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2년차 - 들썩들썩 근질근질 읽으면 달리고 싶어지는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 살림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일을 꾸준히, 2년에 걸쳐 할 수 있다면,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 나도 내 몸을 움직이는 어떤 일을 꾸준히 하고 싶은데,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는데, 실천까지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내 몸의 한계, 내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체력의 한계가 궁금하기는 하다. 이제까지 내가 해 본 걸로 봐서는 2시간 정도의 걷기가 최대치였던 것인데, 이 작가가 풀마라톤 후 좀비가 될 정도로 뭉치는 근육통까지 즐기는 것을 보니 나도 그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어렸을 때 체력검사를 하고 난 다음날 그런 경험을 하기는 했다(그때는 오래달리기도 하고 왕복달리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등등 그래서 온몸이 뭉쳐 다음날 힘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도로 그립기까지 하다).

작가의 팀 이름도 끌린다. 포상맥주팀. 달린 후에는 스스로에 대한 포상으로 맥주를 마시는 거다. 시원하겠지, 당연히. 짧게 걷고 난 뒤에 마시는 것도 시원한데, 3시간이나 5시간을 달린 후 성취감으로 마신다면 얼마나 흐뭇하랴. 게다가 이 작가 얼마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도 먹는지 이것도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맛있는 것 먹고 달리고 또 맛있는 것 먹고 그랬던 것을 그림으로 그려 책으로 만들고 책을 팔아 번 돈으로 또 마라톤 여행을 하고...... 몸과 정신의 조화, 일과 놀이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도저히 달리지는 못하겠고, 걷는 일은 조금 더 해 봐야겠다. 일본의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프로그램과 같은 우리의 걷기 프로그램을 찾아 봐야겠다.(y에서 옮김201605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퀸 수사국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 18편의 이야기.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추리에도 긴 추리 짧은 추리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쓰는 쪽에서는 시도해 볼 만도 하겠다. 이 책처럼.

작가의 다른 글에서 익히 봐 온 인물들과 배경들이 맛보기처럼 등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작가의 창작 창고 안에 다 들어 있던 것들이리라 짐작된다. 어떤 소재는 이 작품으로 어떤 공간은 저 작품으로 이리저리 보내고 당기고 섞으면서 사건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어떤 작품과 이어져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없고 나는 그저 읽고 즐기고 다시 잊을 뿐이다.

기상천외하다는 상황의 이야기를 여럿 보았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죽으면서까지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는 딱 소설다웠고 영어 철자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 몇 가지는 웃음짓게 해주었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로 범인임이 밝혀지다니. 우리 같으면 특정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하다가 걸릴 수도 있겠다는 정도로 이해되기도 하고.

골치 아픈 생각 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었다고 남겨 둔다. 이 점이야말로 추리소설의 큰 효능 중 하나일 테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라톤 1년차 - 초보도 따라 하기 쉬운 즐거운 달리기 프로젝트
다카기 나오코 지음, 윤지은 옮김 / 살림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시작과 동시에 진행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꽤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하고 싶었던 일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지 못했던 일, 한번 시작했다면 계속 하고 싶은데 계속 할 수 있을 의지가 있을지 어쩔지 스스로 망설여지는 일,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놓고 확인받으면서 스스로를 자극했으면 하는 일 등.

나는 마라톤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다.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고, 뛴다는 것은 벅차고 부담스러워서 앞으로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있으니 은근히 따라 하고 싶어지게 된다. 물론 뛰는 일만 빼고 그 앞뒤로 이어지는 일에 더 매력을 느껴서이기는 하지만.

작가에 대한 호감이 더 높아진다. 혼자 사는 궁상맞음만 잘 드러내는 줄 알았는데, 아주 열심히 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사람이다. 혼자라는 것에 부족함이 없어 보일 정도이다. 이 정도라면 혼자서 하고 싶은 대로 해 나가는 데에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라톤 대신에 걷기로, 일본에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의 여가를 누려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시간을 내어 좋은 곳 걸어 보고, 그곳에서 맛있는 것 먹고, 편한 곳에서 쉬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또 아주 열심히 일하고. 이 책도 햇수를 달리 하면서 계속 출간될 수 있겠구나 싶다. 나오면 또 봐야겠다.(y에서 옮김201502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둠즈데이북 2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찌된 것이 문장 하나하나마다 두근두근이었던 것인지. 나는 이 책의 초반 3분의 1지점에서 견디지 못하고 맨 뒷장을 확인하고 말았으며 절반쯤 읽고서는 마지막 장을 먼저 읽으면서 스스로 스포일러가 되고 말았다. 궁금하고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는 결말을 알게 된 후의 편한 마음으로 남은 글을 읽었다. 나는 이런 류의 조바심을 즐기지 못하는 쪽이다. 책이든 영화든.

시간여행이다. 이 소설은 1990년대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시간을 고려하면 대단한 상상력이다. 이게 아마 정통 SF의 영역에 속하는 내용인가 보다.(SF가 정확하게 어떤 유형인지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이고) 최근 이쪽 영역에 속한다는 소설을 몇 편 읽어 본 셈인데 내가 몰랐던, 내가 해 볼 수 없었던 상상력의 세상이라 그런지 자꾸만 감탄하게 된다. 나도 이런 상상을 해 보고 싶다 이런 건 아니고, 이런 상상력을 갖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그저 존경스럽다고나 할까? 이런 글을 읽게 해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우주여행이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든 나는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딱 없다. 이건 도무지 힘들고 고단할 것 같기만 해서, 아니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기까지 하는데, 누구는 죽기 전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라고도 한다지만 나는 전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렇게 책을 읽거나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보는 간접체험만으로도 충분하겠다. 그런 여행을 하기에 나는 너무도 소심하고 겁도 많고 사명감도 없는 사람이다.

책을 보면서 잠깐 그런 가정을 해 보기는 했다. 만약 지금 이 시대를 떠나 과거의 어느 시대로 갈 수 있다면, 어느 시점을 고를까 하는 문제. 책에서 주인공들이 나누는 말이기도 한데 위험 등급이 낮은 어느 시대는 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때가 있기는 할까? 우리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굳이 지금을 떠나 그때로 가고 싶다고 여겨지는 때가 딱 떠오르지 않는다. 드라마의 도깨비처럼 어떤 뛰어난 능력이 있어 어려움을 쉽게 헤쳐 나가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처지라면 과거 어느 지점에서 이방인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일 텐데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 내게는 매력이 없는 가정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해 봐야 과거 그 시점에서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더구나 아프거나 병이라도 걸리게 된다면, 소설에 비추어 볼 때 상상만 해도 아득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기꺼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까뮈의 페스트도 빠른 시일 안에 봐야겠다 싶다.

<덧붙임>
작가에 대해 살피다가 '화재감시원'이라는 책을 읽고 실망한 내 리뷰를 확인했다. 어쩌면 다시 읽어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y에서 옮김201806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가을 2019 소설 보다
강화길.천희란.허희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강화길이라는 이름을 되뇌어본다.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본 Littor 잡지에서도 만난 이름인데.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늘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기억에 담을 수 있는 속도를 너무 많이 넘어선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이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즐겨 읽는 소설에도 취향이 있을 것이고 관성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닐까. 읽고 싶어 하는 소설은 계속 읽게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소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최근에 읽는 소설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안 읽히는 글은 여전히 잘 안 읽힌다. 이게 자꾸 시도하다 보면 괜찮아질까 싶기도 하다가 그런다고 좋아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반대 의문도 생긴다.

일단 독백체 소설은 내게 지루하다. 화자 혼자서 중얼중얼하고 있는 형식,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쉽게 손을 놓게 되는 작품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천희란과 허희정의 글에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만 이런 기분이었으면, 다음에 다른 글에서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얻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실린 글의 주제들이 대체로 비슷하게 잡힌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글이 나오는 시대의 공통된 특성? 이 시기의,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 여성 혹은 소수자의 지위? 당연히 문제가 되는 주제라는 걸 잘 알지만, 잘 알고 있음에도, 그래서 더 한쪽으로 치우친 듯 보이는 불균형의 상황? 거북함을 느끼고 불편할 줄 안다는 것 자체에 희망을 걸 수도 있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봄이 오기 전에 겨울호가 나오기를 기다린다.(y에서 옮김20200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