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순순히 받아들이는 죽음이라는 게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 들면서 죽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때가 올 것이다. 먼저는 부모님의 죽음이 있을 것이고 부모님의 형제자매의 죽음도 있을 것이며, 점차 친구나 동료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결 가까운 거리에서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뜻밖의 사고사나 병으로 인한 급사가 아니라면 이런 과정이야 슬퍼도 겪어 나가야 하는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작가가 삼촌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가진 전후의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글을 담고 있다. 늘 그랬지만 담백하고 솔직하다. 거짓이나 과장이 없다.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내가 그래서 더 좋아한다. 아버지에 대한 좋음과 싫음의 표현들, 돌아가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다른 한편으로 느낀다는 홀가분함까지. 


내게 남은 어른은 이제 친정 엄마뿐이고, 언젠가는 엄마를 떠나 보낼 날이 올 것이다. 자주 있는 것은 아니나 친구의 배우자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고, 나나 남편도 마냥 젊은 나이라고만 할 수는 없으니 노년만큼이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내 아이들이 또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했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순리에 따르기만을 바랄 수 있을 뿐, 생은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 주어진 오늘에 겸손해지는 마음도 들고,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나 나를 찾아 주는 친구가 고맙기도 하다. 


작가는 혼자인 처지라 또 부지런히 다니면서 작품 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여 보기가 좋다. 부모님을 잃었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나이, 자식의 나이가 40이 넘으면 또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책의 마지막에 현재 자신에게는 없는 아이를 대신하여 엄마로서의 자기 모습을 상상으로  쓴 글이 재미있다. 스스로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격조 있게 다룰 줄 아는 것 같다.    


이래저래 산만한 마음으로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은 편이었다.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이 정도면 받아들일만 하다 싶을 정도? 다만 이 끝이 억울함이나 원망이나 절망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잘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y에서 옮김20190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30년 전에 발표한 소설이라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본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교육적 상황 일부는 어찌 이리도 우리와 비슷한지.

 

여고생의 마음 혹은 아내의 마음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알고 그려낼 수 있었을까. 여자인 나도 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심리를, 그럴 수 있겠구나 끄덕이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도 작가의 힘 덕분이었을 것이다.

 

추리 기법을 사용하기 위해 살인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하려다 보니, 인물들의 사정을 한쪽으로 부각시킨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게 현실감이 떨어져 억지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일본 고등학교 사정이 그러한 건지, 내가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현실을 다 몰라서 거리감을 느낀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설마 이럴 정도로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상처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가해자는 채 모르는데 피해자는 죽고 싶을 만큼의 모멸감이나 억울함을 갖게 된다면, 그래서 그 마음 때문에 살의를 느낀다면, 살해된 당사자는 그 사실도 모르고 죽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학생이 죽이고 싶어하는 선생님, 아내가 죽이고 싶어하는 남편, 상상만으로도 슬픈 일이다. 서로 도와주면서 더 잘 살아가자고 맺은 관계일 텐데.

 

정말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나도 내가 궁금하다. (y에서 옮김201410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관객모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가의 글의 장점을 이 책에서도 본다. 길지 않은 분량이라는 것. 길다면, 그래서 한 호흡에 읽어 내지 못한다면, 부담을 많이 느낄 글이다.

다음은, 작가에 대한 관심이 줄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일반적으로는 작가 자체보다 글의 내용에 관심이 더 많아지게 마련인데, 나는 이번에도 작가 쪽으로 더 쏠린다.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것일까, 이 글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 걸까, 나는 얼마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낸 것일까, 나에게 무얼 요구하려고 한 걸까, 이런 식의 내 추측은 적절한 걸까, 나는 왜 이 글의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제목에서처럼 관객을 모독하는 희곡을 썼다고 한다. 그런 것 같다. 이 희곡으로 상연되는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욕설로 마무리하는 대목에 이르면 내가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 테니까. 그럼에도 이 작품으로 작가는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또한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뭐지? 어디에서? 왜? 욕을 먹는 연극에 왜 호응을 하는 거지? 사람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 거지?

익숙지 않은 내용이 이어진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내용들이 리듬을 타고 이어진다. 내용을 연결시킨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반복되는 낱말들의 자연스러운 울림이 더 주목을 받을 것 같다. '듣기 좋군' 같은. 뭔가를 알아 내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피곤해지겠다. 그럴 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파악하려는 주제 의식 때문이다. 그냥 맹하니 듣거나 읽는 것, 울리는 음의 결대로 느끼는 것, 그러다가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욕설에 깨어나는 것, 마침내 깨어난 자신을 만나는 것,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독서로든 운동으로든 어떤 체험으로든 이렇게 만나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환영하는 것 같다. 내가 몰랐던 나,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나, 이루고 싶은 꿈을 꾸는 나, 현실보다 용감한 나, 낯설어서 기분 좋아지게 해 주는 나 등등. 이 작가도 이런 만남을 갖게 해 주려는 것이었을까? 내가 당신을 모독해 줄 테니 모독을 받은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스스로 살펴 보시오, 같은.

글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작가로서의 사명이든 운명이든, 작가라면 하다못해 이런 리뷰를 쓰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글로 영향을 미치고 싶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거나 자신을 이해시키고 싶거나. '관객모독'으로 작가는 어떤 힘을 끼치고 싶어 했고, 독자는 어떤 힘을 얻어야 했을까.

다 읽고도 별로 모독을 느끼지는 않았던 나, 작가의 의도를 확인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 나, 헤매는 이 과정이 또 그다지 불쾌하지 않아서 만족스러운 나, 좋은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없는 작가의 글 앞에 선 나. 이 모든 망설임의 감각 끝에 작가의 글이 닿아 있다. 신기하다. (y에서 옮김201912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뒤렌마트 희곡선 - 노부인의 방문.물리학자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김혜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상상할 때 나는 배우 중 한 사람의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부담 막강한 연출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관객 하고 싶다. 제일 앞줄에 앉아 연극을 보는 관객(실제로 연극을 볼 때도 티켓팅 시작 시간 맞춰 제일 앞줄의 표를 받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 배우들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것도 바로 볼 수 있는 자리, 소품 하나하나의 질감까지 느껴볼 수 있는 자리에서. 이 책도, 책 속의 두 편도 그런 상상을 하며 읽었다. 그리고 마음 착잡하다.

우울하고 화도 난다. 사람의 악한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자꾸만 생각해 보게 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 살겠다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의지, 다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를 해치는 결정, 용서받을 수 있을까? 누가 용서하나? 피해자는 이미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닌데. 복수는 또 뭐란 말인가? 나도 이 복수라는 감정에서는 떳떳할 게 없는 사람인데. 내가 은근하고 사소하게 얼마나 복수를 잘 하는데. 쉬이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곳에 남겨 놓고는 끈질기게 내 감정도 상대를 향한 복수심도 얼마나 잘 간직하고 사는데. 내가 얼마나 뒤끝 작렬하게 살려 놓는 사람인데.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우울함은 내 본성을 확인한 것에서 비롯되었나 보다. 모른 척 하고 싶었던 내 속의 악의를 만나 버려서.

분량이 많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막과 막 사이 읽는 나도 쉬고 싶었다. 마음이 고단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게 이 정도의 양심은 있었구나 싶어 다행이었고 한편으로는 그래서 어쩌자고 하는 낭패감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지, 착하게 늙어야지 하고 교훈 같은 다짐을 해야 하나 어쩌나 하다 보니.

작가는 스위스 사람이고, 두 편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소도 아마 스위스의 어느 도시라는 것일 텐데, 실제 있는 도시인지 가상의 도시인지 찾아보지는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작품 활동을 했던 작가라는 배경지식을 갖고 읽으면 그때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좀더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때의 전쟁에서 한참이나 지나온 지금, 그 땅과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감흥을 준다는 것에 있다. 이게 문학의 힘이기는 하겠지만 가끔은 글의 힘이 무서울 정도다. 글의 힘에 비해 인간의 깨달음은 더디고 더딜지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아무리 부조리한 상태를 보인다고 해도, 그래서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고 해도, 주저앉는 일만은 없어야 할 텐데. 두 손 두 발 다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독자를 이렇게 맥빠지게 만드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y에서 옮김201808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에 사는 생물체와 지구 밖에서 온 생물체가 만난다면? 친하게 지낼 수는 없을 테고, 결코. 무조건 싸우려고 들 것인데, 싸우면 누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지구 밖에서 누군가 지구에 왔다면, 그들이 지구에 올 정도의 과학기술력을 가진 존재라면, 지구 생물체로서는 그들을 이겨 낼 수는 없다는 말을 과학 관계자에게서 듣기도 했는데. SF 소설은 소설이므로 싸움이 일어난다.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

소설은 유쾌하다. 배경으로 나오는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놀림을 받고 있다. 우리네 정치가와 정부 관계자와 이웃 나라의 막된 정치가들이 문어만도 대게만도 상어만도 못한 처지에 놓인다. 문어를, 대게를 쪄 먹으려고 할 게 아니라 이들만도 못한 저들을 쪄 먹어야 할 일인데. 문어와 대게와 상어와 개복치와 해파리와 고래가 손을 잡고 일어나서 잡아가 버렸으면 좋겠다. 뜨거운 이 여름에 이 소설집을 읽고 있자니 이런 바람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리고 한탄하게 된다. 지구 생물체들이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에. 같이 망하자고 같이 죽자고 도리어 덤벼들지는 않을까? 그래서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무서워하는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공상에도 빠져 본다. 날이 너무 더운 탓이다. 기후 변화가 심각해진 이유에 혹시 외계인들의 간섭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에서 인간을 없애 보자며. 문어도 대게도 말을 하는데, 고래도 변신을 하는 소설 속 세상인데, 소설 안에서조차 우리네 삶은 지긋지긋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작가는 유쾌하고 통쾌하게 연약한 인간 존재들을 놀리고 있기만 한데. 내 상상은 버릇이 자꾸 없어지고 있다.

이제 문어도 대게도 해파리냉채도 못 먹겠다. 항복하라고, 살려 달라고, 혼내겠다고 제각각의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댈 것만 같다. (y에서 옮김202408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