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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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궁극은 위로이자 용서일까. 글은 읽기 쉽지 않았고 소재와 주제는 무거웠다. 멀리 먼 상상의 세계마저 이토록 고단하다면, 나처럼 가볍기 그지없는 이로서는 미안해서라도 상상을 못하겠다. 막연하게 마냥 그릴 수 있는 천국은 없는 셈이다. 적어도 먹고 자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면.


네 편의 글이 실려 있고 작가는 용서로 가는 길을 보여 주려고 한다.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용서라,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용서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낯설었다. 아마도 나는 쉽게 용서를 하지 않고 살아온 듯하다, 대상이 그 누구였든. 낯선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세상에서, 그들이 엮어 내는 낯선 관계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다가는 지금보다 더 어렵게 살게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은데, 단순하고 담백하게 사는 게 내 삶의 방향인데, 이 작가는 자꾸만 나를 드높이곤 한다. 


남자와 여자의 존재 방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한다. 앞서 읽은 책에서도 같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남자와 여자라는 구별된 성 역할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기 어려우니, 해결 방안을 상상으로나마 마련하고자 하는 것도 작가의 역할 중 하나일 테지. 작가가 상상한 내용은 아주 그럴 듯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아득하기만 하고, 아무리 해결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여도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도 나도 불완전하기만 하니 안 될 것 같다. 안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SF소설이 담는 세계관에 대한 정보를 이 작가의 글로 많이 얻는다. 나의 SF 영역이 조금씩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흐뭇하게 확인한다. 나 혼자 노는 일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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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턴발 4시 50분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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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간다. 가다 보니 옆 라인에서 다른 기차가 지나간다. 무심코 그 기차를 보는데 객실 안에서 누군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을 본 것이다. 그리고 기차는 지나갔다. 만약 내가 그 장면을 봤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주변에 알린다. 승무원에게도 알리고 역장에게도 알리고. 그런데 그 기차 어디에도 시체가 남아 있지 않다. 사람들은 착각이라고만 한다. 답답하기는 하겠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할머니, 마플 양이 나온다. 마플 양은 목격자의 말을 믿고 처리를 해 나간다. 이 과정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사건이 일어날 만한 근거지로서 소재와 배경을 선택하는 작가의 능력에 매번 감탄하며 읽는다. 범죄도 수사도 다들 이 소설의 영역 안에 있을 것만 같다. 현실에서 마플 양이나 푸아로 경감과 같은 수사관이 얼마나 활약하는지 그게 문제이겠지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꼭 잡혀서 죄의 댓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순진한 바람이기는 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 범인은 꼭 벌을 받는다는 소설을 더 읽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플 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찰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런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행동하기 마련이라는 통계에 따른 추리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사람이 정말 그럴까, 사람 잘 안 변한다고도 하는데, 일이 끝난 뒤에는 그런가 보다 하게 되지만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짐작할 수 있는 능력, 어떻게 보면 그것도 성가시겠다. 나는 그냥 이렇게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다른 사람 구경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관찰하고 파악하는 일에는 이제 더 관심이 없다. (y에서 옮김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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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걷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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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작은 편이다. 얇은 편이기도 하다. 실린 사진은 흑백이고 작아서 알아보기 쉽지 않다. 책값은 책에 비해 비싼 편이다. 작가의 만화와 글은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 아쉬움을 달래 줄 정도로.(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책의 얇은 두께와 편집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무성의는 우리나라 출판사의 성급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창 잘나가는 작가니 어서 출판하고 싶었던 것 같은.) 


내가 왜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에 계속 빠져 들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을 함께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느슨함'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았다. 이 작가, 성실하기는 하지만 치열하다거나 정열적이라거나 온몸과 정신을 바친다거나 하는 쪽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동안 내가 치열한 인생들에 좀 시달렸던 모양이다. 분명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대단한 인생이었음에도, 초기에는 그런 분들의 삶에 감동도 받고 자극도 확실히 받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해지는 자신을 느끼곤 했다.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니, 저렇게 바쁘게, 저렇게 애타게, 저렇게 간절하게, 저렇게 지독하게,...... 저렇게 저렇게....... 


그래, 그렇게 살면, 성공의 이름을 얻기도 할 테고, 사람들의 선망을 얻기도 할 테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보람도 있을 테고, 세계적으로 이름도 알릴 수 있을 테고, ......그렇겠지, 바쁜 만큼 신나고 바쁜 만큼 벅차고, 바쁜 만큼 우쭐해지고......그럴 수 있을 테지. 그런데, 그런데, 그게 숨가쁘게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으로 치열한 만큼 다른 한쪽으로는 허전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없을까, 꼭 저렇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살아야만 하나, 좀 덜 하고 좀 덜 얻고 좀 덜 바쁘면 안 되는 걸까. 학생에게만 스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 요즘, 스펙이라는 현상에 그만 질려 버리고 만 나. 할 수만 있다면 한 발 뒤로 물러 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 작가, 이 대목에서 내 마음과 만났다. 남 다 갖는 것 갖지 못해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처지, 혼자서 먹고 혼자서 놀러 다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리 서글퍼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않는 경지, 적당한 선에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구할 것은 구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마음 속 감동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누릴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심은 바로 행복이 될 수도 있었다. 


작가가 슬쩍 흘리는 것처럼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 그런 가치관들에 동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기쁨이다.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것이 이렇게 내 안의 기쁨과 만나는 것이었음을. (y에서 옮김201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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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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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은 확실히 아니다. 여름인가 하는데 완전한 여름도 아니다. 어중간한 경계에서 지나간 여름, 두고 온 여름을 들여다 본다. 애틋하고 애잔하다. 두고 온 것들은 언제나 이런 듯하다. 여름마저도.


책은 가볍고 분량은 많지 않다. 한달음에 읽을 수 있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화자가 바뀔 때 쉬어도 좋겠고.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 둘은 번갈아 서술한다. 두 번씩. 네 번 나누어 읽으면 이들 형제가 두고 온 여름이 더욱 애잔하게 와 닿을지도. 


나는 한번에 다 읽었다. 내게는 좀 싱거웠고 밋밋했고 서운했다. 분량이 적은 탓이었는지 두 화자가 내보이는 심사에서 무게감을 얻지 못했다. 공감도 동정도 이해도 더 하고 싶지 않은 선을 내 쪽에서 긋고 만 기분, 이게 서운해서 책한테도 서운해졌다. 


책 제목이 근사했는데 제목만 깊이 새긴다. 다른 곳에서 내가 써 먹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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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이프러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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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에필로그로 시작한다. 살인을 했다는 여주인공. 당연히 아닐 것임을 짐작하고, 어떻게 누명을 벗어 나가는가에 초점을 맞춰 읽게 된다. 실제 증거는 없이 모든 정황증거만 여주인공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푸아로 경감이 등장한다. 그리고 장미, 여주인공인 엘리너가 들려준 장미에 얽힌 이야기에서 푸아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는다. 장미라면 당연히 가시가 있는 줄 알았는데 가시가 없는 장미도 있다니, 거 참. 


돈과 질투는 범죄를 일으키는 아주 절대적인 동기다. 원래 내것이 아닌 돈을 얻겠다고, 또는 질투를 견디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 흔하지 않은 듯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게 정말 그럴 만한 일인가. 아무튼 작가는 이 동기만으로도 많은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잘도 만들어내었다. 이게 더 신기하다. 매번 달라지는 장치로서의 배경 설정.


그리고 남은 건 사랑. 어떤 사랑이 더 참된 사랑인지, 사랑이라는 게 어느 정도 허용하고 어느 선에서 거부하게 되는 건지 생각해 보도록 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 마음이 네 마음 같지 않아서 늘 갈등을 빚고 이 갈등 때문에 다투고 헤어지는 인생사,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내내 같이 살고 내내 사랑한다고 믿는다. 젊어서 하는 사랑과 나이 들어 믿는 사랑에도 차이가 있는 셈인가. 그럴 수도. 


아직도 이 작가의 작품이 제법 남아 있어서 은근히 마음 든든하다. 다 읽어 버리면 그때는 무슨 재미로? (y에서 옮김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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