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이 남들보다 먼저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고, 이후 연쇄적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나머지를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생에서 운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다. 행운과 불운이 결국 서로 상쇄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운이 세 번만 연달아 작용해도 당신의 커리어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 당신의 인생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피드백 루트가 만들어 낸 결과는 얼마나 될까?              p.70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점점 더 많은 영역이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내가 이전에 시청한 작품을 토대로 취향이 비슷한 이용자들의 데이터와 비교분석해 추천 작품 목록을 보여주고, 아이폰의 시리에게 말을 걸면 척척 알아듣고 답변을 해주며, 구글번역은 외국어 텍스트를 수준급으로 번역해낸다. 이러한 인공지능 또는 기계학습은 모두 수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고, 발전해왔다. AI의 발달 또한 모두 확률을 바탕으로 한 수학 덕분이며 다양한 경쟁 상황 속에서 최상의 전략을 알려주는 이론도 역시 수학에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데이터가 새로운 언어가 된 시대에 숫자와 통계를 어떻게 읽고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과잉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데이터 안의 정보를 이해하여 활용하는 능력인 '데이터 리터러시'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종 데이터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엘카노 왕립 연구소 과학 자문위원이자 2024 스페인 저널리즘 혁신상 수상 작가인 키코 야네라스는 이 책에서 동물의 생태부터 스포츠, 정치, 문화에 이르기까지 사례를 넘나들며 데이터 리터러시의 실제를 풀어낸다. 자연은 이상할 정도로 직관에 반하는 방향으로, 때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흘러가는데 그에 대한 사례로 유럽 뱀장어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준다. 유럽 뱀장어는 수십 년을 살 수 있고, 짝짓기를 위해 수천 km를 이동하며, 생애 동안 세 번의 변태를 겪는다. 저자는 수세기 동안 미스터리의 생물이었던 뱀장어의 생애를 통해 세상이 보기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앨깨워준다. 이것을 시작으로 세계사, 정치, 스포츠, 게임 등 광범위한 사례를 통해 직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는데, 매우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를 간과한다. 가령 정원이 딸린 집을 살 때를 상상해 보자. 우리는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잔디 관리나 지방세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 부담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정원에 잡초가 무성해질 즈음이면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후회할 것이다. 그런데도 다음 날이면 또다시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이는 우리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추론할 때 저지르는 실수에 해당한다.                p.294


아이스크림 판매를 금지하면 범죄 근절에 도움이 될까?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두 현상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걸까? 실제로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할 때 살인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살인을 유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살인 아이스크림'은 '상관관계는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통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말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상승할 때, 살인 사건도 덩달아 증가한다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살인을 유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더라도,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는 단순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크나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과잉 정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정확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사실 검증을 위해 통계 자료를 제시하는 이른바 '팩트 지상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검색 한 번으로 우리는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러한 양이 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습득한 정보에서 신뢰해야 할 내용과 경계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인과성과 우연, 불확실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데이터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과학, 심리학의 문제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과학과 인문학의 간극을 메워줘서 통합적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수식이나 도표를 제시하지 않고, 통계학적, 심리학적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이다. 숫자와 데이터의 세상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면, 데이터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게 상상력의 힘이야, 그는 속으로 말한다.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 사람이 허구의 작품에서 전개되는 가상의 사건으로 인해 변화를 겪을 수 있듯이 바움가트너는 꿈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해준 이야기로 인해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이제 창 없던 방에 창이 생겼다면, 누가 알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창살도 사라져 마침내 바깥공기 속으로 기어 나갈 수 있는 날이 올지.              p.80


폴 오스터 생애 마지막 작품인 <바움가트너>가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을 가제본으로 읽었기에 아름다운 본책을 소장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데, 더 예쁜 버전으로 만날 수 있어 리커버 소식이 매우 반가웠다. 기존 버전의 표지도 함께 판매되고 있는데, 주인공 바움가트너와 그의 아내 애나 버전으로 두 버전을 함께 두면 마치 세트처럼 느껴지니 둘다 소장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 나온 특별판에는 김연수 작가의 헌정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20대 중반에 처음 읽었던 <뉴욕 3부작>부터 폴 오스터의 전작들을 아우르는 사적이고도 각별한 애도가 담긴 글이라 너무 좋았다. 


10년 전 전혀 예상치 못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그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30년 이상 함깨 했던 애나는 그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남겨진 이는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아주 좋은 봄날 아침이었다. 바움가트너는 서재에서 글을 쓰다 필요한 책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부엌에서 나는 냄새에 가보니 아침으로 먹을 달걀을 삶던 냄비가 타버렸고, 그걸 들어올리려다 손을 데고 만다. 일주일에 두 번 집에 와서 청소를 해주던 플로레스 부인의 딸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가 다쳐 어머니가 일을 못가게 되었다고 울먹이고, 바움가트너는 어린 소녀를 달래주느라 10분이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전기 회사의 계량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헛딛는 바람에 무릎과 팔꿈치를 다친다. 이상한 사건 사고로 얼룩진 그날, 통증과 피로로 인한 안개 속에서 시커메진 냄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에게 <그때>라는 사라진 세계가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이제 세부적인 것은 기억에 없지만, 한 가지, 어딘가에서 차를 세우고 피크닉 점심을 먹었던 일, 모래가 많은 땅에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건너다보았던 일은 떠오른다. 그때 그는 강렬한 행복감이 큰물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말했다. 이 순간을 기억하도록 해, 얘야, 남은 평생 기억해, 앞으로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도 지금 이것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p.242


사람들은 언젠가 죽는다.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을 수도, 예상치 못했던 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삶이지만, 우리가 그 모든 일에 미리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에 맞이하게 되는 기쁨과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에 망치로 두들겨 맞아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절망이 공존하는 것이 삶이니 말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상실'과 기억' 또한 갑작스럽게 우리를 찾아온다. 냄비가 그을리고, 그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던 날 견고하게 묻어 두었던 과거에 금이 가고 쪼개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대학원 1학년생이던 때부터, 아내를 처음 만나게 되고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양장점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이르기까지.... 한 인물의 내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아내가 평생 써왔으나 한 번도 발표한 적 없던 글들과 바움가트너가 집필하고 있는 원고들이 그의 내적인 여정과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뒤얽히면서 그는 비로소 과거를 두려움 없이 돌아볼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은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노교수 바움가트너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10년 째 그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30년 이상 함께 했던 애나는 그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이는 어떻게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허구와 환상을 넘나들며 한 사람의 삶을 차곡차곡 그려나간다. 삶 전체가 아니라 주인공이 70년이 넘는 인생 가운데 마지막 2년 정도라는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읽다 보면 생애 전체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한 사람의 삶은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 속 나뭇가지처럼 얽혀 있는 삶의 조각들을 그러 모은다. 특히나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써낸 그의 유작이기에 더욱 절실하고도 감동적이다.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밀도 높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이 작품은 상실과 기억에 관한 아름다운 사유를 보여준다. 폴 오스터의 빛나는 마지막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3부작 세트 - 전3권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외 지음, 승주연 외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무슨 사건을 갈망하고, 변화가 주는 기쁨을 목말라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계절 내내 한곳에 머무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렇게 가을, 겨울이 많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것조차 그에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첫눈, 고백> 중에서, p.73


'머묾'의 세계문학 시리즈, 그 첫 번째 <사랑 3부작> 세트이다. 19세기 러시아의 순정, 19세기 프랑스의 욕망, 20세기 미국의 상실을 담은 세 권의 작품이 아름다운 장정으로 만들어 졌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번역과 감각적인 표지 이미지,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매거진형 에디션이라는 점이 특징인데, 덕분에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사랑의 첫 떨림은 언제나 슬픔의 첫 예감이다."


기 드 모파상 『첫눈, 고백』

"사랑은 이기적이고, 욕망은 솔직하다"


F.스콧 피츠제럴드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사랑은 사라져도, 그 잔향은 영원하다"




고전 문학이야 여러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책이라 수집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너무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내지 구성이 아주 돋보이는데, 첫 페이지를 펼쳐 보자 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해에 고전 문학을 읽어 보겠다고 계획을 세웠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책이 예쁘면 더 잘 읽힐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같은 작품인데도 읽을 때마다 다른 경우가 있다. 문학이라는 장르, 그 중에서도 특히 고전 문학들이 그러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을 10년 뒤에, 혹은 20년 뒤에 다시 읽었을 때, 여전히 그 작품이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 우리가 고전을 읽고 또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학창시절에는 어렵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고 보니, 쉽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뀌어 읽히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축축하고 무거운 밤공기는 달아오른 내 얼굴을 덮쳤고, 곧 뇌우가 몰아칠 듯했는데, 시커먼 먹구름이 점점 많아지더니 연기처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며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들바람에 시커먼 나무들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어딘가 지평선 너머에서는 천둥소리가 화난 듯 둔탁하게 울렸다.                <첫사랑> 중에서, p.71


세 권 중에 뭘 먼저 읽어 볼까 고민하다,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 투르게네프의 작품부터 만나보았다. 


한 열여섯 소년이 우연히 만난 스물한 살 여인에게 첫 눈에 반한다. 그는 '무언가 매력적이고, 강압적이며, 다정하고, 조롱하는 듯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면'을 홀린 듯 바라보며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는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아직 미성숙한 소년을 압도한다. 첫사랑이란 감정은 순수하고 미숙한 만큼 더욱 속절없이 상대에게 몰입하게 만드는데, 그 달콤하고도 황홀한 기쁨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은 생각지도 못했던 연적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그로인해 첫사랑의 열병도 끝이 난다. <첫사랑>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투르게네프가 스스로 '가장 자전적인 작품'이라고 밝혔으며 자신의 감정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섬세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누구나 다 알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한번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읽어본 적은 없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세계 문학 읽기, 그 중에서도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고전 문학 읽기란 사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은 페이지가 두툼하고, 행갈이 없이 이어지는 만연체는 졸리기만 하고, 발음하기 힘든 지명들과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가득해 어렵고 읽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읽기를 한 번쯤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아름다운 장정의 고전을 고르는 게 좋다. 책이 예쁘면 그만큼 더 읽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것이고, 그렇게 계속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읽게 될테니 말이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잠시 쉼이 필요할 때,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싶을 때, 순수함을 잃어 버린 나에게 특별한 처방이 필요할 때, 고전 문학을 읽어 보자. 수많은 고전 중에서 선택이 어렵다면, <사랑 3부작> 세트를 추천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진화론적 생존 법칙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화는 때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적응법을 생각해내며 환경이 제시하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끊임없이 정복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유기체는 조건이 달라질 때 기존 능력을 이용해 새로운 생존 기회를 활용하고, 그 뒤에 자연선택을 통해 그 능력을 조정할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는 유명한 글 <진화적 땜질>에서 진화란 새로운 구조를 발명하는 일보다 기존의 구조를 수정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p.58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어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화두가 되어 진화 인류학, 뇌과학의 시점으로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현장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불완전함’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오래된 전략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30억 년 자연사에서 4번의 대멸종을 견디며 살아남은 개체들은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불완전함 덕분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격변기마다 많은 종이 멸종했지만 동시에 어떤 종은 살아남았다.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기존 환경에서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생물은 약 40억 년 동안 끊임없이 자가재생을 거듭해왔다.  주변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생존하고 번식할 기회를 만들어 '끊임없이 생존'해왔다.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는 언제나 불일치가 존재한다. 다윈은 주어진 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개체수를 넘어서서 비슷한 환경 자원을 필요로 하거나 선호하는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은, 결국 적합한 조건에 사는 유기체가 끊임없이 '생존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갈등은 삶에서 영속적인 요소인 것이다. 유기체는 대물림, 탐색, 이동을 통해 이러한 환경과의 갈등에 대응해왔다. 저자는 말한다. 진화란 가장 뛰어난 일인자를 걸러내는 관문이 아니라, 살아남아 번식하는 모든 개체를 선호하는 헐거운 과정이라고. 완벽함이 아니라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적당함이 현재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해낼 진화적 회복력이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류는 지금 위태로운 시대를 살고 있고, '지속 가능성'에서 '생존 가능성'으로 담론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활방식이 진화를 따르지 않고 '성장은 좋은 것' '적자생존' '기술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사회경제적 방식으로 전환된 사건을 인류세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인류세가 저무는 인류세의 가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기술 인류가 더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세가 빠르게 변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SF소설에서는 오랫동안 종말 이후의 인류 사회를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일을 반복하며 양측의 치명적 결함을 지적했다.              p.407~408


전 지구적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의 거주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한 세기 넘게 경고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문제는 인간이 습관의 동물이어서 환경이 달라져도 행동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와 지구 생물권은 '복잡한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통, 위생, 의료, 전기, 식량, 물, 인터넷 등 기술에 기반한 시설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변화이지만, 우리가 통제하거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역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지구가 임계점을 넘기 직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류가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근본적 문제는 경제 성장과 개발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이 될 것이다. 생존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된 관심사이고, 인간과 생물권이 상호작용할 때 진화의 원리를 택하는 일은 인류의 미래에 가장 중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고 다가오는 변화에 대처하려면, 예상치 못한 조건 변화에 대처할 잠재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화적 잠재력을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추천하며 <사피엔스>를 읽고 좌절한 독자들에게 권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잘 읽히는 책이다. 각 장마다 요약 항목을 두어 한번에 정리해 두어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구성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초기 인류의 역사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전 지구적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놀라운 통찰을 만나보자. 진화적 관점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인류세 다음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게다가 그대가 비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나의 책다운 긍지이기도 하다

한낱 물건일 뿐인 내가 진짜 살아 있는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종이로 된 정신인 우리는

이따금 우리 자신이 <덧없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다.                 p.53


페이지를 펼치면 한 권의 책, 그것도 살아 있는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원한다면,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나를 읽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고, 그대야말로 이 여행의 주인공이며, 나의 주인이라고,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고. 아마도 이 책은 긴 여행을 거쳐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해주는 여정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면 계약이 성립된다. 이제 나날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고, 되어 가는 대로 완전히 스스로를 내맡기면 된다. 책이 요구하는 사항은 꽤 긴데, 덕분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렇게 나를 어떻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긴 당부의 페이지가 끝나면 여행이 시작된다. 




첫 번째는 공기의 세계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정신의 힘으로 잠시나마 새가 된 것처럼 날개를 느끼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구름 위에도 올라가 보고, 지구라는 행성을 구경해보기도 한다. 두 번째는 흙의 세계다. 대지로 내려와서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짓는 시간이다. 집을 짓고, 집 안을 꾸미고, 내 서재에도 들어가본다. 세 번째는 불의 세계다. 이번에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을 날아 오른다. 그곳은 온통 노란 불빛과 빨간 핏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적과 싸우고, 체제나 조직에 맞서기도 하고, 질병, 불운과도 싸운다. 마지막은 물의 세계다. 이곳은 온통 파스텔 색조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고, 잊고자 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조상과 우주 그 이전으로 점점 과거로 향한다. 서로 다른 분위기와 감정, 이미지로 가득한 각각의 세계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면서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의 내면이다.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덧붙인다.

깨어 있으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

인류는 어쩌면 그런 쪽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p.127


오래 전에 <여행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실험적인 에세이가 4원소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 입었다. 독창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 네 개의 세계를 네 가지 컬러의 내지와 글씨체로 만들었다. 공기, 물, 불, 흙 4원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책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가격까지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공기의 세계는 산뜻한 초록색, 흙의 세계는 따뜻한 브라운, 불의 세계는 강렬한 레드, 물의 세계는 시원한 블루 컬러의 내지로 만들었다. 내지 컬러만 다른 게 아니라 각각의 세계는 글씨체도 각각 다르다. 그래서 하나씩 떼어내면 4권의 다른 책이 될 것만 같은 구성이다. 각각의 세계를 상징하는 컬러는 표지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색감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표지 디자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보적인 상상력을 그대로 물질화시켜서 보여주는 북디자인이라니.... 작가만큼이나 디자이너에게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책이다.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이 가진 물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현실로 구현시켜 준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직접 알려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이 우리를 데려가는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니 거의 유일무의하지 않을까. 열린 책들의 디자인은 매번 감탄하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코 손에 꼽을 만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책이 주는 물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작품은 꼭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