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식탁 - 돈키호테에 미친 소설가의 감미로운 모험
천운영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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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그의 일주일 식단 중에 빼놓고 지나간 게 있다. 토요일의 요리.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들리는 이 이름.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 호박을 마차로 둔갑시킬 때 딱 이런 주문을 외웠을 것 같다. 직역하자면 고뇌와 충격, 탄식과 격파, 애도와 단념, 노고와 탄식, 뭐 대략 이런 단어들의 조합이다. 일단 '고뇌와 탄식' 정도로 정리해 보기로 하고. 토요일에는 고뇌와 탄식을 먹었다고? 대체 어떤 음식이기에? 책에는 베이컨 조각을 넣은 달걀 요리라고 되어 있는데, 대체 이름이 왜 이모양인 것이냐.      p.23

 

이 책은 소설가 천운영이 돈키호테와 그가 먹었던 음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음식에세이이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소설가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미친 짓이었다고 작가는 서두를 연다. <돈키호테>의 첫 장부터 라만차 시골 양반의 1주일 치 식단을 일일이 열거하는 걸 보면 세르반테스는 분명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을 거라며, 작가는 <돈키호테>를 제대로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돈키호테가 살았던 곳이라 짐작되는 곳에서 출발해 중부에서 남부, 그리고 동부로 오르락내리락 가고 오며 수많은 식탁 앞에 앉는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 나서게 된 계기이다. 세르반테스를 너무 사랑했다거나, <돈키호테>가 인생의 최고작품이었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두어 달쯤 머물던 어느 날, 라만차 지역의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돈키호테 어쩌고 설명이 붙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였다. 스페인어에 까막눈이라 거의 반벙어리로 지내던 참이었고, 좀 태웠다 싶게 튀게 낸 거무죽죽한 고기 조각이 음식이라고 나왔는데, 발라 먹은 살보다 발라낸 뼈가 더 많은 이런 음식이 진짜 <돈키호테>에 나오는 건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인생 별거 있소? 살거나 죽거나지. 그러니 있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면서 평화롭게 함께 먹도록 합시다. 하느님이 아침을 여실 때 모두를 위해 여시는 것 아니겠소?” 산초가 그토록 좋아하는 오야 포드리다처럼. 온갖 고기와 채소를 넣고 한데 끓인 바로 그 음식처럼. 모두 다 같이 모여 한 솥 가득 끓인 고깃국을 사이좋게 나눠 먹는 세상. 그렇게 매일 아침을 함께 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산초는 갈수록 옳은 말만 하고, 갈수록 현명해진다.      p.184

 

이 책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한 대목들을 원문과 함께 중간 중간 수록해 두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들이 더욱 돈키호테의 매력에 빠져 들도록 만들어 준다. 하나의 책을 읽다가 자연스레 또 다른 책을 찾아 들게 만드는 경험을 누구라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혹은 읽고 싶어졌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 말이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고 잘 알려진 스토리라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 같은 고전 작품들이 있는데, <돈키호테> 역시 그러할 것이다. 천운영 작가는 그 <돈키호테>의 매력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음식'이라는 친숙하면서도 색다른 소재를 통해서 말이다.

 

 

두엘로스 이 케브란토스라는 이름의 염장 삼겹살 계란 요리, 특식 중의 특식인 새끼비둘기 요리, 헤밍웨이와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다던 스페인 음식인 염장 대구 요리, 소금에 절여 말린 일종의 육포 같은 염소고기, 플로레스 데 사르텐이라 불리는 밀가루 반죽 튀김 과자 등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식들을 통해서 돈키호테의 용기와 산초의 의미와 세르반테스가 그려낸 시대성을 포착해 내는 여정은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이 책을 통해서 시골 장터에서 돼지고기 염장하는 데 최고의 손맛을 자랑하던 둘시네아와 멍청한 먹보가 아니라 타고난 와인 감별사에 심오한 음식철학을 가진 산초를 만나 보자. 그리고 <돈키호테>라는 작품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진지 다시 깨달으며 좌충우돌 우왕좌왕 돌진 또 돌진하는 돈키호테의 식탁을 만나 보자. 무려 400년 전 음식을 먹어보겠다고 달려든 작가의 무모한 도전이 그리는 여정을 통해 다 함께 음식을 차리고 나누어 먹는 일이 삶을 지탱할 힘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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