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 -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 글쓰기 특강
주성철 지음 / 메이트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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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진심을 숨기고 직업적 글쓰기에 매진하는 순간에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영화에 대해 쓰는 행위 자체도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항해여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이 주인공을 통해 결국 나를 들여다봐야 하고, 그리하여 다른 사람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글을 통해 영화와 관객 사이의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우리의 근본적인 목표다.   p.35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주성철 기자는 2000 4 1부터 35권의 <키노>, 155권의 <필름 2.0>, 571권의 <씨네21>을 만들고 있는, 그야말로 영화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거의 모든 영화 잡지를 거쳐온 인물이다. 20년 가까이 영화기자 생활을 해왔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화 종이잡지' <씨네 21>의 편집장이 들려주는 '영화 글쓰기'란 어떤지 너무 기대가 되었다. 나도 한때 일주일에 영화를 6~7편씩 볼 정도로 영화광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잡지 <스크린> <로드쇼>, <키노> <프리미어> 그리고 <무비위크> <필름 2.0>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잡지를 매주, 매월 구독했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책은 여타의 글쓰기, 작법에 관한 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움직이는 영화를 굳이 멈춰선 활자로 풀어 쓴다는 행위'는 문학적인 글쓰기와 태생부터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영화에 대해 쓴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결핍을 안고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는 글쓰기의 글이란 그냥 블로그에 쓰는 에세이가 아니라, 특정 매체의 게재를 목적으로 한 청탁 받아 쓰는 '광의의 모든 영화글'이다. 영화기자나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가이드가 되어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혹은 대체 영화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던 사람들, 현재 유일하게 남은 23년 전통의 오프라인 영화잡지 <씨네21>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서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책이 될 것 이다.

 

영화와 다른 예술과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해 '영화는 책갈피를 꽂아둘 수 없는 예술'이라고 말하곤 한다. 영화는 강물처럼 1초에 24프레임이 흘러가버리는 예술이기에 써야 할 장면이 기억나지 않으면 사실상 거기서 끝이다. '아는 만큼 쓸 수 있다'는 말을 바꿔서 영화글은 자기가 '기억하는 만큼' 쓸 수 있다.    p.215

지금은 사라져버린 한국 영화잡지의 역사들을 정리해둔 챕터에서는 오래 전 그 시절이 떠올라 추억에 젖어 보기도 하고, 영화기자의 치열한 일상에 대한 챕터를 읽으면서는 새삼스레 감탄하기도 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챕터는 <씨네21> 기자의 일주일, 그리고 1 365일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부분이었는데, 이 대목은 영화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그저 취미로 영화를 즐겨 보고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기자로서 써왔던 영화에 대한 글이나, 한국 영화에 대한 단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새삼스레 저자의 20년 내공이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 리뷰를 쓰는 방법, 감독과 인터뷰하는 노하우 등도 매우 흥미진진했고, 그가 써온 글들과 취재의 배경과 뒷이야기 등도 담겨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관련된 챕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문학적인 글쓰기와 차별화된 영화 글쓰기에 대한 팁과 노하우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다. 영화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억하는 만큼 쓸 수 있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일단 시작하면 자기 마음대로 감상을 중단할 수 없다. 내가 졸더라도 영화는 계속 흘러간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문학 비평이라 하면 써야 할 대목과 장면이 떠오르지 않으면, 책을 다시 보면 된다. 음악이나 미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혹은 찾아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영화관에서 최긴 개봉영화를 볼 때는 그럴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방법은 영화를 보면서 메모를 하거나,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글은 기억력과의 싸움이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과 그러한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할 때 중요한 점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글쓰기 관련 책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영화계에 있었고,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저자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담겨 있기에 이 책이 더욱 특별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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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잡학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속뜻 사전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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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건/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영웅 아킬레스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발뒤꿈치 위에 있는 힘줄을 가리킨다.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를 빼고는 불사신이었던 아킬레스가 트로이 전쟁 중에 적장 파리스의 화살을 발뒤꿈치에 맞고 죽은 데서 그곳을 아킬레스건이라 부른다. 오늘날 이 말은 반드시 발뒤꿈치 힘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가지고 있는 어떤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p.43

중국 삼국시대, 진나라의 장군 두예는 오나라 공격에 나서 싸울 때마다 승리해 오나라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큰 홍수가 나서 강물이 크게 불어났고, 부하들은 일단 후퇴하여 겨울에 다시 진격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때 두예 장군은 우리는 지금 승세를 타고 있으며,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 칼을 대기만 해도 대나무가 쭉쭉 쪼개지는 그러한 상태이니, 지금의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공격에 나섰고, 연전연승으로 오나라를 완전히 정복해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바로 '파죽지세'라는 단어의 유래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써왔던 말의 '기원'을 따져 그 의미를 헤아려보는 '우리말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고조선시대, 부족국가를 시작으로 고려, 조선,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구분되어 있어 당새의 사회의 문화, 정치, 생활풍속 등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갑오개혁 이후의 개화기에 외국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각국의 도박도 여러 가지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중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와 중국에서 들어온 마작, 십인계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십인계는 1에서 10까지의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섞어서 엎어놓고 각각 자기가 대고 싶은 바가지에 돈을 대면서 시작하는 노름이다. 바가지의 숫자를 확인하고 돈을 갖게 되는데, 손님 중에 아무도 맞히지 못했을 때에는 물주가 모두 갖게 된다. 이렇게 바가지에 적힌 숫자를 맞히지 못할 때 돈을 잃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을 '바가지 썼다'고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바가지 쓰다라는 말이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도박의 한 종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이렇게 이 책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단어들의 어원과 그 배경을 알려주어, 역사와 문화 상식도 넓혀주며 우리말 교양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시치미 떼다/몽골의 지배를 받던 고려시대에 매사냥이 성행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사냥매를 사육하는 응방이란 직소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당시 궁궐에서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귀족사회로까지 번져나가 많은 이들이 매사냥을 즐겼다. 이렇게 매사냥 인구가 늘어나다 보니 길들인 사냥매를 도둑맞는 일이 잦아졌다. 이 때문에 서로 자기 매에게 특별한 꼬리표를 달아 표시했는데 그것을 '시치미'라고 했다. 이처럼 누구의 소유임을 알려주는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데서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 나왔다.   p.139

우리말은 원래 알타이어 계통으로 시작하여 만주어, 몽골어, 퉁구스어, 일본어, 터키어 등과 같은 갈래이지만, 불교와 도교 등의 수입으로 문자가 절실하던 삼국시대에 한자 한문을 문자로 도입해 쓰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순우리말도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표기하거나 아예 말 자체를 바꾸는 일이 많았고, 조선 말기에는 유럽의 어휘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가 홍수처럼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니 오늘날의 한국어에는 어원이 또렷하지 않은 어휘가 생각보다 많고, 뜻을 알 수 없는 말도 마구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우리말의 어원을 알아 가는 과정은 재미도 있었지만, 공부도 되었고, 몰랐던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세월이 흘러도 우리말이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어떻게 쓰였는지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하려는 욕심에서 우리말 어원을 정확히 기록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인문학적 교양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과 일반인들에게사전답지 않은 사전, 사전 이상의 사전'으로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국내외의 다양한 문헌을 근거자료로 하여 백과사전에서 제공하지 않는 풍부한 상식과 정보를 담고 있어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는 점도 장점이다. 두툼한 부록도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데, 한자에서 태어난 우리말 240가지, 불교에서 들어온 우리말 171가지와 우리말의 탄생과 진화에 관련된 다채로운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노마드에서 나오고 있는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영어잡학사전에 이어 우리말 어원사전 역시 시대와 교감할 수 있는 온갖 지식들이 펼쳐지는 책이라 두고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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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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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아마 망자들도 살아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 같아. 철도와 기적 소리 때문에 점점 좁아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찾은 망자도 있을 테고, 못 찾은 경우도 있겠지."

"그런데 그렇게 살아남아서 잘 사는 경우도 있을까?"

나를 놀라게 하는 염의 재주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넌 지금 행복해? 너 스스로도 톱니바퀴가 된 것처럼 온종일 증기기관을 돌리면서 사는 삶이 행복하냐고. 넌 꿈이 뭐야?"    -'즐거운 사냥을 하길' 중에서, p.99~100

어린 시절, 엄마는 특별한 장난감을 만들어 주곤 했다. 엄마가 포장지를 식탁에 펼쳐 놓고, 이리 저리 접기 시작하면,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던 울음을 그치고 나도 모르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다. 잠시 후 엄마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 덩어리를 입에 대고 풍선처럼 숨을 불어넣었다. 식탁 위에는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조그마한 종이 호랑이가 서 있었다. 내가 손을 뻗으면, 그것은 꼬리를 움찍거리다가 내 손가락을 향해 신나게 덤벼들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 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짧은 소설 <종이 동물원>은 그야말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표제작인 이 작품은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조리 석권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세 가지 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건 40년 동안 최초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신예였던 켄 리우는 세계 SF 판타지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가 된다.

전체 열네 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에는 판타지,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스팀 펑크, 중국 전기 소설 등 다양한 장르와 형식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보통 단편집의 경우,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완성도가 모두 훌륭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 입장에서도 읽을 때, 대충 읽게 되는 이야기가 있고,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읽게 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말이다. 사실 열 몇 편 중에 한 두 편만 마음에 남아도, 그 책은 좋은 작품이었다고 인상에 남기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켄 리우의 이 책은 한 편, 한 편 모두다 너무도 뛰어나고, 놀랍고, 대단했다. 각기 다른 장르만큼이나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상상력도 기발했고, 그 속에 담고 있는 정서도 감동적이었고, 탄탄한 문장과 적확한 표현들로 완성도도 뛰어 났으며,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드는 장르적 재미 또한 기가 막혔다. 특히나 장르 문학에 대한 편견이 있는 독자들에게 SF 환상문학에서도 순문학 만큼의 완성도와 감동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상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을 황홀하게 드러내는 놀라운 이야기들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평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열 네 편의 작품으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삼라만상을 집어삼킨다.

그러나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어의 지혜를 전수하는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르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중에서, p.195

사실글쓰기가 보람 있는 노고인 것은 오로지 우리 정신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이라는 저자의 머리말을 읽을 때부터 예감했다. 이 책과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다는 것을. 그리고 표제작이자 첫 번째 수록 작품인 <종이 동물원> 을 읽고 나서는, 우선 책을 덮고 인터넷 서점으로 가서 켄 리우라는 작가에 대한 신간 알림을 신청했다. 단편 소설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앞으로 무조건 챙겨보고 싶은 작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작가의 작품이 이제야 국내에 출간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나는 켄 리우라는 작가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한 작품, 한 작품 정말 천천히 아껴서 읽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주옥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개인의 모든 결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디스토피아, 인격을 가상현실로 복제해서 체험하는 기계가 등장하는 이야기, 그리고 문화 대혁명, 대만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일본군 731부대의 잔학성을 다큐 형식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 등 SF 환상문학의 카테고리로 포함되어 있지만, 판타지가 줄 수 있는 허구보다는 현실이라는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SF 환상문학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독특한 세계관이나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쉽게 말해 이들 장르소설들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 지루한 초반의 진입 장벽을 깨야 하고, 딱딱하고 어렵다는 통념이 있다. 그런데 켄 리우의 작품은 그 모든 통념과 편견을 모두 깨고 있다. 물론 다루고 있는 소재들과 이야기의 장치들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법한 독특한 소재도 있고, 누구나 실생활에서 쉽게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독특한 소재도 어렵지 않게, 평범한 소재도 진부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으며,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깊이 있는 사유와 자신만의 철학을 그 속에 녹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이 모두 감동적이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일까. 왜 바쁜 일상 속에서 굳이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머리를 써가며 허구의 이야기를 읽는 것일까. 그에 대한 완벽한 답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서 소설을 읽는다. 이 책은 내가 왜 소설을 사랑하는지, 왜 이야기에 매혹되는지에 대한 탁월한 사례이기도 하다. 내 책장에는 매주 신간들이 엄청난 속도로 쌓여간다. 어떤 작품들은 이미 완벽한 망각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그나마 관심 있는 책들만 읽는다 해도 책들이 출간되는 속도를 따라잡기 버거운 상황이지만, 나는 켄 리우의 책을 한 번 더 읽고 싶어 졌다. 나는 되풀이해 거듭 읽고 싶어지는 소설들을 사랑한다. 물론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으로는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모두 읽어볼 만한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평균적인 수명으로 우리가 매일 같이 책을 읽어도 죽을 때까지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켄 리우의 작품은 또 읽고 싶다. 더 이상 무슨 찬사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읽고, 읽고, 또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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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 게임 (한글판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엘렌 라스킨 지음, 이광찬 옮김 / 황금부엉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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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말이 안 된다고? 죽음은 의미가 없지만 산 자들에게 다가온다. 삶 역시 당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를 알 때까지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에 이기는 일에만 전념하라. 여러분이 찾는 것이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면 해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유산 상속자들이여, 깨어 있어라! 깨어 있어라!    p.65

어느 날 평범해 보이지 않는 한 배달부가 여섯 통의 편지를 배달한다. 한 사람씩, 한 짐씩, 그렇게 배달부는 사람들을 선셋타워로 유인한다. 최신식 호화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혜택을 받으며 임대할 수 있다는 소개에 입주 희망자들은 즐거워했고, 하루 만에 선택된 입주자들로 선셋 타워가 가득 차게 된다. 그들 가운데는 재단사도 있었고, 발명가도, 비서도, 의사도, 판사도 있었다. 선셋타워는 조용하고 모든 것이 잘 운영되는 아파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북쪽 절벽 위에 있는 낡은 웨스팅 저택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사람들이 발견한다. 그곳은 15년 동안이나 비어 있었다. 그렇다면 소문만 무성한 웨스팅 씨가 저 곳에 있는지, 아니면 유령이라도 있는 건지.. 세 아이들은 내기를 한다. 그렇게 그 곳에 들어가서 발견한 것은 동양 양탄자에 싸여 있는 웨스팅이라는 노인의 시체였다.

전 재산이 2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수께끼 사업가 웨스팅 씨의 부고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변호사가 발송한 열여섯 통의 편지가 사람들에게 도착한다. 유산 상속자로 지명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유언장 낭독 시간에 맞춰 모두 웨스팅 저택으로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변호사가 낭독하는 유언 내용에 충격을 받는다. 웨스팅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며,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은 바로 여기 모인 사람들 중 한 명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한 명의 유산 상속자를 정하기 위해 웨스팅 게임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은 누가 되었든 살인자를 찾아 내야만 하는 것이다.

 

눈 속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창백한 태양이 떠올랐다. 고요히 누워 있는 미시간 호수는 보라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했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난 선셋타워의 입주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미시간 호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창가에 선 채 웨스팅 저택에 매혹되어 꿈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p.102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열여섯 명을 여덟 쌍으로 나누고, 각 쌍에게는 1만 달러와 단서가 제공된다. 참가자 한 명이 탈락하면 그의 짝도 함께 게임을 포기하고 범칙금으로 1만 달러의 돈을 반납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지는 게임의 커플은 유언장에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요리사와 재단사, 수위와 대법원 판사, 성형외과 인턴과 말을 더듬는 휠체어 소년, 걷어차기의 명수인 말괄량이 소녀와 전국 고등학교 육상 신기록 보유자, 배달원과 사장 비서 등 다양한 나이와 성격,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각자 짝이 되어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그들은 단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하나씩 받는다. 똑같은 단서는 하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단서가 아니라 없는 단서이다. , 이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실제로 누구이든 간에 게임에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과연 웨스팅 씨를 죽인 범인은 누구이며, 그의 죽음에 관련된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유산 상속자로 지정된 이들 열 여섯 명의 인물들 중에 누가 게임에 이길 것인가. 무엇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언어유희로 가득한 단어퍼즐이 아닐까 싶다. 문장 하나하나를 모두 추리의 단서가 되도록 설계해 놓았기에, 곳곳에 숨겨진 단서들을 찾는 재미도 있다. 이 작품은 한글판 발간 10주년을 맞아 이번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되었다. 추리 소설로는 최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아동 문학상인 뉴베리상을 수상한 걸로도 유명한데, 뉴베리상은 해마다 가장 뛰어난 아동 도서를 쓴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아동 도서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상이다. 영미권에서는 '12세 이상 어린이 및 청소년이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선정될 만큼 현대 미스터리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청소년 추리 문학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아쉬울 만큼 어른이 읽어도 전혀 유치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과연 누가 웨스팅 씨를 죽인 범인을 찾고 백만장자의 유산을 독차지 할 수 있을 것인지, 당신도 웨스팅 게임에 함께 해 보길.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당신도 한 명의 상속자가 된 것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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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오디세이아 명화로 보는 시리즈
호메로스 지음, 강경수 외 옮김 / 미래타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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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에서부터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유명 화가들이 남긴 명화를 스토리에 맞춰 편집한 '명화로 보는 시리즈'는 현재 단테의 <신곡>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세 권이 출간되었다. 사실 세 작품 모두 실제 원전의 분량이 만만치 않고, 번역본으로 출간된 책으로 읽기에도 엄청난 두께와 방대한 내용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더욱 '명화로 보는 시리즈'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바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이다.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타케 왕국의 오디세우스 왕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멘토르가 오디세우스 왕이 20여 년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왕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아 그의 친구요 스승이자 상담자로, 혹은 때로 아버지가 되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양육한 것에서 유래했다.   p.44

유럽의 문학은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쓴 수수께끼 같은 작가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사실 호메로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기원전 8세기 무렵 활동한 시인으로 추정할 뿐, 그가 실재한 인물인지, 서사시인 전체를 가리키는 총칭인지, 실재한 인물이라면 두 서사시는 동일한 작가의 작품인지 등 호메로스를 둘러싼 질문들은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끝없는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기원전 700년에 쓰인 호메로스의 작품은 서양에서 구전이 아닌 최초로 기록된 문학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  호메로스는 유럽 문화가 문자가 없는 시대에서 문자시대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있는 작가이다. 문자시대 이전의 문학은 기록 없이 전해졌으니 말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이타케 섬의 왕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 전쟁에 배 12척을 가지고 참가하여 지모가 뛰어난 장군으로 활약하였다. 전쟁 후에 귀향하던 길에 각 지역을 표류하며 많은 고난을 겪었으나, 출국 20년 후 간신히 고국에 귀환한다. 오디세우스의 활약을 담은 예술 작품들은 매우 많다. 그만큼 그의 소재가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p.446

<오디세이아>라는 시의 주제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이다.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시는 총 24편으로 나뉘며, 6각운으로 작곡되었다. 이 책은 시간 순의 구성 대신에 복합적인 구성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스와 트로이아 간의 전쟁이 끝이 난 뒤의 상황에서 시작해, 7년간 노예로 전락해 있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모험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도착한 이후의 이야기와 그가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무엇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유명 화가들이 남긴 명화들을 통해서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 도자기에 새겨진 일리아스 장면을 함께 수록하고 있어 스토리의 고증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오디세우스에 관한 고대 부조상 및 등장인물들의 조각상 등 사진 자료들이 가득해 사실적 리얼리티를 살려내고 있다. 18세기 이래 학계에서 끊임없이 호메로스라는 시인의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고, 그러다 극단적으로호메로스라는 시인은 실재하지 않았다. 다만 짧은 시가 있었을 뿐으로 이것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집대성되어 호메로스의 시가 이루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니,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수많은 자료들로 인한 리얼리티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에는 다시 호메로스의 실존을 긍정하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 동안 호메로스의 작품이 다소 어렵게 느껴져 원작을 읽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명화로 보는 시리즈'를 통해서 조금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만나보면 어떨까 싶다. 이 놀라운 이야기에 각종 자료를 통해서 살려진 사실성으로, 신화 속 이야기 혹은 오래된 고전문학이라는 틀을 넘어서 현재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한 영웅들의 모험담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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