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은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고 평가 받는다. 특히 이번 <일곱 성당 이야기>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라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킨다는 평도 받았다. 실제 현지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내어 그를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려놓기도 했다. 현학적이고 지적인 추리 소설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에코에 비견된다는 것만으로 밀로시 우르반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중세 고딕 미스터리라니, 흔치 않은 장르라 더욱 궁금했던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중세 성당에서 거대한 종의 추에 매달린 사람이 발견된다.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에 구멍을 뚫고 밧줄로 꿰어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살해된 사람의 다리가 고급 호텔의 깃대에 꽂힌 채 발견되고, 스케이트보드 반쪽이 복부에 박힌 10대 소년의 시신도 발견된다. 엽기적이며 잔혹한 사건들을 목격한 것은 주인공 K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크베토슬라프 슈바흐로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던 소심한 주인공은 스스로를 K라 지칭하며 주변인들에게도 그렇게 불러달라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중퇴했고, 이후 경찰이 되지만 경호를 맡았던 인물의 죽음으로 책임을 물어 경찰에서 쫓겨난 신세이다. 그는 살인 사건 목격 이후로 경찰 서장을 통해 귀족 출신 그뮌드와 조력자 3명을 만나게 된다. 그뮌드는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을 중세 고딕 양식으로 되돌리고, 14세기의 법과 정의, 종교적 순수와 엄숙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인물이다. K는 그들과 함께 이어지는 기묘한 사건에 휩쓸리며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체코의 중세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여섯 개의 성당은 실제 존재하지만 나머지 하나 ‘7성당은 대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그 동안 살해되거나 협박 편지를 받은 이들은 모두 건축가이거나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한 이들로 밝혀진다.

 

 

당연히 독자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이 무슨 뜻인지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즉각 대답해 줄 수도 없고 직접적으로 대답해 줄 방법은 더더욱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은 내가 어떤 부분을 일부러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는. 그러나 계속해서 사건을 여러분의 추측에만 맡기는 것은 내가 진실을 찾아 헤맸듯이 여러분도 진실을 찾아 헤매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불확실성, 똑같은 불안감, 똑같은 두려움을 여러분도 느끼기를 원한다. 그런 것 없이 여러분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로 진실을 찾는다면 이 단어의 미로 사이에서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살인 사건의 수사는 독자 입장에서 견딜 수 없이 느리게 진행된다. 그뮌드가 왜 K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반이 지날 때까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가끔씩 특정한 환각 증상에 빠지게 되는 K 또한 그가 옛 건축물에 손을 대면 그 건물에 얽힌 과거의 사건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 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다. 끔찍한 살인 사건들은 매우 점잖은 문체와 세련된 문장으로 건조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너무도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된 건축물의 외관과 정제된 문장으로 다듬어진 인물들의 감정 표현은 페이지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은 사건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더디게 흘러 간다. 5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인데, 다 읽기까지 일주일 여의 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읽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단어들을 꼭꼭 삼켜가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은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책장에 손이 가는 독특한 작품이다.

 

K는 사건의 배후에 프라하의 찬란했던 과거황금시대를 재건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중심에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카를로프, 성 슈테판, 아폴리나리, 에마우제, 나 슬루피의 성수태고지, 성 카테리나,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성당은 어디인가? 그는 존재를 알 수 없는 그 일곱 번째 성당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타락한 현대의 프라하 건축물들을 중세의 고딕 양식으로 완벽 복원하겠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그뮌드는 다시 한 번 과거가 현재가 되도록 만들려는 인물이다. 그의 맹목적 복원 의지는 단순히 건축 양식에서 그치지 않고, 14세기 당시의 급진적인 법과 정의, 결점 없는 종교적 순수함과 엄숙함을 프라하 전체에 입히려는 엄청난 계획이다. 현대 프라하의 모든 상업적인 요소들과 정신의 결여를 일순간 붕괴시키려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화형에는 화형으로, 멍에는 멍으로, 상처에는 상처로 갚으라 했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약속을 되돌이킬 때가 되었어. 멍청하고 무능하고 부도덕한 건축가와 관료주의자들이 몇 명 죽는 편이 모두가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손에 고삐 대신 운전대를 잡을 야만인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나?

 

14세기 카렐 4세가 세운 프라하 신시가지의 미학적, 종교적 이상에 빠져 있던 K가 관심 있었던 건 과거에 존재하는 것 그 자체였다. 지금 이곳의 과거, 오래 전에 사라진 시대의 그 순간 말이다. 그뮌드가 복원하려는 과거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한 순간이다. 하지만 그 또한 비틀려 버린 과거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은 가지고 있다. <눈먼 지도자들이 이끄는 눈먼 나라다. 우리가 길을 잃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눈먼 사람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유서 깊은 도시를 부수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라는 문구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혼란스럽고 기괴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로와 같은 상황, 이미 지나가 버린 몇 백 년 전의 플래시 백은 독자들이 K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는 모호하고 답답할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가진다면 지금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그에 대한 섬세한 묘사 만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극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다소 의외인 결말은 매우 놀랍다. 이건 뭐지? 싶어서 후반 몇 페이지를 다시 돌아가서 읽어야 했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색다른 중세 고딕 미스터리를 만나고 싶다면, 꼭 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