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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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시작은 발랄하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살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에 '예'라고 하면 고양이가 된다는 설정, 그리고 지구 인구의 5%가 고양이가 되었단다. 고양이가 되지 않은 인간들과 고양이가 된 이전의 인간들과 원래부터 고양이였던 이들이 함께 어울려 살게 되는 세상의 이야기. 지금 우리네 현실과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여전히 좋아할 것이고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도 여전할 것인데.


우리집에 있는 고양이 두 마리는 언제부터 고양이였을까? 새끼 때 데려온 고양이 남매인데 소설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잠시 의심해 본다.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아직도 인간의 의식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을까? 온전한 고양이와 인간이었던 고양이는 인간을 다르게 바라볼까? 고양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나는 더 이상 멀리 나가지 못한다. 그냥 고양이는 고양이, 나는 나일 뿐.


책은 6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1인 출판사 대표, 책방 주인이 된 번역가, 소설가 등이 등장한다. 연결 고리는 고양이, 화자는 바뀐다. 글을 쓰는 이는 대체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걸까? 고양이가 작품 생산에 어떤 영감을 주기는 하나?(이런 말을 들은 것도 같고) 고양이 입장에서 보는 세상, 또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다. 사랑이겠지, 사랑이 아닐 수 없다니까, 사람이든 고양이든 이만큼의 관심과 거리를 고민한다면 마땅히 사랑이렷다.


설정만큼 소설 속 사건들이 긴박하거나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좀 심심했다고 해야 할까? 가까운 사람이 고양이가 되었는데도 크게 놀라거나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우리와 고양이의 사이가 썩 가까워진 세상이 되었나 보다. 반려가 사람보다 개나 고양이와 더 어울려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그리고 작가가 바라는 바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여겨지고. 


고양이가 글을 쓰는 이들에게 특히나 도움이 되는 존재라면, 번성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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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이라도 문학과지성 시인선 548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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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이의 말이나 글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할 때가 바로 나이 드는 때일까?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 이를 가깝게 느낀다고 의식하는 내가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 시집도 이런 마음으로 보았다. 시도, 시를 쓰는 이의 마음도, 시를 읽고 있는 내 마음도 조금씩 평온에 가까워지는 듯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인의 시집. 많은 글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시는 여지껏 외우고도 있다. 젊은 날의 시와 나이 든 날의 시에 차이가 있다면 있고 못 찾는다면 또 못 찾겠지만 읽는 내 의식에서는 두 줄기로 흐른다. 낯익은 표현과 낯설어서 반가운 표현들로. 시인과 독자는 이렇게 만나 한 시절을 공유하는 셈이다. 고맙게도 오랜 시간이다.


하루하루, 지금 현재, 과거나 미래 말고. 종종 듣는 말이다. 걱정도 미리 당겨서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 나이 드는 것에 마음이 열려 있는 내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집이다.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아니기를 온 마음으로 빌어 본다. (y에서 옮김20230116)

같이 발 묶인 그만그만한 배들을 내다보는 불빛. - P11

앞서간 삶보다 뒤에 남은 삶이 더 버겁습니다. - P13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 P16

뭘 이뤘다고 다 제 게 되는 게 아니다.
남기면 남의 것 되고 모자라면 내 것 된다. - P19

그 어디서고 삶의 감각 일깨워주는 자에게
죽음의 자리 삶의 자리가 따로 있겠는가? - P25

인간도 힘 거머쥔 자의 비위 거스르지 않으려면
가지 자르고 동그래져야 하는가? - P30

어디서 흘러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 나날 가운데
이 하루,
무지개 같다. - P41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다 된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아팠던 일 - P44

잘못 놓인 소품 하나마저 눈에 띄게 해다오 - P45

이 세상에 눈물보다 밝은 것이 더러 남아 있어야
마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견딜 만한 한 생애가 그려지지 않겠는가? - P53

베고니아, 너는 지금 조금도 눈부시지 않는 세상을
눈부시게 내다보고 있다. - P56

늙음은 슬픔마저 마르게 하는지
생각보다 덜 슬픈 게 슬프다. - P61

살아 있는 것들이 순서 없이 너도나도
가진 것 안 가진 것 다 꺼내놓는 이 봄날, - P68

언젠가 기쁨, 아픔, 영글다 만 꿈 같은 거 죄 털리고
반딧불보다도 가벼운 혼불 될 때
슬쩍 들러붙어 하얗게 탈 빈집 처마 같은 걸 찾다가
내가 왜 이러지? 홀연히 꺼지기 딱 좋은 곳. - P99

뒤처져 날면 마음 되게 시릴 텐데. - P134

돌이켜보는 청춘은 늘 찡하다.
삶에서 추억이 제일 더디 가는가? - P142

꽃, 열매, 텅 빔, 이 세 자리를
하나같이 손보는 시간의 손길,
어느 한둘만 보고 삶을 꿰찼다 할 수 있겠는가? - P144

예술은 보여줘야지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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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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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한때, 나는 내가 술을 잘 마시는 줄로 알았다. 많이 마시고 잘 취하지 않고.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여겼고, 그래서 아마 용을 썼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내 몸은 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몇 차례의 경험으로 알았다. 술 마신 뒤의 괴로움이 너무도 컸으니까. 자연스럽게 술은 입으로 마시는 대신 눈으로만 마시게 되었다.

 

술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랑 마시느냐, 어디서 마시느냐, 어떤 일로 마시느냐 등등. 그리고 술은 각자에게 이런저런 기억을 남겨 놓곤 할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술자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술자리로. 작가의 술 이야기를 읽으니 자연스럽게 내가 술 마신 기억도 떠올랐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도 별로 내놓을 만한 이야기가 없다. 술이라는 게 내 생에 미친 영향은 없나 보다.

 

나와 달리 작가에게는 술이 인생 3대 요소 중 하나라고 하니 책으로 내놓을 만하기는 하겠다. 좋아하고 많이 마셔 왔으니 얽힌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재미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재미로 묵히는 대신 남들에게도 그 재미를 전하고 싶어 하니 두루두루 좋은 일이다. 이렇게 좋은 술이 누구에게나 좋은 일만 만들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같은 술 이야기를 해도 더 맛있게 읽히는 글이 있고 덜한 글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권여선의 술 이야기가 떠오르는 게 자꾸만 비교가 된다. 권여선의 글을 읽을 때는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이 책을 볼 때는 이미 술을 마시고 두통에 시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니. 어디가 다른지 애써 찾고 싶지는 않아서 그만 닫는다.

 

아무튼 시리즈를 하나씩 보고 있는 중이다. 내게 빛을 던지는 아무튼의 대상을 만날 때까지 틈틈이 구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  (y에서 옮김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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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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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본연의 나이고 싶고, 그런데 가끔은 내가 아니고 싶고. 나는 누구일까? 내가 보는 나, 내가 원하는 나, 내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나, 나를 원망하는 나......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돌아돌아서 이 물음에 닿는다. 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물어볼 엄두를 못내고.


흔하지 않은 상상, 흔할 수 없는 이야기, 신기하고도 매력적인 상상의 이야기를 읽는다. 자꾸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면, 자꾸 자신 밖의 세상을 꿈꾸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일까? 현실에는 없는, 그럼에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금방 만나게 될 것만 같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인물과 배경과 사건과 주제들. 낯설어서 풋풋하고 익숙해서 안심이 되는 장치들이다.  


얼마 전 울산의 반구대와 태화강국가정원과 간절곶에 가 보았다. '소금물 주파수'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이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의 배경으로 살아나다니. 무엇보다 울산 근처의 바다 어딘가에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를 몽이를 그려 보는 재미까지 느꼈다. 있을 거야, 분명히. 


책을 읽지 않으면 도저히 접해 볼 수 없을 세상을 구현해 주는 이 작가의 솜씨에 고마움을 느낀다. 고달픈 현실이 SF 소설의 소재로 쓰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하는 주제의 근거가 되는 것을 볼 때마다 입맛이, 글맛이 쓰다. 우리 모두는 참으로 천천히 나아져 가고 있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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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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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본 것,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그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장 자크 상뻬의 책은 글 뿐만 아니라 그림조차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낸다. 내게도 이런 능력이 주어졌더라면 하는 강한 부러움과 더불어.

장 자크 상뻬를 통해 뉴욕을 들여다 보고 나니 평소 우리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멋있고 발전적인 모습의 뉴욕만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사한 그림으로 익살스럽게 나타내고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뉴욕의 고독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니까. 끝없이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려고 하고 그 연락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뉴욕 사람들. 아마도 홀로 지내야 한다는 것을 본질적인 두려움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금요일 오후 5시(56-57p)의 모습과 일요일 오전(60-61)의 모습의 대조적인 그림이 뉴욕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나까지 쓸쓸하게 만들었다. 무언가에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이 빈틈없이 밀려가는 그림과 아무도 없는 텅빈 거리에 신호등만 깜박거리는 그림. 지구상에 있는 평범한 산업화 도시의 하나로서, 달리 어디랄 것도 없이 현대화라는 물결에 이리저리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것일까. 비단 뉴욕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건조한 도시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책을 보고 나니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뉴욕 사람들이 왜 그렇게 누군가와 연락을 취하려고 모든 준비를 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y에서 옮김20010124)

르네 알렉시스, 아닌게 아니라 여기 뉴욕에선 모든 것이 자라고 번성해야만 한다네. 발전해야 한다는 말일세. 가장 보잘것 없는 것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여기선 누구든지 뭔가 (대단하고great), (창조적인creative) 일을 하려고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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