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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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소설에서 교묘하게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들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법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은 상황증거나 막연한 의심만 갖고는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불안은 바로 그런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어디에도 확실한 것은 없고, 우리는 그 속에서 끝없는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만큼 복합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법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p.143

 

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법의 궁극적 목적은 정의의 실현에 있다. 그러나 과연 법이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법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가? 이 책의 두 저자는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니, 문학과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법과 문학과 영화'라는 과목의 합동강의를 열기도 했다.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최초로 개설된 안경환, 김성곤 교수의 합동강좌는 폭력과 정의라는 법의 두 얼굴을 소설과 영화로 성찰해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사랑 받았다. 이 책은 강의에서 다른 작품 중 소설 20편과 영화 36편을 엄선해 텍스트로 삼아 두 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집필한 인문교양서이다.

 

푸코는 정의라는 말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정의는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독재자 스스로도 자신이 정의라고 믿고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우리의 군사독재 시절에도 정부의 구호는 '정의 사회 구현'이었으니, 독재자 스스로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대편에서 보면 민주화 투사들이 독재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절대적 정의라는 것이 있을까. '자신이 정의라고 믿으면, 독선적이 되어 우월감과 편견을 갖게 되고, 폭력 또한 합리화할 수도'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만 나누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가치판단은 현실과는 괴리감이 크다. 이 책에서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통해서 정의도 폭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도, 사회도, 정치도 폭력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었다. 그 외에도 <메이즈 러너>, <황야의 7인>,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마당을 나온 암탉>, <엽기적인 그녀>, <앵무새 죽이기> 등의 작품을 통해 정의와 편견에 대해서 흥미로운 시선들을 엿볼 수 있었다.

 

 

<설국열차>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요나와 흑인 소년처럼, 배 속의 아이와 어린 수안은 미래의 상징이다. 기차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며 살고 있고, 그러한 질병은 좀비처럼 전염되어 퍼져나가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살기 좋은 사회를 물려주려면, 지금이라도 좀비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힘을 합해 우리 주위의 좀비들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p.292

 

법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들여다보고, 정의와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살펴보고 나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나 <태극기 휘날리며>, <국제시장>,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괴물>, <설국열차>, <부산행> 등 한국 영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우리 나라의 정치, 사회적인 명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괴물>은 노무현정부 시절에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반미감정을 잘 반영하고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고, <설국열차>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양극단의 싸움이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시스템을 벗어나 외부로 나가는 제3의 길에 구원이 있음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좀비 영화면서도 좀비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점을 보여주었던 <부산행> 속 기차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이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한국의 현대사를 한국적 유머로 조감하고 있는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법과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경계를 넘어 서로 만나며, 그것이 어떤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문학으로 읽어 내는 법이 궁금하다면, 법으로 바라보는 문학은 어떤지 호기심이 생긴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필경사 바틀비>부터 <채식주의자>까지, 그리고 <굿 윌 헌팅>부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까지, 20편의 소설과 36편의 영화 속 뜨거운 논쟁의 순간들이 폭력과 정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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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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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탁기 옆에 우두커니 선 채, 어린 마음에도 확신했다. 내 출생과 관련해서 엄마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고. 그 비밀이 아빠와 관련된 일인지 아닌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엄마 모습이 그날 밤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이번 일도 내 출생과 관련이 있고, 그래서 엄마가 괴로워하는 것일까. 내가 텔레비전에 출연했기 대문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라도 한 것일까.   p.54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대학생 우지이에 마리코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어쩌면 엄마가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왔다. 대학교수였던 아빠는 집에 있을 때도 서재에 틀어박혀 일할 때가 많았고, 언젠가부터 엄마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엄마와의 거리감이 생기게 된 것은 자신이 부모와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민한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집에 불이 나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만다. 마리코와 아빠는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여러 정황상 엄마가 집에 불을 질러 동반 자살을 기도한 것처럼 보이는 사고였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마리코는 우연히 엄마의 유품 속에서 도쿄행 비행기 운항 시간표와 의문의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고, 도쿄로 향하게 된다.

 

도쿄에서 엄마와 단둘이 사는 고바야시 후타바는 대학에서 록밴드 싱어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몰래 텔레비전에 밴드의 멤버들과 출연을 하게 되고, 그날 이후 이상한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진다. 후타바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존재에 대해 전혀 이야길 듣지 못했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해서 엄마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에 대한 진실을 듣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게다가 뺑소니 교통사고의 배후에 의도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엄마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엄마가 젊은 시절을 보낸 홋카이도로 떠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우지이에 마리코와 고바야시 후타바, 두 사람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된다. 마리코와 후타바, 두 사람은 각자 부모의 과거를 추적해 숨겨진 비밀에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완전히 똑같이 생긴 상대가 숨겨진 쌍둥이도, 그저 비슷하게 닮은 것도 아닌 서로의 '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욱 긴장감 넘치게 전개된다.

 

 

나는 머리가 점점 아파 왔다. 마치 2천 조각짜리 직소 퍼즐이 눈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이건 참고할 만한 밑그림조차 없다. 각각의 조각이 제멋대로 존재한다. 가로로도 세로로도 연결되지 않고 어떤 식으로 늘어놓아도 형태가 맞춰지지 않아 도무지 진전이 없다.     p.227

 

이 작품은 히시가노 게이고의 1993년 작으로, 국내에는 <레몬>이라는 이름으로 2005년에 출간된 적이 있다. 이번에 새롭게 옷을 갈아 입고, 원제인 <분신>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금단의 영역을 넘본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오만이 초래한 비극을 그린 장편 ‘메디컬 스릴러’로 현대과학, 첨단의학을 소재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이번 작품 역시 매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일본에서는 2012년에 5부작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나는 이 세상에 유일하지 않다'는 느낌은 어떤 걸까. 누군가의 복제품, 혹은 귀중한 실험의 결과가 나라는 존재라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의 두 인물의 여정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말투도 기질도 재능도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 그런데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흡사해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레몬을 먹는 방법이 같다는 것 정도인데.. 도쿄와 홋카이도에서 각자 출생의 비밀을 찾아가면서 맞춰지는 퍼즐의 조각들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복제 인간, 도플 갱어 등 최첨단 과학과 의학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의 거의 대부분은 미스터리 스릴러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의 사백 여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퍼즐의 조각을 맞추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고, 후반부에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지나친 탐욕과 오만이 초래한 비극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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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0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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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에게 메그는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이자 조언자였고, 성격이 정반대인데도 불구하고 온화한 베스에게는 조가 그런 존재였다. 수줍음이 많은 베스는 조에게만 제 생각을 털어놓았으며, 덤벙대는 조에게 가족 중 그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두 언니들은 사이가 정말 좋았지만 동생들을 한 명씩 맡아 보살필 때는 제 나름의 방식을 고수했다. 자기들끼리 '엄마 놀이'라고 부르면서 버림받은 인형을 보살피듯 타고난 모성본능을 발휘해 동생들을 돌보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p.107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 시리즈 그 열 번째 책은 <작은 아씨들>이다. 1868년 처음 발표된 이래, 수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되며 오래도록 사랑 받고 있는 작품으로, 내년 2월에 엠마 왓슨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개봉될 예정이기도 하다. 허영심이 있지만 책임감이 강한 첫째 메그, 열정적인 성격에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 얌전하고 속 깊은 셋째 베스, 사고뭉치 귀여운 막내 에이미, 이들 네 자매가 풀어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나 보자.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고전 명작' 시리즈답게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새롭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 준다. 정말 어릴 때부터 읽었던 작품이라, 이번에 섬세하고 서정적인 일러스트들과 함께 '다시 읽는 시간'이 기대가 되었다.

 

자매들에겐 의지가 되는 큰언니이자 엄마에겐 믿음직한 큰딸인 메그,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경으로 자매들 중 가장 개성이 강한 작가 지망생 조, 몸은 허약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넓은 셋째딸 베스, 그리고 아름답고 귀여운 용모에 다소 엉뚱한 면도 가지고 있는 사랑스런 막내 에이미. 마치 가문의 사랑스런 네 자매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재미를 안겨 준다.

 

 

그것은 차라리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자매들은 햇살과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나무 그늘에 앉아 향기로운 바람결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뜨거운 뺨을 식히고 있었다. 숲 속 작은 동물들도 그들이 이방인이 아니라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겁 내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메그는 방석에 앉아 하얀 손으로 곱게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분홍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초록 물결 사이에 핀 장미처럼 싱그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베스는 근처 소나무 아래에 잔뜩 쌓인 솔방울을 주워서는 예쁜 물건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에이미는 양치식물 덤불을 그렸고, 조는 큰 소리로 책을 읽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p.320~322

 

낡은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갖고 싶은 예쁜 물건들을 아쉬워하는 메그, 오래 전부터 정말 갖고 싶었던 책을 살 수 없어 투덜거리는 책벌레 조, 새 악보를 사고 싶은 베스와 멋진 상자에 든 파버 표 색연필을 사고 싶은 에이미까지.. 이번 크리스마스엔 선물 없이 지내자고 한 엄마 때문에 이들 자매는 볼멘소리를 내는 중이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고생을 하고 있으니 즐기는 데 돈을 쓰지 말자는 엄마의 말은 이해하지만, 이제 열 몇 살인 소녀들에게 크리스마스란 선물과 함께 해야 하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네 자매의 일상은 잔잔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좌충우돌 사건들이 이어지기도 하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제법 두툼한 이 책의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일러스트들이 너무 예뻐서 설레이는 마음을 안겨주고, 그림만 따라가면서 읽어도 한 편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 시리즈는 클래식한 프레임에 좀 더 커진 판형으로 가독성을 높였다. 그래서 소장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너무 예쁘고 실용적인 책이기도 하다. 외모도, 성격도 너무 다른 네 자매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투명한 수채화의 담백한 일러스트와 만나 더 뭉클하게 보여지는 작품이라 다시 읽으면서 설레이는 마음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잊고 있었던 당신에게,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 속의 자신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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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 가이거 지음, 김주희 옮김 / 파피펍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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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핸드폰 화면에서 시선을 거뒀다. 리무진 좌석의 온도 조절 버튼을 만지작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사과는 했다. 이제 대화를 마쳐야 한다. 계정을 닫아야 한다. 증거를 없애야 한다. 혹시 누가 자칫 알아내기라도 하면 끔찍한 사태가 일어날 거다. 하지만 이건... 너무도 혹하게 하는 제안이었다. 완벽했다. 자기도 모르게 한 기도에 응답이 온 것만 같다. 이 여자애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처음 보는 계란 계정. 그런데도 대화를 하자고 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순수한 친절함 외에 다른 동기는 없이.   p.110~111

 

테사는 지난 6월 청소년을 위한 창의적 글쓰기 8주짜리 여름 캠프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고, 결국 프로그램을 반이나 남긴 채 자신의 안정한 방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공황 장애 혹은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24시간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셀프 감금 상태인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출구는 아이돌 스타 '에릭 쏜'을 추종하는 온라인 팬덤 활동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 갑작스럽게 그녀의 트위터 계정에서 난리가 난다. 에릭에 관해서 주말에 글을 하나 올리며 #에릭쏜중독, 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는데 유명한 에릭 쏜의 팬들이 리트윗을 시작하며 삽시간에 확 퍼져 현재 팔로워가 3만이나 된 것이다.

 

열여덟 살의 팝스타 ‘에릭 쏜’은 지난 6월 보이밴드 멤버였던 도리안 크롬웰이 여성 팬에게 살해당한 사건 이후로 심한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에릭의 트위터에 있는 천사백만 팔로워들 대부분이 그에게 열광적인 여성 팬들이라, 도리안에게 벌어진 일이 자신에게 생기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한참 온라인 상을 달구고 있는 #에릭쏜중독, 이라는 해시태그 또한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음악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여성 팬들은 그의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는 팬들이 #에릭쏜중독에 반발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트렌딩 순위 1위에서 내려가게 만들기 위해 익명의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스스로의 안티팬이 되기로 하는데.. 상황은 그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테사의 신경을 다른 곳을 돌리려는 테일러의 뻔한 수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재미있다. 테일러는 테사가 오늘 밤에 왜 자기를 만나는 데 동의했는지 아직 완전히는 모른다. 에릭 쏜 때문인 줄만 알지. 자신의 아이돌 스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집 밖으로 나갈만한 충분훈 동기가 될 거라고 보는 거다. 물론 테사는 에릭을 사랑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다.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는 테사도 안다. 에릭 쏜은 그냥 판타지다. 하지만 테일러는.... 테일러는 현실이다.    p.280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누군가 스타가 되기도 하고, 팬덤문화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한번쯤 자신만의 아이돌 스타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만나 인간적 신뢰를 쌓고, 우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우리에게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고, 연예계의 이면, 극성팬의 심리, 그것을 바라보는 팝스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 심한 우울증으로 활동을 중단한다거나, 공황장애를 겪거나,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 온라인 상의 악플 등에 의해 젊은 연예인들의 피해 사례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비보가 들려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 A.V.가이거의 이력도 흥미롭다. 전염병학자이자 작가인 그녀는 연예인 팬픽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작품 대부분이 온라인 팬 문화에 관한 본인의 경험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여가시간 대부분을 소셜미디어에 쏟아 붓고, 모든 업무가 끝난 밤에는 여전히 맹렬한 덕질로 바쁘다고 하니,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생생한 현실감이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단순히 팬과 스타의 만남을 그려내는 오글거리는 판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실제 범죄가 벌어진 다음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경찰 조서, 트윗, DM 등의 형식을 고스란히 차용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며 탄탄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모호하게 마무리되는 엔딩 또한 테사와 에릭의 다음 이야기를 고대하게 만든다.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의 2권을 집필하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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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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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기억은 쉽게 가동된다. 매일 똑같은 결정을 내릴 때 습관 기억이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정보를 일관된 전체로 묶는 과정을 '덩이 짓기'라고 부른다...습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힘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정해진 반응이 튀어나온다. 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치켜들지 않고도 일이 처리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도 똑같은 방식으로 형성된다.    p.86~87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의욕에 불타는 시기가 바로 요즘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연초에는 새해의 계획을 세우며 올해는 좀 달라진 자신을 상상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당신에게 매우 유용한 조언을 안겨 준다. 30여 년간 인간 행동의 근원을 연구한 웬디 우드는 금세 고갈되어 사라질 의지력 대신 주변 상황의 조건을 살짝 바꿔 저절로 목표를 달성하는 ‘습관 과학’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 책에서 뇌 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해 습관의 형성 원리와 작동 방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노력과 투지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몰아붙이는 세상 속에서, 거꾸로 상황에 집중해 애쓰지 않고도 자동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검증된 습관 설계 법칙이 있다면 어떨까. 30여 년간 인간 행동의 근원을 탐구해 온 저자가 수천 건의 실험과 수십만 명의 피험자로 밝혀낸 대답은 매우 흥미롭다.

 

가장 흔한 습관은 샤워, 이 닦기, 옷 입기, 취침, 기상 등이다. 이러한 일상적 행동의 88퍼센트는 의식적 자아의 개입 없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일과 관련된 행동 중에는 55퍼센트가, 격한 신체 활동에서는 44퍼센트가, 휴식과 관련한 행동에서는 48퍼센트가 습관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저자가 밝혀낸 사실은, 우리 삶에서 습관에 지배되는 행동의 비율은 개인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삶에서 습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적으로 43퍼센트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에서 습관이 관여하는 영역이 이토록 크다는 점에서 깜짝 놀라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무려 43퍼센트나 되는 행동이 습관적으로, 의식적 자아의 개입 없이 수행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을 좀 더 체계적인 습관으로 재창조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마음만 먹으면 삶의 43퍼센트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57퍼센트 영역도 습관이라는 시스템으로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습관이 설계되는 원리는 명백하다. 특별한 계획이나 심사숙고 없이 어떤 행동을 반복적으로 지속할 때 습관은 형성된다. 상황에 통제권을 넘겨주면 행동(반응)은 신호에 자동으로 반응하게 된다.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마찰력을 적절히 배치하고 제거하면 좋은 습관은 촉진되고 나쁜 습관은 억제된다. 결국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건강한 음식을 먹고, 제시간에 일을 끝마치고, 가족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표현한다. 이것이 방치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습관 설계의 법칙이다.    p.233

 

당신이 만약, 매주 3회 이상 헬스장에 가는 행동을 시작하고, 저녁으로 치킨 대신 고구마와 샐러드를 먹는 행동을 시작했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그것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지 않을 때까지이다. 바로 그때 습관이 형성되며, 1년 뒤 우리는 달라진 자신의 몸을 보고 흡족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그러한 마법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시작된다. 단,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와 기억 시스템에 습관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그 반복은 습관을 낳고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삶이 자동조종 모드로 운전을 시작할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반복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인내심이 부족한 독자들이 궁금해할 그 '횟수'나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런던대학교 학생 96명에게 40달러씩 주고 3개월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어떤 행동이 자동화됐다고 느낄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66일'이었다. 즉, 새로운 행동을 두 달 조금 넘게 반복하면 습관이 형성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다. 저자의 말처럼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불안을 낳고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삶은 금세 헝클어지게 마련이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다가올 미래를 앞서 고민하지 말고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습관'이다. 습관적 마음은 철저하게 무심한 마음이다. 나 역시 너무 생각이 많은 인간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올해는 조금 더 단순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그리고 습관이 더 나은 삶으로 이끈다면,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좋은 습관을 형성하도록 노력해봐야겠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특정 행동이 저절로 일상에 뿌리내리도록 유도한 ‘습관 설계 법칙’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들이 아니어서 더욱 와 닿았던 것 같다. 자, 그럼 의지박약과 노력만능이라는 거짓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습관 과학'에 대해 만나 보자. 어쩌면 올해에는 나도, 당신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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