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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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꾸려 놓은 상상력과 독자가 풀어나가는 상상력의 경계. 인생이라는 게 단순하게 표현하면 게임일 수 있고, 무겁게 말한다면 경쟁이 되는 것일 텐데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벅찬 생애이겠다. 단순한 게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은 내 것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그런 대로 받아들일 만하겠지만.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나의 다섯 손가락 안에 넣어둘 책이다. 이후로 읽을 소설을 비교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썩 좋은 글이었다. 화가 '모네'에 대한 막연한 나의 호감을 바탕으로 추리와 심리와 애증과 갈등을 멋지게 보여 준 소설. 읽는 중간에도 다른 책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나를 집중시켰고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도록 결말을 장치해 놓고 조바심을 갖게 한 소설. 차마 다음 페이지에 미리 눈돌리지 말도록,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소설. 삶이 이럴 수도 있다니. 


사랑과 집착은 또 어떻게 구별지어 판단해야 할까.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에게 집착하는 것. 또는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내가 집착하는 것. 그 사이에 떠도는 행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은 흘러갈 테고, 나이는 먹을 테고, 생이 다하는 때에 이르면 회한도 있을 텐데, 그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한 사람과 사랑에 보낸 날들에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에 가 보면 좋겠다는 막연한 소망도 있었는데, 비록 소설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한 사실감에 꿈마저 머뭇거려진다. 스테파니가, 자크가, 로랑스가, 넵튠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을 보는 게 많이 힘들 것 같다. 하나의 생은 각자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면서도 안타까운 것일 수 있겠다.  (y에서 옮김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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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은 장미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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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고 사는 삶,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삶, 생각을 못 하고 사는 삶.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더 편할까? 더 심심할까? 생각없이 살면,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는 말도 있기는 한데, 생각없이 산다는 자각조차 없이 살면, 그건 짐승이나 동물처럼 되고 만다는 말일까? 인간이기 위하여, 인간으로 산다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얻기 위하여, 사는 만큼의 가치를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서로를 대해야 하나. 


4편의 소설, 아쉬웠다. 우리 땅이 아닌, 멀고 먼 뉴욕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사는 내용은 이곳이나 그곳이나 다르지 않고. 사는 게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여기서도 거기서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 세상을 피해 도망을 친다는 것 자체가 그저 더 깊은 어려움 속으로 파고드는 일일 뿐. 남의 생만 쉬워 보이고 내 생은 오로지 고단할 따름인가. 읽는 마음이 내내 고달팠다. 오르락내리락 모처럼 소설 속 분위기에 젖어드는 내 감성을 만날 수 있어 좋았는데. 


이 작가의 글을 오랜만에 읽어 본다. 이럴 때도 있겠지, 젊어 한때는 좋아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다시 만나 반갑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뉴욕을 며칠 동안 다녀온 듯한 피곤함까지 느껴지는 게 잘 읽은 셈이다.    


이제야 알게 된 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여행은, 나를 만나러 가는 과정이라는 것. 목적지가 세상의 그 어느 곳이든, 궁극적으로는. 이 책으로 만난 나, 전과 달리 조금 다르게 보여서, 이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새삼 마음이 놓였다. (y에서 옮김20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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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시요일
강성은 외 지음, 시요일 엮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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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큐레이션 앱 '시요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집을 빌려 읽었다.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고 나는 몰랐다. 내가 시의 세상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이것저것 다 몰랐다는 것이 무안해졌다. 아직도 한참 더, 자주, 많이, 진심을 다해서 시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사랑시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들의 출전을 보니 1987년의 작품부터 2018년 사이의 작품들이다. 기획하고 편집한 이들의 수고가 어렴풋이 잡힌다. 읽고 또 읽고 고르고 또 골랐겠지. 한 사람의 독자라도 더 이 시들을 읽어 주기를, 한 사람의 작가라도 더 독자에게 가 닿기를 비는 마음이었겠지. 내가 생각하는 의도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인다. 이렇게 읽으니 좋았다고, 지나가버린 나의 서툴렀던 사랑을 잠시 애도했다고, 그때도 지금도 사랑 앞에서는 딱딱한 마음이 한없이 풀어지고 있다고. 


편집에서 내 취향과 살짝 어긋났다. 나는 시마다 내 마음에 드는 시행을 찾아볼 작정을 하고 펼쳤다. 그랬는데 편집 측에서 시의 제목 아래 시 속에 있는 1~2행을 이미 뽑아 실어 놓은 것이었다. 방해가 되고 말았다. 이를 손으로 막고 시를 읽고 나의 시행을 골랐다가 편집 측과 같은 구절인 것을 계속 확인하자니 재미가 영 떨어졌다. 나는 나대로 타이핑을 하면서 좀 더 긴 시간을 머물러 있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냥 따라하는 것은 또 아니지 않겠는가.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혼나지 않는다고 하니 사랑이 힘든 이들에게 이 시집을 권하는 마음이다. 요즘에도 사랑을 하기는 하나? 이런 고리타분한 의심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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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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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결산하는 의미로 발간되는 문학상 수상집을 읽는 재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여야 할 것이다. 한 해를 읽는 재미. 2011년이라면 2010년도를 읽는 재미, 좀 너그럽게 봐 준다면 2008년 즈음부터 2010년도를 읽는 재미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책은? 재미없었다. 재미있다는 평보다 재미없다는 평이 더 많아 기대를 하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서 안 사려고 잠시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니까,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못 읽어 낸 것을 나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한번 보기는 해야겠다, 그래서 본 건데. 


내가 찾는 2010년은 작품들 속에 없었다. 두루뭉술하게 2000년대의 몇 장면들이 보인다고는 할 수 있겠다 싶기는 했다. 그러면서 내가 혹시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치나 경제 감각이야 원래 없었으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감각마저 잃어버린 상태여서 이 책으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단편소설들에서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내게 그것은 참 큰 무게였는데(양귀자, 윤대녕, 이청준, 박상우, 구효서 등-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들 작품이어서 그랬을까?), 최근에 내 기억을 붙잡는 이름이 없다. 간간이 새로운 이름들을 애써 기억해 보려고 하기는 했으나 결국 놓쳐 버렸고, 이 책에서 혹시라도 한 분 그런 이름을 건질 수 있을까 찾아보려고 했지만. 


블로그 이웃(껌정드레스님)의 말처럼, 수집 차원에서 2011년도 작품집을 빠뜨릴 수 없으니까 책꽂이에 줄지어 세워둔다는 의미 그 이상 없어서 좀 그렇다. 지금 실망한 것 잊어버리고, 이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계절이 바뀐 후에 다시 읽으면 그때는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까? 1980년대까지의 작품집들은 아직도 그 시대를 내게 생생하게 살려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게 될까? 그랬으면 좋겠다.  (y에서 옮김201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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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2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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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리즈로 나와 있는 만화를 읽고 리뷰를 올려 보자니, 올리는 내 상태가 마치 술에 취한 듯하다. 한 말 하고 또 하는 주정뱅이처럼 읽고 또 읽고 같은 말을 계속 쓰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과 같이 나 또한 이 일을 좋아하는 게 분명하니,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계속 해 나가는 수밖에. 


글쎄, 술주정처럼 이 만화를 보고 또 보고 리뷰를 올리는 게 마냥 이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행여 어떤 독자가 내가 쓴 리뷰를 보고 이 만화를 보고 술에 빠져드는 나쁜 결과라도? (ㅎㅎ)그럴 일은 없겠지. 내 영향력이 뭐라고. 그래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제일 걸리는 부분은 이렇게 계속 넋두리처럼 리뷰를 올려도 되는 걸까 하는 가책 같은 것(사 놓은 만화도 더 있고 계속 보고 있고 계속 올리려는데 이 무슨 찔림 현상인지). 이 만화를 보고 있으면 이런 마음도 생긴다는 걸 보여 주는 셈?


이번 호에서는 특별히 장어 요리로 안주를 삼는 에피소드가 많이 보였다. 일본인들이 장어 요리를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강조하다시피 하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더욱 그런가 여겨졌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은 안주로 무엇을 먹는가 하는 게 이만큼 중요하고 가치로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했지만.   


평범한 일상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술 한 잔 하는 모습. 분수에 넘치는 큰 욕심도 아니고 살면서 이 정도는 누렸으면 하고 바라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소망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소중한 모습으로. 술과 안주 사이에 흐르는 삶의 소박한 향기를 들여다보는 재미, 내가 이 만화책에서 얻는 바인 것 같다.  (y에서 옮김202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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