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 이즈 홋카이도 - 2023년 최신 개정판 디스 이즈 여행 가이드북
권예나.김민정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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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떠나게 된 여행지가 바로 홋카이도가 되었다. 일본 여행으로 여러 도시들을 다녀 봤지만, 주로 아래 쪽에 있는 도시들로 여행을 갔었다. 오키나와,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 등등의 도시들을 다녀왔는데, 위쪽으로 가보는 건 처음이라 무척 설렌다. 홋카이도는 눈이 많이 내리는 풍경으로 더 유명한데, 여름에 가려고 찾아보니 라벤더밭이 너무도 인상적이라 여러 후보지 중에서 단연코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나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를 하고 있어서, 여름철에도 시원한 날씨라고 한다. 덕분에 일본 내에서도 여름철 인기 여행 지역이라고 하니 말이다. 위도 상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랑 같은 거의 비슷하다고 하니 날씨가 짐작이 될 것이다. 서울의 무더운 날씨에 지쳐 있다가 홋카이도의 선선한 날씨로 떠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처음 가보는 해외 여행지의 경우 가기 전에 가이드북부터 찾아 읽어 보는 것이 습관이다. 이번 홋카이도 여행을 위해서 선택한 것은 테라출판사의 <디스 이즈 홋카이도> 책이다. 보랏빛 라벤더 밭과 핑크빛 하늘이 너무도 예쁜 색감을 보여주는 표지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디스 이즈 홋카이도>는 3년 만에 최신 개정판으로 나온 거라, 바로 다음달에 홋카이도 여행을 할 예정인 나에게는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로 무장한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 같다. 표지부터 시작해 화보집을 보는 듯한 예쁜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여행작가 ‘쏠트몬’의 귀여운 일러스트 또한 가이드북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분리형 맵북이 따로 수록되어 있어, 현지 여행 중에 떼어내서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리할 것 같다. 맵북에는 제일 중요한 지도와 주요 도시 간 열차, 버스, 자동차 소요시간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되어 있고, 시내 중심가와 인근 도시들까지 여행에 필요한 모든 지도들이 담겨 있다. 사실 처음 가보는 도시일수록 현지에서 이동 시에 지도는 필수이다. 구글 맵을 켜고 길 찾기를 하겠지만, 이렇게 얇고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종이 지도가 있다면 아주 도움이 될 것 같다. 데이터가 끊기거나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거나 와이파이가 원활하지 않을 때에도 맵북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테니 말이다.

 

홋카이도는 지역이 넓은 편이라 어떻게 다닐지도 고민이었는데, 이 책에는 대중교통 이용법과 렌터카 정보에 이르기까지 교통 길라잡이가 확실하게 되어 있어서 좋았다. 일본 3대 라멘 중 하나로 꼽히는 미소를 베이스로 한 삿포로 라멘을 비롯해 유제품이 유명한 곳이라 각종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치즈, 우유 등도 잘 소개가 되어 있고 수프카레와 징기스칸, 게요리와 카이센동 등 주요 음식들에 대해 주문하는 방법과 특징을 단계별로 알려주고 있어 여행 일정 짜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삿포로의 맥주 투어, 오도리 공원의 축제, 오타루 운하와 스시, 온천 마을과 유빙 체험 등 홋카이도 여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즐길 거리들이 이 책에 가득해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 동안 어디를 다녀오고, 어디는 다음을 기약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세심하게 짜여 있는 테마별 추천 코스가 10가지나 되서 나처럼 홋카이도가 처음인 여행자들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홋카이도의 최대 도시인 삿포로 외에도 오타루, 하코다테, 후라노, 비에이 등 중소도시 19개를 총망라한 정보가 담겨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홋카이도 여행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인기 맛집부터 현지인들만 아는 동네 맛집 등 먹방에 관련된 정보가 특히 많아서 여행의 주목적이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에 있는 나 같은 여행자들은 아주 만족할 만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먹방 뿐만 아니라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살 수 있는 핫템 쇼핑 정보들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디스 이즈 홋카이도 덕분에 내 마음은 벌써 아직 가보지도 않은 홋카이도로 떠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코스로 완벽하게 홋카이도를 즐기고 싶다면, 처음 가는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가 필요하다면, <디스 이즈> 시리즈를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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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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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의정부 어느 작은 산 아래에서 한 여자아이가 책을 꺼내 들었다. 아이는 아카시아와 곰팡이에 지배당한 가족들의 집에서 걷는 식물을 처음 만났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공포의 그림자와 흐린 삶이 교차하던 순간을 목격했다. 삶은 가난하고 별것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몇 권의 책을 마련하는 작고 소중한 마음이 있었다. 아이는 생명으로 붉게 번쩍이던 표지를 넘겼다. 이것이 내가 SF에 매혹당한 첫 순간이었다.        - 이윤리, 'SF와 나의 이야기' 중에서, p.18

 

<이웃 덕후 1호>에 이은 ‘미래엔 단편 에세이 공모전’. 제2회 수상작품집이다. 이번 제2회 공모전에서는 이전 회보다 늘어난 공모작 수뿐만 아니라 확연히 업그레이드된 글의 수준이나 덕력이 돋보였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이제는 사회적 현상이 된 ‘덕질’,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모아 듣기 위해 만들어진 ‘덕후 에세이’ 공모전이라 이번에는 또 어떤 개인의 취향을 들려줄 지 궁금했다. 첫번째 공모전의 수상작은 총 다섯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총 일곱 편이다.

 

SF, 책, 여성 아이돌, 식충식물, 발레, 로맨스판타지, 인형 덕후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글을 만날 수 있었다.  취미보다는 더 깊이 들어가는, 어쩐지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취향이기도 한 '덕질'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물론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덕질은 마음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가산을 탕진하게 하고, 집 안 곳곳의 공간을 침범해 가족들의 눈총을 받게 하고, 잠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몰입하게 만들어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니 덕질의 대상이 나를 구원하러 온 것인지, 망치러 온 것인지 헷갈리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 잠시라도 행복했다면, 그래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사람들이 그저 현재에 머물며 꿈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을바람에 잎이 떨어지듯, 그대로 시들고 약해져 흩어지지 말고 우리 마음속에 꿈과 희망의 등불을 밝혀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열정적이고 빛나는 사람이다. 발레 덕후로 입덕을 하고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으니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뤄 두었거나 꼭꼭 숨겨 두기만 했던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당장 꺼내서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 강유주, '워킹맘 발레리나의 덕후 권하는 사회' 중에서, p.138~139

 

대상을 받은 작품은 <SF와 나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SF를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 문고본 SF 소설을 시작으로 <블레이드 러너>, <그리폰 북스 시리즈>, <네 인생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자신의 삶과 SF 소설을 함께 엮어내는 글이다. 가족사와 개인사가 SF 소설 작품들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내일을 향한 기대를 하게 해주며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글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최우수상 수상작은 <이외의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책들>로 나 같은 '책 덕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회성이 부족해서 책 덕후가 되었다는 고백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시절, 중고등학생시기를 도서관 단골로 지내며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하며 책에 집착하며 살아온 나날들을 풀어 놓는다. 기묘한 책들과의 만남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는데,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만화방에서 발견한 동인지, 옥중소설, 흑마술 등등 오직 책 덕후만이 공감할 수 있는 대목들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우수상 수상작 다섯 편은 덕질의 분야가 조금 더 다양하다. 여성 아이돌을 응원하며 그와 함께 성장한 인생의 여정도 있고,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의 매력을 전파하고자 하는 식충식물 전도사와 40대의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발레 덕후의 이야기, 웹툰이나 웹소설 장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로맨스판타지에 관해 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덕후, 10년 동안 인형 덕후로 살아온 인형 수집광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 역시 뭐든지 좋아하는 그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더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지금의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떻게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매일매일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삶의 기쁨이 어떤 충만함을 안겨주는지 깨닫게 된다면 소확행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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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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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싫어? 이런 물음을 던지며 앞으로 한 달, 두 달, 그렇게 오래 산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죽지 않는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집 안은 온통 솜먼지투성이고 빨랫거리도 계속해서 쌓였다. 이마와 목덜미에 난 흰머리를 해나로 염색할 시간도 없이 이미 피로로 몽롱한 채 살고 있는데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젊은 여자와 동거하는 남편이 있고, 그 남편과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엄마, 대체 언제쯤 죽어줄 거야? 마음속에서 소리쳤을 뿐이지 실제로 소리내서 외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p.256

 

엄마의 죽음이 바로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왜 엄마가 죽지 않을까. 대체 언제쯤 죽어줄 거야..라는 생각을 해야 하는 딸이라니... 이들 모녀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대 일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미즈무라 미나에의 장편소설 <어머니의 유산>을 읽었다. 미즈무라 미나에의 작품은 아주 오래 전에 <필담>과 <본격소설>이 국내에 소개되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십오년 여만에 신작이 국내에 출간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실버타운에서 얼마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자매의 통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버타운의 반환표와 장례식장의 견적서가 놓여 있는 책상 앞에서 언니와 여동생은 엄마가 남긴 돈을 계산해 보는 중이다. 어머니가 마침내 죽었다는 흥분, 어머니로부터 해바오디었다는 기쁨을 만끽하는 자매의 대화는 담백하지만, 어딘가 서늘하다. 어머니에게 휘둘리는 사이에 살아갈 욕망이 눈에 띄게 시들었고, 월경도 불규칙해지는 등 건강도 나빠진데다, 동생인 미쓰키는 남편과의 문제도 있었다. 대학의 안식년 휴가를 얻어 베트남에 머물고 있는 남편이 미쓰키보다 젊은 여자와 연애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다. 그렇게 미쓰키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런대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파리 유학도 다녀왔으며, 남편은 대학교수이고, 자신도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런대로 괜찮은 삶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늙어서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지 않을 수 있는 딸은 행복하다. 아무리 좋은 어머니를 가져도 수많은 딸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순간쯤은 찾아오는 게 아닐까... 게다가 딸은 그저 어머니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늙음의 끔찍함을 가까이서 직접 보는 고통 - 앞으로의 자기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정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게 아닐까. 젊을 때는 추상적으로밖에 알지 못했던 ‘늙음’이 두뇌와 전신을 덮칠 뿐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 모두를 덮치는 것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을 향해 살아갈 뿐인 인생인 것인가.            p.491

 

상류사회를 열망했던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사치를 좋아했다. 게다가 서구의 귀족 문화를 동경하며 저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기를 꿈꿨고, 그러한 욕망은 딸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어머니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삶을 충실히 살아온 언니,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소설처럼 살길 바랐던 외할머니, 그 속에서 이들과는 다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미쓰키였지만, 그녀의 삶 또한 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쓰라가 삼대는 평생 꿈을 꾸며 살아간다.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고 고상하고 향기로운 세계를 부나방처럼 좇는다. 분수도, 만족도 모른다. 딸들은 아버지에게 지독한 아내였던 어머니를 싫어했지만, 병실에 갇힌 어머니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이 끝장났다는 불행에 미쳐 날뛰는 어머니를 보살피고, 받아주는 것 또한 수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남자를 만나고, 늙고 병든 아버지를 병원에 처넣었던 어머니를 어떤 자식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서로에 대한 원망을 대놓고 드러내는 모녀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지속됨며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좀 독특하게 설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늙은 부모를 보살피는 것에 대해, 돌봄 노동과 모녀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늙음'이라는 짐을 가지게 된다. 미즈무라 미나에는 가족 관계에 대해, 그 중에서도 모녀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찰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유산이라는 것이 재산이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만들어 준다. 누구나 언젠가는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실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 한 켠을 서늘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남다른 여성 삼대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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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베리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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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띄도록 설계되었어. 붙잡기는 쉽지만 해부하기는 어려운 복잡한 이미지. 순수함과 에로틱함 둘 다 갖췄지만 너무 순진해서 사람들이 나한테 품은 불순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밀고 갔어. 물론 다 헛소리였어. 하지만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어. 여배우와 스타 사이엔 차이점이 있는데, 스타는 세상이 원하는 존재로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 나는 순진하면서도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주 편했어.           p.76

 

비방트라는 잡지사의 소속 기자로 일하고 있는 모니크 그랜트는 상사인 프랭키의 호출을 받는다. 역대 최고의 영화배우 중 한 명인 에블린 휴고 측에서 자신의 인터뷰를 진행할 기자로 모니크를 지목했다는 거였다. 이상한 건 모니크는 비방트에서 근무한 지 1년도 안 된 무명의 신입 기자인데다, 그동안 별 시답잖은 기사만 맡아 왔다는 거다. 프랭키는 혹시 모니크에게 에블린 휴고랑 아는 사이냐고, 개인적으로 어떤 연줄이 있는 건지 궁금해하지만, 전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니크는 이 기회를 붙잡고 싶었고, 그녀의 기사를 쓰고 싶었다. 조직의 맨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데 신물이 났고, 마침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서른다섯인 모니크는 10년 넘게 글로 먹고 살았고,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도 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이르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니크는 며칠간 에블린 휴고에 대한 자료를 있는 대로 찾아보고, 그녀를 만나러 뉴욕의 호화로운 아파트로 향한다.

 

에블린 휴고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배우로 아름답고 섹시한 매력으로 303년 넘는 세월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은막을 떠난 스타였다. 그녀의 스캔들도 유명했는데, 일곱 번의 결혼과 숱한 가십으로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일흔아홉이 되어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수십 년만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좋은 일, 나쁜 일, 추악한 일까지 전부 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다 털어 놓겠다는 거였다. 현존하는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명 기자를 지목해 독점 인터뷰를 하겠다는데, 모니크는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굴러 들어온 건지, 그녀의 저의가 궁금했다.

 

 

"남자들은 참 편리한 것 같지 않아?" 해리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어. "규칙을 만들 때, 자기들한테 가장 큰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애초에 무시해 버리니까.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기 몸을 포기하는 대가로 뭔가를 원한다고 상상해 봐. 그럼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야. 중무장한 세력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나 같은 남자들만 당신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지. 그런데 그 멍청한 자식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게 바로 그런 세상이야.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      p.270~271

 

이야기는 에블린이 열네 살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어머니는 한참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그곳에서 그녀는 언제나 벗어나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도 눈에 띄게 예뻤던 그녀는 헬스 키친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한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번째 남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연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름을 바꾸고, 머리색과 치아까지 바꿔가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자신의 무자비한 야망과 예상치 못한 우정, 속내를 숨기고 해야만 했던 일곱 번의 결혼들.. 그리고 연예계를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30년 세월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이게 펼쳐진다.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배우들과 연예계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없이 이어지는데, 웬만한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파격적인 전개가 끊임없이 펼쳐져 누구라도 푹 빠져서 읽을 만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미국 아마존 평점 4.6 리뷰 16만 개, 뉴욕 타임즈 10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곧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섬세한 스토리 라인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캐릭터의 매력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에블린 휴고라는 캐릭터는 정말 실재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게 누구든 너를 평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면 안 돼." "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으라는 거야." 등등 에블린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명대사들의 향연도 뻬놓을 수 없겠다. 그리고 왜 그녀가 인터뷰어로 무명 기자인 모니크를 지목했는지, 그 비밀에 숨겨진 반전이 막판에 폭탄처럼 터지는 것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재미를 안겨준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어 버릴 만큼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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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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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일상을 벗어날 일은 없네. 따라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이상한 모습을 보일 것도 없다네. 스페인에 머물 땐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일 걸세. 그곳에 있지 않을 때는, 글쎄...... 자네에게 거짓말을 하진 않겠네. 소설과 같은 허구의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네. 자네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게 될 걸세.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고, 금세 그런 삶을 그만두고 자네 원래 모습으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걸세.          p.96

 

‘세르반테스의 땅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스페인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신작이다. <새하얀 마음>과 <사랑에 빠지기>라는 작품으로 만났었는데, 사실적이면서도 어딘가 현실을 넘어선 환상문학같은 느낌과 더불어 일반적인 관념을 뒤흔드는 매력적인 작품들로 기억한다. 이번에 만난 작품은 무려 76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두께의 이야기로 비밀정보부의 스파이인 남편과 그가 부재인 시간 동안 남겨진 아내의 삶을 그리고 있다. 스파이란 원래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라는 전제를 철칙으로 삼는 존재로 때로는 가정을 배제시키고, 때로는 동료까지 의심하며 조용한 전쟁을 치뤄야 하기 때문에 고독과 뗄레야 뗄 수 없다. 게다가 그들에겐 흑과 백의 명확한 논리가 통화지 않는 상황들이 자주 만들어진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직업적 특성에 대해서 고뇌하는, 회색 지대의 사람들인 것이다.

 

스파이 문학을 꽤 읽어본 것 같은데, 스파이가 아니라 그의 가족 입장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거의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베르타 이슬라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스파이의 아내 시점으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소외를 그려낸다. 함께 있으면서도 눈앞에는 별로 머물지 않으며,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남편과 아내, 두 남녀의 삶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지만 결코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우리는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누구나 각자만의 내밀한 슬픔을 안고 있으며, 어둠에 싸인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하니 말이다.

 

 

 

루이스 노발은 그림자이자, 공허한 이름만 가진 유령이었다. 비록 기념물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토마스는 더 심한 유령이 될 것이다. 살아 있지도 죽지도 않은 유령. 자식들조차 기억하지 못 할 유령. 자식도 기억을 못 할 텐데 누가 기억을 하겠는가? 풀 한 줄기, 먼지 한 톨, 흩어져가는 안개, 떨어지면서 뭉치지도 못하는 눈송이, 재, 벌레 한 마리, 한 줄기 바람, 결국 스러지고 마는 한 줄기 연기.            p.488

 

베르타는 한동안 남편이 진짜 자기 남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남편을 남편이라 믿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불신이나 죄책감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아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은 매번 아내에게 '당신은 모르는 것이 나아'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비밀에 싸인 삶을 강요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구석이 있는 사람과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자각은 삶을 어떻게 바꾸어 버릴까. 토머스는 여러 언어를 유창하고도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는 한 번 들은 것은 뭐든 쉽게 이해했고, 별 노력 없이도 쉽게 기억했으며 그것을 기가 막힐 정도로 정확하게 재현했다. 이렇게 영리하고, 탁월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니 눈에 띄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하던 중 비밀정보부 요원으로 일할 것을 제안받지만 거절한다. 하지만 조작된 사건을 통해 의지와는 별개로 비밀정보부의 스파이로 활동하게 된다.

 

속임수와 배신, 은폐 등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토마스가 스파이라는 역할에 충실할수록 베르타와의 부부 관계는 오해와 갈등으로 균열이 생기게 된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서로를 알았고, 운명적인 확신으로 결혼했지만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남편의 삶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스파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첩보 활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스파이의 가족과 남겨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이나 사건보다는 감춰진 것들, 숨겨진 이면에 주목한다. 이렇게 두툼한 페이지를 자랑하면서도 내용 자체에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있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문장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독특한 방식의 스파이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과 관계의 본질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깊은 여운을 남겨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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