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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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을 때의 나라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내가..... 이런 꼴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여러 자아가 내 속에 갇혀 있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이 안정된 길을 걷는다면 그 자아들은 영원히 갇히고 말 거라고 확신했다... 조와 함께한 과거를 사랑했지만, 현재 속에 우리 모습을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축소했다. 내 혈관 속에 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욕망의 기미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허락하면 그 욕망이 퍼져 나갈까?      p.131

 

1980년 런던의 초겨울 오후, 누드 스케치 모델로 일하는 스물여덟의 엘리스는 공동묘지를 에워싸고 있는 철책을 걷다 한 여자를 만난다. 서른여섯의 콘스턴스 홀든은 작가였다. 무슨 이야기를 쓰냐는 물음에 코니는 '끝내주게 멋진 이야기'라고 말했고, 엘리스는 주말이 되자 도서관에서 그녀의 작품 <밀랍 심장>을 빌려 온다. 그 책은 '강렬하고, 냉혹하고, 열정적이며, 밑줄 긋고 싶은 문장으로 가득'했다. 엘리스는 코니의 작품에 매력을 느낀 것만큼, 점점 더 코니에게 사로잡힌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전까지는 여자와 사귄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7년 런던, 카페에서 일하는 서른네 살 로즈는 남자친구 조와 함께 살고 있다. 로즈는 조와 함께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사는 프랑스에서 여름의 마지막 주를 보낸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밀랍 심장>과 <초록 토끼>라는 책을 보여주며 읽어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엄마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엄마가 이 책의 작가랑 사귀는 사이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로즈가 아기였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로즈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 또한 바로 그 소설가였다고. 런던으로 돌아온 로즈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두 작품을 발표한 후 은둔한 채 살고 있는 소설가를 만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과연 로즈는 자신을 버리고 사라진 엄마에 대한 진실을 찾게 될까?

 

 

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죽기 전, 엘리스의 어머니는 솔직했다. 아이를 가지면서, 엘리스를 가지면서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서 살 수 없었다고 했다. 퍼트리샤가 가졌던 것은 모두 사라졌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거라고 했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완전히 새 건물에 들어와 살게 되는데,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른 채 몇 주, 몇 달, 몇 년이 지난다고. 완전히 다른 삶이란다, 얘야. 그런 곳에서 살아야 했단다. 앨리스는 어머니에게 '거기서 사는 게 행복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앨리스를 안으며 '그랬지'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이전의 삶은 기억도 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p.385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교차 진행된다. 현재의 로즈보다 더 어렸던 그녀의 엄마 엘리스의 과거와 엄마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 소설가 콘스턴스의 타이피스트로 일하게 된 로즈의 현재 이야기는 웬만한 미스터리 작품들 못지 않은 긴장감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그만큼 작품과 극중 인물들에게 동화되어 머리와 심장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과거에 엘리스와 코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대체 왜 엘리스는 어린 딸을 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리고 현재 신분을 속이고 콘스턴트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로즈는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을 것인지, 콘스턴트가 수십 년 만에 발표할 예정인 신작 소설에는 엄마의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 있을 것인지... 이야기는 숨가쁘게 앞을 향해 달려 간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꽤나 두툼한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빠져들어 읽게 만드는 마력은 여전했다.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마자 너무 아쉬워서 다시 첫 페이지를 들추고 싶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때로는 허구의 세계가, 비록 실제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걸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제시 버튼의 모든 작품들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여성의 삶과 내면을 그려내는 데 정말 탁월한 작가인 제시 버튼답게 이번 신작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미니어처리스트>는 문장들과 행간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이 페이지마다 넘쳐 흐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아한 기품과 매혹적인 미스터리들과 함께 어우러져 한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나가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두 번째 작품 <뮤즈>에서는 여성 예술가가 '뮤즈'라는 허울 아래 연인, 모델, 영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어두운 시대를 눈부시게 그려냈었다. 차별과 억압 이전, '예술가'로서 여성들이 지녔던 진짜 욕망을 통해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해내었던 섬세한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인 <컨페션>에서는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애인, 그리고 누군가의 배우자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인 여성들이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한 아름다운 분투를 그려내고 있다.

 

극중 로즈가 콘스턴스의 <초록 토끼>를 읽고 나서 생각했던 표현들이 기억에 남는다. '삶을 끝까지 살아내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 그리고 확실한 대답은 없지만 마지막 문장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꽃을 피워낼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이 작품 <컨페션> 속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리스도, 로즈도, 로즈의 아버지와 친구인 켈리도, 그리고 콘스턴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모두가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을 오롯하게, 끝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이 두툼한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문제의 그 날 엘리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 둔다. 왜냐하면 그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끝이 났지만, 극중 인물들이 런던 어디에선가 우리처럼 숨쉬고 살아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끼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만드는 나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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