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 - 안희연의 여행 2005~2025
안희연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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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줍는다. 이것저것 내게 필요한 것들을 잘 줍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주운 것들을 잘 보관하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버리기도 잘한다. 필요가 없어졌을 때, 마음이 멀어졌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버려야겠다 싶을 때, 버린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고.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시를 읽을 때는 어려움을 느꼈던 시인의 산문이 의외로 잘 읽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준이나 취향의 차이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라도 잘 읽히면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이 여행기, 모처럼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읽었다.


2005년부터 2025년 사이의 여행 기록이라고 한다. 5년씩 4부로 나누어 편집했다. 20년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작품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스스로에게 시달렸을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경계선이 여기에 있다. 여행을 하고 기록을 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고 짧은 기간의 여행을 책으로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20년을 가까이 두고 그냥 보고 지키고 있었을 자료라니, 들썩이는 마음이 잦았을 텐데. 


작가의 여행 기록을 따라 나는 내 여행을 떠올리는 경험을 한다. 그때 그곳에서, 내가 가 보았던 곳이든 아직 못 가 본 곳이든 작가는 작가대로 헤매고 나는 나대로 헤맨다. 꽤 근사한 기억 속 세상, 상상 속 여행이다. 


2부 예술이라는 여행(2010~2015)이 특히 좋았다. 해 보고 싶었으나 끝내 해 본 적 없는 유형의 여행이다. 앞으로도 해 보게 될 것 같지는 않고 이렇게 작가의 글을 빌어 간접 경험으로 달랜다. 예술가가 잠들어 있는 묘지를 찾아가는 일, 예술가가 살아서 활동을 했던 장소를 찾아가는 일, 하다못해 그 예술가가 커피를 마셨다는 카페라도, 어느 한 곳이라도 기억할 수 있게 가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 기억으로 내 노년의 어떤 날이 반짝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4부 시라는 여행(2020~2025)은 진행형이다. 작가도 나도. 작가는 시를 쓰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고 나는 시를 읽는 여행을 계속하게 되겠지. 해로움은 없고 유익함만 있는 시 읽기, 갈증은 사라지고 충만한 느낌으로 일상을 채우는 시 읽기. 내가 시와 여행하는 길. 


흑백 사진들이 홀로 여행하는 분위기를 한껏 북돋워 준다. 시인의 숙명은 내 몫이 아니어서 작가에게 다 밀어 두고 나는 독자로서 얻을 수 있을 즐거움만 전해 받았다. 아니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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