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 6개국 30여 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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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고양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덴고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차에서 읽은 <고양이 마을>이라는 단편이 생각난다. 한 청년이 가방 하나만 들고 여행을 다니다 우연히 들르게 된 마을이 사람들은 전혀 없는 고양이들의 마을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원래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열차가 다시 그 역에 정차하는 일은 영원히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곳이 그가 상실되어야 할 장소, 즉 이 세상에는 없는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일종의 환상 소설이었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기가 있는 걸로 간주되어 공포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강아지보다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고양이들을 만나는 길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 모로코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아실라 역에서 대합실과 플랫폼은 물론이고 열차 선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고양이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역무원들도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도, 그것에 대해 누구 하나 개의치 않는, 우리로서는 낯선 풍경.  규모가 작은 아실라 역에 거주하는 제법 많은 고양이들 덕분에 열차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아 고민했던 저자는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어느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오는데, 그것이 "이번 역은 고양이 역입니다. 고양이 역!"이라고 들릴 정도였다고 하니 뭐.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이곳에서만이라도 고양이를 누려라. 해코지가 없으니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애교를 부린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고양이를 쓰다듬고 껴안고 장난을 친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맘 놓고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사랑해도 된다.”

 

 

모로코의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 쉐프샤우엔의 파란 골목에서 동화 속 파란마을의 그림 같은 고양이의 모습이다.

시인이자 여행가인 이용한 작가의 여행 에세이 집이다. 동네 고양이를 기록한 <안녕 고양이>시리즈부터, 고양이 여행 국내편인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 이어 고양이 여행 해외편이다. 5년동안 6개국 30여개 도시와 섬을 여행하며 만난 고양이 이야기라고 한다. 고양이의 천국이라는 모로코와 터키, 그리고 일본의 고양이 섬과 대만의 고양이 마을, 인도와 라오스가 이 책의 배경이다. 한국이 고양이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라고 하는데, 마치 사람처럼 고양이를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의 풍경은 놀랍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사람과 고양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풍경들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더불어 이 책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여행의 계절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쉐프샤우엔의 파란 골목의 그림 같은 고양이, 아실라 포구 바닷가 고양이 식당, 잉그리드 버그먼과 험프리 보가트를 닮은 카사블랑카 고양이, 블루 모스크 앞에서 영업하는 고양이들과 영업 당하는 사람들,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산다는 히메지마 섬, 아이노시마에서 만난 고양이 할머니 그리고 고등어 클럽, 쇠락한 탄광 마을에서 인기 있는 고양이 마을로 변신한 호우통. 저자가 여행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우리의 길고양이와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 밑, 컨테이너 박스 뒤, 골목 사이처럼 어둡고 좁은 곳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 죽여 살아가는 우리 나라의 길고양이들을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고양이와 사람이 어우러진 모습을 찍고 싶은가?

그렇다면 모로코 아무 곳에나 가서 양해를 구하면 된다.

아저씨! 당신의 고양이와 사진을 한 컷 찍어도 될까요?

 

 

고양이와 함께라면 언제나 좋고, 어디든 좋은 사람들, 때로는 이들이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때가 있다. 무슨 일인지 귀찮게 물어보지 않고, 왜 그러느냐고 짜증나게 몰아치지 않고,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동물들이니 말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고양이와 사람이 어울려 사는 당연한 풍경은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고양이의 무던한 일상과 사람들의 관대한 날들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할까. 이렇게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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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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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은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고 평가 받는다. 특히 이번 <일곱 성당 이야기>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받았다. 실제 현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그를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현학적이고 지적인 추리 소설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에코에 비견된다는 것만으로 밀로시 우르반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중세 고딕 미스터리라니, 흔치 않은 장르라 더욱 궁금했던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중세 성당에서 거대한 종의 추에 매달린 사람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살해된 사람의 다리가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힌 채 발견되고,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10대 소년의 시신도 발견된다. 엽기적이며 잔혹한 사건들을 목격한 것은 주인공 K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크베토슬라프 슈바흐로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소심한 주인공은 스스로를 K라 지칭하며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불러달라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중퇴했고, 이후 경찰이 되지만 경호를 맡았던 인물의 죽음으로 책임을 물어 경찰에서 쫓겨난 신세이다. 그는 살인 사건 목격 이후로 경찰 서장을 통해 귀족 출신 그뮌드와 조력자 3명을 만나게 된다. 그뮌드는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되돌리고, 14세기의 법과 정의, 종교적 순수와 엄숙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인물이다. K는 그들과 함께 이어지는 기묘한 사건에 휩쓸리며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체코의 중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의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만 나머지 하나 ‘7성당은 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 동안 살해되거나 협박 편지를 받은 이들은 모두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한 이들로 밝혀진다.

 

 

당연히 독자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즉각 대답해 줄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대답해 줄 방법은 더더욱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은 내가 어떤 부분을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는. 그러나 계속해서 사건을 여러분의 추측에만 맡기는 것은 내가 진실을 찾아 헤맸듯이 여러분도 진실을 찾아 헤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확실성, 똑같은 불안감, 똑같은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끼기를 원한다. 그런 것 없이 여러분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로 진실을 찾는다면 이 단어의 미로 사이에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살인 사건의 수사는 독자 입장에서 견딜 수 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그뮌드가 왜 K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반이 지날 때까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가끔씩 특정한 환각 증상에 빠지게 되는 K 또한 그가 옛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건물에 얽힌 과거의 사건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들은 매우 점잖은 문체와 세련된 문장으로 건조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너무도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건축물의 외관과 정제된 문장으로 다듬어진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페이지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사건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더디게 흘러 간다. 5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인데, 다 읽기까지 일주일 여의 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읽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어들을 꼭꼭 삼켜가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은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책장에 손이 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K는 사건의 배후에 프라하의 찬란했던 과거황금시대를 재건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카를로프, 성 슈테판, 아폴리나리, 에마우제, 나 슬루피의 성수태고지, 성 카테리나,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성당은 어디인가? 그는 존재를 알 수 없는 그 일곱 번째 성당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한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들을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완벽 복원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그뮌드는 다시 한 번 과거가 현재가 되도록 만들려는 인물이다. 그의 맹목적 복원 의지는 단순히 건축 양식에서 그치지 않고, 14세기 당시의 급진적인 법과 정의, 결점 없는 종교적 순수함과 엄숙함을 프라하 전체에 입히려는 엄청난 계획이다. 현대 프라하의 모든 상업적인 요소들과 정신의 결여를 일순간 붕괴시키려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형에는 화형으로, 멍에는 멍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갚으라 했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되돌이킬 때가 되었어. 멍청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건축가와 관료주의자들이 몇 명 죽는 편이 모두가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손에 고삐 대신 운전대를 잡을 야만인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나?

 

14세기 카렐 4세가 세운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적, 종교적 이상에 빠져 있던 K가 관심 있었던 건 과거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였다. 지금 이곳의 과거, 오래 전에 사라진 시대의 그 순간 말이다. 그뮌드가 복원하려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또한 비틀려 버린 과거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은 가지고 있다. <눈먼 지도자들이 이끄는 눈먼 나라다. 우리가 길을 잃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눈먼 사람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라는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혼란스럽고 기괴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상황, 이미 지나가 버린 몇 백 년 전의 플래시 백은 독자들이 K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모호하고 답답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진다면 지금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에 대한 섬세한 묘사 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극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다소 의외인 결말은 매우 놀랍다. 이건 뭐지? 싶어서 후반 몇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색다른 중세 고딕 미스터리를 만나고 싶다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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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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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는 방금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것이 믿기지가 않아 눈만 껌뻑 대며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 역시 선비를 보고 놀랐는지 경직된 자세였다. 달빛을 받은 여인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명주실마냥 희고 가느다란 머릿결은 풀어헤쳐져 있었으나 파도처럼 풍성하게 굽이쳤으며 두 눈은 푸른빛을 뿜었다. 살결은 진주와 같이 은은하였고 입술은 연지 분을 바른 듯 붉고 도톰했다. 봄철 복사꽃이 떠오르는 그림 같은 여인이었다. 과연 생김새가 인간이 지니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것이 필시 사람이 아닐 터였다. 옷차림 새 역시 기묘했다.

 

 

이 책은 교보에서 진행하는 퍼플 로맨스 공모전 1회 당선작이다.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책을 스스로 출판하는 자가출판시스템인 퍼플에서 시행했던 공모전이고, 1, 2차 심사를 거쳐 연재를 하고 독자 반응, 조회수, 심사위원의 의견을 종합해서 선발된다고 한다. 1회부터 1,000편이 넘는 공모 작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추어 작가들의 열기가 뜨거웠던 것 같아요. 주로 이북으로 출간되는 로맨스 장르 소설 류를 그다지 접해본 적이 없는데다, 오글거리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턴 터라 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컨셉이 "선녀가 된 외계인과 나무꾼 선비"라니, 공전의 히트를 쳤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컨셉이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어쩐지 선녀와 나무꾼 컨셉이라 다소 유치할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광해군 1 1609 8 25, 조선의 하늘을 부유하는 거대한 비행물체를 통해서 등장한 소녀 미르는 선비 휘지와 첫 만남을 하게 된다. 도도, 단아, 깐깐한 선비와 명랑, 쾌활, 뻔뻔한 외계 소녀와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다소 뻔히 보이는 전개부터 솔직히 색다른 맛은 전혀 없었다. 미르가 살고 있는 별에서는 성년식의 일환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떠나는 첫 단독 여행이 필수 사항이었는데, 자기 폭풍을 맞는 바람에 설정해 놓은 좌표를 이탈해서 조선으로 추락하게 된 것이었다. 휘지는 모함으로 인해 아버지가 관직에서 물러나고, 현재 유배를 당항 상태로 홀로 산에서 글공부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주선이 고장 나 어쩌지를 못하는 미르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휘지는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그들의 동거가 시작된다. 유배자의 신분으로 정식 혼례도 치를 수 없는 처지의 휘지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미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좌충우돌, 알콩 달콩하게 펼쳐진다.

 

"소저, 나를 보세요. 소저가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하여 내가 소저를 보낸 것은 아닙니다. 여기 이 마음속에 내 눈과 기억 속에 소저는 영원할 것입니다. 내 수절이라도 하지요."

"싫어요, 도령.... 싫다고요."

휘지가 애써 익살맞은 표정을 지어 미르를 달랬다.

'평생 그대는 나의 각시이고, 나는 그대의 낭군일 것이네.'

 

실제로 <광해군 일기>에도 UFO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포착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것을 계기로 드라마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퍼플 로맨스 공모전이 2012년에 있었으니, 드라마보다 먼저인데 <별에서 온 그대>가 이미 휩쓸고 간 다음에 출간되어서인지 설정 자체의 새로움이 없어 어딘지 맥 빠지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스토리는 로맨스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게 진행된다. 양양 도호부사의 여식이자 오라비의 친구인 휘지를 짝사랑하는 수연, 휘지를 모시는 방자 같은 역할의 봉구가 갈등 구조를 전개시켜 주고, 한 쪽에서는 양양 고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도 진행된다. 근데 딱히 미스터리 한 살인사건이 휘지, 미르의 이야기와 상관이 없어 보여 따로 노는 듯한 느낌도 든다. 후반에 휘지가 수사에 뛰어들기는 하지만 정작 두 주인공의 로맨스와는 크게 관련되면서 전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르는 외계에서 온 소녀라기 보다 그냥 조선 여인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엉뚱하고 신선했는지 떠올려보자면 더욱 미르라는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심심하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전래 동화의 컨셉을 차용한 것도 성인 대상 로맨스 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소년 대상 동화로 풀었다면 더 공감을 많이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내가 10, 20대의 감성을 이미 잊어버려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나이대가 어린 사람들에게는 유쾌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정도의 로맨스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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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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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4(1636). 병자년의 겨울.

임금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이듬해 3월이 되자 조선 원정군의 주력부대는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임금은 청의 신하가 되어 궁궐로 돌아왔으며 신료들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더 높은 품계를 받은 신하들도 있었다. 누구도 전쟁에 대해, 패배와 굴욕, 죽음과 상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꽃이 피고 또 졌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싶어하는 역사, 혹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사는 치욕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의 또 다른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월호 선장과 병자호란 당시 지도자들의 서로 닮았다는 것이다. 배와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간 선장과 아무런 방어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백성들을 전지에 남겨두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국왕은 모두 리더의 책임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과도 같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오랑캐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었다. 인조는 과거 정권을 뒤엎는 데는 성공했지만, 집권 이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실패했고, 그 피해는 백성의 피와 눈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일을 우리가 다시 돌이켜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비단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소통과도 같다. 그러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오늘날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조는 피눈물 흘리는 노파의 오열을 듣고서야 병자호란이 끝난 지 1 1개월 만에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4일 만에야 겨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지도자가 무능하면 그 시련이 국민의 처절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김훈은 <남한산성>에서 조선 왕이 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무기력한 왕과 그를 둘러싼 권력 다툼속에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은 참담하고 쓸쓸했다. 강희진이 그리는 <이신>에서는 평범한 행복을 꿈꾸었으나 포로사냥의 희생자가 되어 가족을 잃고 인간성조차 말살 당한 남자를 내세워 착한 백성들의 한과 서늘한 분노를 대변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더러 절개를 다시 회복하라고 하는가? 김씨 부인이 그 동안 공부한 바로는 조선의 그 누구도 청나라에서 돌아오는 아녀자들에게 손가락질 하거나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시비할 자격이 없었다. 혹시 그런 말을 할 선비가 있다면 그는 이미 죽은 사람들일 거라고 김씨 부인은 믿었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회절강을 만들어, 그렇잖아도 끔찍한 삶을 경험한 여인들에게 또 다른 멍에를 지우는 촌극을 벌인다는 말인가? 또 한번 버린 정절이 물로 씻는다고 회복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회절강이 있다면 그 강물에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을 씻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교지를 내린 오랑캐의 주구, 즉 임금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시련이 환향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자호란의 희생양으로 청국에 끌려갔던 조선의 아녀자들은 환황녀라는 이름으로 멸시당하고, 정절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른다. 대체 누가 그들을 그 지경으로 몰아넣었는가? 참혹한 전쟁을 막지는 못하고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간신히 살아온 아녀자들에게 정절 운운하는 대목은 기가 찰 정도이다. 사대부들은 심양에서 돌아온 환향녀들과 재결합을 거부하고,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왕에게 주청을 올렸다. 더러운 몸으로 조상의 제사를 받을 수 없다는 핑계였다. 수많은 사대부가의 환향녀들이 쫓겨나거나 자결을 강요 받았고, 그에 불응할 경우 은밀히 살해되는 경우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염치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 망종들이었던 것이다. 자연히 환향녀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았다. 아녀자들이 전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전쟁에 진 것도 아녀자들의 잘못이 아니건만 전쟁으로 인한 단죄가 왜 아녀자들의 몫이 되어야 하느냔 말이다.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간 위안부를 두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따라다녔다고 말하는 망언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불성설의 참담한 책임 회피는 세월호를 둘러싼 현재의 우리 현실에서도 보여지는 모습이라 안타깝고, 화가 난다.

환향녀(還鄕女).. 고향[]에 돌아온[] 여자[]가 뭘 어쨌단 말인가. ‘화냥년이라는, 손가락질의 표적으로 변질된 원통하고 서러운 이름. 나라의 패전으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청국에 끌려간 여인들이다. 당시에 임금은 교지를 내려 한강, 소양강, 금강, 예성강, 대동강 등을 회절강이라 칭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녀자들에게 그곳에서 회절하는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끔찍한 삶을 경험한 여인들에게 임금이 무슨 권리로 회절강을 만들고, 또 한번 잊어버린 정절이 물로 씻는다고 회복이 될 수 있단 말인지. 만일 진짜 회절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야 할 사람은 오랑캐 황제에게 치욕스럽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임금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하늘이 정한 이치라면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간의 의지뿐이다. 그것만이 천명이다.

나쁜 왕은 죽여야 한다...

이신은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진심이었다. 입 밖에 내고 보니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왕을 죽여야 한다.

 

주인공 이신은 칙사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랐으나 여전히 서얼이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내이며, 칼잡이이고, 잃어버린 아내와 딸의 꽃신을 만드는 갖바치였다.  이씨 왕조의 신하(李臣)로 살라는 뜻을 담아 이름 지어졌으나, 다른 왕을 섬긴 이신(貳臣)이 된 그를 통해서 국가에 복수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 모두의 염원이 아니었을까. 이신은 청나라의 칙사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와 마찬가지로 청으로 끌려갔던 아내와 딸을 찾으면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을 향해 복수를 계획한다. 이신(李臣)에서 이신(貳臣)으로 그의 삶이 바뀌게 만든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 말이다.  '평범한 남자'를 통해 17세기 조선의 사대부를 단죄하는 일은 물론 그리 쉽지도, 만만치도 않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야기라서, 병자호란을 전후로 한 인조와 서인 세력의 무능과 전쟁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하룻밤도 편하게 잠들어본 적 없는, 고독하고 고독한 남자 이신.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그의 통탄한 마음은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도 할 수 없이 죽어간 백성들의 그것과도 같다.

강희진은 이토록 참혹한 비극이 있었다면 전쟁을 부른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흐지부지 끝나버린 400년 전의 역사에 주목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17세기 조선 사대부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사회지도층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40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진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만화경처럼 눈에 비춰질 뿐, 무엇이 비춰지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바로 권력이었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임금은 그 일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강화도 나루터에서 몸을 던진 여인들, 청으로 끌려가 모진 매질과 고신에 죽어간 사람들, 가족과 모든 것을 잃고 어두운 골짜기에서 죽어간 수많은 백성들의 원한은 아무도 갚아주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벌인 임금은 여전히 임금이고, 사대부들은 여전히 사대부였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허구인데 더 끝까지 가버리지,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작가의 이런 시도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과오는 있으나 책임이 없는 그들에게 보란 듯이 이신처럼 그런 존재가, 현재의 세상에서도 언젠가는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치욕스러운 역사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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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성석제/창비

 

이야기꾼 성석제의 2년만의 신작!!

 

성석제가 천의무봉의 솜씨로 펼쳐놓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한 인간의 이야기.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온 그의 일생이 우리가 잊고 있던 주변의 누군가를 돌아보게 하고, 굴곡의 역사 가운데 던져진 개인의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잔인한 달/루이즈 페니/피니스아프리카에

 

포스트 애거서 크리스티로 불리는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완벽한 플롯과 매력적인 캐릭터의 조합!

 

“가까이 있는 적이오. 심리학적인 개념이에요.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감정이 실제로는 정반대인 현상을 일컫는 표현이죠. 하나의 감정이 또 하나의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는 건강한 감정이고 다른 하나는 병들고 왜곡된 감정일 때 쓰는 말이에요.”

“세 가지 조합이 있어요. 집착은 사랑인 척하고, 동정은 연민인 척, 무관심은 평정심인 척 속이죠.”



 

오솔길 끝 바다/닐 게이먼/시공사

 

'환상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 닐 게이먼의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소설

한 중년 남자가 소중한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무언가에 끌리듯 어린 시절 살던 곳으로 차를 몬다. 어느새 자신이 살던 동네의 오솔길 끝, 낡은 농장에 다다른 그가 농장 뒤에 있는 연못에 앉자 수십 년 동안 잊고 있던 과거가 한번에 밀려온다.

 

 

 

 

 

 

 

 

킹- 거리의 이야기/존 버거/열화당

 

‘킹’이라는 이름의 개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 노숙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

 

존 버거는 다분히 다큐멘터리적일 수 있는 주제를 문학적 틀로 엮어 이야기를 끌고 간다. 그러면서 쓰레기를 뒤지며 살아가는 노숙자들의 삶을 역설적이게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담아낸다.

 

 

 

 

 

 

 

솔로몬의 카펫/바바라 바인/봄아필

 

영국 심리 스릴러 작가 바바라 바인의 작품으로 <골드 대거상> 수상작이다.

 

제목인 ‘솔로몬의 카펫’은 사람들을 카펫에 태우고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날아서 데려다 준다는 ‘솔로몬 왕의 카펫’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 솔로몬의 마술 카펫 같은 지하철이, 심리 스릴러의 거장 바바라 바인의 손끝에서 어둠의 심연을 향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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