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은 독
오리가미 교야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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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걸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풋내기 같은 말을 덧붙이자면 그렇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그렇지 않았잖아. 다시 똑같은 짓을 한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면 어이없어할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어딘가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쁜 기억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같은 선택으로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내고 싶었다. 이번에는 꼭.               p.67


아버지의 모교 법학부에 입학한 대학생 기세는 우연히 학창 시절 동경의 대상이자 멋있는 형이었던 마카베 씨를 만난다. 그가 의대생이고 기세가 중학교 3학년때 과외를 받았었는데, 몇 번이나 함께 놀러 간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냈었다. 이후 이사와 고등학교 입시로 자연스레 사이가 멀어졌었는데, 무심코 들어간 인테리어 매장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식사를 몇 번하고 그의 집에 갔다가 협박 편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혼을 앞둔 그에게 '양심이 있으면 결혼하지 마라'는 식의 협박 편지가 한두 달 전부터 왔다는 거였다. 결혼을 앞두고 여자 친구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있는 그가 걱정이 되어, 기세가 대신 나서기로 한다.


기세는 학창 시절 아마추어 탐정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던 기타미 선배에게 수사를 의뢰한다. 정의감이 넘치는 성격인 기세는 어떻게든 마카베 씨를 돕고 싶다는 마음에 주변 사람들 모르게 범인을 찾아 달라고 말한다. 의뢰를 할지 망설이는 마카베 씨를 대신해 자신이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나선 것이다. 이야기는 사건을 의뢰한 기세와 조사에 나선 기타미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조사가 조금씩 진행될수록 협박 사건의 배경에 또 다른 사건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과거에 벌어졌던 어떤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기타미는 여전히 합법과 불법을 조금씩 넘나들며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함께 조사하기 시작한다. 





뭔가 마음에 걸린다.

위화감, 꺼림칙한 예감,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그게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모르면서 입 밖에 내면 안 된다. 나가노와 만나 이야기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생각이라면 좋겠다. 그러길 바라며 마카베의 손을 잡고 애매한 미소를 돌려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럴 때 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p.294


의사를 꿈꾸던 마카베는 왜 학교를 그만두고 인테리어 가게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걸까? 마카베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협박범의 정체는 누구일까? 마카베는 왜 경찰에 신고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일까.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사실은, 마카베가 대학생 때 범죄를 저질러 체포당한 적이 있다는 거였다. 밝고 사교적이며 친구가 많았던 마카베가 범죄자였다니 기세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협박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가 과거에 저지른 범죄의 당시 피해자인 것일까. 게다가 마카베는 기세에게 말한다. 체포된 건 사실이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이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조금씩 드러나는 비밀은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누구라도 이 작품의 결말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서늘한 그 결말은 극단적인 딜레마로 이어지는데, 나라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기억술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오리가미 교야의 신작이다. 잊고 싶은 기억을 깨끗하게 지워주는 도시전설 속 괴인 '기억술사'를 둘러싼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굉장히 동화적인 독특한 작품이었다. 주로 감성 미스터리, 노스탤직 호러라는 장르를 쓰는 작가인 줄 알았는데, 사실 미스터리와 판타지, 로맨스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써왔다고 한다. 작가가 변호사로 일해온 이력을 살려 쓴 ‘변호사 기무라&다카쓰카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꽃다발은 독>은 그야말로 소름 돋는 결말과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미스터리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어온 그가 미스터리 장르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도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더 본격적인 미스터리 작품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아직까지 오리가미 교야의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우선 독자들로부터 충격과 찬사를 동시에 불러일으킨 이 작품부터 읽어보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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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윙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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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둬라, 소른게일. 희망은 변덕스럽고 위험하다. 희망은 네 집중력을 훔쳐서 원래 가야 할 곳이 아니라 가능성을 겨냥하게 만들어. 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일어날 일에 집중해야 해."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살 거라는 희망을 품지 마? 죽을 계획이나 짜?"

"죽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너를 죽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해."               p.179


400년간 전쟁 중인 두 나라가 있다. 덕분에 이곳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20살이 되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는 법이 있다.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는 힐러, 서기, 보병, 라이더라는 4개의 분과가 있었고, 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라이더들이 위계상으로 가장 높았다. 혹독한 훈련에서 살아남아 능력을 증명해야만, 드래곤의 선택을 받아 라이더가 될 수 있었다. 약한 자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이곳의 사령관인 어머니에 의해 자의와는 상관없이 라이더 분과에 지원하게 된다. 영리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평생 서기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명성을 이어주길 바라는 어머니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빠와 언니 모두 뛰어난 라이더였는데도, 바이올렛은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병을 갖고 있어 시작부터 다른 지원생들에 비해 불리했다. 돌아가신 아빠처럼 책을 좋아했고, 기록 보관소인 아카이브를 집처럼 느꼈던 바이올렛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다. 그녀는 매 순간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를 되뇌이며 지내야했다. 하지만 사령관에게 앙심을 품고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시작부터 온통 지뢰밭투성이였다. 국가는 반역 지도자들의 자식을 부모 죄에 대한 처벌로 징집했고, 군사학교 내에 반역의 인장이 찍힌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 부모들을 처형했던 것이 바로 바이올렛의 어머니였기에 그들은 그녀가 누군지 알자마자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가 반역을 이끈 대반역자였던 3학년 제이든 라이오슨이 가장 요주의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는 드래곤의 선택을 받아 라이더가 되었고, 지금은 비행단장으로 진급한 상태라고 하니 무조건 피해야 하는 존재였다. 자, 바이올렛은 이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암투 속에서 무사히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죽을지도 모르겠다.

맹렬한 바람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고 내장이 저 위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떨어진다.

테른이 포효한다. 패닉이 깃든 음성을 듣고 힘겹게 눈을 떠보니 테른이 나를 향해 급강하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테른을 느낄 수가 없다. 아카이브 바닥을 디딘 내 발도 느낄 수 없고, 마력에 접근할 수도 없다. 나는 기반을 잃고 잘려 나왔다.              p.650


라이더 분과에서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열한 생존 투쟁을 해야 한다. '드래곤 라이더'가 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폭풍우가 몰아치는 높이 60미터 위의 아찔한 난간다리를 건너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원자의 꽤 많은 수가 죽음을 맞이한다. 무사히 건너편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매주 목숨을 건 격투 시합을 치러 살아 남아야 하고, 최악의 악몽을 구현해놓은 것 같은 험악한 장애물 코스를 지나야 하며, 그 모든 과정에서 살아 남아도 드래곤에게 선택 받는 과정에서 불에 타 죽을 확률도 극복해야 했다. 작고 약한 바이올렛은 자신의 뛰어난 머리와 기억력을 이용해 온갖 방법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기어코 살아남는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가 작품의 중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점이다. 그 뒤에 펼쳐질 이야기들이 더 스펙터클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게다가 압권은 그 모든 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해리포터>와 <트와일라잇>을 잇는 작품이라는 호평과 함께 아마존에서 엄청난 화제였던 바로 그 작품이 드디어 국내에 출간되었다.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22만 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다는 것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독자들을 매혹시킬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와 마법, 음모와 액션,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골고루 보여주며 드래곤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로서도 매력적이고, 작고 약한 한 소녀의 성장 서사로도 흥미진진하다. 분명 페이지 위의 '글자'를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눈앞에 3D로 드래곤과 등장 인물들이 나타나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만큼 영상화하기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전 시리즈가 이미 영상화 확정되었다고 하니 어떤 배우가 바이올렛과 제이든 역할을 맡을 지도 기대가 된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아이언 플레임>은 올해 10월에, 그리고 3권 <오닉스 스톰>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랜 만에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끝내주는 작품을 만난 것 같다. 두툼한 하드커버에 무려 662페이지라는 분량도 가뿐하게 넘어서는 몰입감을 안겨줄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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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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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지만 아기 달은 지구 옆에 있거든요. 어릴 땐 천진하게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얼굴을 보여줍니다. 기쁜 얼굴, 슬픈 얼굴, 토라진 얼굴, 신난 얼굴, 쓸쓸한 얼굴, 전부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지구에서 멀어져 별로 돌지도 않고, 급기야 지구에는 보여주지 않는 얼굴을 갖게 되죠. 뒤에 도사린 나쁜 얼굴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일면이라고 할까요. 달의 뒷면처럼.... 뭐 성장한다는 게 다 그럴 테지만, 역시 슬픈 일이죠."            - '달까지 3킬로미터' 중에서,  p.40


남자는 지금 후지산으로 향하는 중이다. 한 이틀 전부터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 일에 신경 쓰느라 아내에게 소홀해졌고, 독립 후에는 경영 악화로 더 집에 신경을 못쓰다 보니 결국 아내는 떠나고 남은 건 엄청난 부채뿐. 어쩔 수 없이 본가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얹혀 살게 되었는데 이듬해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트 일을 하며 아버지를 돌보다 결국 힘에 겨워 양로원에 입소시키고 나니, 쉰 살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존재마저 반쯤 어디로 사라진 느낌이 든다. 기댈 곳도 없었고, 아직 빚도 남았으며, 전부 허무해져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저녁 식사 후 우연히 택시를 타게 되는데, 기사는 죽을 곳을 향해 가는 남자를 달과 가장 가까운 장소로 데려간다. ‘달까지 3킬로미터라는 안내판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에서 남자는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달의 뒷면이 가진 의미에 대해,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지독히 씁쓸하지만, 어딘가 마법같은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삶에 대한 의미를 잃어 버리고 죽을 곳을 향해가는 남자와 택시기사와의 우연한 하룻밤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표제작인 <달까지 3킬로미터>이다. 지금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대략 38만 킬로미터인데, 40억 년 전보다 더 옛날에는 그 거리가 지금의 절반 이하였다고 한다. 지구에서 보는 달의 크기가 지금의 무려 여섯 배 이상이었다는 건데, 아마 육안으로 크레이터까지 보일 정도의 거리다. 달에 관한 지식을 늘어놓는 어딘가 수상한 택시기사는 사실 고등학교에서 지구과학 교사였다고 한다. 학생들을 모집해 천문부를 만들고 아들과 둘이서 밤마다 달을 보곤 했다는 그의 사연은 담담하게 이어지다 어느 순간 울컥하는 감정과 부딪치게 만든다. 부모가 지구, 아이가 달이라며 비유하게 된 계기도 아마 그 사건 때문일텐데,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였다.




떠들썩한 가족이었다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실제로는 저마다 마음껏 쏟아내는 요구에 내가 군말 없이 응해왔을 뿐, 내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다. 내 마음을 헤아리거나 몸을 염려하는 사람도 없다. 어느새 나는 가족들이 잘게 쪼개도 괜찮은 상대가 되어 있었다. 마치 아무리 잘게 쪼개 가져가도 늘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산처럼. 전업주부가 다 그렇지.... 마음속 어딘가에서 여전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미 첫발을 내디뎌버렸다.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되건 제자리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 '산을 잘게 쪼개다' 중에서, p.251


인상적인 표제작 외에도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씁쓸하지만 다정한, 담백하지만 뭉클한 일곱 편의 작품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지만,  과학적 지식과 과학자가 바라보는 시선을 거쳐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하늘에서 보낸 편지>에서 30대 후반의 독신 여성이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기상청에서 일하는 그 남자와의 스토리는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로 연결된다. 〈암모나이트를 찾는 법〉에서는 부모의 별거와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에 병이 온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이 시골에 내려와 우연히 화석 채굴에 인생을 바쳐온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매일매일 화석을 캐고, 조사하고, 모으는 일을 해온 할아버지를 통해 소년은 조금씩 굳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이요하라 신은 지구행성물리학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과학자의 시선으로 여러 작품을 써왔다. 이 작품 역시 매 이야기마다 과학적인 지식과 정보가 꽤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가 있어 전혀 어렵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눈 결정 연구에 진심인 기상 덕후, 날마다 화석을 캐는 전직 박물관 관장, 화산을 누비며 돌을 수집하는 대학 강사, 외계인처럼 보일 정도로 수상한 연구원 등 과학이 일상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인간의 삶에 대한 비유를 과학적 지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절묘한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문학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과학의 목소리를 이렇게나 아름답고, 이질감없게 잘 녹여낸 작가가 또 있었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단연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너무 좋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과 함께 출간된 <8월의 은빛 눈>도 궁금해져 바로 주문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설레임을 안겨준 작가 이요하라 신의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소개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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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어원 사전 - 이 세계를 열 배로 즐기는 법
덩컨 매든 지음, 고정아 옮김, 레비슨 우드 서문 / 윌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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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는 어느 면으로 보아도 평범하지 않은 나라다. 화산과 유황이 넘쳐나는 풍경에는 얼음과 불뿐 아니라 장대한 폭포, 구릉진 초원, 먹빛 해변, 발광하는 지열 웅덩이도 있다. 국토가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판에 걸쳐 있고, 그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지리와 지질은 아이슬란드만의 거칠고도 환상적인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이토록 극단적이고 외딴 섬이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곳에 토착민은 없다. 이들 역사에는 서기 800년 무렵부터 강인한 부족들이 와서 얼마간 살다가 떠나는 일이 거듭되었다... 덕분에 아이슬란드는 복잡한 명명의 역사를 갖게 되었고, 그 과정에 어원과 관련된 몇 가지 멋진 이야기가 남았다.              p.98~99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미지의 대양을 항해하고 미답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옥스퍼드 오늘의 단어책>, <미식가의 어원 사전>, <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등 윌북에서 출간된 단어와 어원에 관련된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 왔다. 이번에는 각 나라의 이름에 숨은 어원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 주는 <여행자의 어원 사전>을 만나 보았다. 




이 책의 저자인 덩컨 매든은 지난 20년간 6개 대륙, 65개 나라를 여행하며 그곳에 얽힌 어원들을 조사하고 수집해왔다. 단어 하나에는 오래전에 사라진 문화, 민족 이동, 종교, 언어, 갈등, 정복, 지형, 지도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이름은 단순하게 침략자의 이름을 따거나 주요 지형에서 오기도 하지만, 어떤 지명은 수많은 이야기와 수수께끼가 뒤얽힌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달의 배꼽에 있는 나라라는 뜻을 가진 멕시코, 수수께끼의 유령 섬에서 비롯된 브라질, 고대 스칸디나비아어로 얼음 나라라는 뜻의 아이슬란드, 자유롭다는 뜻의 고대 프랑스어와 중세 라틴어에서 온 프랑스, 모가디슈 항구로 착각해 탄생한 이름 마다가스카르 등 각각의 나라 이름에는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베리아반도의 태양을, 그리고 토끼를 즐겼다면 이 기회에 긴 육상 국경을 넘어 똑같이 강렬한 햇빛이 가득한 이웃 나라를 방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잉글랜드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을 이룬 나라, 탐험가와 어부로 이루어진 바다의 민족, 대항해시대의 선구자. 바로 포르투갈이다. '바다가 가꾼 정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나라는 어원부터 풍부하고 다문화적인 역사를 잘 반영한다. 포르투갈Portugal이라는 이름은 다른 많은 경우처럼 한 언어의 단어가 시간에 따라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른 언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태동 시점부터 두 언어가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p.155~156


언어가 변천해온 모습을 통해서 과거를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단어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역사이자 미래이기도 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에는 각각 이름이 있게 마련이고, 그 이름에는 긴 역사가 서려 있다. 익숙한 나라의 이름들에 숨겨진 배경과 사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통해 어원 여행을 하다 보면 거의 모든 국명의 어원이 네 갈래 중 하나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요 지형, 위치나 방향, 민족, 유명하거나 중요한 인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해와 착각이 놀라울 만큼 큰 역할을 하는데,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각의 나라마다 지도가 함께 표기되어 있어 위치에 대한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오고, 군데군데 깨알같은 틈새 정보도 재미를 더해준다. 지구를 원통형으로 가정해서 만든 지도인 메르카토르도법의 문제, 맥도날드 해피밀의 원조가 미국이 아니라 과테말라였다는 사실, 코스타리카의 주민들이 사용하는 '푸라 비다'라는 스페인어의 뜻, 아단나무 잎으로 만든 파나마 모자는 실제 파나마에서 만들지 않는 다는 정보, 베네수엘라에 있는 세계 최고 높이의 폭포의 진실, 스페인의 세계적 수출품 중의 하나인 츄파춥스의 초현실적인 이야기, 아프리카의 비밀스러운 종교인 부두교에 관한 오해 등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세계지도를 보면서 나라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궁금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줄 것 같다. 덩컨 매든이 수집한 각 나라의 이름에 깃든 이야기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도 한층 더 넓게 만들어 준다. 


나라 이름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들 속에는 미스터리한 전래 동화 같은 어원도 있었고, 혼란과 투쟁의 역사가 깃든 이름도 있었으며, 거대한 전설에서 비롯된 나라도 있었고, 어이없는 실수가 더해져 오늘날의 이름이 된 곳도 있었다. 단어의 어원을 따라가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나라들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언어의 마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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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역사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Future Publishing 지음, 강영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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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거의 모든 문화에 마녀라는 개념이 확인된다. 사소한 차이는 있으나 마녀는 대체로 어둡고 사악한 무언가, 무시무시한 무언가를 상징한다. 하얀 옷을 두른 무구한 처녀와는 대조적으로 마녀는 늙고 추하며, 솥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고 무방비한 희생자에게 재앙과 다툼을 부를 계략을 꾸미고 있다. 마녀는 여성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며, 착란에 빠졌고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마녀는 감당할 수 없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마녀의 이미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마녀가 조합하는 약처럼 오랜 세월 동안 신화, 종교, 탄압이 섞여 달여진 것이다.               p.12


'마녀사냥'이라는 말은 현대에서 빈번히 쓰인다. 인터넷, 언론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때, 혹은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지닌 인물에 대해 기득권이 행하는 위협 등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중세 시대에는 평범한 여성들이 마녀라고 누명이 씌여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곤 했다. 실제로 가혹한 마냐사냥의 시대 동안 7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처형당했다고 할 정도이니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녀사냥은 왜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 책은 중세에서 근세까지 유럽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의 전모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마녀사냥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는지, 여러 사건들의 사례를 강렬한 일러스트와 상세한 해설로 낱낱이 보여준다. 


근데 유럽과 미국의 마녀사냥꾼들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고문하고 사형대로 보냈다. 무엇이 이러한 참사를 일으킨 것일까. 수 세기 동안 권력자들은 요술을 사회를 위협하는 어리석은 미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요술을 믿는 것을 요술 자체보다 위험하다고 여겨 엄벌에 처했다. 마녀사냥은 요술을 박멸하고 판별하기 위한 목적의 하나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평범한 여성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았으며, 혐의가 풀리지 않는 경우 고문이라는 수단을 통해 억지로 결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단 마녀로 소환되면 진위가 무엇이든 죽음으로 가는 길 밖에 없었다. 





르네상스기는 예술의 추구와 과학적 사고가 유럽에서 개화한 시대로 인식된다... 하지만 동시에 진보는 의혹의 색을 띠었고, 사람들은 열심히 연금술 같은 수상한 과학을 추구했다. 유럽사에서 문명이 개화하는 시대에 주로 신성 로마 제국에서 대규모 마녀사냥이 일어난 것은 기묘하게 느껴진다. 전쟁, 기아, 종교적 및 사회적 격동이 얽혀 의혹과 히스테리가 양성되기 알맞은 환경이 갖춰졌다. 이렇게 일어난 혼란기 동안 공동체가 겪는 재난에 대한 대처법으로 초자연이 이용되었으며, 희생양을 원하는 자들은 악마와 손을 잡고 신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마녀를 표적으로 삼았다.           p.82


마녀와 마녀재판은 과거의 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단서임과 동시에 현대의 문화 산업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나 스토리의 모델이 되었다. <더 위치>, <아메리칸 헌팅>,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등의 작품들은 모두 실제 마녀재판을 소재로 하거나 당시의 자료들을 면밀하게 조사해 분위기를 재현했다.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기묘하며 폭력적인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15명의 가장 악명 높은 마녀에서는 실제 마녀라 불린 여성들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미국, 스웨덴 등 다양한 나라의 경우를 엿볼 수 있다. 




성전기사단, 군힐드, 나바르의 잔, 엘리자베스 우드빌등 마녀의 전설을 만든 사람들과 흑마술과 음모론 등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시기의 정치, 사회적 배경, 마녀로 지목된 사람이 겪게 되는 재판 과정, 악명 높은 마녀사냥 장군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읽을 거리로 가득한 책이다. 책의 판형이 큰 데다 생생한 컬러로 만나게 되는 일러스트와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된 역사적 사실들로 인해 '마녀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안내를 받게 해준다. 


악마의 위협에 노출된 유럽에서 안전이 보장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마녀라고 바로 의심받는 타입에 대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무 이유없이 마녀가 될 수도 있는 시대였구나 싶다. 과부, 노인, 혼자 살며 고양이를 기르거나, 매주 교회에 가지 않고, 기묘한 신체적 특징이 있거나 혼잣말이 많은 것도 마녀로 판정될 여지를 주는 요소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선정된 마녀들을 분간하는 방법 또한 막무가내였다. 가장 유명한 것이 용의자를 물에 던지는 방법으로, 물에 뜨면 유죄이며, 가라앉으면 무죄로 보았다고 하니, 어떤 경우든 용의자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7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마녀 박해와 수색이 천천히 기세를 잃어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성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도, 아직 요술의 혐의로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고 한다. 물론 밝은 면도 있다. 비웃음을 사고 두려움을 받아온 마녀들이 21세기의 긍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어둠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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