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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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내 취향을 더듬어보는 일,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소설을 할 수만 있다면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보다 더 컸던 시절도 있었다. 일을 그만둔 뒤로는 좋아하는 소설가의 글만 읽겠다고, 그렇지만 새로 나오는 소설가들의 작품은 꾸준히 찾아 읽겠노라고, 그래야 또 좋아하는 소설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어수선한 태도로 읽고는 있는데. 그리고 이 작품을 탐색을 하는 과정에서 만났다.  


책을 소개하는 내용들이 꽤나 화려하다. 이 정도의 권유라면 읽기 전 마음이 설렐 수밖에 없다. 나에게로 와서 머물러 주기를, 기대하면서 바라면서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부터 취향이라는 말을 자꾸 떠올리는 나를 본다. 이건 별로 반갑지 않은 조짐이다. 내 읽기가 왜 앞서 읽은 이들과 다른 건가 하는 문제까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니까. 어디서 어떻게 다른가, 어디가 어떻게 걸리는가, 내 취향은 어떤 성질로 인하여 이 작품에 온전히 닿지 못하는가.  


이기동이라는 인물의 일대기, 그리고 존 케이지가 4분 33초 동안 무음으로 연주했다는 사건, 둘의 교차 서술, 작가의 의도, 작가의 희망,...... 어떤 것에도 확 빠져들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어렵고 힘들고 그럼에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고, 세상의 누구나 이렇게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는 있겠는데, 난 좀더 특별한 게 있었으면 싶어 아쉬웠던 것이다. 이대로 끝이라고? 나도 모를 답을 작가에게 기대한다는 게 퍽 터무니없는 소리란 걸 알지만, 알면서도 섭섭한 느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음악의 문제일 수도. 내가 음악을 전혀 모른다는 것, 존 케이지의 연주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 그래서 글의 절반을 날려 버린 셈일 수도 있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겠지. 그래도, 그래도, 끝내 투정처럼 부려보고 싶은 말, 어차피 상상이라면 존 케이지의 에피소드들이 존 케이지를 전혀 모르는 이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매력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아마도 여기가 경계였겠지. 이 소설을 취향으로 받아들이는 독자와 나처럼 거리감을 느끼고 마는 독자 사이에 놓이는. 그러니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일 테고.  (y에서 옮김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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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24
라즈웰 호소키 지음, 박춘상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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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서문 첫문장으로 작가가 쓴 말이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난 안다, 이 기분. 사람마다 이 기분에 걸맞는 주량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마시기만 하면 다들 세상 좋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이 기분이 더해질까 하여 자꾸 더 마시다가 나쁜 일이 생기곤 하는 게 아닐지. 좋은 것도 자꾸 더 많이 하다 보면 안 좋아지기도 한다는 게 이 경우에도 딱 들어맞게 되는 것처럼. 


특별한 내용이 특별하게 실려 있지는 않다. 어쩌면 앞에서 본 내용과 비슷한 에피소드가 실려 있기도 할 텐데, 나는 비교할 마음이 없고, 기억력이 나쁜 탓에 계속 보아도 계속 새 술을 마시는 것 마냥 약간의 새로움으로 유쾌하게 보고 있고. 입으로는 못 먹고 못 마시는 것들을 눈으로 기분으로 충분히 즐기고 있으니 퍽 만족스럽다. 만화책값이 주는 이득이 몹시 커서 자꾸자꾸 사 모은다. 흐뭇하다. 


데운 사케, 이제는 궁금하기는 하다. 어떤 맛인지. 


또 하나, 중국 쪽으로(대만, 홍콩 포함) 여행을 가게 된다면 중화한자메뉴에 나오는 글자를 미리 익혀 둘 필요가 있다는 정보. 이 다음 언제가 여행에 앞서 이번 호에 이 정보가 있다는 것을 내가 기억해 낼까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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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열린책들 세계문학 115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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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적 허영심을 꽤 높여 놓은 소설이다. 단 읽는 동안만. 다 읽고 나니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림도 체스도 바흐의 음악도. 소설이라도 남았으니 그나마 고마운 노릇이다. 스페인의 작가가 플랑드르 지방을 배경으로 500년 전의 그림을 소재로 쓴 추리 기법의 소설. 책장은 잘 넘어갔고 재미도 있었다. 마지막 장에서는 흠, 이러려고 그렇게 소란을 떨었나 싶어져서 아쉬웠지만. 

 

일단 작가가 여주인공을 너무 곱게 모시고 있다. 그림을 복원하는 능력도 탁월하고 예쁘기도 하고 일이나 관계에서 실수도 안 저지르고 인성까지도 좋아보이니 당연하기는 하겠지만 지나치게 귀하게만 대하고 있으니 이 점에서 통속적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등장하는 남자들이 모두 좋아라 하는 여자 주인공, 그래서 다들 도와준다는 설정, 끝까지 반전없는 여주인공의 행복. 이 점이 오히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대목이다.  

 

혼자 미술관에 가 보는 일을 좀더 해 보아야겠다. 뭐가 뭔지 몰라도 동행자에 신경쓰지 않고 그림을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 와서 뭐하러 싶기도 한데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해 보는 거지 쪽으로. 책으로만 익힌 그림 감상 요령은 실제 그림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퍼즐을 맞추면서 생각한 건데 그림의 세세한 부분들에서도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심한 붓질마저 기막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니까. 이제까지 모르고 살아 왔던 감동의 고리를 하나라도 더 얻는 일, 이게 남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아니라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까지.

 

나는 체스를 할 줄 모른다. 보드게임에 흥미가 많은데 어쩐지 둘이서 승패를 가리는 게임들에는 흥미가 떨어진 편이다. 바둑이나 장기나 오목까지도. 이 책을 읽는 동안 체스의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서술을 따라 따지려고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하는군 하면서. 훌리아는 체스 게임도 이해를 잘 하더군. 

 

체스를 소재로 하는 그림들이 의외로 많이 보인 것도 신기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오래된 오락이었구나. 카드만큼이나. 체스나 바둑이나 장기가 전쟁과 밀접한 놀이이니 그에 따른 전략이나 지혜가 오랜 세월 이어져 왔겠지. 이걸 아는 작가는 아는 만큼 활용하여 글을 쓸 수 있는 것일 테고. 이 책을 젊었을 때 읽었다면, 어쩌면 나는 체스 게임판을 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니, 웃음이 나온다. 이제 나는 놀이도 가려서 도전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y에서 옮김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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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4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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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고단함과 스산함이 풍겨 나온다. 겨울에 여행이라, 겨울 여행자라, 겨울에는 그저 따뜻하고 평온한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데. 나가야 한다면, 집이 따뜻하지 않아서이든가, 겨울이라도 밖에 나가서 꼭 해야 할 일이 있든가, 게다가 그게 제법 멀리 있는 곳까지 가야만 하는 겨울의 여정이라면 반갑고 설레는 여행이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 읽는 내내 겨울 안에 머물러 있었으니 나로서는 올 겨울을 이중으로 겪는 셈. 그런데 묘하게도 이 추위가 정겹다.


모두 열네 편. 나는 하루에 한 편 이상은 읽지 않고 몇 날 며칠 동안 이 책을 챙겼다. 지구 저 편 멀리 있는 카탈루냐의 작가라는데 카탈루냐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다 보니 여러 모로 낯설었다. 소설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음악은 음악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알 듯 모를 듯 나를 어지럽게 했다. 내가 알고 읽는 건지 모르고도 읽고 있는 것인지, 읽기를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는 이 매력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음악이나 그림이 소재나 주제에 기여하고 한편으로는 갈등의 요소가 되더라도 소설에 부여하는 생명력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서운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 음악이나 미술을, 예술을 모를까, 이들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좀 더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내 정신의 영역이 지금보다 한껏 풍요로웠을 텐데. 이 소설집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교육이, 환경이, 취미가, 성향이 나를 덜 키웠다는 탓만 하고 싶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도 이런 섭섭함은 여전하기만 했으니. 


'빵!'이라는 작품이 꽤 인상적이었다. 끝내 내가 웃었던 글이다. 이런 유머를? 되짚어 생각해 보니 이 작가의 유머가 작품 속에 은근히 스며들어 있다. 서글프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중에도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유머 감각은 지키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표현일까? 지극히 슬펐던 '발라드'에서마저 유머로 슬픔을 극대화하였다는 것. 이런 순간 나는 소설가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얼마나 위대한 종족인 것인지. 


서양의 소설가는 자국의 국경을 초월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카탈루냐 사람이면서 스페인을 넘어 유럽으로 확대되어 있는 작품 속 세상. 나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시아 문학이 궁금해졌다. 작가가 아니라 독자 입장이지만 일본과 중국과 홍콩과 대만을 넘어 동남 아시아와 남부 아시아의 문학 작품들이 정말 궁금해진 것이다. 이 작가 덕분이다. 나는 또 혼자 조용히 넓어지려나 보다.


[책 친구 우주님의 선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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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1-11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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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곳을 살펴야 하는 마음은 참 쓸쓸해 보인다. 그런데 거룩하게도 느껴진다. 아무나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굳이 그렇게 하려는 작가의 안간힘을 보고 있으니 나도 좀 쓸쓸해지고 꽤 고단해진다. 우리는 다들 어떤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8편의 소설. 오래 전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읽었던 나를 만난다. 소설의 내용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이 책을 읽던 시절의 내 기분을 다시 만난 듯했다. 어느 한 편도 그냥 넘어가게 되지 않고, 수월하게 넘겨지지도 않고, 또박또박 읽고 싶어져서 읽게 되고, 그럼에도 글마다 씁쓸하고 애틋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이 작가의 이름을 좀 잘 외워 보자, 계속 찾아 읽어 보자, 계획도 세우면서.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에게 좀처럼 이름을 주지 않는다. 여자 혹은 남자로 등장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름을 주지 않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짐작이 되어 나는 또 슬퍼진다. 이름 없이, 아니면 이름을 알릴 필요나 이유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불러 주는 듯하여. 언뜻 편리한 듯 보이지만 이대로 없어져도 세상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듯하여. 우리는 어찌 되었든 각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셈인데. 아무리 외진 곳에서라고 해도.

속상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독서는 해롭다고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피한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은 읽고 있는 내내 속상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해롭다는 생각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더 읽고 싶다고, 읽는 게 좋겠다고 나는 나를 달랜다. 내가 외진 곳에 있는 나를 만나서 마음이 놓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외진 곳들에 자꾸 눈이 가려고 한다. (y에서 옮김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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