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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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이 사실,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인연이다. 다른 곳도 아닌, 다른 때도 아닌 딱 지금 이곳에 있는 나. 지상에 천국은 원래 없는 것이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이모저모 애를 쓸 수 있을 뿐인데, 지금 이 시기에 여기 있다는 게 나로서는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나는 정녕 세상의 다른 어딘가에 가 있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의 흐름과 평행선을 달리면서 한 생각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처지와 고난과 사랑과 순간의 행복들이 편한 곳에서 글이나 읽고 있는 내 처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워하고 절망도 했다가 곧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가 했다. 나는 이대로 요만큼 안전하구나. 


소설의 시작은 우아했다. 고전음악이라니, 서양의 교회 음악이라니, 클라비코드라는 악기까지. 내가 모르는 18세기 후반 서양의 궁정음악 세계 안으로 불쑥 들어선 기분에 내내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어렵게 여겨지는데 알아들을 수 있기는 할까? 이 작가의 글이 어려웠던가?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한동안 이 작가의 글을 놓치고 있었구나,... 소설 밖 어지러운 잡생각이 읽기를 계속 방해하기는 했는데. 


재미있었다. 점점 빠져들었다. 현재 시점의 주인공 하나코와 김상호, 18세기 후반의 주인공 아이블링거와 힌트마이어. 이야기는 교차된다. 정신을 차려야 앞에 읽은 내용을 기억한 채로 이어 읽을 수 있다. 얼마 만인가? 내 의식을 붙잡고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낀 것이. 그래, 이런 힘을 보여 준 작가였지. 다시 관심을 세운다, 이 작가의 글을 찾아본다, 안 읽은 책이 많이 있구나, 내가 놀았구나, 나는 다시 바빠지고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겠구나... 음악과 관련된 용어가 나올 때마다 헤매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나아갔다. 나는 음악이 아니라 소설의 길로 가고 있었으니. 


낱낱의 삶은 개별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네 삶은 모조리 이어져 있다. 운명도 행복도 슬픔도 원한도 모두 다. 지금 당대가 다 맡지 못한다면 대를 이어서라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라도. 이것이 역사인가 보다. 이름을 널리 남기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서 맡은 사명이라는 게 바로 삶의 이 흔적이 아닌지. 살다가 갔다는 것. 너도 나도 우리 모두는. 훗날 찾아주는 이가 있어도 또 없다고 해도. 애틋하지 않은 생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환멸은 남는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해야 하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그곳이나 이곳에서나 저지르는 이들은 저지른다. 저지르고 비난을 받고 결국 죽는다. 이게 그들의 사명일까? 마치 악마가 있어야 천사의 존재가 대접을 받는 것처럼? 아니면 불안전한 인간 존재의 한계일까? 불량품 같은? 영원히 나아질 수 없는? 나는 어느 정도로 불안전한 사람일까? 어떤 잘못을 얼마나 저질러 왔을까? 나로 인해 불행했을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물음은 끝이 없이 떠오른다.


시간은 흘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지? 나의 짧은 인생에 긴 예술의 은혜만을 기다리며 산다. 남은 날들에는 조금씩이라도 덜 나쁘게 살아야 할 텐데. 이 작가가 도와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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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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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보지 않고 바로 읽었다. '쥐덫'이 전체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범인이 잡히는 대목에 이르렀고, 그제서야 이 책이 단편집인 줄 알게 되었다. 쥐덫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작품들에는 마플 양과 푸아로 경감이 각각 등장한다. 특별한 기준 없이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 같다.  


'쥐덫'은 인상적이었다. 읽기 시작한 때가 아침이었는데 황사가 몰려와서 그런 건지 흐릿하고 스산하고 퍽  쌀쌀했다. 소설 배경으로 등장하는 영국 외딴 하숙집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추위가 느껴지는 게 실감났다. 소설 속 하숙집은 눈에 갇히면서 외부와 단절되고 범죄는 예고되는데, 공포 드라마나 영화에서 더러 본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또한 이 작가가 오래 전에 쓴 구성이었구나.    


범인이 독자가 상상한 사람이 아닌 의외의 사람이었다는 게 밝혀지기까지 작가는 참 알뜰하게도 숨겨 놓고있다. 이걸 각종 장치를 이용하여 얼마나 잘 숨기느냐 하는 게 추리소설 작가의 역량일 텐데, 신기할 정도다. 나는 여전히 지루함을 못 느끼고 읽고 있다. 이번 책의 작품들에서는 하나도 맞히지 못하고 말았네. 


쥐덫을 제외한 작품들은 분량이 짧은 편이다. 단막극으로는 충분히 활용할 소재들이기는 하지만. 범인들의 공통점이라면? 첫째, 돈을 갖고 싶어서 둘째, 어렸을 때 억울하게 받은 원한을 갚아 주려고. 두 번째 이유가 아프게 와 닿는다. 어렸을 때의 어떤 기억은 한 사람을 영원히 가두는 불행의 멍에가 되기도 한다는 점. 삼가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도, 아이들끼리도, 원한이 되고 나면 나이가 들어도 잊지 않고 갚아 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니까.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y에서 옮김201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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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1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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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잘 하지 않는 쪽이다. 잘 마시지도 못할 뿐더러 술마다의 차이도 모르고 썩 즐기는 편도 아니다. 어려서는 모르고 마셨는데 언젠가부터는 마신 뒤가 힘들어져서 그만두었다. 그런데도 술 마시는 분위기라든가 술과 함께 하는 안주라든가 술에 얽힌 이야기 따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게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 거다(보는 것으로만 그리고 괜찮은 술자리의 에피소드로만). 그리고는 만화로 이 모든 욕구를 대신 해결한다. 비싼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나로서는 썩 괜찮다.    

 

같은 형식의 비슷한 에피소드. 끝없이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스물여섯 살 와카코가 이대로 나이 들어가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혼자 마시다가 함께 마실 사람을 찾아냈다 하는 정도로 나아갈 수도 있겠지. 어떤 식으로 변하든 맛있는 술 홀짝이는 것과 맛있는 안주를 먹으면서 '푸슈'하는 장면은 변함이 없을 듯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잠깐 자신을 돌보는 시간, 크고 대단한 게 아니라서 더 마음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살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시절이다. 혼자서 놀고 혼자서 쉬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여행하고. 여지껏 혼자 살아온 게 아닌 나로서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인간관계의 거리감을 조절하지 못하고 입은 각종 상처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예전에도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갈등들이 이제는 밖으로 다 보여지는 세상이 된 것이다. 참고 봐 주면서 해결한 척 하는 대신에 관계를 털고 끊어도 좋겠다는 정도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소중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y에서 옮김20191108)

 

와카코처럼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모든 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맥주 한 캔은 마셔 주어야겠다. 안주는? 따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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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완전판) - 커튼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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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이 스타일스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것이었다. 13권은 더 앞에 읽은 터라 14권을 읽은 건데 배경이 12권과 같다. 대신 세월이 많이 흐른 것으로 나온다. 예전에 살인 사건이 있었던 저택이 호텔이 되었고 이 호텔에 먼저 온 푸아로가 화자인 헤이스팅스를 초대하면서 다시 살인 사건을 맞는다. 이번에는 완전히 내 예상과 벗어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지만. 


이야기를 많이 짓다 보면 나중에는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되는 걸까. 이렇게 두 권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홈즈 책도 아직 다 못 읽었으니까 마찬가지가 될 것 같은데 푸아로 경감처럼 이야기 속 인물을 제대로 만들어 놓으면 계속 등장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인물, 이렇게 매력적이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우리 문학에는 누가 있나?(갑자기 김홍신의 인간시장 장총찬이 생각났다, 아후)


푸아로 경감은 이번 권에서 죽는다. 그런데 내가 읽고 있는 시리즈가 어떤 순서로 번호를 매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글을 쓴 순서대로는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아직 안 읽은 책에서 푸아로의 활약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나는 이미 푸아로 경감이 여기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살아서 날카롭게 사건을 파헤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니. 그건 그것대로 또 재미가 있겠지.


살인.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요즘이다. 심지어 묻지마 살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인간 본성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된다. 시기, 질투, 복수, ...... 그리고 이유 없음까지. 왜 죽이고 싶어지는 건지, 어떤 사람은 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지, 누가 원인이고 누가 결과인지.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라고만 하기에는 불행해지는 개인들이 너무 많고 무책임한 말이 된다. 이번 책에서의 범인 같은 경우, 정녕 무섭고 싫다.  (y에서 옮김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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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0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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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독서의 양념 같다는 생각을 한다. 먹는 방송은 보기 싫어 해도 먹는 만화나 먹는 책은 여전히 좋아하는 나, 책과 책 사이의 징검다리처럼 짚는다. 괜찮다. 이대로 이 방법을 지켜도 좋을 듯하다. 사 놓고 보면서 흐뭇해 하다가 어느 순간 펼쳐 읽기.

 

만화가 같은 형식이라 내용에 대해 할 말이 늘 생기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혼자만의 공간을 즐기는 데에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거리 감각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혼자 가게에 들어가도 새삼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이 없고, 주인과는 적당하게 따뜻하고 친절한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저마다 술을 즐기는 모습에 간섭도 하지 않고 비난하는 눈초리도 보내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 어떤 사람도 술을 핑계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그런 공간과 사람 사이. 서로 봐 주는 거다. 너는 그만큼, 나는 이만큼, 우리 각자 요만큼.

 

일본의 술집에 가 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이 만화와 같을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위기만큼은 부러운 대상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술과 엉켜 나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때에 여자 혼자 술집에 간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를 발휘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닐지(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다행이겠고).  

 

이번 호에서는 술보다 안주에 더 빠졌다. 가볍게 먹는 안주라면서 제시해 놓은 음식들이 정말 가벼워서 또 놀란다. 술꾼에게 안주가 안 될 것은 없겠다 싶다. (y에서 옮김201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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