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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베리북 / 2023년 5월
평점 :
나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띄도록 설계되었어. 붙잡기는 쉽지만 해부하기는 어려운 복잡한 이미지. 순수함과 에로틱함 둘 다 갖췄지만 너무 순진해서 사람들이 나한테 품은 불순한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밀고 갔어. 물론 다 헛소리였어. 하지만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어. 여배우와 스타 사이엔 차이점이 있는데, 스타는 세상이 원하는 존재로 사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 나는 순진하면서도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주 편했어. p.76
비방트라는 잡지사의 소속 기자로 일하고 있는 모니크 그랜트는 상사인 프랭키의 호출을 받는다. 역대 최고의 영화배우 중 한 명인 에블린 휴고 측에서 자신의 인터뷰를 진행할 기자로 모니크를 지목했다는 거였다. 이상한 건 모니크는 비방트에서 근무한 지 1년도 안 된 무명의 신입 기자인데다, 그동안 별 시답잖은 기사만 맡아 왔다는 거다. 프랭키는 혹시 모니크에게 에블린 휴고랑 아는 사이냐고, 개인적으로 어떤 연줄이 있는 건지 궁금해하지만, 전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니크는 이 기회를 붙잡고 싶었고, 그녀의 기사를 쓰고 싶었다. 조직의 맨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데 신물이 났고, 마침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이다.
서른다섯인 모니크는 10년 넘게 글로 먹고 살았고, 언젠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도 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이르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니크는 며칠간 에블린 휴고에 대한 자료를 있는 대로 찾아보고, 그녀를 만나러 뉴욕의 호화로운 아파트로 향한다.
에블린 휴고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배우로 아름답고 섹시한 매력으로 303년 넘는 세월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은막을 떠난 스타였다. 그녀의 스캔들도 유명했는데, 일곱 번의 결혼과 숱한 가십으로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일흔아홉이 되어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수십 년만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좋은 일, 나쁜 일, 추악한 일까지 전부 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다 털어 놓겠다는 거였다. 현존하는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명 기자를 지목해 독점 인터뷰를 하겠다는데, 모니크는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굴러 들어온 건지, 그녀의 저의가 궁금했다.
"남자들은 참 편리한 것 같지 않아?" 해리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어. "규칙을 만들 때, 자기들한테 가장 큰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애초에 무시해 버리니까.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자기 몸을 포기하는 대가로 뭔가를 원한다고 상상해 봐. 그럼 여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거야. 중무장한 세력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나 같은 남자들만 당신들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지. 그런데 그 멍청한 자식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게 바로 그런 세상이야.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 p.270~271
이야기는 에블린이 열네 살이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어머니는 한참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그곳에서 그녀는 언제나 벗어나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도 눈에 띄게 예뻤던 그녀는 헬스 키친을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한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번째 남편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연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이름을 바꾸고, 머리색과 치아까지 바꿔가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자신의 무자비한 야망과 예상치 못한 우정, 속내를 숨기고 해야만 했던 일곱 번의 결혼들.. 그리고 연예계를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30년 세월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이게 펼쳐진다.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배우들과 연예계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없이 이어지는데, 웬만한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파격적인 전개가 끊임없이 펼쳐져 누구라도 푹 빠져서 읽을 만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미국 아마존 평점 4.6 리뷰 16만 개, 뉴욕 타임즈 100주 이상 베스트셀러에 곧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실적이고 섬세한 스토리 라인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듯한 캐릭터의 매력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에블린 휴고라는 캐릭터는 정말 실재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그게 누구든 너를 평범한 사람처럼 느끼게 하면 안 돼." "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잡으라는 거야." 등등 에블린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명대사들의 향연도 뻬놓을 수 없겠다. 그리고 왜 그녀가 인터뷰어로 무명 기자인 모니크를 지목했는지, 그 비밀에 숨겨진 반전이 막판에 폭탄처럼 터지는 것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재미를 안겨준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어 버릴 만큼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