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바람 어스시 전집 6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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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아껴 두었다가 읽은 책이다. 이 책마저 다 읽어 버리면 섭섭해서 어떻게 하나, 처음부터 다시 읽기는 좀 그렇고(그래도 되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으니) 끝내 버리기에는 환상적으로 감동적인 상상 속 세상 이야기라. 이런 꿈같은 이야기 하나 정도는 좀 오래 품고 있어도 괜찮지 않나 여기면서. 


환상이라는 게 뭘까. 작가가 그리는 환상은 무엇이고 독자가 얻는 환상은 무엇일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찾아서 기어코 들어가 보는 그 엉뚱한 세상의 속성은 무엇인 걸까. 왜 그만두지 못하고 자꾸만 찾게 되는 걸까. 어떤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서, 또 어떤 환상은 말도 안 되게 엉뚱한데도 그 엉뚱함이 좋아서 빠져드는 걸까. 환상이라는 장르에 대체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인데 이 작가의 글에서만큼은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이것도 인연인 게지. 


용이 있고 사람이 있고, 용과 사람이 원래 한 종족이었다는 설정. 이게 납득이 되는 긴긴 독서의 과정. 원래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고, 나뉘면서 각자 다른 걸 원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말았고, 이 갈등의 근원을 찾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만나서 협상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세상을 구한다. 어느 한 존재도 의미 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악의 역할을 떠맡았던 이라고 해도. 


책 제목의 바람이 예사로운 바람이 아니다. 나는 이제 바람 한 자락에도 마음이 일렁일 것만 같다. 이 바람 뒤로는 누가 어느 세상으로 건너가고 있을까 하여. 하나의 세상을 건너는 일도 한 생을 사는 것만큼이나 벅찬 일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생을 익힌다. (y에서 옮김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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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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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렀다고 여길 때,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기록으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려서, 자라면서, 철이 들면서, 어른이 되면서, 어른에서 더 나이가 드는 사람이 되어 가면서 제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남보란 듯이 잘했던 일만이 아니라 어설프고 모자라고 부끄러운 지난 날마저도 내보일 수 있을 만큼의 용기와 당당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텐데.

 

이 작가의 삶을 따라 가다 보면 마냥 찬탄하게 된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만큼의 용기를 얻는 기분도 든다. 세상이 좋은 곳이고 더 좋은 곳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길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이렇게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작가가 있었던 세상이라서, 이 작가가 믿어 준 세상이라서, 아직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나로서는 이 작가의 말과 당부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책은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첫사랑이다. 작가의 모든 첫사랑들. 취미와 책과 수업과 그에 대한 이야기들. 그래, 이런 것들이 이 작가의 생에서는 첫사랑이 되었더란 말이지. 이에 비해 내 첫사랑은 얼마나 얇고 남루한지, 떠올릴 게 별로 없어서 자칫 쓸쓸해지려고 했다. 위대한 사람은 철이 들기 전부터도 남다른 집중력으로 몰입하는 자질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괜한 질투심을 느낀 셈이다. 쓸쓸할 일이 아니다. 

 

2부는 병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 준다. 의사로서의 작가가 의사여야만 경험하고 알 수 있는 일들을 말해 주고 있으니 독자로서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작가의 다른 책에서 본 내용과 비슷해 보이는 것들도 있었는데, 이건 내 기억력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어서 확신할 수는 없겠다. 읽었어도 모르는 건 여전히 모르는 거니까. 관심의 정도에 따라 2부는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3부는 정녕 우아한 산문들로 채워져 있다. 소제목마저 '삶은 계속된다'이다. 얼마나 아늑하고 듬직한 말인지.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절에 그저 붙잡고만 싶은 구절이다. 한 편 한 편 아끼면서 읽었다. 이 중에서도 더욱 나를 머물게 했던 글은 '깨알 같은 글씨 읽기'와 '정원이 필요한 이유'다. 책과 정원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열망을 작가의 글에서 거듭 만난 듯하여 더없이 반가웠다.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바꾸려는 노력 중에는 두 가지 큰 방향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좋은 것을 자꾸자꾸 발견하고 알려서 더욱 넓혀 가는 것. 또 하나는 나쁜 것을 자꾸자꾸 발견하고 알려서 없애는 데 힘을 쏟는 것. 이 작가는 앞쪽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남긴 글을 읽고 있으면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 든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나도 앞쪽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작은 몫으로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y에서 옮김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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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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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다. 4편의 에세이. 병으로 곧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글을 쓰는 마음은 어떠할까. 한 달 두 달도 아니고 '곧'이라고 하는데 이런 때도 글을 쓰고 싶어질까. 글을 쓰는 게 죽기 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될까. 나는 4편의 글을 읽는 짧은 시간 내내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느라 벅찼다. 그래, 이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이 작가의 능력 정도 되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몇 살이 되면 죽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나이가 있기는 한 걸까. 오래 살면 오래 사는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생을 향한 욕망은 간절하기만 할 테니, 죽음 앞에 초연하다는 태도는 어쩌면 위장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서워도 참는 것이겠지, 어쩔 수 없어 포기한 것이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바람일 텐데, 나는 이제 이런 글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삶을 어떻게 가꿔 나가는가 하는 문제와 잇닿아 있다고 했다. 평온하다면 둘다 평온한 것일 테고 요란하다면 둘다 요란한 것일 테지. 죽음 앞에 서면 정말 어떤 마음이 들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기만 한데, 요즘처럼 매일매일을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살다 보니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같은 태도에서 비롯되는 일임은 알겠다. 물론 죽음을 아는 것과 죽음에 부딪히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겠지만. 

 

작가가 남긴 마지막 글들, 애틋하다. 이렇게 남겨 놓아 줘서 고마운 마음이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게 아니고 '나 이렇게 살아서 좋았다'고 하니 나도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그저 고맙다. 살아 있다는 게 이토록 고맙고 고마운 일인 것을, 주변에 있는 병든 영혼들의 악다구니는 끝날 날이 있을지. 적어도 이 작가보다는 더 겸손해져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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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의 이야기들 어스시 전집 5
어슐러 K. 르귄 지음, 최준영.이지연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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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면. 작가는 작가니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낸 것이겠지만 독자인 나는 그 상상의 시작만으로도 벅차다. 감히 내게 그런 상상의 힘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아주 크기도 하고. 


이 책은 앞서 읽은 4권의 흐름을 따라 잇는 내용은 아니다. 이 내용은 다음 책인 6권에서 이어지는 모양이다. 이 책에 실린 5편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큰 점 사이를 소소하게 잇는 작은 점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야겠다. 작가가 창조해 놓은 어스시의 세상에서, 이미 이야기해 놓은 것들 사이에 있으면서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다지 영향이 없으나 알려 준다면 조금 더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을 만큼의 작으나 깊은 이야기들. 마치 우리네 왕조 중심의 역사 사이에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으나 제 몫을 다하고 살았던 서민의 이야기처럼. 


때문에 나는 이번 책을 앞서 읽은 책들보다 훨씬 더 애틋하게 읽었다. 작가가 이렇게나 세심하게 낱낱의 사람들을 신경쓰면서 만든 세상이 어스시로구나. 앞서서 또는 위에서 큰 힘을 갖고 이끌어 나가는 입장의 인물들 말고, 뒤에서 또는 숨어서 아니면 있어도 있는 줄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주인공으로 만들어 내는 솜씨, 이건 솜씨를 넘어 탁월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위대한 마법사만, 위대한 왕만, 위대한 용만 위대한 게 아니라는 것을, 하찮아 보이는 마녀도 하찮아 보이는 목동도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과일나무 한 그루조차 제 몫의 생명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까. 아니다, 생명을 갖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시냇물도 우물도 돌도 언덕도 다 거기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 세상은 이러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자 저절로 겸손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중요하기는 해도 나만이 세상의 중심은 아니라는 말인 것이다. 내 욕심을 위해 나 밖의 그 무언가를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꿈꾸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는 주문을 한다면 과연 어떤 세상들이 펼쳐질까? 누군가는 자신이 신이 되는 상상을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왕이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하겠지.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잘 사는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게 상상 속에서라도 가능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항이 한 가지 있다. 진정한 마법사가 되는 게 쉽지 않다는 점. 너무너무 고되다는 점.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사항을 외워야 한다.(외울 줄 모르면 마법사가 되기 힘들다. 그래서 가짜 마법사가 또 생겨 나기도 하고.) 나는 이제 진정한 힘을 지닌 마법사를 존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설 속 이야기라도. 이 책 덕분인 셈이다. 


6권 남았다. 아껴 읽으려고 한다.(y에서 옮김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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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2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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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주어지는 것일까,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나는 만들어 나가는 쪽으로 기우는 사람이다. 주어진 게 49라면 만드는 것이 51이라고 할까. 그 차이가 사람사람마다 다른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역사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재구성해서 듣는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 그러니 지루하거나 뻔할 수 있는 그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 주어야 한다. 운명이라는 장치를 마련해서라도.


기원전 81년에서 기원전 71년까지 있었던 사건들. 이천 년 전에 어찌 그런 일이? 그럼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단다. 지금이나 다를 게 없는 사람 사는 모습, 어떤 면은 더 단순하고 어떤 면은 더 지독하고. 나는 좀 지긋지긋하다. 어쩌자고 이렇게 꾸준히 싸우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나아진 게 없어 보이는 인간 본성이다 싶으니 다소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여전히 등장 인물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하면서 복잡하기도 하고 또 외워지지도 않고, 그런데 금방 잊었어도 글을 읽어 나가는 데에는 그리 무리가 없이 신기하게 되살아나고(작가의 역량일까?).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사건에 집중해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그러니 시리즈의 한 권을 읽고 시간을 두었다가 다음 권을 읽어도 괜찮기만 하다. 어떤 시리즈 책들은 연달아 읽지 않으면 앞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거나 연결되지 않아 새로 처음부터 읽거나 포기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번 권에서 깊이 생각했던 점, 로마의 법 체계. 그 옛날에 그 지역에서는 법적 절차라는 과정을 그토록 엄격하게 지켰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점, 못하게 했다는 점, 못하게 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배경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이 땅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카이사르가 서서히 역사 앞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의 끝을 다 알아도 여전히 궁금하고 흥미진진하다.  (y에서 옮김2017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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