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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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가 이 시집에 대한 느낌을 글로 적지 않았던 것일까. 너무 크고 깊었던 것일까. 아니면 당연히 썼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번 본 후에 책꽂이에 꽂고 나면 다시 들여다 보지 않게 되는 시집들이 있다. 반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 찾아보게 되는 시집도 있다. '섬진강'은 내가 아주 자주 찾는 시집이다. 수업에 필요한 시를 찾아야 할 때도 있고, 그냥 떠오르는 구절을 찾고 싶어 시집을 들출 때도 있다. 오늘도 그러한 뭔가를 찾기 위해 시집을 빼 냈고, 예전에 이 시집에 대해 내가 뭐라고 썼을까 궁금한 마음에 리뷰의 흔적을 찾았는데, 없다. 썼는데 없어진 것인지, 안 쓴 것인지(ㅋㅋ).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89년에 발행된 3판이다. 내가 이 시집을 산 날은 1991년 2월 13일이라고 적혀 있다. 울산에 있을 때, 봄방학 시작할 때 즈음하여 샀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겨울 섬진강에 가고 싶었던 것일까. 무슨 마음으로 살았던 시절일까. 결혼 전이었으니까 나름 쓸쓸한 겨울이었을 텐데.


'그대 정들었으리'로 시작하는 섬진강 3을 외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섬진강은 20까지 담겨 있던 연작시였다. 얼마나 섬진강이 좋았으면 이토록 애절한 노래를 스무 편이나 만들었으랴. 내게도 섬진강 같은 기댈 언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때도 지금도 하는데.


종이의 색은 좀 바랬고, 글씨체는 약간 낡은 듯한 느낌도 난다. 요즘 발간되고 있는 책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처럼 추억이 그리운 사람들(돌아가고픈 것은 아니고)은 이 시집을 꺼내 볼 일이다.  (y에서 옮김201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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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2 소설 보다
김기태.위수정.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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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위수정, 이서수. 이번 책에 작품을 담은 작가의 이름을 차례대로 적어 본다. 내가, 내 머리가, 내 기억이, 이들을 품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다른 곳에서 이들의 글을 보고 반갑게 알아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 편의 글이 다 마음에 들었다. 


소설은 꼼꼼하게 읽었고 인터뷰 기사는 대략 읽었다. 작가에 대해 뭔가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 없는 것일까? 소설을 읽고 바로 만나는 대화체에 방금까지 붙잡고 있던 내 조촐한 감정들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다. 작품을 향해 더 친절하고 직접적인 안내를 해 주겠다는 의도로 실었겠지만 나는 혼자서 사양한다. 


세 편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다는 점이 오히려 쓸쓸한 맛을 남긴다. 잘 살고 있다는 게 어떤 모습인지, 그런 게 있기는 한지. 한때는 사람마다 제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도 있노라 여겼는데 어떻게 된 것이 요즘은 그런 이들을 찾아보기 어렵기만 한 듯 싶다. 심지어 나로서는, 지금의 내 처지에 만족을 느끼는 편인데도, 이렇다고 말하는 데에 죄책감이 생겨 표현을 못하게 된다.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현상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 알 것도 같은데 이 또한 말로 털오놓기는 어렵다.


2022년 가을, 소설 3편에 비춰 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 젊은이는 결혼이 쉽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게 점점 더 어렵고, 직장인은 일을 해서 몸과 마음이 아프고 아직 일을 구하지 못한 이는 일을 하고 싶어 아프고. 괜찮은 사람들은, 괜찮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소설 안에서 못 만나게 되는 걸까. 소설이 본디 사회의 갈등을 재현하는 장르라서 이러한가. 


계속 읽는 수밖에. (y에서 옮김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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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완전판) - 비뚤어진 집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권도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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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다가 지웠다. 생각대로 써 나가다가 다시 읽어 보니 의도하지 않은 스포일러가 되어 있었다. 이래서는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지우기는 했는데, 막상 쓸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막막하다.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 놓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니. ㅎㅎ


사건이 일어난 집에 살고 있는 인물 모두가 용의자가 된다. 이 인물들이 갖고 있는 악한 본성을 조금 더 부각시켜 드러내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작가는 범인을 찾아 내도록 한다. 나는 이 책에서도 끝까지 속고 말았다. 범인으로 여기면서 살짝 두려워했던 인물에게 사과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가 늘 등장시키는 익숙한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뚤어진 집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 '소피아'와 연인 관계에 있는 '찰스'의 시선으로 사건을 읽도록 한다. '찰스'의 아버지가 경찰 쪽이라 참고인 신분처럼 활약하는데 그의 생각을 따라 읽는 과정도 흥미롭다. 순식간에 그의 눈으로 장면을 그려 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작가의 솜씨에 매번 놀라게 된다. 


마음이 아픈 글이다. 사람에게 이런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이런 본성으로 누군가를 쉽게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을, 끝내 말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게 딱하고 안타깝다.  (y에서 옮김2018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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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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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0년 이상 정도의 기간을 무난하게 살았던 부부, 둘 중에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쪽의 삶은 어떻게 될까? 아주 절절하게 사랑했던 부부까지는 아니고, 그럭저럭 평범하게, 다른 사람에게 한눈 팔지 않으면서 가정을 지켜 온 부부 정도로 가정하여 본다면? 


소설은 건조하게 시작하였으나 읽어갈수록 점점 더 읽는 기분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남들 얘기도 더러 들었고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로 간접 경험도 충분히 했지만 화자의 처지가 내 처지가 된다면? 하고 생각하니 아득해지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 또 흘러가는 대로 남은 사람은 살아가겠지 막연하게 그럴 것 같아도,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일 뿐 내 것만이 온전히 내 몫일 터. 가늠이 안 된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어디인지 딱히 궁금하지는 않다. 작가의 경험이 고유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만들어졌을 글이니 이대로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어쩌면 작가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극도의 슬픔이나 아픔마저 글로 나타내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살지 못하는 그런 사명. 내 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지어낸 생까지 보태어 새로운 생을 창조하는 조물주와 같은 사명.


70이 넘은 철학 교수 바움가트너. 10년 전에 작가였던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이후 혼자 살아온 주인공이다. 자녀는 없고 연애는 더러 한 모양이고. 소설은 바움가트너의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일이 있었던 시간대로 나열한다면 자서전이나 전기가 될 모양새다. 지루하지 않게, 읽으면서 더 가깝게 느끼도록 절묘하게 섞어 놓은 작가의 솜씨가 마음에 든다. 이런 맛으로 읽는다. 내가 늙어가는 모습과 오래 비교도 하면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짝을 보내는 마음은 어떠할까? 내가 먼저 떠날지 배우자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헤아리는 마음만큼은 순수할 정도로 낯설다. 모를 일이다. 몰라서 지금 이렇게 발랄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나 예술가가 자신감과 자기 경멸 사이의 그 흔들리는 땅에 살지 않겠는가?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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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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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 실린 세 작품은 좀 아쉽다. 세 작품 모두 시작 부분에서는 흥미로웠고 가운데쯤까지도 초반에 느낀 흥미는 이어졌는데 끝 무렵에 이르면서 시들해졌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내게 더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게도 내 생각이 더 좋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이 든 건 사실이니까. 단편소설이 짧은 글이라고 여겼다가도 어쨌든 완성된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 글이니 결코 짧은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작가들의 인터뷰가, 아직 내게는 도움이 안 된다.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특히 이번 호에서처럼 작품들에 만족을 못 느꼈을 경우는 더 그러하다. 작품 자체로 알아차려야 할 무언가를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말로 알게 되는 듯해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작품 밖에서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작품 안에 다 들이지 못했다는 뜻으로도 읽히고. 어떤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는데, 말하지 않는 게 더 낫겠는데, 그걸 또 붙잡아서 들먹이는 것도 군소리처럼 보이고. 앞선 호와 대놓고 비교해 본 건 아닌데 인터뷰 분량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나로서는 반갑지 않다. 


소설 속 인물을 형상화하는 작업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늘 조금 모자라다 싶은 작품에서 느낀다. 현실과 똑같아 보여도 안 될 것 같고 현실과 아주 다른 모습이라면 더 안 될 것 같고 현실과 상상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면서 우리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인물이 등장해 주면 좋은데. 이번 호 세 작품 속의 호두와 목경과 강가는 내가 보기에 현실 쪽 경계를 많이 벗어나 있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재미를 덜 느꼈던 것 같다. (y에서 옮김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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