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 : 비 내리는 날의 기적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39
샘 어셔 지음, 이상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내리는 날에 이 동화 작가는 어떤 기적을 보여 줄까, 이게 궁금했다. 그게 무엇이든 비를 좋아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는 있었는데, 역시였다. 축축하고 온통 젖어버리고 자칫 우중충해지기 쉬운 마음을 산뜻한 기대로 바꿔 놓은 작품,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자연에서 나쁘게 보일 현상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그게 또 맞는 일이기도 하고.(눈 내리는 날의 기적도 기대된다.)


비가 오면 우선 귀찮다. 비를 맞지 않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일부터 우산을 써도 어쩔 수 없이 빗물에 젖고 마는 옷이나 가방이나 신발 등의 뒤처리, 그리고 빗물따라 점점 가라앉고 마는 기분까지. 이 기분을 느끼는 즈음부터 이를테면 어른이라고 해야 하나, 어른은 아무래도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으니. 비를 맞는 게 아무렇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신이 날 지경이면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건 분명하고. 어느 게 좋다, 안 좋다를 구별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신 나는 일이 줄어드는 것도 어째 맞는 것 같고. 


가을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가 여러 가지로 떠오른다. 당장 창밖으로 보이는 사과나무들이 걱정된다. 남의 과수원 사과나무라도 지금은 한창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열매를 익혀야 할 시기이건만. 저러다 자칫 물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우리 마당의 꽃들도 연일 계속되는 빗물에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는 게 보이는데.


같은 자연현상 앞에서 좋은 쪽보다 안 좋은 쪽을 먼저 떠올리는 게 어른의 입장인가 싶다.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좋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가끔은 걱정 많은 어른이기보다 그저 설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어린 마음에 빠져 있고 싶지만, 그래서 이게 또 하나의 기적이 되나 보다.  (y에서 옮김202108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탐정 갈릴레오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해 낸 매력적인 인물, 유가와. 물리학 교수이면서 형사 친구인 구사나기에게 범인을 잡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이 책 이후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에도 등장하게 되는데, 나도 다른 작품에서 유가와 교수를 먼전 만난 셈이다. 그리고 그가 이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하여 '봐야겠군'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것. 


유가와 교수가 탐정의 역할을 하게 된 초기 작품이라 그런가, 한 편 한 편의 분량이 적고 내용 전개도 간단하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쳐 좀더 세밀한 묘사와 전개를 보이는 장편소설로 나아갔을 것 같다. 나로서는 궁금해서 읽을 만하다 싶으면 그만 해결되어 버리는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유가와 교수가 서둘러 설명해 주는 방식을 통해서. 이후에 출간된 장편과 비교한다면 이런 식의 친절한 설명이 장편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 궁금증을 유지하도록 의도적으로 뒤로 미루어 둔다고나 할까. 


나로서는 물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편인데 그럼에도 물리학 관련 이론으로 범죄의 현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유가와 교수에 대한 매력도를 높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지적인 추리를 해내다니, 근사하군 여겨지면서.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이런 방식의 설명을 해 주는 과학 교수라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친구 구사나기는 늘 놀림을 당한다고 투덜대지만,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재미있는 정도다. 어쩌면 그런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장치인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흥미 위주의 추리 소설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과학 지식도 담겨 있는 괜찮은 추리 소설을 읽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는 정도로. 물론 이 또한 작가가 마련한 장치이겠지만. 


유가와 교수 이야기는 계속 읽으려고 한다. 당연히 재미있으니까. (y에서 옮김201409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145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밤에 읽다가 덮어 두었다. 오늘 아침에 깨어 지난 밤에 읽다가 짚어 두었던 구절부터 다시 읽는다. 가을밤이라고 해서 섣불리 머물렀던 것이 아니었구나.  


한 편 한 편이 시이면서 드라마이면서 다큐멘터리이면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느 한 편 그냥 넘겨지지 않았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시인은 한 행 한 행에 얼마나 시간을 들였을까. 겉으로는 후루룩 썼더라도 그 후루룩에 모였을 시간들을 나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다른 이의 마음을 건드릴 힘이 있는 글이라면 한 줄의 글도 그냥 모이지는 않았으리라는 것, 그걸 믿을 수 있어서 내가 시를 읽는다. 내게 와 닿는 시를 읽고 있으면 내가 가 보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을 선물로 받고 있는 것만 같다.   


무심한 듯 보여도 깊고 짙다. 살짝 건드리며 지나치는 것 같은데 베인 마음을 들려 준다. 아플 수 있다면 함께 아파하자고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 생의 아주 적은 부분을 나눈다. 기꺼이 아프기는 하겠지만 고작 이만큼의 내 감동이 시인에게 혹은 다른 독자에게 아니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또 어떤 목숨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할 것인지.


이 시집을 만나서 이번 가을은 풍요로웠다고 남겨 본다. (y에서 옮김20201106)

당신도 원래 바다였다

당신이 어떤 세월에 휩쓸리다 살 곳을 정했다고

흐르지 않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마라 - P17

그럴 때 있어서



어떻게든 이으려 애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모두를 없애는 것도 중요할 때



이기지 않으려는 것까지도 중요할 때 - P25

나는 여기에 자주 올 것이다

그리고 나를 마주치기 위해

아주 다르게 하고 오기로 한다 - P38

눈이 왔는데 아무 소식 없었다고 하지 말기를

글씨를 써놓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말하지 말기를 - P59

우리는 어찌어찌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태어난 게 아니라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

그 자리에 잠시 다녀가는 것



그러니 그 자리에 좋은 사람 데려가기를

이번 생에서는 그리 애쓰지 말기를



다만 다음 생에

다시 찾아오고 싶을 때를 대비해

꼭꼭 눌러 그 자리를 새기고 돌아가기를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몽환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고도 그 여운에 젖어 하루를 넘길 수 있다니, 아주 괜찮은 기분이다. 이만큼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었던 책이라면, 내게는 축복이고 행운이다. 읽기를 잘 했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무엇보다 치밀한 구성. 사람 사이의 관계가 꼬이고 꼬이더라도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러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의 즐거운 긴장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끝까지 알 수 없는 결말. 그러나 이 작가의 작품에서 내가 본 결말은 앞선 내용에 비해 비교적 약했다는 기억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였으나, 이 정도로라도 만족한다. 또 등장인물들에 대한 호감.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까지 미움이나 증오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부여해 준 필연성, 인간으로서의 서글픈 한계, 같이 서글프고 더욱 흥미로워진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동질감이 국적을 넘어서 하잘것 없는 내 편견을 넘어서 호감을 갖게 해 준다. 그러면서 내가, 이러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각에 이르도록,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좋았던 모양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거북한 거부감은 별도로, 일본인 개인에 대해서는, 특히 작가들에 대해서는 내 호감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런 태도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혹은 작가가 젊은 독자들에게 이런 자세를 가진 젊은이들을 기대하는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이라면, 일본의 미래가 어둡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기성 세대는 신세대를 염려하게 마련이고, 이대로라면 세상이 망할 것 같다고 한다 해도 망하지 않고 거듭나 이어져 왔으니, 일본 또한 그러하리라. 후쿠시마 원전은 그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숙제로 주어지게 될 것이고.    


잘 짜여진 구성, 내가 이 요소를 노골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진작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인식하지 못했을까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1406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질풍론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박하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로 읽는 소설. 작가 이름에 대한 기대로 부담없이 읽는 소설. 딱 그만큼의 즐거움으로 읽었다.  


배경은 스키장이다. 내가 스키를 타지는 못하지만 스키장에서 남들이 스키 타는 것을 보며 노는 일은 다소 즐거워하는 편이므로 소설을 읽는 일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상상하는 것도 좋았고. 


추리소설이나 범죄 드라마의 공식 같은 것 하나. 초반에 의심받을 만한 사람은 범인이 아니더라는 것. 그러면 두 팀의 대결이 된다. 작가나 감독이 한쪽, 다른 쪽에는 독자나 시청자가 있다. 둘은 특히 작가 쪽은 상대를 완벽히 속여 보려고 한다. 독자나 시청자가 끝까지 범인을 찾지 못하고 반전을 느낀다면,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감탄한다면 작가도 독자도 만족하게 되는 결과. 


이 작가의 작품을 어지간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읽는 중에는 제법 파악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역시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직도 충실한 독자로 남아 있을 수 있겠다. 더 읽고 싶기도 하니까.


소설 속 흐름을 잡고 있는 한 가지 더-상처가 미치는 영향. 한 인간에게든 그 인간이 속한 공동체에게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관계를 힘들게 한다는 것. 소설 속이니까 해피앤드가 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y에서 옮김20141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