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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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p.14~15

 

2020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휩쓸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의 원작이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한 노년 여성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묘사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3년 동안 2만 4,140킬로미터를 여행하며 수백 명에 이르는 노마드들을 만났다. 높은 학위, 전문 분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평생 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들이 어쩌다 60대, 70대의 나이에 집과 직장과 저축을 잃고 불안정한 임시 일자리에 고용되어 저임금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게 된 걸까.

 

이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주택과 아파트를 포기하고 밴과 RV, 캠핑용 픽업트럭 혹은 여행용 트레일러 등에 들어가 길 위에서 생활하는 '노마드' 노동자들이 되었다. 대부분 중산층으로 살았던,, 결코 노마드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홈리스'라 불리기를 거부한다. 주거 시설과 교통수단을 둘 다 갖추었기 때문에 자신들을 '하우스리스'라고 칭한다. 그들은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좋은 날씨에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하며,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이 책은 그러한 노마드들 각자의 사연과 삶을 들여다 보고, 이들이 마주한 가차 없는 현실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경제적 불행이 대체로 피해자 탓이 되는 문화 속에서, 밥은 그들에게 무자비한 오명을 짐 지우는 대신 그들을 격려해주었다.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그가 방문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날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제대로 해도 결국에는 파산하고, 혼자 남고,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밴이나 다른 차량들로 이주해 들어감으로써 자신들을 낙오시킨 시스템에 대한 양심적인 문제 제기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유와 모험의 삶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p.126

 

예순네 살의 린다 메이는 지프에 '틈새 호텔'이라 부르는 작은 연노란색 트레일러를 달고 광활한 샌버나디노 국유림으로 가는 중이다. 지금은 5월이고, 그녀는 거기서 9월까지 머무르며 캠프장 관리자로 일할 예정이다. 청소부, 계산원, 공원 관리인, 경비원, 그리고 안내 요원의 역할을 두루두루 다 하는 계절성 노동자로 일하며 매주 40시간을 꽉 채울 예정이다. 물론 그 노동시간이 보장되지는 않을 테고, 회사가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조정될 것이며, 언제든 사유나 예고 없이 해고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서 평생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이 결국 집도, 영구적인 거주지도 없이 앞날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게 되는 걸까. 린다 메이는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 어디에도 일자리가 없었다. 평생을 끊임없이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지금, 그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책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가장 집요하게 착취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주는 감동 또한 놓치지 않으며,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문제를 절감하게 하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꿈이란 무엇인가, 또 집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보다 더 묵직한 여운을 남겨주는 논픽션이었다. 어디에나 틈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부서진 삶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그 벌어진 틈을 통해 들어오게 마련이다.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길로 나서게 되었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는 거다. 다시 길 위에서, 이들의 삶은 이제 시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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