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의 시간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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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가 이렇게나 낭만적인 식사 이름이었던가. 그것도 혼자 찾아다니면서 먹는 모습인데. 무척 부러운데 어느 대목에서 부러운 것인지 모르겠다. 잘 먹는 것? 혼자 먹는 것? 비싼 값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 맛있게 먹고서 그림으로 그리고 이를 책으로 내고 또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다는 순환 과정? 잘 먹는다는 게 크나큰 축복의 하나임을 확실히 알겠다.

코로나 19 상황 이후로 포장음식이 참으로 다양해지고 편리해졌다. 우리뿐만 아닌 것이다. 도쿄에서도 이 체계가 잘 갖춰져 있나 보다. 세계 각곳의 음식을 사는 곳 근처에서 구해 먹을 수 있다는 점, 물론 서울이나 도쿄니까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작가는 기억에 남아 있는 맛있는 음식을 잘도 찾아내고 먹는다. 포장을 해 와서 집에서 먹든 비싼 음식점을 찾아가서 값을 치르고 먹든. 투자이기도 한 셈일 테지.

달고 폭신해서 맛있는 음식들. 이름을 들어도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싶은 세계 각국의 음식들. 만화로 보고 있으니 슬그머니 허기가 진다. 그렇다고 딱 이 음식이야, 이것을 먹고 싶어, 그런 건 없다. 이건 좋은 현상일까 아닌 것일까. 만화를 보고 있으니 입맛은 돌고 배는 고픈 듯한데 딱히 먹고 싶은 것은 떠오르지 않는 기이한 상태.

음식에 추억이 많이 담겨 있다는 말은 그 내용을 잘 기억한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기억력이 없는 것일까, 추억이 없는 것일까, 혹 안 먹고 산 것일까? 작가가 떠올리는 음식과의 옛 추억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나도 언뜻언뜻 떠오르는데 혼자 힘으로는 도통 되살릴 수가 없으니 딱한 내 음식관이다. 

만화는 재미있다. 입으로 맛을 못 보아도 눈으로 보는 맛이 이렇게나 생생하다면 계속 보며 지내는 거지.  (y에서 옮김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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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파티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왕수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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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열어 준 핼러윈 파티. 아이가 사고로 죽는다. 누가 봐도 고의로 죽인 모습이다. 파티를 열어 준 어른 중에 추리소설 작가인 올리버 부인이 있고 이 부인은 친구인 푸아로 경감에게 사건 해결을 요청한다. 나는 올리버 부인이 누구인지 모른 상태에서 처음에 이 사람이 범인인가 했다.

 

범죄 소설도 그렇고 범죄 드라마도 그렇고 이제는 안다. 독자에게는 안 보여 주고 등장인물들끼리만 주고받는 정보나 장면이 있다는 것을. 그걸 또 얼마나 효과적으로 감추는가 하는 게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독자로서 기분 나쁘지 않게 소외감 들지 않게 더 흥미진진하게 숨기고 밝히는 요령. 나는 이번에도 완전히 속았고 그래도 즐거웠다.

 

이 작가의 소설에는 패턴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도 막상 추리를 따라 해 보는 데에는 실패하게 된다. 감춰진 속이야기들이 내가 상상하는 범위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예측이 성공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대로도 즐거운 독서가 되니까.

 

그리고 작품마다 인간의 속성에 대해 파헤치고자 하는 작가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좋은 쪽보다는 나쁜 쪽과 관련된 심성에 대해. 그게 유전이든 환경이든 가릴 것 없이. 나이가 어리다고 예외가 되지도 않는다. 이 작품에서만 봐도 더없이 발칙한 어린이를 만날 수 있으므로.   

 

 서울의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책. (y에서 옮김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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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럼 호텔에서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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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이런 여행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지. 품격 있는 호텔에 머물면서 호텔 부속시설과 주변을 느긋하게 이용하고 관찰하며 누리는 시간. 지금은 딱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지만.(난 여러 모로 우리집이 제일 좋으니까. 집 밖은 너무 위험한 세상이라.) 그래도 내 상상 속 꿈꾸던 여행을 아주 근사하게 체험하도록 해 준 작가의 이번 글은 추리나 범죄라는 장르와 관계없이 고마웠다. 이런 책 여행이라면 앞으로도 자꾸자꾸 하고 싶다.

 

마플 여사가 등장한다. 런던에서 떨어진 시골에 사는 나이든 마플 여사가 아주 어렸을 때 가 보았던 런던의 버트럼 호텔에 다시 가서 묵어 본다는 설정이다. 그것도 혼자서. 이건 상상만으로도 괜찮다. 노인을 위한 호텔 여행이라니. 우리 사정에서도 생각해 볼 만한 여행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물론 당연하게도 코로나19 문제는 해결된 이후가 되겠지만.

 

마플 여사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서 사건이 자꾸 일어난다. 아닌 듯 관계 없는 듯 싶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건을 고리로 이어져 나온다. 마플 여사도 목격자로 연결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연히 사건 해결에 참여하게 되고. 이런 구성이야 배경이 굳이 이 호텔이 아니어도 또 호텔이라는 곳 자체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다만 버트럼 호텔을 묘사해 놓은 대목들이 끌린다.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런 근사한 곳이 있다고 하면 누구나 동경할 것 같기도 한데. 화려하고 호화로운 최첨단 현대식 호텔이 아니라 50년 이상을 거슬러올라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전통 호텔이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하거나 낡았거나 우중충한 분위기가 절대로 아니란다. 시설이나 청결 같은 조건은 현대식 호텔과 다름없는데 인테리어 양식이나 서비스 태도나 제공하는 음식이나 디저트 같은 게 오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호텔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었다면 지구 위 어딘가에 고풍스러운 느낌으로 서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찾아볼 마음도 가 볼 마음도 없으면서 기대는 왜 하는지? ㅎㅎ)      

 

작가의 책을 한 권 한 권 볼 때마다 계속 하는 생각인데, 100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어떤 현상이나 인간의 한계가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읽히는 점이다. 변해야 했는데, 변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여전히 같은 모습의 같은 한계는 절망스럽다는 느낌마저 준다. 사람은 정말 더 나아지지 않는 존재인 것일까? 착한 사람은 착한 대로, 나쁜 사람은 나쁜 대로, 순진한 사람은 순진한 대로, 교활한 사람은 교활한 대로......

 

기술은 재주에서 나오고, 품격은 성정에서 나온다.(남병철 「바둑 이야기」) 내 앞에 놓인 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y에서 옮김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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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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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은 2004년 생각의나무 출판사 책>

또 전쟁 소설의 하나. 남한산성-칼의 노래-현의 노래 세 권을 연달아 읽으니 마치 김훈의 전쟁 3부작을 읽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는 한 작가의 글을 연달아 읽어서는 안 되는 뇌구조를 가진 것 같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좋다고 연달아 읽었더니 처음의 벅찼던 감동을 유지시킬 수가 없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읽어 볼 걸. 좀 후회가 된다. 


무엇보다 전쟁 이야기, 사람 죽이는 이야기가 끔찍하고 지긋지긋하다. 나는 누구누구처럼 전쟁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봉사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도저히 못될 것 같다. 내 한 목숨 지킬 주제도 못될 것이 너무도 뻔하니까. 


가야-신라-백제의 이야기를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읽은 적은 없었다. 그 점 정말 새롭다. 고작해야 삼국사기 속의 몇 쪽, 삼국유사 속의 몇 쪽, 언어영역 참고서 한 쪽 일부에서 몇 줄로 전해 보았을 뿐. 그러니 이 책도 우륵의 이야기로만 짐작하였을 뿐, 우륵이 망한 가야에서 신라로 갔다고 해도 그러려니 했을 뿐, 그 과정에 가야와 신라의 전쟁에 대해서는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 역사적 시야의 한계이지.  


가야 시대의 순장 풍습에 대해서도 작가의 상상력에 도움을 받아 알게 되었다. 옛날 국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기는 하다. 고대 삼국 이전의 부족 국가 시대 때 이런 풍습이 있었노라고. 그때로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와 소설로 읽으려니 참 기가 막힌다. 백성, 참으로 어여쁜 이름, 백성이다.  


소리와 빛에 대한 작가의 묘사에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멋있다. 시간만 여유롭다면 옮겨 적어 보고 싶다. 바람 소리, 물소리, 산 소리, 강 소리, 사람 소리... 내 귀에 들리는 소리들이 예사롭지 않을 정도이다. 나도 어느 순간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중학생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기에는 관능적인 묘사가 좀 많은 편이다. 학생들의 집중력을 그쪽으로 몰아버릴까 염려가 된다. 그게 좀 아쉽다. 가야 멸망에 대해 알게 해 주는 좋은 글인데. (y에서 옮김200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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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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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들은 더 많을 것이다.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기억나면 기억나는 대로 흘러가는 물처럼 구름처럼 넘긴다. 자연스럽게, 욕심을 줄이며. 이 또한 살아가는 한 방식이리라.

    소설은 모조리 쓸쓸하다. 어느 한 편 포근한 글이 없다. 따뜻해 보이는 듯 싶다가도 금방 서늘해지고 허전해진다. 인생 40대가 이런 나이였던가? 지나왔으면서도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바빴고 정신없었고 나름의 자부심도 챙겼고 살 만하다 싶었던 것 같은데, 이제 와서 이 쓸쓸한 글들에 어찌 이리 몰입하게 되는 것인지. 어쩌면 나는 나를 속이면서 그 시절을 보냈던 것일까. 쓸쓸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는 억울한 노릇이나 한껏 자신만만해야 한다고,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40대 남자의 오랜 독백을 듣고 있는 듯한 소설들. 작품들마다의 화자는 다른 이름으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한 사람으로 읽힌다. 그래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마음은, 처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같은 질감으로 느껴지니까.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의 마음을 몰라서,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의 입장에 맞춰 읽었다. 놓쳤거나 덧붙였거나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은 대목들도 무수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도 나는 좋았다. 좋았던 기분만큼은 확실하다. 아무리 쓸쓸하고 허망한 이야기라 해도.

    내가 쓸쓸한 이야기를, 쓸쓸한 사람을, 쓸쓸한 생을 이토록 동경했나 의심이 들 정도다. 나는 밝은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현실이 엉망일수록 소설에서나마 밝은 기운을 얻고 싶으니까. 이 바람을 조용히 잠재울 만큼 고즈넉하면서도 마음 아리는, 그래서 더 좋은, 쓸쓸하기 그지없는 소설집이었다.

    이 작가가 50대를 그려 보인다면, 60대를 그려 보인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맞이할까? 어떤 경우든 내가 이미 지나고 말았을 시절이겠구나. 나이 들어 아쉬운 점은 딱 이것이다. 좋은 글을 읽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 (y에서 옮김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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