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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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서 '답'을 찾으려는 풍조 속에서 진화 과학은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왜 이런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기원을 알고 싶다면 자연과 그 진화사를 보라! 이 웅장한 메시지에 많은 이가 끌리는 이유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원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혹자는 회복하고자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p.9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라서 그런거야... 등등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은 항상 좋고, 정상적이고, 또 필연적이어서 우리가 꼭 지키고 따라야만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했을 때,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진화 인류학자 이수지 박사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자연 그 자체와 구별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어떤 행동이나 특성을 자연스럽다고 할 때 전달되는 긍정적 가치와 달리, 자연은 순수하지도, 편하지도, 또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 좋다고 외치는 것이 '자연 친화'라면, 그것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의미에서만 그렇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자연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움'을 확인하려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현재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 현대 인류의 출산 및 생식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생물학, 생태학, 신경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본성'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과 낙인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을 인간 행동의 근거이자 정답으로 삼을 때, 자연은 오히려 오류의 언어가 된다는 말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는 그에 대한 사례로 “모든 생명은 어미가 새끼를 돌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옹호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부합하는 사례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서사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자연'과 '자연 아닌 것' 사이의 대치 구도를 상정하고, '자연'에 가까운 어디쯤에서 인간 행동의 원형이 발견된다고 가정한다. 우리 행동은 그 원형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 즉 부자연스러우면 ─  적대시된다. 싸우지 않는 남자, 아이를 키우지 않는 여자,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 그러하리라. 본성에 충실한 결과 벌어진 전쟁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기반한다.            p.135~137


지난 해 세계 인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에 도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2024년에 세계 인구는 81억 명에 도달했다. 그리고 또 한국이 단일 국가로서는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5명에 이르렀다. 당분간 세계 인구는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며 21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100억을 향해 더 늘어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인구 감소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쪽은 '너무 많음'을, 다른 쪽은 '너무 적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사실이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인구'를 일정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개체들의 군집이라고 했을 때, 그 집단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지에 따라 다른 현상이 펼쳐질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계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너무 많고 또 너무 적은 문제를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물론 한국 사회는 저출생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진짜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거기에 깃든 불평등의 구조다. 이 책은 '너무 많다'라는 말에 숨은 우생학적 동기에 대해 짚어보고,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며 우리가 천착해야 할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기후 위기라는 난제를 함께 풀어 나가며 100년 뒤를 맞이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인간이 언제부터 ‘자연’을 도덕의 근거이자 행동의 잣대로 삼아 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말 아래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통념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다.”라는 말 뒤에 숨겨 온 믿음과 편견을 부수고, 제대로 된 단어 ‘자연스러움’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진화를 생물학의 관점이 아니라 인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부터 새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라기 보다 인문학책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는데,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 아래 이렇게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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