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정의 - 문학으로 읽는 법, 법으로 바라본 문학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안경환.김성곤 지음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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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소설에서 교묘하게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들은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법적으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법은 상황증거나 막연한 의심만 갖고는 집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불안은 바로 그런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어디에도 확실한 것은 없고, 우리는 그 속에서 끝없는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만큼 복합적이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법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p.143

 

우리는 모두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법의 궁극적 목적은 정의의 실현에 있다. 그러나 과연 법이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법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정의란 존재하는가? 이 책의 두 저자는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니, 문학과 영화를 통해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법과 문학과 영화'라는 과목의 합동강의를 열기도 했다. 1999년 서울대학교에서 최초로 개설된 안경환, 김성곤 교수의 합동강좌는 폭력과 정의라는 법의 두 얼굴을 소설과 영화로 성찰해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사랑 받았다. 이 책은 강의에서 다른 작품 중 소설 20편과 영화 36편을 엄선해 텍스트로 삼아 두 학자가 머리를 맞대고 집필한 인문교양서이다.

 

푸코는 정의라는 말 자체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정의는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지만, 독재자 스스로도 자신이 정의라고 믿고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우리의 군사독재 시절에도 정부의 구호는 '정의 사회 구현'이었으니, 독재자 스스로 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대편에서 보면 민주화 투사들이 독재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정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절대적 정의라는 것이 있을까. '자신이 정의라고 믿으면, 독선적이 되어 우월감과 편견을 갖게 되고, 폭력 또한 합리화할 수도'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로만 나누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가치판단은 현실과는 괴리감이 크다. 이 책에서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통해서 정의도 폭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도, 사회도, 정치도 폭력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글이었다. 그 외에도 <메이즈 러너>, <황야의 7인>,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마당을 나온 암탉>, <엽기적인 그녀>, <앵무새 죽이기> 등의 작품을 통해 정의와 편견에 대해서 흥미로운 시선들을 엿볼 수 있었다.

 

 

<설국열차>의 마지막에 살아남는 요나와 흑인 소년처럼, 배 속의 아이와 어린 수안은 미래의 상징이다. 기차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며 살고 있고, 그러한 질병은 좀비처럼 전염되어 퍼져나가고 있다. 어린 세대에게 살기 좋은 사회를 물려주려면, 지금이라도 좀비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힘을 합해 우리 주위의 좀비들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p.292

 

법이 가지고 있는 이면을 들여다보고, 정의와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살펴보고 나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나 <태극기 휘날리며>, <국제시장>,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괴물>, <설국열차>, <부산행> 등 한국 영화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우리 나라의 정치, 사회적인 명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괴물>은 노무현정부 시절에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반미감정을 잘 반영하고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대표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고, <설국열차>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양극단의 싸움이 아닌,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시스템을 벗어나 외부로 나가는 제3의 길에 구원이 있음을 시사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좀비 영화면서도 좀비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점을 보여주었던 <부산행> 속 기차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이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한국의 현대사를 한국적 유머로 조감하고 있는 <국제시장>은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법과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경계를 넘어 서로 만나며, 그것이 어떤 문화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웠다. 문학으로 읽어 내는 법이 궁금하다면, 법으로 바라보는 문학은 어떤지 호기심이 생긴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필경사 바틀비>부터 <채식주의자>까지, 그리고 <굿 윌 헌팅>부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까지, 20편의 소설과 36편의 영화 속 뜨거운 논쟁의 순간들이 폭력과 정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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