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우 미 백
A.V. 가이거 지음, 김주희 옮김 / 파피펍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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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은 핸드폰 화면에서 시선을 거뒀다. 리무진 좌석의 온도 조절 버튼을 만지작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사과는 했다. 이제 대화를 마쳐야 한다. 계정을 닫아야 한다. 증거를 없애야 한다. 혹시 누가 자칫 알아내기라도 하면 끔찍한 사태가 일어날 거다. 하지만 이건... 너무도 혹하게 하는 제안이었다. 완벽했다. 자기도 모르게 한 기도에 응답이 온 것만 같다. 이 여자애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처음 보는 계란 계정. 그런데도 대화를 하자고 한다. 사람 대 사람으로. 순수한 친절함 외에 다른 동기는 없이.   p.110~111

 

테사는 지난 6월 청소년을 위한 창의적 글쓰기 8주짜리 여름 캠프에 참가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고, 결국 프로그램을 반이나 남긴 채 자신의 안정한 방으로 도망쳐왔다. 그리고 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지금까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공황 장애 혹은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24시간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셀프 감금 상태인 것이다. 그녀의 유일한 출구는 아이돌 스타 '에릭 쏜'을 추종하는 온라인 팬덤 활동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 갑작스럽게 그녀의 트위터 계정에서 난리가 난다. 에릭에 관해서 주말에 글을 하나 올리며 #에릭쏜중독, 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는데 유명한 에릭 쏜의 팬들이 리트윗을 시작하며 삽시간에 확 퍼져 현재 팔로워가 3만이나 된 것이다.

 

열여덟 살의 팝스타 ‘에릭 쏜’은 지난 6월 보이밴드 멤버였던 도리안 크롬웰이 여성 팬에게 살해당한 사건 이후로 심한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에릭의 트위터에 있는 천사백만 팔로워들 대부분이 그에게 열광적인 여성 팬들이라, 도리안에게 벌어진 일이 자신에게 생기지 않으리란 법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한참 온라인 상을 달구고 있는 #에릭쏜중독, 이라는 해시태그 또한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저 음악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여성 팬들은 그의 음악보다는 그의 외모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 급기야 그는 팬들이 #에릭쏜중독에 반발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이 트렌딩 순위 1위에서 내려가게 만들기 위해 익명의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스스로의 안티팬이 되기로 하는데.. 상황은 그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테사의 신경을 다른 곳을 돌리려는 테일러의 뻔한 수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 재미있다. 테일러는 테사가 오늘 밤에 왜 자기를 만나는 데 동의했는지 아직 완전히는 모른다. 에릭 쏜 때문인 줄만 알지. 자신의 아이돌 스타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집 밖으로 나갈만한 충분훈 동기가 될 거라고 보는 거다. 물론 테사는 에릭을 사랑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다.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는 테사도 안다. 에릭 쏜은 그냥 판타지다. 하지만 테일러는.... 테일러는 현실이다.    p.280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누군가 스타가 되기도 하고, 팬덤문화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한번쯤 자신만의 아이돌 스타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익명'으로 만나 인간적 신뢰를 쌓고, 우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 또한 우리에게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고, 연예계의 이면, 극성팬의 심리, 그것을 바라보는 팝스타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을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 심한 우울증으로 활동을 중단한다거나, 공황장애를 겪거나, 극단적인 경우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 온라인 상의 악플 등에 의해 젊은 연예인들의 피해 사례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비보가 들려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 A.V.가이거의 이력도 흥미롭다. 전염병학자이자 작가인 그녀는 연예인 팬픽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작품 대부분이 온라인 팬 문화에 관한 본인의 경험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여가시간 대부분을 소셜미디어에 쏟아 붓고, 모든 업무가 끝난 밤에는 여전히 맹렬한 덕질로 바쁘다고 하니,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생생한 현실감이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단순히 팬과 스타의 만남을 그려내는 오글거리는 판타지 로맨스가 아니라, 실제 범죄가 벌어진 다음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경찰 조서, 트윗, DM 등의 형식을 고스란히 차용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 진행되며 탄탄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모호하게 마무리되는 엔딩 또한 테사와 에릭의 다음 이야기를 고대하게 만든다.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의 2권을 집필하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말이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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