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필로소퍼 2024 25호 - Vol 25 : 갈등을 받아들이는 연습 뉴필로소퍼 NewPhilosopher 25
뉴필로소퍼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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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주제는 '갈등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삶에 연습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 어디에 있겠나 싶다가도 삶이라는 게 어느 한 순간 연습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냥 하고 흐르고 보내는 것일 텐데. 어느 대목을 연습이라고 해야 할지. 

주제는 선명한데 읽는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내적 갈등 그 자체였다. 읽고는 있으나 계속 읽는 게 낫나 그만두나, 읽으면 뭐가 나아지나, 나아질 게 있나, 갈등도 사회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말이겠지. 이놈의 갈등을.... 하는 마음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산다. 하다못해 동물이나 식물과도 같이 산다. 갈등은 생긴다. 해결해야 산다. 해결하지 못해도 살기는 하겠지만, 아니, 살아질까? 삶이란 갈등의 해결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는데.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점에서 수준이 보인다. 사람의 수준, 사회의 수준, 국가의 수준, 인류의 수준...  우주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왔을까? 시간과 공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건 내 수준의 답이다. 우주에 비추어 내가 겪는 갈등의 해결 방안을 마련해 본다면? 막힌다. 점점 되는 대로 흘러라 싶은 마음이 잦아진다.

갈등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협의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뒤처지고 사람들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남 탓을 더 못하겠다. 내 책임이라는 책 속 문장 하나에 크게 걸렸다. 인정한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괜찮은 걸까? 이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더없이 존경스러워진다. 하고 또 하는 사람들, 권하고 또 권하는 사람들. 읽고 생각하고 바꾸고 행동하기.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사람으로 살아야지.  (y에서 옮김20240918)

인간은 과거보다 미래를 더 중시하고(즉, 우리는 이미 경험한 기쁨과 고통보다 아직 겪지 않은 기쁨과 고통을 더 중요시한다.) 먼 미래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더 중시한다. - P10

모든 종교, 예술, 과학은 같은 나무에서 뻗어 나온 서로 다른 가지다. 이 모든 열망은 인간의 삶을 고귀하게 만들고, 인간을 단순한 육체적 존재 이상으로 끌어 올리며, 개인을 자유로 이끈다. - P11

니체는 갈등 덕분에 우리가 성장하고, 난관을 극복하고, 더 만개할 수 있다며 그 가치를 높이 산다. - P15

아무리 비뚤어지고 잘못된 선호를 가진 사람이라도, 행동의 ‘이유’는 주관성subjectivity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 P39

기술 변화와 개인주의, 연장된 유년기. 이 세 가지 요소 때문에 각 세대는 다른 세대를 바라보며 한껏 당황하거나 때로는 적대감까지 느낀다. 더욱이 사람들은 자기 세대 구성원과 세계관을 공유하고자 점점 더 자기만의 미디어에 빠져들게 된다. - P47

누군가 실수를 저질렀으면 친절하게 바로잡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어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 P59

철학은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실재의 본질은 무엇인지 등 우리가 자문하는 중요한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에 의견 충돌은 필수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 P89

먼저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영역임을 인정하고, 갈등의 배경을 신중하게 고찰한 다음 이를 경쟁이라는 형태로 전환해 보는 것이다. - P103

정부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의 근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권위주의를 피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해진다. 정치에서 갈등이 없는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억압하는 정부는 정치를 억압하는 정부일 뿐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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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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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가 로마를 자신의 로마로 만들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고 있는 것을 본다. 예사롭지 않다. 역사가 스포일러라고 결과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 과정을 읽는 일은 늘 흥미롭다. 독재관, 술라는 독재관이 된다. 위험하지만 아주 매력적인 자리.


어쩌면 세상의 모든 독재자들은 앞선 독재자들을 모델로 삼고 공부를 하고 따르는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아닐까. 독재자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독재자에 비해 독재자에 대한 탐구를 덜한 건 아닌지. 술라의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을 지켜 보다 보니, 사람들이, 우리가, 내가, 카리스마에 어떻게 끌려 들어가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한 힘, 강한 것에 대한 숭배, 그 강함에 깃들이면 내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강함에 속하기라도 하면 그의 힘을 빌어 호가호위할 수 있으니까. 내 능력으로는 안 되지만 독재자의 능력을 편하게 빌릴 수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독재자의 그늘 아래만 있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관심 없이 오로지 나만 신나는 생일 수 있다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작 술라는 돈이나 권력보다 '존엄'에 더 가치를 둔다고 했다. dignity. 인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가치로. 어떤 마음인지 짐작은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고 싶다는 그 높이와 만족감, 독재자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가치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지금의 내 나이 이상이 되면, 죽음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그래서 미리 유서도 준비하고 상속 문제도 해결해 놓고 자신의 일도 정리해 놓고 그렇게 하겠지. 나는 내 죽음 이후의 무엇을 고민하게 될까. 죽음을 준비하는 게 나을까, 죽음 같은 것 고려하지 않고 현재를 사는 게 나을까. 중간 어디쯤이 나을까.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이라고 한다. 운명이라는 게 있기는 한지, 신이 내 운명의 끈을 갖고 흔들고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순응이 내 정서이고 처세라고 볼 때 포르투나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읽는 재미는 계속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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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만왕국 유산 시리즈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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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고 있다. 유산 시리즈의 첫권. 세 권이 남아 있다. 신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내게 이 소설은 더할 수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모르겠으나 생명의 근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재미있는 독서가 될 것 같다.

신이나 인간이나 다 그렇고 그렇지, 어디 하나 번듯한 쪽이 없어서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완전하지 않은 존재는 완전하지 않아서 괜찮았다가 딱했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할 뿐. 한번 살고 한번 죽고 영원히 살고 영원히 죽고. 그래 보았자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게 순간인 것을. 나는 길고 짧음에 엄청 둔감해졌다. 어느 시점에서 보는가, 이 기준이 내 시야를 확장시킨다. 부질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애틋해져서, 내 삶이 한결 소중해져서 만족스러워진다. 이 책에서 얻은 선물이다.

이 작가의 상상력은 넓고도 깊다. 그러면서 인간적이다. 신이 인간보다 못하다는 관점이나 신들을 인간이 부린다는 생각 자체가 신기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난 막혀 있던 생각의 통로 하나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좀처럼 반대로 생각할 줄 모르는 나의 편협된 사고 체계가 흔들리고 뚫렸다가 가라앉는다. 길 하나가 열려서 앞으로 책을 읽는 재미를 더 키울 수 있겠다.

신과 인간, 인간과 신. 우리는 어떤 존재인 것일까. 우리가 우리 이야기를 하고 살고 있으니 중심이 우리인 것은 알겠다. 우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누가 먼저 어떻게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 하는 데에 소설가의 역할과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 테지. 이 책을 통해 만난 신들은 대체로 재미없고 한심하고 구차해 보였는데 주인공인 인간이 신들을 살려 낸다. 인간이 희생하여 신을 구한다니 신이라서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작가의 인간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그지없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14일 후에, 6일 후에, 내가 죽을 것을 예상하며 사는 날들은 어떨까? 신이고 인간이고 사랑이고 복수고 다 귀찮을 것 같은데 주인공 예이네는 참 성실하고 대담하게 산다. 하긴 그 상황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배우고 싶은 태도는 아니고, 감탄하며 봐 주고 싶다. 2권은 어떻게 이어지려나? (y에서 옮김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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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3 세트 - 전3권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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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로마와 이탈리아가 같은 의미로 다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그러니 읽으면서 자꾸 갸웃거리다가 3권에 이르러서야 좀 잡힌 셈인데, 잡히자마자 세트가 끝나는 느낌이다.(지금 쓰는 이 리뷰는 3권에 해당하는 것인데, 세트로 구입했더니 권마다 올리는 리뷰에 대해서는 포인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뭐, 좀 섭섭하고 억울한 느낌도 들지만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 물러나기로 한다.)

황금을 생각한다. 탐욕과 부도덕을 일으키는 원천으로서의 황금, 그 절대적인 매력. 요즘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 매력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일까. 매력을 느끼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호소는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아무리 도를 닦아도 정신 수양을 해도, 황금을 갖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도도 수양도 필요 없고 그저 황금을 갖겠다고 한다면, 황금을 갖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한다면, 그 시절 미트리다테스나 목숨을 걸었던 로마의 집정관들처럼 한몫 잡는 데 생을 걸겠다고 한다면, 그러지 말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인간 의지의 한계가 아닌가 싶은데, 내 마음이 이렇게나 흔들리는 것을 다른 누구를 탓하랴.

사람들이 가진 의식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관계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조금 더하고 조금 덜한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편이 아니면 죽여 버렸던 단호함. 심지어 왕의 명령을 따른 후 왕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죽여 버렸던 지배자들. 민중은 하찮은가, 하찮기만 한 목숨들이었던가. 이렇게 하찮은 목숨 중의 하나일 나로서는 분노가 인다. 특히 올바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어떻게 지배층에 속하게 되었을 무수한 인간들이 괘씸하다. 하찮게 여겨질 민중들이 썩은 지배층을 대상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무얼 해야 하는지 책을 읽으면서 끝없이 궁리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할 테지만.

합법적 절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미 정해 놓은 법, 그 법을 따르는 절차, 법대로의 시행. 마리우스와 술라의 마지막 갈등이 안타깝지만 두 사람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이 정점에 달하면 개인의 무게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고, 각자의 무게를 감당하고 상대의 무게를 인정해야 할 텐데 그걸 서로 거부하게 되면 한쪽이 한쪽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을 테고.

긴 역사에는 긴 삶이 있고 긴 삶 사이에는 짧디짧은 삶도 있다. 어떤 삶은 역사의 기억에 남고 어떤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일 텐데, 애닯다, 우리는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기는 한 걸까? 누구나 살다가 죽는 것이겠지만 허망하기도 하다. (y에서 옮김201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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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SF게임 - 건너편의 세계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튼 시리즈 69
김초엽 지음 / 위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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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가 쓴 산문을 읽으면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작가 쪽에서도 이런 효과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쓴 소설을 읽는 독자가 산문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조금 더 잘 알아 달라는 생각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허구와 사실과 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읽기의 세계 안에서.

내가 SF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얼마 안 되었고, SF 게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 안에 나오는 SF 게임 중에 내가 하는 것은 스타듀 밸리가 유일한데 이 경험만으로도 작가가 설명하는 내용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니 신기했다. 책을 읽고도 SF 게임에 대해 모르는 바가 여전히 많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봐야겠다.

현재의 나로서는 게임과 SF 게임의 차이에 대해 모르는 상태다. 막연하게 게임이라면 다 SF가 아니었던가 하는 정도로 짐작한다. SF 소설을 읽을 때도 SF 요소를 챙기며 읽는 게 아니라서, 또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이 책을 '아무튼, 게임' 정도로 읽은 게 적절하겠다. 아니면 또 어때서?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가 몇 있다. 내가 즐기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다. 무엇보다 전투를 한다는 것, 적을 죽여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아이템을 구해야 한다는 것, 구해서 본 캐릭터의 모습을 바꿔야 한다는 것, 여기에 돈이 들기도 한다는 것... 이런 특징을 갖지 않는 게임 몇 가지는 할 줄도 알고 가끔 하기도 한다. 이 경험만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도 흥미로웠다. 알게 된 만큼만.

전혀 모르는 영역이지만 게임에 대한 글을 나누는 곳도 있나 보다. 게임 방송이 있는 것을 보면 게임 비평도 있을 것이고 게임 연구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결론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게임으로 향하자'이겠지만.

게임이라는 속성 자체가 돈을 들여서 노는 일이다. 나는 돈을 들이기 직전까지만 간다.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아닌가, 게임을 하나라도 구입했다면 이미 넘어선 것인가? 선택이다, 여기도. 어디까지 들어설 것인가.

게임과 삶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작가의 말이 맴돈다. 나, 이미 누군가의 게임 안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y에서 옮김2025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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