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턴 숲의 은둔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14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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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고 난 뒤에서야 제목이 지닌 뜻을 제대로 알게 된다. 속았다는 느낌까지는 아닌데, 아닌가? 속은 느낌인가? 그것도 유쾌하게? 


배경과 소재를 이용하여 주제를 붙잡아낸 작가의 솜씨에 이번에도 감탄하면서 읽었다. 그 시절 잉글랜드의 귀족 계급에서는 그렇게 결혼을 했고 그렇게 상속을 했으며 또 그렇게 갈등을 겪었던 모양이다. 갈등이 지나쳐 전쟁까지도 하면서. 전쟁을 하면 어느 쪽에 서야 하나? 귀족들은 그것도 고려해야 목숨과 땅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테고. 쉬운 시절은 없었다는 것, 이렇게 확인한다. 비록 소설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캐드펠 수사 주변에서는 살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 같다. 자연사나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 사건. 소설이라 의도적으로 꾸민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안전하지 못했던 때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 법이 지켜준다고는 해도 한계가 있고. 이 점이 읽는 나를 내내 불편하게 했다. 옛날에는 살기가, 살아남기가 참 어려웠을 것이라서. 생각만으로도 짐작만으로도 힘들었을 시절이라서. 우리나라든 잉글랜드든.


수도원이 맡았을 역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늘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로만 떠올렸던 서양의 수도원이라는 곳이 이 시리즈의 소설 덕분에 호감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행정관리와 수도원장 사이의 관계라든가, 수도원이 마을 사람들이나 여행객들에게 편리한 시설을 제공한 점이라든가, 무엇보다 죄 많은 인간의 영혼을 지켜준다는 절대적인 위치를 알게 되었으니. 다만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서 거리감은 여전했다. 


이번 책에서는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린 리처드가 주인공이다. 전쟁이 잦았던 시절, 어린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 하나를 본 셈이다. 부모님이든 형제자매든 누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우선 살아남기를 도모했어야 할 것인데 지금의 우리네 삶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점이 많다. 현재 전쟁이 없는 우리의 삶이 고마울 뿐이다.(아직도 많은 곳에서 전쟁은 진행 중이고.)


이제 결말에 대해서는 마음을 놓는다. 어떤 전개였더라도 어떤 위기였더라도 결말은 흐뭇해지리라는 것, 스포일러가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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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7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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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설가들을 위한 문학상이 여럿 있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 중에 김승옥문학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 문학상에 순천시의 지원이 있다는 건 이 책 끝부분에 나와 있는 취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치 단체와 작가의 바람직한 연결 모습을 확인하는 마음이 퍽 흐뭇하다. 이런 좋은 현상은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수상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내가 이 책을 구한 것은 순전히 윤대녕의 작품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어떤 책은 한 편의 글 때문에 한 페이지의 시 때문에 구하기도 한다. 딱 하나에만 마음이 쏠려 있어도 갖고 싶은 건 갖고 싶은 것이니까. 그러다가 의외의 만남으로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더 좋고. 손홍규의 글은 기대한 만큼 좋았고, 문진영의 글은 기대 없이 보았는데 좋았다.  


같은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들이 모여서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수상작을 정하는 일이란 게 어떤 일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꾸준히 곳곳에서 해 주고 있다는 데에 고마움을 느낀다. 독자로서는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를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큰 도움을 받는 셈이니까. 


김승옥 작가를 생각해 본다. 읽어서 알고 있는 작품들도 떠올려본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다루는 작품들만 해도 꽤나 되었다. 하지만 쉽게 읽어낼 수 있는 글들이 아니었다. 봐야 할 글이라서 보았고 보는 마음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현실 너머를 다녀온 듯한 뿌듯함마저 얻곤 했으니, 시공간을 다르게 살아도 사는 게 어찌 이리 비슷한가 절망도 안도도 같은 무게로 남았다.


수상 후보작 일곱 편과 김승옥 작가의 작품에 어떤 공통점이 흐르는가 찾아보려고 했지만 내 힘으로는 무리였다. 이들 사이에 같은 무늬로 반짝이는 글빛을 받아볼 수 있다면, 그 빛 아래에서 읽는 독서가 한결 행복할 텐데. 작년 작품집을 한번 더 봐야겠다. 


책은 심사를 맡았던 일곱 명의 작가가 작품 하나씩 맡아 리뷰를 실어 놓은 구성을 취했다. 이 리뷰들이 소설을 읽는 데에 도움보다 방해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유가 딱하다. 소설가들의 작품보다 더 큰 목소리로 들린다고 해야 할까, 원하지 않는데도 굳이 설명해 주겠다는 듯이. 작가 노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y에서 옮김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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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11
라즈웰 호소키 지음, 이재경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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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역시 사계절 내내 술을 마시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 안에 중국 여행지에서 술을 마신다는 내용이 있다. 술꾼은 여행을 가서도 더 맛있는 술과 안주를 찾아다닌다는 말씀이겠지. 이해된다. 누구나 저 좋아하는 대상을 찾아다니게 마련이니까. 나로서는 한번도 술을 마시겠노라고 가게나 메뉴를 따져 본 적이 없지만 이 만화로 대리 경험을 해 본다. 그럴싸하다. 


술을 소재로 삼은 만화를 계속 읽고 있으면서도 지루함을 못 느끼는 걸 보면, 내게도 술에 대한 선천적인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닌가, 그저 만화라서 좋아하나? 아니지, 만화라고 다 보는 건 아니니까 분명 술을 좋아하는 걸 거야. 이렇게 믿고 싶지만 맥주 캔 하나로 그치고 마는 내 주량으로 짐작해 보자면, 그저 술을 마시는 일을 동경하고 있는 쪽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번 호에도 나오지만 혼자 BAR 카운터석에서 칵테일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일,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만 봤는데도 근사해 보였으니까. 이 역시 내가 품고 있는 허영 하나.


날도 덥고 하찮은 일조차 하기 싫을 때 선풍기 틀어 놓고(에어컨은 어쩐지 좀 미안해서) 이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게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다. 올 여름 몇 권까지 도달할 것인지... (y에서 옮김202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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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4 소설 보다
성혜령.이주혜.이희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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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는 읽으면서 몽롱해졌다. 세 편 모두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배경이, 인물이, 주제가 읽는 내 정신을 살짝 흐려지도록 작용했다.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세상을 버틸 힘을 몽롱함에서 찾으라는 듯이 여겨졌으니까.

현실이 고달프면 저절로 환상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현실이 시시해서 환상에 빠져 들면 좋으련만. 살기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곳이라면 막상 가도 마음 편하게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 요즘 읽는 요즘 소설들에서 익숙하게 만나게 되는 절망들, 절망의 조각들, 절망의 아우성들. 나는 어쩐지 살아 있는 것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누구를 향한 미안함일까?

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 겨울에 여름의 분위기에 시달렸다. 생생했다. 일본의 온천지 한 곳을 주인공을 따라 다녀온 느낌도 들었는데 고달팠고 쓸쓸했다. 어떤 기억은 우리를 살게도 하지만 못 살게도 만들 수 있다. 나는 나의 못나고 못된 자질에 새삼 놀랐고 이제는 억누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소설은 자주 나를 이런 방식으로 깨우친다. 깨닫는다고 늘 마음에 드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는 읽고 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바람직하지 않아, 중얼거렸다. 소설은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아주 그럴 듯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바람직한 현실을 만들도록 이끌기도 한다. 제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계속 읽을 수 있기를. (y에서 옮김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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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항 문학동네 시인선 20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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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쉽다는 게 아니라 쉽게 읽히는 시가 있다. 내 마음, 내 눈이다. 시는 어려운데 쉽게 읽히는 시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쉬워 보이는데 쉽게 읽히지 않는 시도 있다. 이런 때가 약오른다. 한번 보고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이게 또 좋은 건지 아닌지도 함부로 말 못하겠다. 한번만 봐도 좋은 시가 있고 여러 번 봐야 좋은 시도 있게 마련이니.

이번 시집은 쉽지 않다. 이제까지 이 작가의 시들을 쉽게 읽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래서 편하게 넘기자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 편 한 편, 한 줄 한 줄, 줄다리기하는 마음으로 보았다. 대부분 내 쪽에서 끌려 가며 쓰러지다가 끝났다. 옮겨 적지도 못했다. 얼마나 더 찾아 보아야 할까.

무엇보다 시인의 호흡이 길어졌다. 게다가 해설의 제목에도 있다시피 은유로 울타리를 세워 놓은 탓에 들어서도 들어선 줄 모른 채로 떠다녔다. 하지만 좋은 느낌만은 유지하게 된다. 한 줄 읽고 모호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괜찮은데?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나도 이 말 안에 잠기고 싶은데? 아프고 화나고 부질없어지는데? 거듭 끄덕였다.

울고 싶을 때 읽으면 더 잘 울 수 있게 될 것 같다. (y에서 옮김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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