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말들 - 차별에서 고통까지, “어쩌라고”가 삼킨 것들
오찬호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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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래야, 산다. 살기 위해 단순해진다. 그럴수록 한쪽은 더 무례해지고 한쪽은 더 어그러지지만 별수 없다. 해독제 못 찾으면 빨리 진통제라도 먹어야 하니까.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근본적인 치유를 한다는 게 가족끼리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가부장제의 기운에 눌려도, 외모 품평의 대상이 되어도, 학력 차별을 당해도, 직업의 귀천이 있음을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느끼지만 티 낼 수 없다. 가족끼리는 괜찮다는 건,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와 같은 뜻이니까.              p.60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그래도 괜찮은 세상'에 길들여지면 기존과 달라지는 상황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에 부여하는 역할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달라야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사 노동의 평등을 위해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식의 말을 듣고 있으면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용감하게 응시해왔던 사회학자 오찬호의 신작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여자도 군대를 가는 게 진정한 성평등"이라는 말은 대부분 왜 남자만 차별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사회에서 특정 성별이 자연스레 '배제되는' 맥락에 집중하면 애초에 여성의 복무를 상상조차 하지 않은 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고, 그 자체가 남성 중심 사고이다. 그런데 왜 여성이 마치 징집 거부라도 한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게다가 고통의 평준화 정책에 어떤 사회적이 이익이 있다는 말인가. 군대 갈 아들에 대한 불안이, 딸도 군대 가면 감쪽같이 사라진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여성'도'라고 하는 순간, 그건 무조건 남자'만'이라는 추임새로 이어지고 자연스레 '왜 여자만'이라는 해묵은 구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여성은 '여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었고, 남성은 '남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배제되지 않았다. 그러니 여성은 혜택'만' 누린다는 접근은 몰역사적 이해인 거고, 성차별적 편견을 활용해 사회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 해법을 근시안적으로 만들게 되는 결론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 군대를 간들 '진정한 성평등'이 실현될 리도 없고 말이다. 




평범이 죄인 세상이다. 실제, 특출 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전투인데 말이다. 이들이 좀 안정적으로 살아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생애 과정에서 지루한 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도, 죽은 학자들만 등장하는 대학의 인문학 강의에 한 번쯤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이웃과 연대하고 인류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심지어 심신을 바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평범이라도 했기에 가능하다. 평범에서 하나만 삐끗해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라는 외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한다.                 p.196~197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할수록 타인에게 날카로워지고, 학력 차별 비판에 공부 못해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며 반박하고, 빈부 격차 지적에 자본주의 사회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건 인간성과 사회 구조를 바라보는 눈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생각과 언어의 간편함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버리는 폭력으로 이어지는지를 고민한다. 우리는 빈부격차에 대해 지적하면 “북한에 가라”라는 빈정거림이, 비정규직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그런 일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라는 조롱이,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서는 "너만 힘든 것도 아니다"라는 냉소가 돌아오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망가진 소통과 납작한 대화에 대해서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공정은, 어감부터가 단호하다.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세상에서 약자들을 지켜주는 방패다. 사람들이 공정이란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회는 조금이라도 살 만한 세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단어가 '차별하는 것이 공정이다'라는 문장으로 소비된다. 차별을 옹호하는 이들은 불평등의 이유를 개인의 노력에 따른 공정한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유'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 권리 지켜준다고 비장애인이 힘들다고 말하고, 동성애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면 이성애자가 불편하다고, 임대 아파트 때문에 자기 집값 오르지 않으면 책임질 거냐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싫어할 자유, 혐오할 자유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는 식이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공정과 연대의 가치가 제대로 사용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공정이 차별의 근거로 활용되고, 연대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매도해 약자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걸 막는다면 폭력은 더 교묘히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 것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 차별과 혐오의 정당화 등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납작한 말들'이 등장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납작한 말들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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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일하는 나와 글 쓰는 나 사이 꼭꼭 숨은 내 자리 찾기
하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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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은 가장 눈에 띄는 동시에 가장 희미한 옷이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전경에서 물러나 배경이 되고, 그래서 거기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된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며 그건 결코 슬픈 일도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유니폼을 입고 배웠다.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희미해질수록 나는 자유로워진다. 오직 일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 주는 이상한 해방감. 때로는 그걸 통해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기도 한다... 투명 망토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오늘도 내게서 한 걸음씩 멀어진다.               p.48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화려한 이력이 담긴 이력서부터 보인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이력서를 가득 채운 것은 전부 마트 행사 이력이다. 하현 작가는 파견직으로 냉장두유, 와인, 세탁 세제, 소형 가전제품, 초당옥수수, 파인애플, 냉동피자, 전통차 등을 팔면서 글쓰기를 해왔다. 이 책은 그렇게 14년 동안 여덟 곳의 마트에서 근무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대 사회의 신분이나 다름없는 정규직 타이틀을 포기하고 마트 계약직으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마다의 기구한 팔자를 자랑하며 돈도 잃고, 집도 잃고, 사랑도 잃어버린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마트로 향한다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부잣집 사모님이 갑자기 닥친 시련으로 한순간 '마트 아줌마'로 전락하는 상황, 다들 드라마에서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음 장면은 그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한달음에 달려와 이런 대사를 한다. "당신이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해!"


그렇다면 '이런 일'이란 무엇일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걸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작가가 마트에서 일하기 위한 면접에서도 "나이도 어리고 스펙도 괜찮고...... 아무리 봐도 여기서 일할 사람 같지 않은데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것도 작정하고 던진 뾰족한 말이 아니었기에, 여기서 일할 사람 같은 건 뭘까..라고 생각하며 마트에서 돈을 벌게 된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고. 그렇다면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작가는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을까. 




재희 언니의 말대로 이곳에는 미래가 없었다. 마트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현재일 뿐이었다. 오늘의 성실은 단지 오늘만을 보장했다. 버틴다고 해서 대단한 경력이 되지도, 쌓인다고 해서 내세울 만한 기술이 되지도 않는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내일도 내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마트를 떠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걸. 그럼에도 외면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미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닌지. 그 막막함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이 두렵고 불편했다.              p.145


사람들이 말하는 번듯한 직장에서 일자리를 얻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매번 마트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작가는 말한다. 덕분에 마트에서 근무하는 동안 일곱 권의 책을 냈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잘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대부분이 중년 기혼 여성인 마트에서 작가는 매순간 생각한다. 파견직과 계약직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해,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그리고 사회가 여성과 청년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마트는 직원을 존중하는 직장이 아니었고, 마트에서 일하며 마주하는 손님들 또한 툭 치면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아무 이유없이 화풀이 대상으로 직원을 대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런 곳에서 버텨내봤자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버틴다고 해서 대단한 경력이 되지도, 쌓인다고 해서 내세울 만한 기술이 되지도 않는 일. 그럼에도 마트에서의 노동은 정직하다. 일곱 시간 반 근무, 한 시간 식사, 삼십 분 휴식. 작가는 정직한 노동의 세계로 인해 글쓰기를 통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보장을 얻는다.



사실 퇴근과 함께 끝나는, 절대 집까지 따라오지 않는 일이란 거의 없지 않을까. 퇴근 시간을 딱 맞춰 지킬 수 있는 직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하현작가처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마트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선명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읽고 쓰고 생각할 여유가 있는 삶을 위해 기본적인 생활 정도만 가능하게 하는 월급을 받으며 살아온 방식을 존중한다. 누구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이 자신의 꿈과 보람을 얻게 해준다면 그 선택이 옳은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내 자리에 도달하기 위한 작가의 고민이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는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쉽게 마주하게 되는 마트가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이 투영되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과 안정적인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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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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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고대 그리스 세계를 서양의 기원으로 간주하지만 헤로도토스, 호메로스, 투키디데스가 묘사한 고대 그리스 세계는 그와 달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세계였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아테네 정치가들이 장려한 세계관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우리>와 <그들> 사이의 크나큰 차이에 의해 세계가 갈라졌다는 시각을 고수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인의 후손이자 그들로부터 서양 문명의 계보를 이었다고 여겨진 자들은 정작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p.56~57


법률로 노예제를 보장하고 인종주의를 그 구조의 핵심적인 신념으로 삼는 식민지 사회에서 흑인 노예이자 젊은 여성인 열여덟 휘틀리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백인 식민지인 가운데 다수는 10대 흑인 소녀가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가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밝히라는 대중의 요구도 거셌다. 그래서 법정에 모여 자신이 쓴 시집의 저자임을 증명하도록 소환된 것이다. 인종, 나이, 성별 탓에 여론은 불리했지만, 결국 휘틀리는 승소했다. 그리고 1년 뒤에 마침내 그녀의 시집이 출판되었다. 휘틀리의 생애와 저작은 서양 문명이라는 발상에 담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로써 생물학적 서양이라는 이념에 도전한 것이니 말이다. 


영국의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니냐 맥 스위니는 이 책을 통해 휘틀리 처럼 서양 문명의 경계선에 있던 열네 명의 삶과 저작을 통해 <서양 문명>으로 알려진 거대 서사를 낱낱이 풀어헤친다. 일반적으로 서양사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암흑의 중세와 찬란한 르네상스를 거쳐 계몽주의 시기 유럽과 근대화된 대서양 연안 국가를 지나 산업혁명,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계보로 읽어낸다. 하지만 이 책은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나 서양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아랍의 최초 철학자, 포르투갈에 맞선 북아프리카의 왕 등을 통해 그동안 감춰졌던 서양이란 역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소개된 인물들 중에 헤로도토스,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프 워런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처음 들었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었기에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서양이라는 개념과 서양 문명이라는 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는 특정한 이념적 기능을 수행했기에 17세기에서 19세기를 거치면서 구성되고 대중화되었다. 그것은 서양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제공했으며, 그 신화는 수준 높고 영광스러운 과거를 바탕으로 지배를 정당화하고 예속을 합리화하는 이념적 도구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이념적 기능은 쓸모를 잃었다. 오늘날 서양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인종적 억압이나 제국주의적 패권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원 신화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 결과 서양 문명에 대한 서사를 근대 서양의 자유 민주주의 원칙에 더 알맞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p.455


<서양>은 어떤 지리적 위치나 문화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보통은 어떤 문화적 요소 및 정치적, 경제적 원칙을 공유하는 근대적 국민 국가를 일컫는데 사용된다. 우리에게 서양사는 언제나 단일하고도 선형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의 기준이 되어 <서양>이라는 이름은 진보와 합리성, 보편의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저자는 주류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서양이라는 개념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우리가 당연히 서양이라 여겨 온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결론에 이른다. 16세기 후반에서 시작된 서양과 비서양의 구도는 18세기에 정착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양이라는 이름은 점차 하나의 권위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양이란 역사는 과연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지금과 같이 정의된 걸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서양사의 외피를 걷어 내고, 그 안에 감춰진 민낯의 역사를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왜 서양의 역사와 문명을 인류의 중심이라 여기는가? 그 인식은 과연 사실인가? 이 책은 서양 문명이 지닌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서양의 기원을 검증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선형적 족보라는 환상을 벗겨 낸다. 그리고 서양 문명이 이념적 도구로 작동한 방식을 생각하고, 그것이 출현해 오늘날 익숙한 거대 서사로 발전해 나간 과정을 추적한다. 수천 년 역사를 조망하는 책이기에 분량도 상당하고, 담고 있는 내용도 결코 수월하게 읽힐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감춰져 온 진정한 서양 문명사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었다. 자, 역사에 드리운 왜곡과 오해를 걷어내고, 진짜를 만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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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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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집 뒤뜰 감나무에 박혀 있는 못이다. 큰 대못은 아니고 아이들 가운뎃손가락 길이 정도 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누구나 다 사는 제자리가 있고 쓰이는 용도가 있는데, 이렇게 엉뚱하게도 감나무 둥치에 깊이 박혀 사는 나의 삶을 어떻게 설명해드려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사실 나는 사는 게 퍽 고통스럽다. 늘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 '못자국' 중에서, p.22


종이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다. 바다는커녕 영산강이나 낙동강 같은 큰 강에도 한번 다다르지 못했다. 아이들이 만든 종이배는 개울에 띄웠다 하면 늘 얼마 가지도 못하고 기우뚱거리다가 그만 물살에 휩쓸려버리고 말았다. 종이배는 자신이 그래도 명색이 배인데, 한 시간, 아니 단 십 분이라도 제대로 유유히 흘러가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자신을 만드는 소년에게 바다로 가는 게 꿈이라고 말을 건넨다. 소년은 종이배인 주제에 꿈이 크다고 비웃었지만, 친구들이랑 내기를 하면서 일등 하면 바다로 보내주겠다고 말을 한다.




그날 종이배는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고, 결국 일등을 했다. 어쩌면 소년이 바다 구경을 시켜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은 종이배에게 바다는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대로 냇가에 버려둔 채 친구들과 우르르 뛰어가버렸다. 그렇게 냇가에 버려진 종이배에게 시간은 어김없이 잘도 흘러갔고, 이대로 바다도 보지 못하고 죽나 싶어 고통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녀가 종이배에게 말을 걸었고, 사연을 들은 소녀가 종이배를 바다로 데려다 주기로 한다. 하지만 바다는 여기보다 수천 배, 수만 배 더 위험한 곳이라 가라앉지 않도록 미리 연습을 하기로 한다. 결국 종이배는 소원대로 바다에 가서 뒤집히거나 가라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왜? 나도 갈 수 있어. 바다로 가는 게 내 꿈이야."

"종이배인 주제에 꿈은 크군. 하긴 꿈이야 뭔들 못꿀까."

소년은 나를 비웃었다. 나는 그런 소년이 미웠지만 하는 수 없었다. 나를 만드는 이가 바로 소년이었으니까.            - '종이배' 중에서, p.213


정호승 시인이 쓴 단 하나의 장편 우화소설 《연인》과 그동안 모아온 단편 우화소설을 엮은 《항아리》, 《조약돌》 이렇게 3권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두 권을 먼저 읽고, 이번에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다. 시원한 물속 풍경이 멋진 표지 이미지를 가진 <조약돌>은 시인이 쓴 단편 ‘우화소설’ 중 43편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강가를 떠나 어디 다른 데 가서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조약돌, 몹시 춥고 외로워 누구를 꼭 껴안아 보고 싶은 빈 들판, 명태잡이 어선의 그물망에 걸린 명태, 연자방아를 돌리는 어린 망아지, 모래를 쌓아 쉴 곳을 만들고 싶은 갈매기, 자신이 생화보다 아름답다고 믿는 조화 장미 등 작고 사소한 것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면서 대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며 삶을 비관하는 돌멩이도 있고, 아무도 자신을 찾아와주지 않아 외로운 주춧돌도 있다. 우물 밖 세상으로 나가보는 것이 소원인 개구리도 있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보는 것이 고민인 플라타너스 나무의 그늘도 있다. 정호승 시인의 아름다운 상상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들 모두 언젠가는 귀중하게 쓰일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감각으로 다듬어 새로운 장정으로 펴낸 세 작품 <우화>, <항아리>, <조약돌> 모두 동시대적 언어 감각으로 세공되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가온다. 박선엽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으로 표지와 본문 삽화를 전면 풀컬러로 새롭게 꾸며 시인의 글과 조화로운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시인이 세상에 건네는 다정한 위로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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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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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사막에서 태어난 선인장이라는 사실에 대해 늘 불만이 가득했다. 내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시 많고 비쩍 마른, 어디 한 군데 아름다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선인장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메마른 땅, 뜨거운 태양빛만 이글거리는,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는, 늘 모래바람만 부는 이곳이 나는 정말 싫어. 그의 이러한 불만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커져갔다.               - '선인장 이야기' 중에서, P.30


독 짓는 젊은이한테서 태어난 항아리는 그의 첫 작품이었던 탓에 그리 썩 잘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젊은이의 솜씨는 무척 서툴렀고, 완성이 되었을 때도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아 뒷간 마당가에 방치되었다. 그렇게 항아리의 존재는 곧 잊혔다. 그러던 어느 가을, 하루는 젊은이가 삽을 가지고 와서 깊게 땅을 파고는 항아리를 모가지만 남겨둔 채 묻었다. 땅속에 파묻힌 항아리는 자신의 쓰임을 알 수 없었지만, 남을 위해 무엇으로 쓰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설레었다. 그런데 결국 그의 역할은 오줌독이었다. 지금까지 참고 기다리며 열망해온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싶어 항아리는 슬프다 못해 처량했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항아리는 오줌독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늘 가슴 한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독 짓는 젊은이가 독 짓는 늙은이가 되어 병마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뒤, 항아리는 어느 새 오줌독의 신세에서 벗어나 있었다. 항아리는 날마다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으며, 이번에야말로 아름답고 소중한 그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열망했다. 그리고 폐허가 된 가마터에 제법 규모가 큰 절이 들어섰고, 종각까지 완성된다. 아름답지 않은 종소리에 고민이던 주지 스님이 항아리를 종각의 종 밑에 묻는다. 그 다음에 종을 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종소리가 항아리를 거쳐 가면서 참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그제야 항아리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려온 것이 무엇이며, 자신이 이 세상을 위해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호승 시인은 우리 선조들이 종각 밑에 항아리를 묻어 그 항아리로 하여금 음관의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게 하였다는 사실로부터 이 이야기를 써냈다.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항아리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래, 나도 외로울 때가 참 많아.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어. 사과가 붉게 익어가는 것은 결국 외로움이 익어가는 거야."

"그래, 맞아. 외로움을 참고 견딜 수 있어야 빨갛게 익은 아름다운 사과가 될 수 있을 거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거야. 내가 솔씨일 때 엄마가 이 척박한 땅으로 나를 바람에 날려 보내신 건 아마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소나무가 되라고 그러신 걸거야."            - '소나무와 사과나무의 대화' 중에서, p.147


등단 50년이 넘는 동안 끝없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서정시의 거장, 정호승. 그가 시인일 뿐 아니라 소설과 동화로도 마음을 건네온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쓴 단편 ‘우화소설’ 중 44편을 모아 엮은 단편집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항아리, 부지런히 썰물을 찾아 나선 밀물,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이 불만인 선인장,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날개 하나뿐인 비익조, 주인이 자신을 별로 소중하게 생각해주지 않아 섭섭한 손거울 등 세상 만물이 주인공이 되어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건이든, 자연이든, 동물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도시에서 가로수로 살아가는 어린 왕벚나무는 어떻게 살아야 한 그루의 나무로서 참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파리는 마지막 남은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무엇이 가장 먹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림 속에 그려진 붉은 도요새는 단 한 번만이라도 푸른 받다 위를 마음껏 날아보고 싶어 화가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이렇게 작은 존재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짧은 이야기들이라 수월하게 읽히지만, 긴 여운과 온기가 남아 마음을 데워주는 듯한 책이었다.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줄 잔잔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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