그러니 더 다가가지를 못하고 말았다. 굳이 더 읽어야 하나 한숨 한 번 쉬고.

 

새로운 경향에 유연하게 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끔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억지로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듯하다. 어떤 식으로든 흥미가 생겨야 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자연스럽지 못하면 더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게 되니까. 완전히 포기하지는 말고 최근에 나온 작품들이라도 읽어 봐야겠다. 그래도 우리 문학의 미래를 맡고 있는 작가들이니.  (y에서 옮김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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