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왜 - 우리를 무대로 이끄는 물음들
성수연 지음, 김신중 사진 / 북트리거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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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어는 원래 공간 언어인데, 더 이상 공간 언어가 아닌 선형적인 텍스트 형태의 언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기존에 있었던, 정말 농인들의 언어로 작동했을 때의 수어는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전국에 농인들이 있는 곳을 다 찾아다니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언어들을 번역해서 농인들의 삶과 문화의 가치를 남겨 두고 싶어요. 언어는 시대성을 갖고 있잖아요. 수어는 더욱 그렇거든요. 수어는 당시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무엇을 봤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언어예요. 보지 않았으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렇기에 그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요.              p.183


정말 '벽돌'처럼 느껴지는 묵직한 책이다. 632페지의 두께와 종이의 질감에 하드커버 양장이라는 커버까지 더해져 잘못 휘두르면 무기가 되고 말 것 같은 엄청난 책이 만들어 졌다. 물론 그만큼 담고 있는 내용도 묵직하다. 이 책은 배우와 연출가, 무대감독, 수어통역사, 관객 등 서로 다른 자리에서 무대를 살아 내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웹진 <연극in>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엮었다. 동시대 창작자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떻게 작업하며, 그 일을 왜 하는지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정한 이름이 '무엇을, 어떻게, 왜'라고 한다. 웹진에 게재되었던 인터뷰들을 정리하며, 2025년 1월 모든 인터뷰이를 다시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눴고 그 또한 이 책에 함께 수록했다. 두 차례의 대화 사이의 시간 큼 생각이 달라진 경우도, 상황이 바뀐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창작을 둘러싼 각자의 시간이 어떻게 새로 쓰이고 있는지를 포착하고, 예술가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하고 이어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아 인터뷰를 두 차례 수록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2021년부터 2025년이라는 시기 또한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연극계 미투, 팬데믹, 그리고 계엄과 탄핵까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있었던 시기니 말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는 말처럼, 관객이라면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제 취향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고 취향이 저를 말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본 공연이 곧 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비건에 관한 공연을 본다고 해서 제가 비건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보는 것이 저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공연을 선택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저를 보여 주는 것도 맞아요. 그래서 저는 취향과 정체성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 공연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아'와 '이 공연은 내 취향이 아니야'는 분명 다르거든요.             p.352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객석 등이 꺼지면서 관객들의 숨죽인 적막과 함께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싼다. 이윽고 조명이 무대 위를 비추고 지휘자의 손끝에서 흐르는 음악이 극장 안을 채우면서 극이 시작되면, 무대라는 공간에 배우가 등장한다. 나와 무대의 거리는 멀어봐야 얼마 안될텐데, 현실과 판타지 세계의 간극은 그 이상이다. 극이 계속 이어질수록 현실은 점점 저편으로 사라지고, 관객들은 현실과 분리되어 무대 위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 속으로 완전히 동화된다. 한때 공연 예술들을 열심히 보러 다녔던 시기가 있다. 연극, 뮤지컬 등을 한 주에 몇 편씩 보고 또 보아도, 늘 새로운 감동과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관객 대표 배서현씨였다. 그녀는 자신의 SNS에 '관곅'이라는 단어를 자기소개처럼 적어 두었다. 관객과 관계자의 합성어인데, 연극을 누구보다 많이 보는 관객이면서 영미권 희곡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이자, 연극 축제의 자원 활동가로 극장 곳곳을 누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연극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연극을 세 편씩 보는, '직업 관객을 꿈꾸는 직장인이다. 어떤 배우를 좋아하는지, 최근에 본 공연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등등 평범한 질문들에 대한 일상적인 답변들도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나도 한때, 그런 관객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각각의 인터뷰는 질문으로 시작해 질문으로 끝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답 없는 질문들로 마무리되는 인터뷰를 통해 다시 질문이 이어지고, 또 다른 가능성으로 세계가 확장되어 간다는 의미다. 우리는 무엇에 가로막혀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걸까? 무엇을 미루고 무엇을 뜸 들이나? 하나의 언어가 완전하게 전달되는 순간을 경험한 적 있어? 너는 무대에서 무엇을 보고 있니? 배우는 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널 가슴 뛰게 하는 건 뭐야? 등등 대답이 없는 질문들을 읽으며 나만의 답을 해보기도 했다. 연극은 이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심도 깊고, 다양한 생각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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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지음 / 물결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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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때때로 거울이나 카메라가 없던 시기의 인간을 상상하곤 한다. 그때 인간이 눈을 감으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나의 겉모습,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내가 가진 것들이 아니라 저멀리 보이는 산그림자나 바다, 주의 깊게 관찰해 온 나무, 새, 작은 풀잎, 꽃, 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그들의 걸음거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겪어본 적 없는 시기를 그리워한다.            p.27


다른 사람인 척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세상 속에서 펼쳐 보이기란 어쩐지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 수치심을 이겨내는 것이 어려워서 사람들은 자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취약성 안에 머물며 온전하고 힘차게 살아가는 것과, 인색하게 굴고 불평하고 두려워하며 삶의 문턱을 온전히 통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하면 더 용감해질 수 있을지, 취약성 안에 어떻게 머무를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해파리 북클럽으로 만나게 된 하미나 작가의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가 도착했다. 이 책은 저자가 2021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쓴 글을 가려 뽑아 대면케 하고, 충돌시키고, 맞물리게 하여 엮어낸 혼종의 텍스트다. 장르로는 논픽션, 에세이, 시, 희곡, 강연록, 대화록, 회고록을 넘나들고, 주제로는 과학과 비과학, 머리와 몸, 이성과 광기, 빛과 어둠, 실세계와 가공물을 넘나든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과학과 문학,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서사, 폭력과 윤리와 지구와 동물,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애초 페미니즘 관점에서 과학사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기획된 이 책은 저자가 2021년 1월부터 쓰기 시작한 과학 칼럼들이 그 토대로, 차별적이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과학에 헌신해 온 여성 과학자들을 조명하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오해와 차별, 혐오를 조장하는 과학을 비판하며, 지구적 차원에서 모두를 위한 더 나은 과학을 전망하는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한 저자가 썼다는 공통점 말고는 하나의 책으로 묶여도 되나 싶을 만큼 방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쉽게 읽히진 않지만, 시간을 들여 읽고, 또 읽고 싶은 글이었다. 강렬한 제목과 아름다운 표지, 그리고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쓴 작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작했는데. 전작보다 더 좋았다. 




세상을 떠도는 많은 이야기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언제나 특정한 관점과 위치성을 가지고 생산된다. 가장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과학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왜 어떤 이야기는 유독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이야기는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특수한 것으로 여겨질까?               p.304


공감되는 글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21세기에 여전히 월경하는 몸으로 살아야 한다니 통탄스럽다.'는 문장을 보며 가장 와닿았던 것 같다. 월경 주기가 시작되기 전 후의 몸 상태와 일상생활의 제약 등 그에 대한 경험에 대한 글들을 읽으며 공감하지 않을 여성이 있을까. 또한 왜 여자는 월경의 시작과 함께 그것을 은폐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여성의 생식력과 관련된 기술은 왜 임신 및 출산과 연결될 때만 중요해지는 것인지, 과학기술이 이토록 발전한 시대에 어째서 월경과 관련된 기술은 이토록 허접한 것인지... 통탄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월경을 정말로 없애고 싶어졌다는 저자의 경험담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는데, 매달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는 산뜻한 상상과 누구도 자신을 임신시킬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좋았다는 문장을 읽으며 이것이 개인의 내밀한 경험이 아니라 여성 전체의 이야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게다가 왜 가임력은 그렇게까지 보존되어야 할까에 대한 질문 또한 여운처럼 남았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직접 낳은 자식 말고도 지구와 동물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등 돌봐야 할 존재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정치, 사회면에 연일 등장하는 기사가 벅차고 누굴 믿는 것이 맞는지 인간관계에 시름이 많아질 때면 바다에 가는 기분으로 과학 책을 읽는다는 대목에 밑줄을 그었다. 그 글을 읽으며 내가 왜 과학 책들을 끊임없이 읽는지,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게 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질문을 던지게 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게 만들어 준다. 하미나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 또한 과학적 태도를 매우 닮았다. 진실을 끝없이 탐구하는 자세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경계를 넘는 앎에 대한 사유까지 모두 배우고 싶었다. 과학의 목표는 곧 진실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것이고, 진실에 가까운 자연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정상성의 렌즈를 벗어던져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거듭 동의하며 이 책을 덮었다. 어떤 진실은 기존 세계의 균열 사이로 비치는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서야만, 나를 갈라 나를 꺼내야만 만날 수가 있다. 그 진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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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미술관 - 화가들이 사랑한 자연, 그 치유의 풍경
강민지 지음 / 아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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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역시 루소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한 평면적인 표현에 공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공개된 대는 외젠 들라크루아나 앙리 마티스 같은 당대의 화가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그곳의 자연 풍경과 원시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던지라 이국적인 분위기와 루소만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신비롭고 감각적인 그림에 많은 사람이 호평을 보냈어요. 시대적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죠.            p.49


<파란색 미술관>에 이어 '색으로 보는 미술관' 그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이번에는 초록빛 자연의 싱그러움을 선사하는 <초록색 미술관>이다. 초록색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피곤할 때마다 초록의 숲을 그리워하게 되는 유전자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다는 연구도 있고, 자연의 색인 초록색이 정서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 책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아름다운 초록 풍경을 담은 그림 15점을 중심으로 화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캔버스 가득 채운 푸르고 울창한 수풀이 보기만 해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그 자체로 치유가 되는 그림을 그린 카미유 피사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방법을 가지고 꿈꿔온 세상을 표현했던 앙리 루소, 붓으로 선을 긋거나 색을 채워 무언가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수많은 점으로 찍어내며 완성하는 점묘법을 창시한 조르주 쇠라, 끝없는 시행착오를 통해 미술사의 방향을 바꾸어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폴 세잔, 세상의 시름과 근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온기를 화폭에 담아낸 구스타프 클림트 등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초록빛 예술을 향한 그들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작품들도 있었고, 조금은 낯선 그림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코 인상적이었던 것은 클림트가 아터제호수에서 그린 풍경화들이었다. 클림트하면 바로 떠오르는 황금빛 작품들 못지않게 소박한 자연의 풍경이 보여주는 초록빛 색채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온기를 받아야 살아납니다. 시든 식물에 물과 햇빛을 주면 다시 싹이 트듯, 상처받은 사람도 관심과 배려를 받으면 삶의 의지를 되찾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대체로 배려심과 이해심이 깊으며, 조건 없는 도움을 아끼지 않기에 그와의 관계는 오래 지속됩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그런 따뜻한 마음을 지닌 친구가 있었습니다.                p.285


'자연=초록색'이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초록색은 자연을 연상케 하는 동시에 생명, 휴식, 풍요, 에너지, 희망, 행운 등 긍정적인 의미들을 듬뿍 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책상 위에 화분 하나를 놓아두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나무를 만지는 것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맨손으로 정원일을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식물, 자연의 초록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란 생각보다 매우 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양에서는 12세기부터 초록색이 악마의 색으로 여겨지며 사탄 혹은 악마를 그릴 때 초록색을 주로 사용해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초록색이 자연의 색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인 낭만주의시대에 이르러서였다고 하니, 초록색에 대해 긍정과 부정, 두 가지 감정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클림트가 남긴 40여 점의 풍경화에는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광활하거나 소박한 자연의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클림트는 모국에서 매서운 비평과 비난에 부딪히며 상처를 입었고, 결국 빈예술가협회를 탈퇴하게 된다.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거리를 두었던 클림트가 비평가들과 사회에서 받은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매년 여름 위안과 안식을 얻기 위해 빈을 떠나 몇 달씩 머물렀던 곳이 바로 고즈넉한 아터제호수이다. 그는 그곳에서 하루 세 번씩 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배경을 알고 나서 보게 되는 그의 풍경화들은 자연이 선사하는 평온과 넉넉함 그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잠시 쉬어가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자연의 청량하고 순수한 멋을 간직한 초록색 그림을 바라보라고 이 책은 권해준다. 초록이 고단함과 공허함을 안아줄 안식의 공간이 되어 주고, 삶의 어려움을 들어줄 포근한 친구가 되어줄테니 말이다. 잔잔한 평온과 휴식이 필요한 당신에게, <초록색 미술관>을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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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친구를 원하는가 - 우리 삶에 사랑과 연결 그리고 관계가 필요한 뇌과학적 이유
벤 라인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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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인류는 점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보다 소셜 미디어를 스크롤하는 일이 더 흔하다. 마트에서 점원과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으며 장을 보는 대신 앱으로 해치운다. 식당에 앉아 오늘의 메뉴를 묻기보다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심지어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의 업무도 집에서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사회적 접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p.36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우리는 점점 더 사회적 삶이 줄어들고 있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무분별한 소셜 미디어 사용, 코로나19 팬데믹, 원격 근무, 정치적 양극화 등 현대인들은 외로움과 불안, 고립에 익숙해지고 있다. 문제는 외로움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이다. 사회적 삶이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사회적 고립은 비만보다 대략 두 배, 심각한 대기 오염 속에서 사는 것보다 네 배나 더 해롭다. 


스탠퍼드대 출신 뇌과학자 벤 라인은 이 책에서 고립이 생명과 건강에 어떤 위협을 주는지 밝히고 약해진 사회적 뇌를 다시 깨우는 관계의 기술을 제시한다.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상호작용을 둘러싼 경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는 점을 뇌과학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스마트폰과 통장 잔고만 있다면 누구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편리한 현대 문명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혼자여도 괜찮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인간의 뇌는 진화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결'을 갈망하면서도 고립과 분열을 선택하는 단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사람들 사이에 세워진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이들의 가장 나쁜 면이 아니라 가장 좋은 면을 보는 드문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외로운 삶은 우리가 선물 받은 생물학적 자산을 크게 훼손한다. 반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는 우리 몸과 뇌에 활력을 준다. 사회적 교류는 신체의 발달 방향을 잡아주고, 신체 기능의 쇠퇴도 어느 정도 막아준다. 더 좋은 점은 그 혜택이 당신의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달된다는 것이다.             p.362~363


여기, 바닥에서 약 50센티미터 위에 세워져 있는 십자 모양의 플랫폼이 있다. 이 장치는 설치류의 불안 행동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는 실험 장치다. 노출된 팔은 쥐에게 무서운 공간이고, 벽으로 막힌 팔은 쥐가 안심할 수 있는 꿈 같은 안식처다. 그렇다면 열린 팔 끝 쪽에 다른 쥐를 두면 어떨까. 닫힌 팔에 있던 정상적인 쥐가 이 쥐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갈까? 놀랍게도, 쥐는 친구와 어울리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쥐들에게도 상호작용은 보상을 준다는 것이 이 실험을 통해 보여진다. 또한 인류는 오래전부터 고립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1700년대에도 독방 감금이 죄수를 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 신체적 고문이 아니라 '독방 감금'이라는 것이다. 1820년대 뉴욕주의 한 교도소에서 실험한 결과 독방에 갇힌 죄수들은 절망 끝에 자해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한다. 이는 현대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데이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실험과 사실들은 '고립'이 인간의 뇌가 겪는 가장 가혹한 '고통'이자 '생존의 위협'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뇌과학적으로 보아도 우리에게 보상을 주는 화학물질을 뇌에서 분비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 상호작용이다.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등 뇌가 기본적으로 사회적 접촉을 추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화학물질들이다. 분열된 세상 속에서 고독사, 은둔족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동료, 친구, 이웃을 덜 보게 되는 현실에 점차 적응하며 살고 있지만.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의식적으로' 타인과의 만남을, 사회적 관계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가 편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뇌가 원하는 진짜 행복과 건강을 되찾는 과학적 해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연결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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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지음, 배효진 옮김 / 리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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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로 자신도 지금껏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 왔는가?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무수히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로 상상해 보았다. 가지 하나하나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을 보여 주었다. 만약 오빠의 장례식에서 엄마가 그토록 심한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캐로가 화를 참았더라면, 수십 년 동안 가족 간에 끓어오르던 분노가 폭발해 혼돈으로 치닫지 않았더라면?... 이런 선택들, 와이거트 박사가 ‘관찰’이라 부르는 그 수많은 결정이 삶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p.105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문학적으로도 다양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책은 무슨 마법 약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도 완벽하게, 과학과 상상력의 교차 지점에서 탄생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내가 결정한 작은 선택 하나가 결국 삶의 경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거나, 전혀 다른 길로 이끌게 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내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들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나무나 길에 비유하는 건 굳이 양자 물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경로가 실제로 존재하고, 다중 우주의 다른 분기에서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중 우주론에서는 하나의 행동을 실행한 사람에 의한 관찰을 포함해 어떤 행동이 관찰될 때마다 우주가 분기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해온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여러 갈래의 다른 우주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 속 과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이 다른 우주의 분기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그 의식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걸까, 의심이 들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 들어서 읽었다.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믿는 것은 단순한 환각일까, 아니면 그녀의 사고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혁신적인 물리적 실체일까? 캐로는 더 이상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와이거트가 이 세션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줄리안이 말한 '세상을 떠나간 사랑하는 이'를 보면서, 혹은 보았따고 믿으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엘렌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다시 삶을 살아갈 힘.

캐로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p.317


올해는 양자 역학 100주년의 해로 양자 역학에 관련된 과학책들을 굉장히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혁신적인 책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SF 주요 4대상(네뷸러상•휴고상•존 W. 캠벨 기념상•스터전상)을 석권한 소설가 낸시 크레스와 21세기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천재 과학자 로버트 란자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과학적 사실과 정보를 담고 있다. 제목인 '옵서버'는 관찰자라는 뜻이다. 양자 역학의 핵심인 ‘관찰자 효과’를, 인간의 뇌와 의식에 적용한다는 대담하고도 아름다운 발상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 독자들조차 매료시킬만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언뜻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논리에 공감하게 만들어 준다. 


미혼모 동생과 장애가 있는 조카를 홀로 책임지고 살아가는 신경외과 의사가 먼 친척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할아버지로부터 극비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을 제안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카리브해의 고립된 섬, 정체불명의 연구소에서 뇌에 칩을 이식해 ‘죽음을 넘어선 세계’를 실험하는 극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은 계속될 수 있을까?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중 우주론의 관점에서 그 모든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인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선형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인 것일까? 양자 역학이 보여 주는 세계는 우리가 지금껏 알던 시공간에 관한 개념을 뒤집어 엎어 버린다. '관찰자'가 없다면 시간도, 공간도, 이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실을 경험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이론에 매달리는 물리학자의 마음을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경험하고,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희망이라면 어떤 가능성이든 붙잡고 싶을 테니 말이다. 온갖 과학적 이론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서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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