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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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하지메는 오십을 넘긴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는 지혜는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보장이 하나도 없다는 걸 하지메는 알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세계 밟아 마루청을 뚫을지 알 수 없다. 오십대 중반의 불안이 평소의 신중함과 이어져 있었다. 이런 겁 많은 자신에게 다소 넌더리가 나기도 했다.     p.8~9

 

도쿄에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하지메는 오십을 넘긴 어느 날, 아내에게 대학을 그만두고 홋카이도의 에다루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내의 동행 가능성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의논도 하지 않고 혼자 귀향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상제작회사의 제작 부문 책임자로 일하는 아내 구미코는 역시나 자신은 촬영이 있어서 가지 못하겠다고 대답한다. 건강염려증 노인이 된 하지메의 아버지 신지로에게는 한 명의 누나와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 에미코는 이혼 후 자매들과 함께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세 자매는 둘이 되었다. 누나인 가즈에와 막내 여동생 도모요는 둘다 독신으로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신지로의 아내 도요코와는 에다루 박하의 전기 기사와 총무 담당자로 만나 결혼해서 산 지 벌써 사십 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그들 부부에게는 하지메 외에도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아유미라는 딸이 있다.

 

이야기는 하지메가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고, 고모들은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등의 현재와 가족들 각자의 사연이 교차 진행되고 있다. 조산부였던 할머니 요네부터 할아버지 신조, 자식인 신지로와 도요코 부부, 그들의 딸과 아들인 아유미와 하지메, 신조의 여자형제들인 가즈에, 에미코, 도모요의 이야기가 촘촘하고, 밀도있게 그려지고 있다. 아유미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생까지 소에지마 가에서 키웠던 개 에스와 아유미의 대학 시절 개인 지로, 그리고 이제 오십대의 하지메가 산책을 담당하게 된 하루까지 소에지마 가의 홋카이도 견들 이야기도 비중있게 보여진다. 이들 가족 삼대와 그 주변에 이렇다 할 자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사실 돌아보면 우리네 삶들 또한 모두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아유미는 가끔 자신이 없었던 세계를 상상한다. 아유미가 없는 세계는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다. 새로이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이 사람이 죽어도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느끼는 쪽이 더 덧없고 계량할 수 없고 환상에 가까운 현상이 아닐까. 아유미는 그저 암흑의 소리 없는 우주를 똑바로 나아가는 별빛에 대해 이리저리 상상한다. 누구의 망막에도 닿지 않는, 관측되지도 않는 빛이 최후에 당도하는 곳은 어디일까.      p.360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이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들을 담담하게 그려내지만, 기가 막힌 직유와 비유를 들어가며 표현하는 묘사들과 정확하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로 인해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작가였기에 이번 신작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3대와 그 곁을 지키는 네 마리의 홋카이도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01년 출생인 할머니부터 1958년 생인 손자가 어른이 되어 일을 하다 은퇴 후 귀향에 이르기까지 약 백 년에 걸친 시간을 그리고 있다. 이 서사는 한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작은 삶의 기록이자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태어나 자라고, 세상을 만나고 늙고 병들고 죽게 마련이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더라도, 가까이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들만큼이나, 되돌리고 싶은 실수와 후회되는 순간들과 어쩔 수 없이 구차해져야 했던 시간들을 쌓아 가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마쓰이에 마사시가 포착해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우리네 인생의 히로애락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지금까지 인생에서 경험한 슬픔과 기쁨과 아픔을 이야기 안에 담아 완성한 장편'이라고 말했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 이번 신작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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