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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진화론적 생존 법칙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진화는 때로 기적처럼 느껴진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적응법을 생각해내며 환경이 제시하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끊임없이 정복해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유기체는 조건이 달라질 때 기존 능력을 이용해 새로운 생존 기회를 활용하고, 그 뒤에 자연선택을 통해 그 능력을 조정할 뿐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는 유명한 글 <진화적 땜질>에서 진화란 새로운 구조를 발명하는 일보다 기존의 구조를 수정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p.58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어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화두가 되어 진화 인류학, 뇌과학의 시점으로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꽤 많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현장생물학자의 시선으로 ‘불완전함’이야말로 생명의 가장 오래된 전략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30억 년 자연사에서 4번의 대멸종을 견디며 살아남은 개체들은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불완전함 덕분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구의 격변기마다 많은 종이 멸종했지만 동시에 어떤 종은 살아남았다.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기존 환경에서 가장 완벽한 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생물은 약 40억 년 동안 끊임없이 자가재생을 거듭해왔다. 주변과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생존하고 번식할 기회를 만들어 '끊임없이 생존'해왔다. 유기체와 환경 사이에는 언제나 불일치가 존재한다. 다윈은 주어진 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개체수를 넘어서서 비슷한 환경 자원을 필요로 하거나 선호하는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은, 결국 적합한 조건에 사는 유기체가 끊임없이 '생존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갈등은 삶에서 영속적인 요소인 것이다. 유기체는 대물림, 탐색, 이동을 통해 이러한 환경과의 갈등에 대응해왔다. 저자는 말한다. 진화란 가장 뛰어난 일인자를 걸러내는 관문이 아니라, 살아남아 번식하는 모든 개체를 선호하는 헐거운 과정이라고. 완벽함이 아니라 환경에 그럭저럭 적응하는 적당함이 현재 '인류세'의 위기를 극복해낼 진화적 회복력이 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류는 지금 위태로운 시대를 살고 있고, '지속 가능성'에서 '생존 가능성'으로 담론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활방식이 진화를 따르지 않고 '성장은 좋은 것' '적자생존' '기술이 우리를 구원한다'라는 사회경제적 방식으로 전환된 사건을 인류세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인류세가 저무는 인류세의 가을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기술 인류가 더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세가 빠르게 변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SF소설에서는 오랫동안 종말 이후의 인류 사회를 디스토피아나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일을 반복하며 양측의 치명적 결함을 지적했다. p.407~408
전 지구적 기후 변화로 인해 인류의 거주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한 세기 넘게 경고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문제는 인간이 습관의 동물이어서 환경이 달라져도 행동을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와 지구 생물권은 '복잡한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교통, 위생, 의료, 전기, 식량, 물, 인터넷 등 기술에 기반한 시설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듯한 변화이지만, 우리가 통제하거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역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지구가 임계점을 넘기 직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인류가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근본적 문제는 경제 성장과 개발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존'이 될 것이다. 생존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주된 관심사이고, 인간과 생물권이 상호작용할 때 진화의 원리를 택하는 일은 인류의 미래에 가장 중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고 다가오는 변화에 대처하려면, 예상치 못한 조건 변화에 대처할 잠재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화적 잠재력을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 최재천 교수가 이 책을 추천하며 <사피엔스>를 읽고 좌절한 독자들에게 권한다고 했는데, 그만큼 잘 읽히는 책이다. 각 장마다 요약 항목을 두어 한번에 정리해 두어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구성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초기 인류의 역사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전 지구적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놀라운 통찰을 만나보자. 진화적 관점에서 인류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인류세 다음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