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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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서 '답'을 찾으려는 풍조 속에서 진화 과학은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왜 이런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기원을 알고 싶다면 자연과 그 진화사를 보라! 이 웅장한 메시지에 많은 이가 끌리는 이유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원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혹자는 회복하고자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p.9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라서 그런거야... 등등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은 항상 좋고, 정상적이고, 또 필연적이어서 우리가 꼭 지키고 따라야만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했을 때,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진화 인류학자 이수지 박사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자연 그 자체와 구별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어떤 행동이나 특성을 자연스럽다고 할 때 전달되는 긍정적 가치와 달리, 자연은 순수하지도, 편하지도, 또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 좋다고 외치는 것이 '자연 친화'라면, 그것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의미에서만 그렇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자연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움'을 확인하려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현재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 현대 인류의 출산 및 생식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생물학, 생태학, 신경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본성'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과 낙인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을 인간 행동의 근거이자 정답으로 삼을 때, 자연은 오히려 오류의 언어가 된다는 말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는 그에 대한 사례로 “모든 생명은 어미가 새끼를 돌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옹호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부합하는 사례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서사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자연'과 '자연 아닌 것' 사이의 대치 구도를 상정하고, '자연'에 가까운 어디쯤에서 인간 행동의 원형이 발견된다고 가정한다. 우리 행동은 그 원형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 즉 부자연스러우면 ─  적대시된다. 싸우지 않는 남자, 아이를 키우지 않는 여자,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 그러하리라. 본성에 충실한 결과 벌어진 전쟁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기반한다.            p.135~137


지난 해 세계 인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에 도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2024년에 세계 인구는 81억 명에 도달했다. 그리고 또 한국이 단일 국가로서는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5명에 이르렀다. 당분간 세계 인구는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며 21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100억을 향해 더 늘어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인구 감소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쪽은 '너무 많음'을, 다른 쪽은 '너무 적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사실이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인구'를 일정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개체들의 군집이라고 했을 때, 그 집단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지에 따라 다른 현상이 펼쳐질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계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너무 많고 또 너무 적은 문제를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물론 한국 사회는 저출생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진짜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거기에 깃든 불평등의 구조다. 이 책은 '너무 많다'라는 말에 숨은 우생학적 동기에 대해 짚어보고,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며 우리가 천착해야 할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기후 위기라는 난제를 함께 풀어 나가며 100년 뒤를 맞이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인간이 언제부터 ‘자연’을 도덕의 근거이자 행동의 잣대로 삼아 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말 아래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통념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다.”라는 말 뒤에 숨겨 온 믿음과 편견을 부수고, 제대로 된 단어 ‘자연스러움’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진화를 생물학의 관점이 아니라 인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부터 새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라기 보다 인문학책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는데,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 아래 이렇게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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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식물의 문화사
마이크 몬더 지음, 신봉아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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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내식물은 몇 년씩, 때로는 몇십 년씩 우리와 동거한다. 어떤 식물은 우리의 배우자보다 오래 생존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한 가정 내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구입하고 교환하고 때로는 훔치고 선물로 주고받는다. 이러한 실내식물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우리 삶에 기쁨과 풍요를 더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르는 식물들은 수세기에 걸친 식물채집 역사의 잔해들로, 대부분 생리적으로 강인하고 집 주인에게 외관상 매력적인 종들로 선별 구성되었다.             p.24~25


밝은 햇빛과 무성한 녹색 식물이 인간을 낙관적으로 변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우리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내로 자연을 들여오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플랜테리어가 유행하고,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자연환경과 실내 환경이 하나의 장소에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인테리어까지 있으니 말이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가리켜 '식집사'라고 하는데, 이들에게 식물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가족 구성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식물이든, 방치되어 잎이 누렇게 시든 식물이든 실내식물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은 '실내식물의 역사부터 시작해 오늘날 실내식물의 입지와 실내식물 시장의 규모, 실내식물에 대한 연구와 기술의 발전, 실내식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그리고 식물의 인류의 공진화까지 다루고 있다. 실내식물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방식이 변해온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이국적인 열대식물이 세계 곳곳의 실내환경으로 그 서식지를 넓혀나간 이야기부터 지금의 신래식물을 있게 한 육종가들의 연구와 기술의 발전, 오늘날 식물을 활용한 실내조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빅토리아시대의 유리 장식품인 워디언 케이스, 그리고 유전학과 건축학의 절묘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식내 식물의 세계를 탐험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길어진, 도시의 인간미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원을 소유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부동산을 임차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원을 가꾸는 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실내식물은 반짝이는 녹색 생명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욕구를 반영한다. 실내식물은 대부분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유래한 것이다. 관엽 식물이라 불리는 사계절 내내 초록 잎을 볼 수 있는 식물들이다. 그냥 식물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인데도, 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그 변하지 않는 초록컬러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식물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데, 그 차이는 식물의 생명력에서 온다. 그야말로 초록이 주는 힘이다. 




실내식물의 전통적인 역할, 다시 말해 장식물로서의 역할은 건물의 디자인과 물질대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집안 공기의 질을 개선하려면 왕성하게 잘 자라는 식물을 아주 많이 키워야 하며 이와 관련된 건축적, 공학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패트릭 블랑의 그린 빌딩과 도시 협곡이라는 비전이 더해지고 도시 바이옴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짐에 따라, 우리는 식물이 방들을 연결하고, 건물을 뒤덮고, 둘둘 말린 채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삼차원의 관계이다.             p.147~149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제일 많이 보이는 포인세티아라는 식물이 있다. 잎이 빨간색이어서 그 자체로 크리스마스 트리느낌도 나고, 화사한 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식물이다. 오래 전에 포인세티아를 두 개 데려온 적이 있다. 식물을 꽤 많이 키워왔기에 포인세티아가 데려온 지 며칠 만에 시들어 버려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아니, 절화도 아니고 뿌리가 있고 흙에 심어진 식물인데 왜 이러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포인세티아는 실은 가지를 잘라 화분에 꽂아둔 것으로 몇 달 안에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애초에 실내식물로서 키울 수 없는 식물이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식물을 이백 종류 넘게 키워본 식집사로서 나름 식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내가 몰랐던 정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삽화와 이미지가 굉장히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굉장히 퀄리티가 뛰어나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각종 식물들의 사진부터 수채화, 목판화 등 시대별 그림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작품들과 식물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는 사진, 그리고 식물 연구에 관한 각종 자료까지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정작 실내식물의 식물학적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실내식물이 수동적인 부속품이 아니라 우리 생활공간의 생태와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라는 점과 실내식물이 가족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종종 개인적인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분에서 밑줄을 그으며 매우 공감했다. 식물이 과거, 현재, 어쩌면 미래와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이 너무도 현실적이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실과 창가와 사무실 선반에 두는 흔하고 평범한 식물이 우리 주변의 일상 환경에서 가장 해로운 독소를 일부 흡수해준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만성 피로증후군이 자연의 결핍에서 온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 식물과 자연을 두는 삶을 경험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숲 속을 걸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역력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자연환경과 실내환경을 결합시키는 거다. 실내 공간에 식물과 적절한 조명을 설치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돌보면서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다면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자, 아름답고 매혹적인 실내식물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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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교유서가 시집 1
소후에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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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댔다. 하얀 속살 같은 것도 둥근 씨방 같은 것도 없이 썩을 사람. 잠에 곯아떨어진 남자의 머리맡에서 여자는 왜 나를 속였어, 너는 다 거짓이야. 낮고 스산하게 말하며 사과씨를 투, 투 뱉어댔다. 남자의 볼따구니에 붙은 사과씨들이 꿈틀댔다.              - '나로 말할 것 같은 사과' 중에서, p.60


교유서가에서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소후에 시인의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를 받았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도 바로 구매해 버렸다.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 담긴 폴라로이드 북마크도 받을 수 있는데, 시집과 너무 잘 어울리는 북마크라 좋았다. 심플한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표지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좋은 건 내지에 표지 색과 같은 컬러의 그라데이션을 준 부분이다. 밑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며 들고 다니면서 계속 읽고 싶은 예쁜 시집이다.


'타원의 밤'은 일상과 환상의 경계가 미묘하게 걸처져 있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온갖 빚으로 가득한 퍽퍽한 일상 속에서, 아무때나 일기를 쓰고 메개 밑에 숨기고, 또 몰래 해진 일기장을 또다시 들추며, 다리가 흔들리는 밥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 하루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우주가 창을 열면 눈이 시릴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요즘 빠져 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긋지긋한 가정 속에서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두운 밤이 깊도록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 희망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으며 풍경을 묘사한 시 '비도덕적 거울'도 마음에 남았다. '책이 거울이었다면 반복해서 읽었을까', 삶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삶을 놓고 싶다는 말로 오독했다', 는 문장들과 다리를 절뚝이며 열차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올려놓는 남자를 끔찍한 것을 본 것마냥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내 눈에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이 계속 남았던 것은 언젠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땅에 떨어진 식빵 위로/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슬리퍼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처럼/철거 예정인 주택 골목 안에 덩그러니 놓인//

누구 없어요?/누가 있었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오래도록 머물 수 없었던 마음들은/텅 빈 제집 담벼락에 스프레이로/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 '희고 말랑한 문' 중에서, p.131


이 시집에 수록된 마흔다섯 편의 시들은 ‘문 NO.365’에서 ‘문 NO.12', ‘문 NO.24', 그리고 '문 NO.∞’로 끝이 난다. 우리가 살아 가는 일년 사계절의 시간처럼 보이는 365에서 시작해 점점 줄어들어다가 결국 무한대 기호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있고, 시인의 집필의도도 있겠지만, 결국 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면 문을 열고 우주로 향하는 무한대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적 시간들이 시의 단어와 문장들 속에 담겨 있지만, 시공간을 조금 더 넓혀 본다면 우리의 사고를 무한한 우주로 확장해도 좋지 않을까. 


정제된 단어와 은유로 빚어낸 함축적인 문장들이 시라면, 그 사이의 행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자라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풍성한 시간을 선사해준 시집이었다. 시집 읽기의 가장 좋은 점은 뭐랄까, 마음껏 오독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언어의 리듬도 좋고, 분명 일상 속에서 마주할 법한 풍경인데도 시인의 언어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는 듯한 느낌도 참 좋다. 이 시집의 제목에 '우주'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시들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우주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은유할 수 있는 거대하고도 무한한 존재이니 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한 뼘 남짓한 우주를 가지고 있다. 그 존재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푸른 사과처럼 무사한 세계에서, 불안정하더라도 단단한 마음으로, 닫힌 문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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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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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멍청한 짓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저지르게 되는 느낌 알아?" 외위스테인이 마지막으로 담배를 빨아들이며 물었다.

해리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서 껐다. "전에 생쥐가 곧장 고양이에게 걸어가서 죽는 걸 봤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도 모르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없나?"

"일종의 충동이겠지. 우리는, 아니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끌리나 봐.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져서라더군. 하지만 빌어먹을, 모르겠어."                p.160


부동산 재벌 ‘뢰드’가 개최한 파티 이후 실종됐던 여성들이 차례차례 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한다.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일이 우연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여성이 같은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 말고는 전혀 단서가 없었고, 자연스레 뢰드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가 된다. 살인사건의 범인 80퍼센트는 희생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뢰드는 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고, 따로 수사할 사람을 고용하기로 한다. 최고 일류가 필요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술집에서 매일 술잔만 기울이던 해리 홀레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온다. 이제 경찰이 아닌 해리는 사설탐정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해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심리학자, 비리 경찰, 택시 기사, 전직 형사가 모여 수사를 시작한다. 끝없이 추락하고 부서지고 상처받아온 해리는 과연 이번에도 범인을 찾고 의뢰받은 일을 해내 한 여인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전작인 <칼>에서 요 네스뵈는 차갑고도 무자비하게, 한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해리의 행복을 난도질해버렸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최악의 비극이 벌어졌었다. 해리 홀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충격적인 포문을 열었던 전작을 기억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 <블러드문>에서 해리는 오슬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에 취한 채 등장한다. 신용카드는 한도 초과였고, 텅 빈 통장 또한 그가 알거지라는 걸 보여주었다.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셔대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이제 남은 돈도 인생도 미래도 없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용기 혹은 비겁함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가 머무는 숙소 방의 매트리스 아래에 낡은 베레타 권총이 있었다. 노숙자에게 25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었다. 총알은 세 발 있었고, 이제 그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나이든 여인이 술집에서 그에게 말을 건네왔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녀가 실종되었다거나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무엇을 공유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연결했는지 깨달았다. 주차장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발생한 외부의 위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루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교실 문간에 서 있던 여자, 그가 다시 구할 기회를 얻어낸 병원 침대 속 여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p.468


이번에 더 이상의 인생도, 미래도 의미가 없어진 해리 홀레를 다시 사건으로 이끈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해리 홀레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해리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신의 고용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사건을 쫓기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진 지 거의 3주가 지났음에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도, 알리바이를 제시한 오슬로의 특정인을 향한 언론의 마녀사냥을 멈출 단서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이다. 주도 면밀하게 계획한 살인사건에서 범인은 법의학적 증거들도 모두 없애고, 피살자의 사망 시간에 확실한 알리바이도 세우고, 살인 무기도 모두 버리더라도 사실상 절대 없앨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동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저지르고 있는 범인의 동기는 뭘까.  



요 네스뵈는 한 작품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인물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가장 은밀한 소망과 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매번 범인의 시점이 거의 처음부터 함께 진행된다.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 독자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조금씩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극중 수사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해리 홀레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끊임없이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마지막의 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를 이루며 확실한 사진을 보여주는 건 육백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섰을 즈음이다. 


이번 작품에서 해리 홀레가 꾸린 소박한 수사팀이 의의로 좋았다. 입원 중인 암 환자와 부패 혐의로 조사받는 경찰관, 택시 운전사와 전직 형사로 이루어진 홀레의 팀. 후반부에 사건이 해결된 뒤에 외위스테인이 "그냥 이 모임 계속하면 안 되나? 꼭 사건을 해결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을 때 너무 공감되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떠나야 할 사람은 결국 떠나고, 우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애정하는 캐릭터 한 명을 보내줘야 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 홀레는 나이를 먹어 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진다는 점이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실제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요 네스뵈는 여전히 탄탄하고 정교하게 플롯을 만들고, 거듭되는 반전과 치밀한 구성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야기는 '블러드문'이라고 불리는 개기 월식이 시작되기까지 이 주 간의 시간 동안 벌어진다. 그 핏빛 블러드문을 실제로 보게 되려면 이 두툼한 페이지의 시간과 밀도를 견뎌내야만 한다. 일단 시작하면 밤새도록 읽게 될지도 모른다. 자, 마음 단단히 먹고, 삼 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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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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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 성인, 아기, 잠 못 자는 밤, 배설과 우유, 빨랫감더미. 작업하려면 침실의 작은 테이블을 공유하거나 늘 어질러져 있는 식탁을 사용해야 했다. 현실을 직시해. 그녀가 거기서 <여정>을 쓸 수 있었겠어? 그 정교한 산문, 캐서린이 흠모하는 조지 엘리엇의 망령에게 바친 야심 찬 여담, 고통스러울 정도로 민감한 주인공의 의식, 주변을 맴도는 주의깊은 시선, 마치 독자 바로 앞에서 천천히 이야기하는 듯한, 의식적으로 정돈된 늘 너그럽고 관용적인 서술, 그 방대한 자료. 아니, 불가능했다.               p.352


여기 한 남자가 있다. 학창시절 금단의 사랑을 나눈 대가로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된 그는 긴 방황을 거쳐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칠개월된 아기와 자신을 버리고 아내가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고, 남자는 아내의 실종에 대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실종된 아내가 사망하면 남편이 범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쓴 노트 속 글 때문이었다. '그녀는 죽어 있어야만 했다'는 문구를 보고 형사가 의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오래 전 연애에 관한 것이었고, 그 문장은 연애가 죽어서 매장되었다는 은유였을 뿐이다. 아내가 왜 떠났는지 알 수 없었던 그는 시인의 꿈은 뒷전으로 미루고 홀로 아기를 키우며 현실을 감당하기에 급급하다. 남자가 아내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삼 년이 지나서 그녀가 쓴 소설을 읽고 나서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많은 여성이 그저 꿈꾸기만 했던 무서운 도약을 이루어낸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삶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그것에 맞서 싸웠다.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뤄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 가족과 사랑이라는 제일 비싼 대가를 치룬다. 남자는 아내가 쓴 소설을 읽고 왜 그녀가 떠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녀의 글은 아름답고, 명료하고, 예술적이었다. 도입부의 어조에는 권위와 지성이 실려 있었다고, 작가의 시선은 정확하고, 무자비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눈부시게 빛났다. 그 정도로 훌륭했다. 그녀가 그렇게 글을 잘 쓰기에 용서해야만 했다. 그녀가 사랑을 거둔 건 이기적이고 냉정한 짓이라 해도 말이다. 문학계는 그녀를 천재로 선언했으며 그녀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인생에서 아들과 남편은 사라졌지만,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전 세계에 자신의 책과 상을 쌓는다. 그녀는 거물이 되었고, 45개 언어로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는다.





사랑이 과거로 사라질 때 모두가 잊어버리는 본질이 있었다. 함께했던 순간, 시간, 나날 속에서 느끼고 맛보았던 것.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이 버려지고, 그것이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덮이고, 그후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불완전한 기억에 의해 다시 덮이기 전의 그 모든 것. 천국이든 지옥이든, 많은 기억이 남진 않는다. 오래전에 끝난 연애와 결혼은 과거에서 온 엽서와도 같다. 날씨에 대한 짤막한 언급, 재미나 슬픔이 담긴 간단한 이야기, 그리고 뒷면의 밝은 그림. 제일 먼저 사라지는 건 포착하기 힘든 자신이다.           p.65


이언 매큐언은 가족관계, 유년 시절, 태어난 해까지 작가 본인을 빼닮은 주인공 롤런드의 전 생애를 696페이지에 달하는 밀도높은 분량으로 그려냈다. 열한 살의 롤런드는 기숙학교에서 엄격한 피아노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중이다. 그는 늘 실수하는 데서 매번 틀리곤 했다. 엄지가 멋대로 움직였고, 늘 똑같은 실수가 이어졌다. 틀리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실수가 그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알면서도 놓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 그것이 삶의 교훈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롤런드는 피아노 선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와 금단의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이후 삶의 행로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에게 집착하는 선생 곁에서 떠나기 위해 대학과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떠도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기나긴 권태의 시기를 견디다, 가정을 이루고 정착했지만, 그 삶 마저도 평범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며 표류하듯 살아가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떠난 걸 제외하면. 아니, 그것도 반응이었다." 


그때 대학에 진학했다면,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아내가 떠나지 않았거나 다시 돌아왔다면? 그렇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까?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혹은 내리지 않은 결정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한다. 가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롤런드의 삶을 지켜보며 어차피 인생이 후회의 연속이라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모든 순간을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 작품은 두툼한 페이지만큼 차곡차곡 시간의 밀도를 쌓아가면서 서사를 완성해 나간다. 


이 작품 속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보자면, 원하는 대로 문학적 야심을 이루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곁에는 가족도, 가까운 친구도,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음을 기다리게 된 삶과 세상에 남을 창작품은커녕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지만, 평범하게 가족과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온 삶을 비교하자면, 관습적인 기준으로 남자가 더 행복해 보인다.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사랑하는 가족을 철저히 외면한 채 문학적 야망을 이룬 아내의 삶보다 가난하지만 충실한 아버지의 삶을 산 남편 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초라한 주변인의 삶을 살고 있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좌절과 자책, 회한으로 얼룩져 있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나는 아내 앨리사의 삶에 자꾸 마음이 갔다. 언젠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쓰인 소설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녀의 삶에 매혹당했기 때문이다. 문학적 야심이 있었지만 사랑에 빠졌고, 그다음엔 결혼, 그다음엔 아기가 태어났다. 옛 야심은 깨지거나 잊히고, 예측 가능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하기로 한다. 누구도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앨리사의 결단이, 그 뒤로 이어지는 행보가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롤런드의 일생을 통해 알게되는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부분도 너무 좋았지만, 앨리사의 삶을 통해 창작을 하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먹먹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앨리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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