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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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의 나라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내가..... 이런 꼴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여러 자아가 내 속에 갇혀 있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이 안정된 길을 걷는다면 그 자아들은 영원히 갇히고 말 거라고 확신했다... 조와 함께한 과거를 사랑했지만, 현재 속에 우리 모습을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축소했다. 내 혈관 속에 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망의 기미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허락하면 그 욕망이 퍼져 나갈까?      p.131

 

1980년 런던의 초겨울 오후, 누드 스케치 모델로 일하는 스물여덟의 엘리스는 공동묘지를 에워싸고 있는 철책을 걷다 한 여자를 만난다. 서른여섯의 콘스턴스 홀든은 작가였다. 무슨 이야기를 쓰냐는 물음에 코니는 '끝내주게 멋진 이야기'라고 말했고, 엘리스는 주말이 되자 도서관에서 그녀의 작품 <밀랍 심장>을 빌려 온다. 그 책은 '강렬하고, 냉혹하고, 열정적이며, 밑줄 긋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했다. 엘리스는 코니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만큼, 점점 더 코니에게 사로잡힌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전까지는 여자와 사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7년 런던, 카페에서 일하는 서른네 살 로즈는 남자친구 조와 함께 살고 있다. 로즈는 조와 함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사는 프랑스에서 여름의 마지막 주를 보낸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밀랍 심장>과 <초록 토끼>라는 책을 보여주며 읽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엄마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엄마가 이 책의 작가랑 사귀는 사이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로즈가 아기였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로즈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 또한 바로 그 소설가였다고. 런던으로 돌아온 로즈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두 작품을 발표한 후 은둔한 채 살고 있는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과연 로즈는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엄마에 대한 진실을 찾게 될까?

 

 

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죽기 전, 엘리스의 어머니는 솔직했다. 아이를 가지면서, 엘리스를 가지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서 살 수 없었다고 했다. 퍼트리샤가 가졌던 것은 모두 사라졌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거라고 했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완전히 새 건물에 들어와 살게 되는데,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난다고. 완전히 다른 삶이란다, 얘야. 그런 곳에서 살아야 했단다. 앨리스는 어머니에게 '거기서 사는 게 행복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앨리스를 안으며 '그랬지'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이전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p.385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교차 진행된다. 현재의 로즈보다 더 어렸던 그녀의 엄마 엘리스의 과거와 엄마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소설가 콘스턴스의 타이피스트로 일하게 된 로즈의 현재 이야기는 웬만한 미스터리 작품들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그만큼 작품과 극중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머리와 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과거에 엘리스와 코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대체 왜 엘리스는 어린 딸을 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리고 현재 신분을 속이고 콘스턴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로즈는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 것인지, 콘스턴트가 수십 년 만에 발표할 예정인 신작 소설에는 엄마의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 있을 것인지... 이야기는 숨가쁘게 앞을 향해 달려 간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꽤나 두툼한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게 만드는 마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너무 아쉬워서 다시 첫 페이지를 들추고 싶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때로는 허구의 세계가, 비록 실제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걸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여성의 삶과 내면을 그려내는 데 정말 탁월한 작가인 제시 버튼답게 이번 신작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미니어처리스트>는 문장들과 행간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페이지마다 넘쳐 흐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아한 기품과 매혹적인 미스터리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나가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 <뮤즈>에서는 여성 예술가가 '뮤즈'라는 허울 아래 연인, 모델, 영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어두운 시대를 눈부시게 그려냈었다. 차별과 억압 이전, '예술가'로서 여성들이 지녔던 진짜 욕망을 통해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내었던 섬세한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인 <컨페션>에서는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애인, 그리고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인 여성들이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한 아름다운 분투를 그려내고 있다.

 

극중 로즈가 콘스턴스의 <초록 토끼>를 읽고 나서 생각했던 표현들이 기억에 남는다. '삶을 끝까지 살아내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 그리고 확실한 대답은 없지만 마지막 문장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꽃을 피워낼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이 작품 <컨페션>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리스도, 로즈도, 로즈의 아버지와 친구인 켈리도, 그리고 콘스턴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을 오롯하게, 끝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두툼한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문제의 그 날 엘리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둔다. 왜냐하면 그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끝이 났지만, 극중 인물들이 런던 어디에선가 우리처럼 숨쉬고 살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끼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드는 나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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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한다는 것 - 자신만의 감각으로 일하며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야마구치 슈 외 지음, 김윤경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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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사와 씨, 두 사람이 무척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는데, 왜 혼다 씨가 개최하는 모임에 가지 않는 거죠?"라고 묻자 후지사와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 취향이 아니에요." 저는 이 이야기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평생 비즈니스의 동반자로 살아왔지만 '취향이 아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이들 관계에서 충분히 엿보이는 존중과 배려 말이죠. 감각을 존중했을 때에는 이처럼 평화로워집니다. 전쟁은 대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시작하거든요.     p.56~57

 

팬데믹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 중에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언택트'문화일 것이다. '언택트 시대'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일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필수 요소가 되어 버렸고,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 등 일하는 방식까지 자연스레 바뀌어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일하던 방식'을 과감히 바꿔야만 하는 이런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일의 형태가 바뀐 만큼 일하는 방식과 태도가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말이다. 이 책은 그렇게 비대면 환경에서 독자적으로 일할 때 필요한 것은 '기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감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의 감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능력을 말하는 걸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와 일본 최고의 경쟁전략 전문가 구스노키 겐이 만났다. 그들은 이 책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일 잘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별한 업무 비결에 대해서, 그리고 일의 감각을 키우고 발휘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은 일'이라는 구분도 감각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일하고 있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열정을 지니고 일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은 일이니까'하는, 약간 냉철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의 '워라밸'이라는 말에는 일과 삶을 대등한 관계로 병렬한다는 어감이 있습니다... 아무튼 워라밸이란 시간과 에너지의 분배를 뜻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의식의 분배'입니다.    p.139

 

국어, 수학, 영어, 이과, 문과로 나뉘는 능력들은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할 수 있다. 영어 능력이나 프레젠테이션 능력, 협상력, 재무 능력 또는 법무 지식 같은 기술 또한 사람들에게 쉽게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요인으로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이 개입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눈에 보이는 걸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업무 기술과 업무 감각의 차이 역시 상대방이 확인할 수 있는지, 언어나 수치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정형적이고 표준적인 방법이 없는 감각을 갈고 닦는 것이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두 저자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책은 넷플릭스와 어도비, 레고, IBM, 맥도날드, 산토리, 혼다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흥미로운 사례들과 함께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주목한다.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감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감각이라는 것이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사후적이고 후천적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시행착오 속에서 시간을 들여 연마해온 그 감각이라는 것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배우게 된다면, 누구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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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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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하지메는 오십을 넘긴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지혜는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다는 걸 하지메는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세계 밟아 마루청을 뚫을지 알 수 없다. 오십대 중반의 불안이 평소의 신중함과 이어져 있었다. 이런 겁 많은 자신에게 다소 넌더리가 나기도 했다.     p.8~9

 

도쿄에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하지메는 오십을 넘긴 어느 날, 아내에게 대학을 그만두고 홋카이도의 에다루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내의 동행 가능성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귀향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상제작회사의 제작 부문 책임자로 일하는 아내 구미코는 역시나 자신은 촬영이 있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대답한다. 건강염려증 노인이 된 하지메의 아버지 신지로에게는 한 명의 누나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 에미코는 이혼 후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세 자매는 둘이 되었다. 누나인 가즈에와 막내 여동생 도모요는 둘다 독신으로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신지로의 아내 도요코와는 에다루 박하의 전기 기사와 총무 담당자로 만나 결혼해서 산 지 벌써 사십 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들 부부에게는 하지메 외에도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아유미라는 딸이 있다.

 

이야기는 하지메가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고, 고모들은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등의 현재와 가족들 각자의 사연이 교차 진행되고 있다. 조산부였던 할머니 요네부터 할아버지 신조, 자식인 신지로와 도요코 부부, 그들의 딸과 아들인 아유미와 하지메, 신조의 여자형제들인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의 이야기가 촘촘하고, 밀도있게 그려지고 있다. 아유미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까지 소에지마 가에서 키웠던 개 에스와 아유미의 대학 시절 개인 지로, 그리고 이제 오십대의 하지메가 산책을 담당하게 된 하루까지 소에지마 가의 홋카이도 견들 이야기도 비중있게 보여진다. 이들 가족 삼대와 그 주변에 이렇다 할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사실 돌아보면 우리네 삶들 또한 모두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아유미는 가끔 자신이 없었던 세계를 상상한다. 아유미가 없는 세계는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다. 새로이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이 사람이 죽어도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느끼는 쪽이 더 덧없고 계량할 수 없고 환상에 가까운 현상이 아닐까. 아유미는 그저 암흑의 소리 없는 우주를 똑바로 나아가는 별빛에 대해 이리저리 상상한다. 누구의 망막에도 닿지 않는, 관측되지도 않는 빛이 최후에 당도하는 곳은 어디일까.      p.360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이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기가 막힌 직유와 비유를 들어가며 표현하는 묘사들과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로 인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였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3대와 그 곁을 지키는 네 마리의 홋카이도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01년 출생인 할머니부터 1958년 생인 손자가 어른이 되어 일을 하다 은퇴 후 귀향에 이르기까지 약 백 년에 걸친 시간을 그리고 있다. 이 서사는 한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작은 삶의 기록이자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태어나 자라고, 세상을 만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마련이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더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만큼이나, 되돌리고 싶은 실수와 후회되는 순간들과 어쩔 수 없이 구차해져야 했던 시간들을 쌓아 가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마쓰이에 마사시가 포착해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우리네 인생의 히로애락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한 슬픔과 기쁨과 아픔을 이야기 안에 담아 완성한 장편'이라고 말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 이번 신작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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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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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p.14~15

 

2020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휩쓸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한 노년 여성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묘사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3년 동안 2만 4,140킬로미터를 여행하며 수백 명에 이르는 노마드들을 만났다. 높은 학위, 전문 분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평생 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들이 어쩌다 60대, 70대의 나이에 집과 직장과 저축을 잃고 불안정한 임시 일자리에 고용되어 저임금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게 된 걸까.

 

이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주택과 아파트를 포기하고 밴과 RV, 캠핑용 픽업트럭 혹은 여행용 트레일러 등에 들어가 길 위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노동자들이 되었다. 대부분 중산층으로 살았던,, 결코 노마드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홈리스'라 불리기를 거부한다. 주거 시설과 교통수단을 둘 다 갖추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하우스리스'라고 칭한다. 그들은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좋은 날씨에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하며,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이 책은 그러한 노마드들 각자의 사연과 삶을 들여다 보고, 이들이 마주한 가차 없는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경제적 불행이 대체로 피해자 탓이 되는 문화 속에서, 밥은 그들에게 무자비한 오명을 짐 지우는 대신 그들을 격려해주었다.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그가 방문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날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제대로 해도 결국에는 파산하고, 혼자 남고,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밴이나 다른 차량들로 이주해 들어감으로써 자신들을 낙오시킨 시스템에 대한 양심적인 문제 제기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유와 모험의 삶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p.126

 

예순네 살의 린다 메이는 지프에 '틈새 호텔'이라 부르는 작은 연노란색 트레일러를 달고 광활한 샌버나디노 국유림으로 가는 중이다. 지금은 5월이고, 그녀는 거기서 9월까지 머무르며 캠프장 관리자로 일할 예정이다. 청소부, 계산원, 공원 관리인, 경비원, 그리고 안내 요원의 역할을 두루두루 다 하는 계절성 노동자로 일하며 매주 40시간을 꽉 채울 예정이다. 물론 그 노동시간이 보장되지는 않을 테고, 회사가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조정될 것이며, 언제든 사유나 예고 없이 해고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평생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이 결국 집도, 영구적인 거주지도 없이 앞날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게 되는 걸까. 린다 메이는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어디에도 일자리가 없었다. 평생을 끊임없이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지금, 그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책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가장 집요하게 착취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주는 감동 또한 놓치지 않으며,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문제를 절감하게 하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꿈이란 무엇인가, 또 집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더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논픽션이었다. 어디에나 틈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서진 삶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그 벌어진 틈을 통해 들어오게 마련이다.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길로 나서게 되었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는 거다. 다시 길 위에서, 이들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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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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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그의 일주일 식단 중에 빼놓고 지나간 게 있다. 토요일의 요리.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들리는 이 이름.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 호박을 마차로 둔갑시킬 때 딱 이런 주문을 외웠을 것 같다. 직역하자면 고뇌와 충격, 탄식과 격파, 애도와 단념, 노고와 탄식, 뭐 대략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다. 일단 '고뇌와 탄식' 정도로 정리해 보기로 하고. 토요일에는 고뇌와 탄식을 먹었다고? 대체 어떤 음식이기에? 책에는 베이컨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라고 되어 있는데, 대체 이름이 왜 이모양인 것이냐.      p.23

 

이 책은 소설가 천운영이 돈키호테와 그가 먹었던 음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음식에세이이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소설가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미친 짓이었다고 작가는 서두를 연다. <돈키호테>의 첫 장부터 라만차 시골 양반의 1주일 치 식단을 일일이 열거하는 걸 보면 세르반테스는 분명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을 거라며, 작가는 <돈키호테>를 제대로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살았던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출발해 중부에서 남부, 그리고 동부로 오르락내리락 가고 오며 수많은 식탁 앞에 앉는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서게 된 계기이다. 세르반테스를 너무 사랑했다거나, <돈키호테>가 인생의 최고작품이었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두어 달쯤 머물던 어느 날, 라만차 지역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돈키호테 어쩌고 설명이 붙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였다. 스페인어에 까막눈이라 거의 반벙어리로 지내던 참이었고, 좀 태웠다 싶게 튀게 낸 거무죽죽한 고기 조각이 음식이라고 나왔는데, 발라 먹은 살보다 발라낸 뼈가 더 많은 이런 음식이 진짜 <돈키호테>에 나오는 건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인생 별거 있소? 살거나 죽거나지. 그러니 있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면서 평화롭게 함께 먹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아침을 여실 때 모두를 위해 여시는 것 아니겠소?” 산초가 그토록 좋아하는 오야 포드리다처럼. 온갖 고기와 채소를 넣고 한데 끓인 바로 그 음식처럼. 모두 다 같이 모여 한 솥 가득 끓인 고깃국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 세상. 그렇게 매일 아침을 함께 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산초는 갈수록 옳은 말만 하고, 갈수록 현명해진다.      p.184

 

이 책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한 대목들을 원문과 함께 중간 중간 수록해 두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이 더욱 돈키호테의 매력에 빠져 들도록 만들어 준다. 하나의 책을 읽다가 자연스레 또 다른 책을 찾아 들게 만드는 경험을 누구라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혹은 읽고 싶어졌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말이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고 잘 알려진 스토리라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 같은 고전 작품들이 있는데, <돈키호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천운영 작가는 그 <돈키호테>의 매력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음식'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소재를 통해서 말이다.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라는 이름의 염장 삼겹살 계란 요리, 특식 중의 특식인 새끼비둘기 요리,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다던 스페인 음식인 염장 대구 요리, 소금에 절여 말린 일종의 육포 같은 염소고기, 플로레스 데 사르텐이라 불리는 밀가루 반죽 튀김 과자 등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통해서 돈키호테의 용기와 산초의 의미와 세르반테스가 그려낸 시대성을 포착해 내는 여정은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이 책을 통해서 시골 장터에서 돼지고기 염장하는 데 최고의 손맛을 자랑하던 둘시네아와 멍청한 먹보가 아니라 타고난 와인 감별사에 심오한 음식철학을 가진 산초를 만나 보자. 그리고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진지 다시 깨달으며 좌충우돌 우왕좌왕 돌진 또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식탁을 만나 보자. 무려 400년 전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달려든 작가의 무모한 도전이 그리는 여정을 통해 다 함께 음식을 차리고 나누어 먹는 일이 삶을 지탱할 힘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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