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만이라도 문학과지성 시인선 548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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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이의 말이나 글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할 때가 바로 나이 드는 때일까?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야기, 이를 가깝게 느낀다고 의식하는 내가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 시집도 이런 마음으로 보았다. 시도, 시를 쓰는 이의 마음도, 시를 읽고 있는 내 마음도 조금씩 평온에 가까워지는 듯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인의 시집. 많은 글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시는 여지껏 외우고도 있다. 젊은 날의 시와 나이 든 날의 시에 차이가 있다면 있고 못 찾는다면 또 못 찾겠지만 읽는 내 의식에서는 두 줄기로 흐른다. 낯익은 표현과 낯설어서 반가운 표현들로. 시인과 독자는 이렇게 만나 한 시절을 공유하는 셈이다. 고맙게도 오랜 시간이다.


하루하루, 지금 현재, 과거나 미래 말고. 종종 듣는 말이다. 걱정도 미리 당겨서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 나이 드는 것에 마음이 열려 있는 내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시집이다.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아니기를 온 마음으로 빌어 본다. (y에서 옮김20230116)

같이 발 묶인 그만그만한 배들을 내다보는 불빛. - P11

앞서간 삶보다 뒤에 남은 삶이 더 버겁습니다. - P13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 P16

뭘 이뤘다고 다 제 게 되는 게 아니다.
남기면 남의 것 되고 모자라면 내 것 된다. - P19

그 어디서고 삶의 감각 일깨워주는 자에게
죽음의 자리 삶의 자리가 따로 있겠는가? - P25

인간도 힘 거머쥔 자의 비위 거스르지 않으려면
가지 자르고 동그래져야 하는가? - P30

어디서 흘러오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게 된 나날 가운데
이 하루,
무지개 같다. - P41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다 된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아팠던 일 - P44

잘못 놓인 소품 하나마저 눈에 띄게 해다오 - P45

이 세상에 눈물보다 밝은 것이 더러 남아 있어야
마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견딜 만한 한 생애가 그려지지 않겠는가? - P53

베고니아, 너는 지금 조금도 눈부시지 않는 세상을
눈부시게 내다보고 있다. - P56

늙음은 슬픔마저 마르게 하는지
생각보다 덜 슬픈 게 슬프다. - P61

살아 있는 것들이 순서 없이 너도나도
가진 것 안 가진 것 다 꺼내놓는 이 봄날, - P68

언젠가 기쁨, 아픔, 영글다 만 꿈 같은 거 죄 털리고
반딧불보다도 가벼운 혼불 될 때
슬쩍 들러붙어 하얗게 탈 빈집 처마 같은 걸 찾다가
내가 왜 이러지? 홀연히 꺼지기 딱 좋은 곳. - P99

뒤처져 날면 마음 되게 시릴 텐데. - P134

돌이켜보는 청춘은 늘 찡하다.
삶에서 추억이 제일 더디 가는가? - P142

꽃, 열매, 텅 빔, 이 세 자리를
하나같이 손보는 시간의 손길,
어느 한둘만 보고 삶을 꿰찼다 할 수 있겠는가? - P144

예술은 보여줘야지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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